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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878894
    작성자 : 슈뢰딩거철수
    추천 : 7
    조회수 : 517
    IP : 220.119.***.91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7/03/31 07:43:12
    http://todayhumor.com/?sisa_878894 모바일
    정치가 순진한 어르신들 이용해먹는 것에 너무 화가 납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전역하고 복학을 준비하며 야간알바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퇴근할 때마다 버스정류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그러다가 매일 뵙는 분이시기도 하고, 주로 둘 밖에 없어서 어쩌다 제가 먼저 말을 걸다보니


    그 이후론 매번 인사도 하고 몇 마디 대화도 하게 되었지요. (저는 퇴근하는 길, 어르신은 출근하는 길)


    내리는 정거장은 서로 같지만, 어르신께서는 먼저 오는 직행버스는 안 타시고 주로 10분 뒤에오는 일반버스만을 타셔서 주로 타는 버스는 서로 다릅니다.


    때론 제가 먼저 오는 직행버스를 못 보고 한눈팔거나 했을 때 몸이 불편하신데도 대신 버스를 잡아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두어달 전부터는 아부지랑 출퇴근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으니 아버지가 차를 빌려주셔서 타고 다니는데


    어르신과 가는 길도 같은지라 그렇게 가는길에 출근하는 어르신을 차에 태워다 드린지 한달 좀 넘었네요.


    어느날은 저한테 밥도 잘 못먹고 다니는 것 같다며 몇만원 쥐어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귀도 잘 안들리시고 그냥 순진무구하신 분..




    그리고 바로 오늘이 어르신의 마지막 출근 날이었고, 오늘은 아버지 차를 못 빌려서 오랜만에 정류장에서 차 없이 뵈었습니다.


    "어르신, 오늘 마지막 출근이시네요"

    "응!"


    그러더니 갑자기 저한테 연락처를 좀 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딱히 오해한 적은 없지만 어르신이 혹시 제가 그럴까 싶으신지 이유를 말해줬습니다. 


    "너 주말에 쉬면 같이 진해에 벚꽃이나 보러 갈려 그랬지!" (참고로 저는 금요일만 쉽니다)


    물론 그러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어르신 그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류장 모니터 하단에 "박근혜 구속" 타이틀 기사를 보게 되었고


    (저는 창원 지역입니다)  어르신네 정치 성향이 궁금해져서 별 기대는 안 했지만 한 번 여쭈어봤습니다. 


    "어르신 대통령 누구 생각하고 계십니까?" 라고 제가 물으니


    갑자기 어르신이 평소보다 약간 격양된 어조로


    "문재인은 안 된다!" 라고 하시더군요.


    순간 그걸 보고 '세뇌'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낀 게,


    분명 '누구를 뽑으실 거냐'고 물어봤는데, 갑자기 황당하게도 문재인은 "안된다!"가 먼저 나오더군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데자뷰..) 


    평소 시크한 성격이라 딱히 뭐 따지거나 하진 않고,


    "아, 그래요?ㅎㅎ" 하고,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그냥 여유를 유지했습니다. 


    제가 굳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어르신께서 '이유' 하나를 말씀하시더군요. 


    어르신 : "문재인 뽑히면... 북한 먼저 간댄다!"

    저 : "으음~"

    어르신 : "안철수... 안철수가 뽑혀야 된다더라!"

    저 : "으음~"


    처음엔 순간적으로 '머릿 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 반박논리들을 어르신께 얘기해드려야 할까?' 하고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한된 정보의 환경에서, 그렇게 수십년을 살아오신 분'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장자, 혹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마따나,

    '콩을 심었는데 팥이 왜 안 나냐고 분노한다면 그건 콩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 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만약 상대가 어르신이 아니라 저와 같은 젊은 세대의 상대였다면 이성적인 토론이라도 시도해봤을 겁니다.


    하지만 제 앞에 있던 그 사람은, 


    10살 어린 소년시절에 6.25라는 비참한 전쟁기를 겪은, 북한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의 뿌리가 매우 굵고 깊은 분이셨습니다.   

    물론 전후에 진실된 정보를 접해서 편견 없이 더 나은 인식을 갖게 된 기회를 얻은 어르신들도 계시겠지만, 

    박사모만 보더라도 그 기회를 놓친 노인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신중하게 생각을 거듭하고 난 뒤에


    저는 어르신의 '의견'이 아닌, '어르신 자체'를 그냥 존중해드리기로, 짧았던 우정을 지키기로 정했습니다. 


    어르신의 그 말을 끝으로 저는 더 이상 정치 얘기를 언급하지 않았고,

    다시 '그 동안 일하시느라 고생하셨다'며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의도된 상황을 만드는데 크게 성공한, '자칭' 보수라는 옷을 입어온 그 기득권에 대한 노여움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들이 왜 상식적인 일반국민들이 아니라 지식에 취약한 노인분들을 목표로 표를 따려고 그렇게나 안간힘을 쓰는 지.

    막연하게 알고 있긴 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실감했습니다.




    정권교체 꼭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 

    대한민국에서 수십년 썩어온 온갖 악습들 꼭 청산되길.



    -비 오는 날, 어르신과 마지막 인사한 날, 그리고 박근혜가 구속된 날에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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