<font size="3"><font face="돋움"><font style="line-height:21.6px;"> 가벼운 취기의 기쁨.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내 표정은 굳어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font><span style="line-height:21.6px;"></span></font> </font> <div style="line-height:21.6px;"><font face="돋움" size="3"> 나는 화장실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고 있다.<span style="line-height:1.5;"> 역시 나란 사람은 밑 빠진 독인지, 오줌보 한구석에서부터 주체 못 할 요의가 솟구쳤다.</span></font></div> <div style="line-height:21.6px;"><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방광은 아까 마신 술을 버리자고 배를 연방 두들긴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집까진 앞으로 이십 분 거리. 가까운 거리이지만, 그냥 참고 가기엔 나의 오줌보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노래방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span></font></div> <div style="line-height:21.6px;"><font size="3"><font face="돋움"> "화장실 어딨나, 화장실. 화장실."</font> </font> <div><font face="돋움" size="3"> 급한 마음에 입은 속내를 터놓는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아이의 울음보다도 솔직한 소리이리라.</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다행히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팻말을 단 철문이 보였다.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살았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기쁜 마음으로 문고리를 돌려 당겼다.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철컹.</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잠긴 문을 당겼을 때 나는 특유의 소리.</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당황한 나는 몇 번 더 세게 당겼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계세요? 빨리 좀 나와주세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실은 문을 돌릴 때부터 손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통해 알고 있었다.<span style="line-height:1.5;"> 잠긴 문을 돌릴 때의 그 헛도는 느낌. 그래도 나는 믿지 못하고</span><span style="line-height:1.5;"> 몇 번 더 당겼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에이, 젠장!"</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미련을 떨치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span style="line-height:1.5;">잠긴 문과 씨름할 시간이 없다. 빨리 가야 한다. 화장실로!</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좀 더 올라가자 </span><font style="line-height:1.5;">경첩이 시뻘겋게 녹이 슨, 아까와 같은 모양의 철문이 하나 보였다. </font><span style="line-height:1.5;">팻말은 떨어지고 없지만, 경험상 대부분 이런 곳이 화장실이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문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문고리를 잡았다.</span></font></div> <div><div><font face="돋움" size="3"> '여기도 잠긴 거라면 어쩌지?'</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그런 불안한 생각과는 별개로 문은 잘 열렸다. 본능적으로 들어갔고, 보았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어떠한 윤곽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뭔 화장실이 이렇게 어두워?"</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스위치를. 그리고 소변기를 찾아 이리저리 더듬었지만, 차갑고 딱딱한 돌벽 특유의 감촉뿐이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문을 열어서 빛을 들어오게 할 요량으로 문으로 다가갔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쾅.</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그 순간 문은 세게 닫혔고, 그곳은 </span><span style="line-height:1.5;">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는 깊은 어둠이 자리 잡았다. 으레 놀란 사람이 그러듯이, 나 또한 이때</span><span style="line-height:1.5;"> 한숨을 쉬었다. </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다리 사이에서부터 뜨뜻하고도 불쾌한 감촉이 다리를 훑어 내려갔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다시 한숨.</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 줄기는 멈추지 않고 5초 넘게 흘러내렸다. 방광은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 다 좋았는데 이게 뭐야."</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이럴 줄 알았다면 술집에서 미리 볼일을 보고 왔을 텐데. 경솔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순간 예전에 본 얘기가 떠올랐다. 이럴 때는 대책 없이 창피해 하는 것보다, 일부러 물에 빠져 온몸을 적셔 숨기는 것이 더 좋다는 것. 물은 어디서 구하나 생각하는 그때. 전등이 켜지고, 방의 윤곽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span style="line-height:1.5;">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을 돌렸다.</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단 두 걸음. 단정히 빗은 짧고 흰 머리에, 얇은 테의 안경을 쓴. 감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인이 책상에서 지폐를 세고 있었다. 표정이 읽히지 않는 주름진 얼굴은 지혜로워 보였다. 아니, 사실 내가 느낀 그의 첫인상은 고급 관료였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아직 정신이 가다듬어지지 않아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나에게, 노인은 지폐를 봉투에 넣어 내밀었다.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자, 27만8천 원. 이건 당신 몫이에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뭐, 뭐뭐, 뭐에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말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자, 받아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계속해서 돈 봉투를 내미는 노인에게, 나는 오줌을 지린 것이 들킬까 봐-사실 이미 냄새로 알았을 것이다.- 황급히 문으로 갔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사무실이었나요? 이거 죄송합니다.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왔어요. 죄송해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돈을 받으시라니까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목소리와 억양에서 희미하게 감정이 느껴지지만, 표정은 섬뜩할 정도로 굳어있는 것이 어쩐지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죄송합니다. 죄송해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대강 묵례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렇게 젖은 바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br></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다음 날.</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어제의 그 차림 그대로 자고 있었다. 바지를 보니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그래. 어제 지렸었지.'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다 마르긴 했어도 찝찝하긴 매한가지였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바지를 벗는데, 주머니에서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확인해보니 웬 봉투가 있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봉투를 꺼내 열어보니, 거기엔 돈이 있었다. 세어보니 27만8천 원이었다.