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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mabinogi_132106
    작성자 : 냥파스!
    추천 : 18
    조회수 : 601
    IP : 125.129.***.222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5/09/23 23:02:37
    http://todayhumor.com/?mabinogi_132106 모바일
    그 분께 편지 써봅니다.

    고마웠던 분이 생각났어요. 독백체, 긴 글 주의.


    제가 벌써 마비노기라는 게임을 시작하게 된 지 8개월 남짓의 시간이 지나고 있네요. 
    퇴근하면 마비노기에 접속해서 오늘의 미션을 해치우고, 수련을 조금 하다가 지인 분들과 수다를 떨고.
    그것이 익숙한 하나의 일상처럼 자리잡았어요. 
    처음 마비노기를 접했을 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데다 아는 분도 없어서 퀘스트 하나를 붙잡고 3-4시간씩 골머리를 썩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던광에 서 있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거뿔이 보이면 재빨리 쪽지를 보내곤 해요. 

    몇 달 전, 만돌린에서 하프로 이사를 했어요. 
    거의 빈털털이 상태에서 만돌린에서 넘어온 저는 같이 게임을 할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혼자 노는 유저였어요. 
    친구가 하프에 있어 하프로 오긴 했지만 그 친구 역시 접속이 뜸해지면서 던바튼 광장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죠. 
    그 때 제 유일한 취미라고는 던바튼을 벗어나서 풍경이 예쁜 곳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였어요. 
    이웨카가 뜨면 켈라 항구 해변에 앉아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레우스 강 근처에서 눈이 오길 기다리면서 만돌린을 연주한다던가, 
    그마저도 지치면 던바튼으로 돌아와서 피아노 연주를 하시는 분을 찾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둑처럼 몰래 듣고는 했어요.

    게임에 들어와서 종료할 때까지 제가 치는 말이라고는 가방! 소환! 같은 명령어들 뿐이었고, 점점 게임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어요.
    어딘가에 글을 적어본 적도 있었지만 초보가 달인작을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일텐데, 라는 걱정만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에 저는 달인작만큼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현실과 일에 치여 게임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 플레이마저 일처럼 하고 싶지 않았는데다가, 무엇보다 혼자 하는 수련은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든 일이 있었어요. 솔직히 지쳐있었어요.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대로 문제는 없는 건지 같은 고민들이 새벽 늦게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혔어요. 
    출근을 위해서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은 오지 않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만 가득해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나름 늘 무언가를 하면서 바지런히 여기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허무함.
    탄탄하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발판들이 모조리 덜컥거리는 느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걱정끼치기는 싫었거든요.
    그리고 걱정어린 말 뒤에 따라오는 철없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도 했어요. 
    울고 싶은데 눈물마저 말라버린 것 같은, 그런 아득한 새벽이었어요.

    잠이 오지 않으니 예쁜 풍경이라도 볼까, 하면서 로그인을 하는 순간까지도 스스로가 한심했어요.
    도피라고 생각했거든요. 자신에게로 향한 질문의 답을 내리지도 못한 채, 에린이라는 판타지 속으로 도망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울 것 같은 마음에 접속한 그 곳에서도 저를 맞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던바튼 광장에 홀로 오도카니 선 캐릭터가 꼭 저 같아서 눈물이 났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마음을 추스리고 던바튼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던바튼 관청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계신 분이 있었어요. 
    곡명은 몰랐지만 선율이 좋아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용기를 내서 그 옆에 가 앉았어요. 
    낯선 이가 갑자기 다가와서 옆에 앉는데도 묵묵히 연주만 하시던 남캐분. 

    길지 않은 곡이 끝나고 저는 곡목을 물어볼까 망설이고 있었죠. 
    그런데 곧 다른 곡을 연주하셔서 저는 그렇게 묵묵히 그 분의 피아노 연주 몇 곡을 더 들었어요.
    익숙한 곡도 있었고, 아닌 곡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잔잔한 뉴에이지 곡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게 다섯 곡 정도 연주하시던 분은 일어나서 제게 말씀을 거셨어요.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 별 거 아닌 말이 이상하게 감사했어요. 그래서 저는 피아노 소리가 참 좋다느니, 저도 열심히 해서 피아노를 사고 싶다느니 이야기를 드렸죠.
    변변한 무기도 없이, 만돌린 하나 달랑 들고 다니는 뉴비의 이야기를 그 분은 끝까지 들어주셨어요.
    우울했는데 연주 정말 잘 들었다고, 감사했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 분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시고는 은행으로 달려가셨어요. 
    그러더니 제게 리라를 하나 주셨죠. 만돌린도 좋지만 리라 소리가 참 곱다고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여주셨어요. 

    힘내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거예요. 쉬운 말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그 날, 그 새벽에 그 말이 정말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비록 얼굴도 모르고, 그저 캐릭터와 캐릭터의 만남이지만 그 말이 참으로 감사했어요. 괜찮다고,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어요.
    아마 마비노기 유저분들은 상냥하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친구 추가를 해도 괜찮냐고 물어보지 못해서 그냥 돌아섰던 게 지금 가장 큰 후회라면 후회네요. 

    오늘 접속을 해서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그 때 그 분이 연주하셨던 곡이 들려왔어요. 지금은 곡목도 잘 알고 있지만요. 
    그래서 문득 그 분이 생각났어요. 

    지금은 접으셨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피아노 연주를 계속 하시는지, 또 저 같은 뉴비들에게 도움을 주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제게 리라와 함께 힘내란 한 마디 해주셨던 남캐분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시간이 빨라 벌써 봄이 가고, 여름이 끝물이네요. 하늘이 많이 높아졌어요. 
    그 때 그 뉴비는 달인작을 끝냈고, 누렙을 차곡차곡 쌓았고, 아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다시 뵐 수 있으면 이제 같이 사냥가자고 말할 수 있을텐데. 피아노도 샀으니 합주도 하자고 말씀드릴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전해지지는 않더라도 추석, 잘 보내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일게요. 


    읽어주신 분들도 감사해요. 뭔가 막 적고 싶었어요. 충동이. 
    분명 오유님들의 나눔 및 도움에 저처럼 감동해서 마비를 맴도는 뉴비가 있을지도 몰라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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