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때는 1999년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막 서울로 취직해서 올라왔을때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혼자 남은 사무실은 적막하고 쓸쓸하기 이를 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김에 스피커 볼륨을 크게 올려서 캐롤을 틀어 놓았지만 오히려 을씨년스러운 기운만 더했다.</div> <div><br></div> <div>취직이라고 해서는 서울 올라와서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인데..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달리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개발실에서 숙식하는 처지에 집이라고 들어가 봤자 오늘 같은 날 아무도 없을 건데 제안서나 써 놓자고 기운차게 야근을 시작했지만 제안서는 맴맴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같이 개발실에서 숙식하는 권대리는 오늘 여자친구랑 데이트가 있다면서 하루 종일 들떠 있다가 6시가 되기가 무섭게 나가 버렸고 나머지 사람들도 조금 들떠 있는 분위기를 틈타 칼 퇴근들을 해 버렸기 때문에 6시부터는 쭈욱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던 터였다. 전기스토브 때문에 등은 뜨끈 뜨끈해 오고 일을 하다 말고 자꾸만 웹 서핑을 하고.. 집중이 되질 않았다.</div> <div><br></div> <div>'출출한데 컵라면이나 하나 먹어야겠다.’</div> <div><br></div> <div>야근이 생활화 되어 있는 사무실 분위기에 컵라면은 필수였다. 부스럭 거리며 컵라면을 하나 꺼내서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div> <div><br></div> <div>"쪼르르르륵~~"</div> <div><br></div> <div>나이도 짭밥도 밀려서 늘 뒤쪽에서 물을 받을 수 밖에 없던 나는 걸핏하면 미지근한 물로 컵라면이 잘 익지 않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 아주 뜨끈한 물로 가득 물을 받을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혼자 있으니까 좋은 것도 있구만.."</div> <div><br></div> <div>후후 불어 가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단무지와 컵라면 하나를 국물까지 비우고 나니 왠지 속이 든든해 지는 게 불끈 힘이 솟았다.</div> <div><br></div> <div>"자 이제 힘내서 한번 끝내 볼까"</div> <div><br></div> <div>120장이 넘는 제안서의 마지막 장을 마치고 나자 시간은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사무실을 잠그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까지도 몰랐었다. 빌딩 문 앞에까지 와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가 있었다.</div> <div><br></div> <div>눈이다. 눈. 눈.. 눈.. 온 세상이 그야말로 하얗게 눈으로 뒤 덮여 있었다.</div> <div><br></div> <div>새벽녘 테헤란로 뒤편 골목길은 소복하게 온 눈으로 평소의 분주함은 간데 없이 동화 속 그림처럼 그렇게 딴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div> <div><br></div> <div>’와 이런 게 크리스마스 축복인가.. ‘</div> <div><br></div> <div>우울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행복으로 가득 차 버렸다. 혼자 미끄럼을 지치기도 하고 눈을 뭉쳐서 간판에 던져 보기도 하고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뽀드득 거리며 혼자 콧노래까지 흥 얼 거리며 걸었다.이윽고 숙소로 쓰고 있는 빌라에 도착했다. 열쇠를 꺼내서 열쇠구멍에 넣을 때 까지도 크리스마스는 내게 축복이었다.</div> <div><br></div> <div>그런데..</div> <div><br></div> <div>20분째.. 빌라의 문은 덜그럭 거리기만 할 뿐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어째서.. 복사해서 받은 열쇠가 가끔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어째서 하필 오늘 같은 날.. 따뜻하게 씻고 즐거운 맘으로 잠이 들려고 하는 오늘 같은 날 문이 열리지 않는단 말인가.. 덜그럭 거리며 애꿎은 열쇠뭉치를 흔드는 내 손위에 갑자기 눈물이 뚝 떨어졌다.</div> <div><br></div> <div>서울 올라온 지 1년 이런 저런 힘든 일도 많았건만 어째서 이렇게 아무런 일도 아닌 일에 눈물까지 나는 걸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div> <div><br></div> <div>"꽝"</div> <div><br></div> <div>문을 힘껏 걷어찼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div> <div><br></div> <div>그런데 갑자기 ..</div> <div><br></div> <div>”삐그덕..”</div> <div><br></div> <div>문이 열리고 나타난 건 얼굴만 빼 꼼이 내민 권대리였다.</div> <div><br></div> <div>"저 여자친구랑 있거든요"</div> <div><br></div> <div>뭐야 저 곤란하고 처절한 표정은...</div> <div><br></div> <div>"아 .. 에"</div> <div><br></div> <div>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눈길은 이미 축복도 뭣도 아니었다. 차가운 사무실에서 의자를 모아 놓고 전기 스토브를 켜며 생각했다.</div> <div><br></div> <div>’이것보다 최악인 크리스마스는 이제 없겠지. 그나 저나 얼마나 거하게 술을 쏘는지 한번 봐야겠군’</div> <div><br></div> <div>스피커에선 여전히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고요한 밤 거룩한 밤 ~~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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