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강 씻고, 옷을 갈아입고 어제의 그곳으로 갔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경첩이 시뻘겋게 녹이 슨. 어제 봤던 그 철문. 어제의 일이 사실이라면 오늘도 보이겠지.</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땀에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당겼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깊은 어둠. 어제와 같았다.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문을 활짝 열어 빛이 들어가도록 했지만, 여전히 깊은 어둠 그대로였다. 빛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이라는 듯.</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들어가서 직접 문을 닫았다. 그러자 불이 켜지고 책상. 그리고 노인이 보였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요새 자주 오시네요." </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font style="line-height:1.5;"> 면도칼이 급소를 더듬는 것 같은 싸늘한 감각.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 감각에 몸은 저절로 떨렸다. </font><span style="line-height:1.5;">노인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깜빡이더니 빙긋 웃었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어제 처음이셨군요. 내 정신 좀 봐. 워낙 자주 봐서 착각했네요."</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그 말을 할 때만큼은 다정다감한 동네 할아버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노인의 표정은 곧, 원래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것처럼 굳었다. 아까의 그 감각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 감각의 원인을 생각해내기도 전에,</span><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손으로 책상 앞 의자를 가리켰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우선 앉아요. 천천히 설명해 드릴 테니까."</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 아. 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의자에 앉았다. 마치 조종받는 것처럼, 앉았어도 내 의지가 아닌 것 같았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에게, 나는 돈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게 뭔가요?"</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급여죠.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실수 값."</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실수 값. 난생처음 듣는 말이지만, 나는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어제 오줌 지린 것 때문에?"</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순간 내 얼굴이 구겨졌다. 나는 이런 사람을 안다. 들어봤다. 가끔 남의 실수를 찍어서, SNS에나 블로그에 올려놓고 광고비 받는 사람들. 이 노인도 그런 부류다. 돈을 먼저 건넨 건, 아마 그렇게 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는 거겠지.</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따지려고 하는데, 노인이 손으로 제지하고 입을 열었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는 그걸 찍은 적도 없고, 찍어서 판 적도 없어요. 그렇다고 남에게 말하면서 농담거리로 쓴 적도 없고, 인터넷에 올려 망신을 준 적도 없어요. 여태 살면서, 남이 원하지 않은 폭로는 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안 그럴 것이고. 그러니까 그 점은 안심해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내 생각이라도 읽은 것처럼, 내가 염려했던 점들을 모두 짚어 말했다. <span style="line-height:1.5;">나는 당황했다는 것을 숨기려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아니, 솔직히 말해 실수 값이라고 하시니까 더 수상한데요. 그걸 어떻게 믿어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당연히 물을 줄 알았다는 듯이 곧바로 말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그게 이곳의 규칙이라서요.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을 제게 말하거나, 보여준다면 그에 맞춰 돈을 주는 거죠."</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 마음을 아는 건지, 노인이 말을 이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실수를 제게 파는 겁니다. 이제 아시겠어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노인의 말에 납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은 좋았다. 당장 모두 떠올릴 수는 없지만, 나는 분명 실수를 자주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엔 비웃음과 상처만 고스란히 쌓여갔다. 위로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의 어릴 적 경험은, 인간은 실수한 순간 인간이 가진 모든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인간 이하의 무언가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돈! 실수를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돈을 주다니! 예전부터 받아야 했을 <span style="line-height:1.5;">보상을 조물주 대신 이 노인이 해주는 것만 같았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거죠?"</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물론이고 말고요. 따로 원하지 않는 이상, 나는 말하지 않아요." </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종이</span><span style="line-height:1.5;">봉투를 하나 꺼내었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실수. 더 팔지 않겠어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말하려다가,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잠시 멈칫했다. 사실 이 느낌은 노인을 봤을 때부터 느껴지던 일종의 불안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과거의 일도 괜찮아요. 길을 가다 넘어진 것이어도 만 원 이하로 준 적은 없어요."</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그 말에 내 머리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컴퓨터는 팔만한 실수를 빠르게 검색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저기, 혹시. 어제."</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오줌을 지렸다고 말하기엔, 나의 약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그거, 그 일 말이죠. 자초지종도 따로 받나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했다.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해서인지, 돈을 받을 거라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방금의 그 창피함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사실 돈을 받았을 때부터, 이 모든 게 누군가에게 말해져도 상관없지 싶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설명은 5분도 안 되어 끝났다.<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돈을 봉투에 넣어 내게 주었다. 확인해보니 2만 원이 들어있었다.</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왜 이것 밖에 안 주나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어제 대부분 값을 치렀잖아요. 만약 처음부터 설명했었다면, 정확히 29만8천 원을 줬을 거에요."</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이해는 하면서도,<span style="line-height:1.5;"> 왠지 분한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잠깐, 과거의 일도 이야기도 된다고 하셨죠?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얘기해봐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천천히 말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제가 초등학교 막 들어갔을 때 얘긴데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래. 