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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85854
    작성자 : 솔잎사이다
    추천 : 13
    조회수 : 2291
    IP : 121.164.***.207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6/01/24 01:11:37
    http://todayhumor.com/?panic_85854 모바일
    [단편] 먼지가 묻었다
    옵션
    • 창작글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자네, 먼지가 묻었군."</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나는 말 없이 옷을 털었다. <span style="line-height:1.5;">노인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span><span style="line-height:1.5;"> 내 업무 수첩을 읽기 시작했다. </span><span style="line-height:1.5;">읽는 중간중간 펜으로 수첩을 긋는다. 지금은 밑줄을 그어 주고 있군.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한 선이지. 손이 한 군데 멈춰서 움직인다. 이건 우아한 싸인을 해주는 것이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노인은 수첩에 종이를 끼워 내게 주었다.  <span style="line-height:1.5;">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이제 시작하게. 현장에 5분 늦게 도착하는 거 잊지 말고."</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예."</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그러고선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게 눈길을 더 주지 않고 무언가 작성하기 시작했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나는 번화가로 나왔다. 쪽지에 적힌 숫자는 1044. 장소는 카페 앞 신호등. 지금이 10시 37분이니까, 좀 빨리 온 셈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약속 장소에서 떨어져 있다가, 5분 지나서 도착해 일을 하면 된다. 이번엔 5분 동안 다른 곳을 향해 걷다가, 다시 5분 동안 돌아오면 될 것이다. 왜 약속 장소에 5분 늦게 도착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시 사항이니 만큼, 지킬 필요가 있겠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49분이 되었을 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거기엔 젊은 남자가 쓰려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당황과 걱정으로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누구는 전화로 구급차를 부르고, 누구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를 당장이라도 업고 병원으로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나는 신호등 옆에 놓인 자루를 집었다. 내용물을 부어야 하는 위치는 신호등에서 남쪽으로 12센티미터. 나는 조금 망설이다, 내용물을 그곳에 부었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자루에서 쏟아져 나온 새까맣고 작은 거미들이 남자의 온몸을 뒤덮었다. </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꺄아아아아악!"</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그는 거미가 코와 입에 들어갈 때까지 비명을 질렀다. 거미들이 얼굴 전부를 덮었을 땐, 그는 조금의 경련도 없었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나는 자루를 잘 개어, 있던 자리에 두고 떠났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사무실엔 여전히 노인이 무언가 자신의 업무 수첩에 적고 있었다. </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자네, 먼지가 묻었군."</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말 없이 옷을 털었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내 업무 수첩에 싸인을 해주고 종이를 넣어 내게 주었다. 그리고 쓰던 것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시작하게. 이번엔 현장에 5분 빨리 도착하는 거 잊지 말고."</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예."</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쪽지에 적힌 시간은 1322.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사탕을 하나 샀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얼굴이 있는 경찰차 모양 플라스틱 장난감에 잘 포장된 사탕이었다. 이번 일은 아까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이 사탕을 5분 빨리 도착해 횡단보도에 두면 된다. 시계를 보니,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들른 김에 출출하기도 해서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마음까지 데워주는 듯 하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먹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생각해 보니 전의 일이나 이 일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똑같은데, 왜 나는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웃고 말았다. 생각난 김에 소시지를 하나 사먹었다. 매번 편의점에 오게 될 때마다 먹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먹지 못했던 건데,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먹겠는가. 이 소시지는 참 재밌는 장난이 가능하다. 나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입술로 소세지의 껍질을 문질러 뽀득뽀득 소리나게 하며 놀았다. 이건 이 소시지로만 가능한 장난이다. </span><span style="line-height:1.5;">점원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이런 소소한 재미를 위해서 사는 것 아니겠어?</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한동안 그렇게 놀면서 먹다가 시계를 봤다. 1시 21분. 나는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약속 장소 앞에서 먹었기에 망정이지, 완전히 늦을 뻔했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차가 바쁘게 달리는 도로 한 가운데에 가서 사탕을 놓았다. 이걸로 일은 끝났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사무실로 가기 위해 돌아섰는데, 말 소리가 들린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엄마! 저기! 저기! 내 사탕 저깄어!"