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 </div> <div>학생들 다니는 분식집에서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있었습니다. </div> <div>매운맛이 코를 자극하는 바람에 잠시 고개를 세우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지요. </div> <div>그때 벽에 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div> <div>“1. 앞만 보고 가자. 내 인생에 뒤란 없다. 2.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div> <div>3. 남처럼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 4.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거다. </div> <div>5.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div> <div> </div> <div> </div> <div align="justify"></div> <div>우리 학생들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국수라도 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div> <div>물론 자신의 식당을 다녀간 청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잘되길 바라는 건 좋은 마음입니다. </div> <div>저는 분식집 주인의 이런 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선의가 바로 좋은 결과로 </div> <div>이어지진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상황이 더 힘들고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div> <div>선의가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결합하면 그리될 수 있지요. </div> <div> </div> <div> </div> <div align="justify"></div> <div>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에 나오는 지남철(指南鐵, 나침판)의 비유를 떠올려봅니다. </div> <div>제대로 작동하는 지남철은 바늘 끝이 늘 불안스럽습니다.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div> <div>반면에 고장 난 지남철의 바늘 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어느 쪽이 남쪽인지 확실히 </div> <div>알고 있다는 듯 말입니다. 학생 땐 흔들림 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던 선배들이 부러웠습니다. </div> <div>뭐가 뭔지 잘 몰라 더듬대고 버벅거리던 제 모습이 불만스럽기도 했고요. </div> <div>시간이 꽤 흐른 뒤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을 보고 나서야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div> <div>“그래, 떨리는 게 정상이야!” 물론 지남철의 비유는 무지에 대한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div> <div>온전한 지남철은 마구잡이로 떨지 않습니다. 남쪽이라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있지요. </div> <div>그런 떨림을 유지하라는 건 정체되지 말라는 요구입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align="justify"></div> <div>리영희 선생의 글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div> <div>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선생의 ‘절필 선언’이었습니다. </div> <div>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저하돼 지적 활동을 마감하려니 많은 생각이 든다.…” </div> <div>절필은 ‘지적 활동의 마감’을 뜻했습니다.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지적 능력의 한계를 선생이 스스로 인식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div> <div>리영희 선생의 절필 선언은 제게 큰 울림이었습니다. 존경받던 지식인이 말년에 이르러 정확하지 않은 현실 인식으로 </div> <div>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결과적으로 분란을 일으킨 사례가 왕왕 있었기에 더 그랬습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align="justify"></div> <div>분식집 주인이 걸어놓은 글귀는 현실에 맞지 않는 주장을 선의로 하는 기성세대의 단면입니다. </div> <div>과거를 살아온 경험만으로 미래세대를 위해 조언하는 건 허망해 보입니다. </div> <div>외우고 기억하는 일은 사람이 기계를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공부를 </div> <div>잠을 줄여가며 해야 할 때가 아니지요. 제가 학생이었던 시절은 산업화 시대였습니다. </div> <div>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은 정보화를 넘어 인공지능의 시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div> <div>구글은 인제 제 목소리를 제법 잘 알아듣습니다. 페이스북은 사람의 얼굴을 사람만큼이나 </div> <div>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앞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몫이 될 것입니다. </div> <div>정보격차로 말미암은 불평등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div> <div>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div> <div>또 우리가 그 시대를 어떻게 열어가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align="justify"></div> <div>과거의 해법을 새로운 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이들을 일컬어 속된 말로 꼰대라 하는 모양입니다.</div> <div>“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 해가 갈수록 거듭 저 자신에게 하게 되는 다짐입니다. </div> <div>끊임없이 공부하면서도 점점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게 이런 다짐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인 듯싶습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align="justify"></div> <div>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div> <div> </div> <div> </div> <div>출처 : <a target="_blank" href="http://www.hani.co.kr/arti/SERIES/56/676832.html" target="_blank">http://www.hani.co.kr/arti/SERIES/56/676832.html</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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