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전 오늘, 난 서울 서교동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왔을 때 워낙 우렁차게 울어서, 밖에서 기다리던 아빠와 외할머니는 '아들이다!'라고 좋아하셨지만 나는 딸이었고
당시 산전검사를 딱히 받지 않아서 그냥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아들 + 우렁찬 목소리로 아들을 확신했던 아빠는
'아무래도 애가 바뀐 것 같다'며 병원에 항의하셨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너 그때 막 낳았을 때. 삶은 문어 같았어'라는 숭악한 말을 지금도 딸(!!!)에게 하신다. 다른 표현도 많구만.
여자아이 치고 3.8kg의 우량한 아기.
하지만 친가 외가 다 합쳐서 사돈의 팔촌까지 따져도 난 두 집안의 첫 아기였다.
때문에 아기를 마지막으로 돌본 사람은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아기는 아기를 낳은 우리 엄마였다.
집안에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공황 하나.
눈을 꼭 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던 울 엄마.
엄마: 엄마, 왜 아기가 눈을 감고 있어?
외할머니: 원래 일주일 지나야 눈 뜨는 거야.
그렇다. 외할머니는 강아지랑 헷갈리신 것이다. 하지만 난 정확히 일주일 후에 눈을 떴다고 한다.
하지만 나 다음해에 태어난 외사촌 동생은 태어나자마자 눈을 똥글똥글 뜨고 있었다.
엄마: 와~ 얘는 눈 바로 떴네. 일주일 있다 뜬다던데
아빠: 강아지냐??
엄마: 우리 딸은 일주일 있다가 떴다고!
공황 둘.
(먼저 오늘 날씨를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외할머니는 '아기가 따뜻한 엄마 뱃 속에 있다가 나오면 춥다'고 방온도를 최대로 높이시고
솜으로 된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이불로 꽁꽁 싸매서
아랫목에 잘 두셨다고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퇴근 후 딸 보러 오신 아부지.
아빠: 이거 다 땀띠 아냐??
나는 온 몸이 땀띠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훗날 외할머니는 '내가 죽일 뻔 했다. 안 죽은게 얼마나 용한지'하며 계속 미안해하고 계시며
아빠는 '그때 삶지만 않았어도 진짜 똑똑할 수 있었는데'를 매년 반복하고 계신다...
엄마는 덕분에 산후조리를 매우 잘했다고, 그거 하나 건졌다는 자평과 함께 '너희 엄마는 널 낳고도 미역국 먹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매 끼니 소고기 미역국에 따뜻한 방에서 몸 잘 풀었다! 이놈아!'라고 대답하라고 단단히 이르셨다.
뭐 더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우는 건,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이 자기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처지나가듯 자기가 살 인생이 쫙 보여서 우는 거라고 하던데..
어제도 새벽까지 야근하고, 오늘도 야근할 거 같은 저는.. 이렇게 살 인생이 심란해서 그렇게나 우렁차게 울었나봅니다.
저는 민증생일이랑 실생일이랑 달라서 민증으로 인증은 못 하구요. 그냥 이 얘기 썰을 풀어보고 싶었어요.
일 할 거 많은데 왜 이러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