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군대 이야기입니다.)<br><br>9X년 장성 화학학교에 전군 최초로 k216, k316 화학정찰차가 입고되던 즈음, 이걸 교육생들에게 교육을 시킬 임무가 교관들과 조교들에게 부여되었어요. 독일에서 직수입한 이동식질량분석기를 비롯한 각종 첨단장비는 물론 국내 어떤 기갑장비에서도 찾을 수 없던, 무려 에어컨이라는 무지막지한 편의시설이 포함된 장비인지라 제조사에서 파견 나온 엔지니어분들이 약 2 주 정도 교관과 조교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던것같아요 (첨언하건데 처음에는 에어컨없이 배치될 예정이었는데 '조작병은 더워도 괜찮은데 질량분석기는 더우면 고장납니다.' 라고 제조사에서 설득해서 장비됨.).<br>그래서 화학작용제를 탐측하고 보고하는 주특기를 가르치는 탐측조교들이 우루루 불려나가 그 교육을 이수했는데 그 중에 탐측과목이 아닌 조교도 몇몇 포함이 되었더라구요. 중요한 장비이니 주과목이 아니더라도 탐측을 가르칠 수 있는 조교라면 일단은 불러서 이수시킨다는거였는데 그중에 어쩌다가 말년을 얼마 안남긴 병장 찌끄레기 하나가 포함되었죠.<br><br>원래는 탐측이 주과목도 아니고 게다가 전역도 얼마 안남은 병장을 이런 교육에 투입시키는게 삽질이었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던게죠. 군대에서 그런일 흔하잖아요. 뭐 그 병장놈도 예전에는 신장비 교범도 수정보고 그런적있어서 어련히 잘하겠지 그런 기대가 좀 있었던 모양이에요.<br><br>근데 이놈의 병장놈이 교육만 들어가면 딥슬립. 완전숙면모드. 하긴 그거 배워봤자 기존 탐측조교들이 우글우글한데 교육에 투입될 이유도 없는데다가 몇 달있으면 전역인데 의욕도 없고 그랬겠죠.<br><br>하여간 그렇게 교육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화학정찰차 교육이 교안에 포함되었는데...<br><br>그날은 뭐가 꼬여도 단단히 꼬여서 정찰차 교육이 세 개인가가 잡혔다고 하더라구요. 심지어 그때 화학학교 안의 정찰차는 두 대 뿐인데.<br>정찰차 교육 진행이 가능한 조교를 모두 끌어모아도 교육을 두 개 밖에 진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중대 전체가 멘붕. 아니 이거 어쩌지? 조교가 없네? 조교가 없는데 수업을 어떻게 하지? 조교를 어디서 빌려와? 아니 그런 조교를 어디서 빌려?<br><br>근데 생각해보니 조교를 빌려오지않고도 중대 내에 남는 정찰차 교육 가능 조교가 있더라는 사실을 교육짜던 소대장들이 순간적으로 깨닳게된거죠.<br><br>'걔 데려오자. 걔 이 교육에 넣자.'<br><br>걔가 그 딥슬립 병장. 해당 소식을 그 전날 듣게된 병장은 개깜놀해서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이럴려고 교육받은거 아니다, 아니 그럴려고 교육받은거 맞는데 하여간 기억이 나지않는다, 아니 소대장님들도 알잖아요 나 저거 못해요, 차라리 날 밟고가...<br><br>뭐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나마 가장 쉽다는 정찰차 외형 교육에 투입되었는데 아이고 상대가 ROTC 출신의 소위들. 궁금한게 많기로는 다섯살 유치원생과 맞먹는 소위들 교육에 투입. 그래도 나름 병장짬밥이라 어영부영 교육을 진행은 했다는데 뭐 사실 어려울것도 없는것이 교범에 있는 내용 대조해가며 강비들 설명하면 그 뿐이니...<br><br>근데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고해요.<br>어떤 소위가 장갑차 앞에 달린 핸들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거죠.<br><br>"조교야, 이거 뭐야?"<br>"아 그거 파도막입니다. 그거 열면 파도막이가 내려가서 도강이 가능합니다."<br><br>보통은 이렇게 질문이 끝나는게 보통이죠. 사실 대부분의 교육이 그래요. 근데 이 사람들은 안 그랬어요.<br><br><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680" height="399"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3/1426556438g3ZLwI4WcvkuSjk5xm.jpg" alt="k200a1.jpg" style="border:medium none;"></div><br>(기갑병과라면 뭔지 알거에요.)<br><br>"그래? 그럼 열어봐."<br>"네? 이걸요?"<br>"그래, 파도막이."<br>"위험한데...."<br>"그래도 한 번 열어봐."<br><br>그 때 그 병장은 보았다고 해요, 초롱초롱 빛나는 백여개의 안구를. 그걸 보니 도저히 도망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더래요.<br><br>"모두 물러서세요. 이거 위험한겁니다."<br><br>병장은, 주변의 소위들을 모두 물리고 망설임없이 핸들을 제꼈던거죠. 사실 그 병장이 걱정이 되었던건 안전이 아니라 파도막이를 다시 체결하는 방법은 자느라 듣지 못했던 사연때문이었거든요.<br><br>근데,<br>파도막이를 개방한 직후,<br>그 병장은 잠깐 기억을 잃어버렸더라구요.<br>뭔가 거대한것이 시아를 뒤덮었는데 그 다음에 눈을 떠보니 땅바닥이었대요.<br><br>그니까,<br>저 파도막이라는 놈이 겁도없이 전면에서 파도막이를 개방한 병장의 이마를 강타한거죠. 이른바 일톤 스파이크.<br><br>일순간 모든 정황이 파악된 병장은, 조교 체면에 이 무슨 망신인가 싶어서 벌떡 일어나 주변에 널부러진 구겨진 전투모를 챙겨쓰고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큰소리로 외쳤다고...<br><br>"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br><br>근데,<br>왜일까,<br>주변의 소위누나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티슈 한장을 꺼내며 그 병장에게 쥐어주더라하더라구요.<br><br>"너 피나."<br><br>파도막이가 쓰고있던 안경을 치고가며 콧대도 치고간거죠.<br><br>하여간 이렇게 반년짜리 놀림거리가 교도중대 전체에 퍼지고, 평소에도 실없는 놈이라고 평가받던 그 병장은 위아래 할것없는 공평한 놀림거리가 되었는데...<br><br>문제는 그 소식이 정찰차 교관에게 전달된거죠.<br>어째서인지 그 해프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교관은 다음해 발행될 화학정찰차 교범을 수정합니다.<br><br>"파도막이 개방시 주변 5 미터 이내 접근금지."<br>.<br>.<br>.<br>그게 근 20 년 전 일인데 아직도 이불킥합니다.<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