생각난다. 생생히.</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때, 용권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그 애를 그만 용가리라고 불러버렸지 뭐에요. 하하하."</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이어서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여기까지만 말하자. 이것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노인 또한 그것으로 괜찮다는 것인지, 말없이 봉투를 내밀었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번엔 5만4천 원이 들어있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것 밖에 안 돼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미안하지만 그래요. 가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정말 형편없는 얘기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들을 가치 없는 이야기.</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실수를 팔았다. 언제 가건 그 노인은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얘기하는 실수는 다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못 해도 용돈 정도는 되었다. 돈을 깜빡 잊고 가면, 항상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러고 보면 그 노인은 희한한 사람이었다. 어떤 말을 하건 표정도 억양도 변하지 않은 채로 무덤덤하게 듣다가 가격을 말하곤 돈만 내어줬다. 억양이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만큼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 노인에게 말하고 있자면,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자판기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렇게 열 달이 흘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br></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다시 찾아간 노인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한결같은 태도로 말했다. 사실 노인의 미소는 그때 본 것 단 하나뿐이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래, 이번엔 무슨 실수인가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번엔 있죠."</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말을 하다 말았다. 말문이 막혔다. 지난 십 개월 동안 웬만한 실수는 다 말해버린 것 같았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노인은 남의 실수를 듣고 값을 치러주네 뭐네 하지만, 사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 노인은 그저 다른 노인들처럼 인생의 마지막이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저 젊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고, 보통 자신의 인생 얘기를 늘어놓는 노인과는 좀 다르게, 남의 실수를 듣기 좋아하는 괴짜일 뿐이다. 그런 것이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시험 삼아 이야기를 꾸며서 말하기로 했다. 없는 얘기 잘 지어낼 자신은 없고, 내 실수도 더 말해봐야 나만 손해고, 다른 친구 얘기를 적당히 꾸밀 생각이었다. </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마침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친구가 강의실에서 하품하려다가 방귀를 뀌어버린 일. 솔직히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시험을 위한 장기 말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친구를 나로 치환하면 될 것이다. </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생각을 가다듬고, 그렇게 말을 하려는데, 노인이 손으로 제지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 말하지 말아요. 남의 것이나, 꾸며 말하는 것은 돈을 줄 수가 없어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순간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뭐지? 설마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까 했던 생각도 눈치챈 걸까?</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굳이 그렇게 지어내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이 있잖아요. 제가 '실수'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일이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무서운 노인네였다. 도대체 이 노인네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 실수의 값은 192만 원이에요. 파시겠어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망설였다. 이 자리를 당장 뜨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았지만 어쩐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충동을 억누르고, 실수를 말하는 것과 192만 원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예.'라고 말하고 말았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렸다. 나는 말하겠다고 하면서도 주저하고 있었다. 5분이 지나서야 나는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건 아주 어릴 때, 네 살 때 일인데."</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하니 나조차 멈추지 못할 기세로 말이 쏟아져나왔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엄마랑 아빠가 부부싸움을 했었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이후로 계속 술을 마시고, 취하면 항상 어머니를 때리고 욕했어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으레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듯이, 그 슬픔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텐데, 이 노인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아까의 미소가 걷히지 않은 얼굴은 변하지 않은 채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 나는 공포를 느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러다가 한 번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너 누구랑 바람피웠어?' 하고 묻는 거에요. 고함치면서. 재떨이를 던지면서."</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눈물이 나왔다. 어느새 나는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입은 계속 말했다. 계속.</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때 제가 어머니에게 '빨리 말해! 엄마, 빨리 말해!'라고 했어요. 빨리 말하라고. 없는 사람을. 하하하!"</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던 실수인데. 나는 왜 말했을까.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정말 멍청이에요.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였던 멍청이!"</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울음은 나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멍청이! 멍청이! 이런 삶도 정말 당연했던 거야!"</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나는 어느새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 실수를 말하고 나니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 전부. 실수란 실수는 하나도 빠짐없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그때,</span><span style="line-height:1.5;"> 내 어깨를 도닥이는 손이 느껴졌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규정상, 실수에 대해 사적인 말은 해선 안 되지만......."</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고개를 들었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다 이해한다는 듯한, 세상 풍파를 겪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이해의 표정. 노인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정장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젊은이. 