</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남자 아이가 내가 둔 사탕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외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사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안 돼!"</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내가 가기도 전에 아이는 승용차에 치였다. 치인 아이의 몸은 붕 떠서 교차로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그리고.</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덤프트럭이 아이의 머리를 밟고 말았다. </span><span style="line-height:1.5;">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span><span style="line-height:1.5;">말았다. </span><span style="line-height:1.5;">교차로의 모든 차가 멈춰섰다. 트럭 운전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기절해버렸고, 승용차 주인은 차 안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span><span style="line-height:1.5;">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아이의 엄마가 아주 느릿하게.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한 발자국. </span><span style="line-height:1.5;">한 발자국, </span><span style="line-height:1.5;">걸어.</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아이의 앞에 섰다. 아이의 엄마에게, 눈물은 없었다. 눈물은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처럼, 울지 않았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아이의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짓이겨진 뇌를 쪼개진 아이의 머릿속에 한 줌씩 천천히, 소중하게 담았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눈물이 내 뺨을 흐르는 것을 내버려둔 채, 노인에게 향했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아무 것도 쓰고 있지 않았다. 노인은 나를 보더니 한 마디 했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자네, 먼지가 묻었군."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바로 노인의 따귀를 올려 붙였다. 계속 때렸다. 노인의 고개가 여러번 뒤틀렸다. 노인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내가 멈출 때까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수첩을 건네주는 대신 물었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왜 내게 이런 일을 시킨 겁니까?"</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서 수첩을 달라는 듯 조용히 손만 내밀고 있을 뿐. 몇 번을 물어도 같은 반응이었다. 다시 때려도 마찬가지였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젠장!"</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수첩을 책상에 내리치듯 던졌다. 노인은 조용히 수첩을 들어 싸인을 하고 종이를 넣어 내게 주었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시작하게. 이번에도 정시에 가보게."</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나는 대답 대신 문을 탕 소리 나게 닫고 나갔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시간은 2048. 약속 장소는 가정집이었다. 이번엔 정시에 바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안엔 부부로 보이는 노인 둘이 가슴과 목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호흡도 없었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화장실에서 났다. 그리고 화장실 문 앞엔 중년의 남성이 피가 마르지 않은 칼을 든 채, 화장실을 걷어 차고 있었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이번 일은 거실 천장을 있는 힘을 다해 치는 것이었다. 나는 현관에 있던 야구 방망이를 집었다. 나는 그 남자의 머리를 치고 싶었다.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천장을 힘껏 쳤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그러자 에어컨이 넘어지며 중년의 남자를 덮쳤다. 남자가 들고 있던 칼이 그대로 남자의 목을 꿰뚫었다. 피가 울컥울컥 나왔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남자는 칼을 뽑으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 없었다. 나는 방망이를 제자리에 두고 다시 사무실로 갔다.</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노인은 서류를 파일철에 잘 정리하고 있었다. 업무 수첩을 주자 말 없이 읽었다. </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span style="line-height:1.5;"> </span><span style="line-height:1.5;">"자네, 먼지가 묻었군."</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나는 말 없이 옷을 털었다. </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이번엔 털어낼 줄 알았는데."</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순간 놀라 노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늘 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이번엔 종이를 두 장 넣었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시작하게. <span style="line-height:1.5;">현장에 5분 늦게 도착하는 거 잊지 말고."</span></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예."</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수첩을 받아들자 노인은 다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나는 사무실 밖에서 수첩을 열어 쪽지를 확인했다. 하나는 그저 업무가 적힌 쪽지였고, 나머지 하나는…….</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글씨가 시선에 닿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 쪽지를 버리고 말았다. 내 몸을 내 손으로 쥐어 뜯고, 찢어버리고픈 충동이 일었다. </p> <p style="margin-top:0px;margin-bottom:0px;font-family:'돋움';"> 그 충동은 옷을 찢는 것에 그쳤다.</p>
    솔잎사이다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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