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었다. <div><br><div>나는 대한민국의 학생답게, 학원-집-학원-집 이라는 거대한 쳇바퀴 속에서 10일을 보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뻔한 노릇이다.</span></div> <div><br></div> <div>모든 것이 스케줄에 짜여 있어서, 밥 먹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모두 하루에 몇 시간, 몇 시 부터 몇 시까지가 정해져 있었다.</div> <div><br></div> <div>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아침 9시에 수학학원만 하나 갔다오고,</div> <div><br></div> <div>숙제를 한 다음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돌아오는 7시까지 애니를 봐야지.</div> <div><br></div> <div>그렇게 한 6시 즈음 흐흥거리며 튼 애니플러스에는 신작이 방영되고 있었다. </div> <div><br></div> <div>오프닝은 역시 일본 특유의 일렉트로닉 음악과 엄청나게 추상적인 가사로 시작했다.</div></div> <div><br></div> <div>뻔한 노릇이다.</div> <div><br></div> <div>오프닝이 끝나자, 학교 교복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무심한 표정으로 등교하는 주인공이 나왔다.</div> <div><br></div> <div>나레이션은, "나는 고바야시 세이로. 평범한 17세의 고등학생이다."</div> <div><br></div> <div>아마 저 주인공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아서 곧 어떤 막강한 초능력으로 악당들을 때려부수고 다닐 것이다.</div> <div><br></div> <div>뻔한 노릇이다.</div> <div><br></div> <div>한창 주인공이 소꿉친구도 능력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뻔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삑삑- 도어락이 울렸다.</div> <div><br></div> <div>엄마다. 아마 오늘 저녁은 오이지에 어제 먹다남은 된장찌개, 스팸 그리고 콩나물무침일 거다.</div> <div><br></div> <div>뻔한 노릇이다. </div> <div><br></div> <div>나는 끙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보았다.</div> <div><br></div> <div>지금은 6시 30분이다.</div> <div><br></div> <div>엄마는 7시가 넘어서야 돌아온다.</div> <div><br></div> <div>철컥, 덜커덩-, 하고 열린 문으로 찬바람이 불어온다. </div> <div><br></div> <div>뉘엿뉘엿 지는 석양에 현관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에 식칼의 실루엣이 보인다.</div> <div><br></div> <div>곧 있으면 우리 집은 비명소리와 피로 가득 차겠지,</div> <div><br></div> <div>너무나 뻔한 노릇이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