그건 젊은이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누구도 그 실수를 비웃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손수건으로 눈물 콧물 닦으면서도,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계속 울었다. 나는 모르지만, 내가 울음을 멈추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울음을 그친 내 앞엔 봉투가 있었다. 아까부터 놓여 있던 것인데, 우느라 못 봤던 거겠지. 눈물 젖은 손으로 돈을 셌다. 이번엔 200만 원이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감사합니다." </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span style="line-height:1.5;"> </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실수는 다 팔았나요?"</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네. 이만 가보겠습니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가장 비싼 실수는 얼마였나요?"</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왜 그게 궁금해졌는지 도통 모르겠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수염 한 올 없는 턱에 손가락을 얹고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이렇게 저에게만 말한 것 중에서 가장 비쌌던 것은 870만 원이었죠."</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 <span style="line-height:1.5;">그 말을 듣고 나니, 다른 의문이 들었다. </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럼, 남에게도 말하면. 아니, 그보다도 이렇게 제 실수를 듣고 돈을 주는 사람이 있나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가슴 속에서부터 무언가 주체 못 할 욕망이 끓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물론이죠.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팔 수도 있죠."</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그렇게 하면, 얼마까지 받을 수 있죠?"</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 숙여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까 같은 얘길 그렇게 팔았다면, 천 배는 넘게 받았을 테지만."</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하지 마세요. 분명 후회할 겁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 또한 고개를 저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솔직히 말해, 그냥 나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거란 기분이 들었어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리고 다짐하듯 목소리를 높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저는 여기서 제 인생의 모든 실수를 털어놓고, 새 시작을 할래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어쩔 수 없네요. 그럼......."</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붉은 라벨이 붙은 녹색 유리병과 작은 잔 둘.</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뚜껑을 따고 잔에 차례로 따랐다. 물과 같은 빛깔의 액체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번엔 아까처럼 말할 필요가 없어요. 이걸 마시면, 당신의 실수가 돈을 낸 사람들에게 모두 보이게 될 거에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정말 할 거에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네. 할 거에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어딘가 미덥다는 듯한 표정이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래, 얼 만큼 팔 건가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전부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전부?"</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노인은 망설이더니, 잔에 담긴 것을 마셨다. 나도 곧이어 마셨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마시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시 방이 어두워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러나 내 손은 햇볕 아래 놓인 것처럼 똑바로 보였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내 몸을 제하곤 주변에 있는 것도 모두 어두웠다. 바닥이 딱딱하다는 것 말곤 느낄 수가 없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때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영화관 스크린과도 같은, 빛의 스크린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스크린엔 한 소년이 학교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소년은 배로 대걸레를 밀면서 달렸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장면을 알기 때문이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대걸레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소년의 배에 충격이 전해졌다. 그리고.</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우웨엑."</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소년은 토를 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앗, 아아아아!"</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토사물은 소녀의 발에 쏟아졌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미, 미안해."</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소년은 대걸레로 소녀의 발을 비볐고, 소녀는 그만 선 채로 울어버렸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짝사랑하던 아이였는데.'</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렇다. 저것이 나의 실수다. 정말 잊고 싶었던 나의 실수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와하하하!"</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주변에서 불이 차례로 켜졌다. 거기엔 가면을 쓰고, 연미복을 차려입은 남녀들이 서서 스크린을 보며 웃고 있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저거 웃긴 놈이구만!"</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정말 심하다! 하하하!"</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여태 어떻게 살았대? 하하하!"</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아려왔다. 눈도 코도 시큰거렸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스크린은 계속해서 비췄다. 이번에도 스크린엔 소년이 나온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강아지를 향해 장난감 총을 쏘고 있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소년은 아이들을 향해 소리친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야!"</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span><span style="line-height:1.5;">나의 실수다. </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강아지를 괴롭히지 마!"</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달렸다. 스크린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스크린은 내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연미복을 입은 사람들도 내 주변에서 전혀 멀어지지 않았다. 어느 방향으로 달리건 마찬가지였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다시 본 스크린엔 장난감 총으로 맞는 소년이 보였다. 웃음소리는 소년의 비명에 비례해 높아졌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내보내 줘!"</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웃음소리도, 계속해서 비치는 스크린의 목소리도 견딜 수 없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제발 내보내 줘! 못 견디겠어!"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때 내 어깨를 두들기는 손이 느껴졌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끼기긱.