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많다
그래서 인생을 사는동안 단한번의 일탈도 하지 않았고
상식을 넘어선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한번 미친짓을 한적이 있는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때는 5년전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나는 작은 읍동내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집은 좀더 시골이라 할 수없이 학교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숙사는 아침이되면 모든학생을 내보내고 문을 잠갔고 야자를 끝마칠 시간이 되어야 다시 들어갈수있었다.
아파도 기숙사에 혼자 학생을 둘 수 없기 때문에
병가나 조퇴가 불가능했다
땡땡이는 말 할것도 없었다
3년간의 지옥생활의 시작이었다
아침 7시에 나가 급식을 먹고 하루종일 학교에서 공부 야자를 끝내면 10시
그리고 기숙사에 가서 다시 강제성 자습을 한다
모든일정이 끝나면 11시
그때부터 한시간 동안 빨래나 샤워를 한다
참고로 기숙사생이 200명이넘는데 세탁기는 각층에
1대씩 총 3대고 공용샤워실은 6개짜리 샤워기가 있는데 이역시 각층에 한곳씩 마련되어 있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12시가되면 소등을 하는데
밖에서 떠들어서도 안되고 오직 화장실에 갈때나 물을 마실때만 방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참고로 한방에 6명이며 각자 일자로 딱 누우면 꽉차는 크기였다
이쯤되면 내가 학교를 다니는건지 교도소에 갖혀있는건지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1년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금요일저녁에 집에보내줬던 기숙사가 여학생이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된다며
다음날 토요일점심때나 집에 보내주는것으로 바뀌면서 인내심이 바닥나가는걸 느꼈다
고 3이 코앞이라 기숙사 사감님과 담임샘을 겨우겨우 설득해 영어 학원에 다니기로 했는데
그 잠깐 한시간 정도라도 밖에 나가는게 너무 행복했다
물론 암것도 못하고 공부만하다오긴했지만...
밖의 공기는 달콤한맛이었다
한두달 학원에 다녔을까
집에 목돈이 나갈일이 생겼고 나는 그달만 학원을 다니고 그만두는것로 정해졌다
나는 다시 그 감옥생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게다가 고3이 되면 자습시간도 한시간늘어나서 1시나되야 잘수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찹찹한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학교로 돌아가는길이었다
내가 다니는 길은 시내에 딱하나 있는 산앞에 있는 큰길이었는데 거기 산은 전에는 부모님 따라 자주올라다녔었다
높이는 쉬지않고 올라가면 더이상 못올라가겠다 싶을때 정상인 평범한 동내산이었다
무슨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난 너무 답답한 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선 등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때 시간은 9시 달이 찬란하게 떠있는 아름다운 한밤중이었다
다시한번말하지만 나는 시골에 산다
8시가되면 시내불이 다꺼지고 버스도 끊긴다
난 산에 있는 가로등도 꺼지는줄은 기필코 몰랐다
밤을 밝히는게 가로등인데 산속이라서인지 불을 다 꺼논것이다
나는 달빛과 유년시절의 기억에 의존하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처녀귀신이 내 머리채를 휘어잡을것 같았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여자애가 한밤중에 교복입고
식은땀을 줄줄흘리며 미친듯이 산을 오르는데
내가 제일무서운 사람이지않았을까...?
아무튼 절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보고 뛰다싶이걸었다
너무 무서워서 돌아갈수도 없었다
여기도 저기도 씨꺼만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산을 오르는데 긴장해서 힘든것도 몰랐다
그렇게 미친 귀신처럼산을 올라
1시간거리를 30분만에 주파하고 나는 정상에 올랐다
그때순간을 나는 절때 잊지못할것이다
아무도없는 조용하고 어둠속의 정상에 있는나
밤의 서늘한 바람
산아래로 보이는 일렁이는 빛의 파도 같은 야경
해안에 인접한 마을이라 시내보다도 지평선, 즉 바다쪽에서 더 많은 빛들이 빛났는데
꼭 일렁이는 빛의 파도같았다
내위에는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한참동안 조용히 야경을 보고 조금 울었던것 같다
그 가슴벅찬경험을 절때 잊을 수 없을것이다
...사실 내려올때가 또 무지막지하게 무서워서 흐느끼면서 내려왔다
야산속에서 흐느끼는 여고생
무슨 호러영화도 아니고 역시 제일 위험한건 나였던것 같다
그렇게 한시간여의 일탈은 막을 내렸고
내 교복이 흙투성이가 된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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