</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눈앞에 빛이 느껴졌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가세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나섰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문을 나서자 아까의 그 노래방이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쿵.</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듣지 못 한 채,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br></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다음 날.</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일어나자마자, 평소처럼 주머니를 뒤졌다. 평소처럼 봉투가 있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 봉투엔 돈이 아닌 통장이 있었다. 예금주 이름은 나로 되어있었는데, 통장 내역을 보니 세기 힘든,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 있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그 노래방 건물로 찾아갔다. 그 문으로.</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거기엔 여전히 철문이 있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문고리를 돌렸다. 그런데 전혀 돌려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됐다. 문을 두드리고 외쳤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계세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무리 두드리고 불러봐도 도통 대답이 없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 제가 열어드릴게요.</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뒤를 돌아보자, 한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span><span style="line-height:1.5;"> 남자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span></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거기엔 그저 낡고 냄새나는 화장실만이 있었다.</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남자는 하품하며 말했다.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얼른 볼일 보세요. 여기 금방 잠가야 하니까."</font></span></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잠시만요. 혹시 여기서 할아버지가 영업하고 계시지 않았었나요?"</span></font></div> <div><font face="돋움"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글쎄요. 모르겠는데요."</span></font></div></div></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니, 어제까지 분명히 있었어요. 사무실 차려놓고 항상 있었는데 그걸 모른다니 말이 돼요?"</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남자는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니, 여기에다 사무실을 차린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다른 건물이랑 착각하신 거 아니세요?"</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아니에요. 분명히 여기였어요. 열 달을 썼는데 그걸 어떻게 모르겠어요!"</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남자는 오히려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이보세요. 여긴 그냥 화장실이에요. 어제 누가 토한 것까지 내가 직접 치웠는데. 사무실 같은 거 없었다니까?"</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묻는 것을 관뒀다. 그렇다. 그것은 환상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쥐고 있는 이 돈은 무엇이란 말인가. </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런데 볼일 보려던 거 아니었어요?"</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나는 아무 말 않고 건물을 나갔다.</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 노인의 이야기를.</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다들 술에 취해 꾼 기묘한 꿈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 돈으로 사준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도.</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그렇게 나는 그 노인을 한 때의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그 이야기를.</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size="3"> </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b><br></b></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21.6px;"><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40년 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야경을 보면서 마시는 술은 정말 각별하구만. 하하하." </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그러게 말입니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간만에 딸과 사위. 마누라를 불러 식사했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나는 포도주를 보며 중얼거렸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참, 예전에 소주 마시는 것도, 돈 없어서 벌벌 떨던 내가 이렇게 되다니. 인생 참 신기하지."</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사위가 술을 따랐다. </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다 회장님께서 노력하신 덕이죠."</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아부만 늘어선. 하하하."</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하하하."</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나는 술잔을 들고 말했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위하여!"<br>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맑았다. </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한 잔 마시려는 찰나, 사위가 그만 포도주를 쏟았다. 셔츠가 붉게 물들었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어이쿠, 실수."</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자기도 참. 칠칠치 못하게."</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딸이 사위의 옷을 닦아주었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순간 나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노인. 그 노인. 그 노인이 떠오른다. 그리고<font style="line-height:1.5;"> </font><span style="line-height:1.5;">그 노인을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span></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일어났다.</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span style="line-height:1.5;"><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 "회장님?"</font></span></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걷다가, 이내 </span><span style="line-height:1.5;">힘껏 달렸다. 그리고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창문은 깨지고, 내 몸은 떨어졌다.</span></font></div> <div style="line-height:18px;text-align:justify;"><font face="돋움" color="#ffffff" size="3"><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나로선 감당할 수 없었다. </span></font></div> <p style="font-size:11px;text-align:justify;margin:0px;padding:0px;line-height:1.6;font-family:'돋움', dotum, verdana, sans-serif;"><br></p></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