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ont size="3"> <br></font></p> <p>‘일단 몽쉘이랑 국거리고기도 좀 사야 하니까 요 앞에 있는 홈플러스에 다녀와야지.<br>아 계란도 없어.’</p> <p>볼펜에 휘갈겨 쓴 메모를 가지고 급히 나갔다.<br>밖은 너무 추웠다.<br>황량한 전봇대에 허옇게 얼어버린 벽돌, 인도옆 키 낮은 나무들마저도 지금은 앙상한 가지뿐이다.<br>볼에 집요하게 바람이 감긴다.<br>상종 못할 날이다.<br>“양말이라도 신을걸.” <br>운동화도 얇은데 괜히 맨발로 나왔다.<br>전화가 오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기가 싫다.<br>횡단보도 앞에 서서 호떡장수를 바라보다가, 언니가 생각났다.</p> <p>언니랑 홈플러스 갈때마다 먹고 싶다고 했었지.<br>언니는 사주지 않았지만, 내가 하나 사가면<br>“너 많이 드셔” 했었다.<br>안은 텅텅 빈 공갈빵인데 무슨 1000원씩이나 하나 눈을 흘기면서도 먹으라 했었다.</p> <p>홈플러스 정문이 보인다. 점점 더 빨리 걷는데 허벅지가 아릴 지경이다.<br>오늘같은 날은 딱 집에 붙어서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당장 먹을 게 없으니 왔어야했지 싶다.<br>하필이면 이런 날.<br></p> <p>안에 들어왔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br>부재중의 주인공은 오빠였다. 사촌오빠.<br>웬일로 전화했지 싶었는데 평소보다 목소리가 좀 누그러졌네.<br>"너 오늘 안오냐?"<br>"이 추운 날 가기는 어딜가."<br>"와야지. 나도 처리할 거 많은데 오늘은 집에 있잖아."<br>"그래. 근데 몸이 좀 안좋네. 난 집에 있을께"<br>"그리고 너 이제 일도 다시 하고 그래야지 계속 집에만 있을래?"<br>자기 말만 하고 띡 끊어버린다.<br>사촌오빠는 형사다. 바쁜 건 알지만 걱정을 하려면 좀 다정하게 하던지. 전화매너가 없어.</p> <p>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가고 싶지 않다.<br>그 집에는 외삼촌부부도 일나간 빈 방에서 엄마를 찾으며 숨 넘어가게 울었다는 갓난쟁이 내가 있었고,<br>장독 옆에 올라가 앵두를 따먹던 나, 비 오는 날 교복이 흠뻑 젖은 채 울고 있는 언니도 있었다.<br>그땐 몰랐다. </p> <p>“하아.”<br>냉장코너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계란을 찾는다.<br>'4,980원짜리 아직 있네.'<br>마트의 모든 소음이 나에겐 멀게 들렸다. 내 마음이 더 무겁고 컸다.<br>여기도 빨리 나가고 싶다.<br>아이스크림코너 옆에서 대판 싸운 적도 있고, 유제품세일코너 앞에서 한참이나 옥신각신 했었지.<br>홈플러스에 있는 기둥, 바닥, 카트 모든 것에 언니가 묻어있다.<br>추스를 시간은 없다. 시간이 아무리 남아도 언니를 정리할 시간은 없다.<br>언니는 작년에 사고로 혼자 떠나버렸다.<br>집에 오니 벌써 6시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바쁘겠다.</p> <p>"따르릉 따르릉"<br>"여보세요"<br>"미리야"<br>"네. 외삼촌, 잘 지내셨어요?"<br>"어, 그래. 안온다고?"<br>"네, 오늘 날도 너무 춥고, 제가 몸도 좀 안 좋아서요."<br>"그래도 잠깐 다녀가지 그러냐."<br>"다음에 갈께요. 제사는 제가 간단하게 지내요. 안 지내셔도 돼요."<br>"안다. 그래도 지낸다. 그럼 집에 있어. 이따 잠깐 오빠 보낼 테니까 있어라. 과일이랑 반찬도 좀 있어야지."<br>"어유, 오늘은 반찬도 많을 건데요. 여튼 감사합니다."</p> <p>외삼촌은 그런 사람이다. 이런날에 나를 혼자 두지 않을 사람.<br>오빠라도 보내서라도 위로를 보내는 사람.<br>오빠는 맨날 무뚝뚝하고 틱틱거리는데 외삼촌은 꼭 아빠같다.<br>1년에 몇번 얼굴 못봐도 항상 반갑고, 든든하다. 이제 외숙모와 함께 좀 쉬면서 지내셨으면 좋겠다.</p> <p>이 작은 원룸방이 온통 기름냄새다. 동태전에 동그랑땡에 언니가 좋아하던 몽쉘도 준비해놨다. 믹스커피는 진작에 타놨고.<br>과일은 사과뿐이지만 국도 조금 했고 내 형편에 맞게 구색은 맞췄다. 언니가 서운해 한다해도 어쩔 수 없다.<br>마지막에 밥만 놓으면 된다.</p> <p>이제 곧 12시다. 문도 열고 싶지만 창문만 조금 열었다.<br>향냄새도 어색하고, 착잡하다.<br>언니가 보고 싶다. 날이 차서 그런지 긴장되네.<br>삼촌네에서 나와서 학창시절 언니와 둘이 살았는데, 그런 언니마저 이젠 사진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작년 그날은 언니가 첫 월급을 타서 외삼촌댁에 가는 길이었다. 외삼촌은 외진길 혼자 걸어올 언니걱정에 오빠를 버스정류장으로 보냈다.<br>오빠는 내 탓이라며 제시간에 마중만 나갔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가진 않았을 거라며 오열했다. 나한테 미안하다면서.<br>외삼촌은 부부동반 모임을 다녀오다 사고를 듣고 그대로 졸도하셨다.</p> <p>언니는 정류장 바로 위 산둔턱에서 발견됐다.<br>굴러 떨어진 것처럼 옷이 상하고 맨살이 빨갛게 상처투성이인 채였다.<br>왜 버스에서 내린 언니가 한겨울에 산에서 발견됐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p> <p>오빠가 왔다. <br>향을 더 많이 태웠다. <br>동그랑땡도 기름을 더 두르고 다시 지졌다.</p> <p>언니가 그날 나한테 전화했던 줄은 몰랐을 거다.<br>항상 별 얘기 없던 언니가 멀리서 오빠가 걸어오고 있다며 속사포처럼 말하고선 뚝딱 끊어버려서<br>심지어 언니가 아닌 줄 알았다. 다시 전화했지만 꺼져있었다. <br>그때까지도 설마했는데 유품을 정리하다가 책 사이에서 산부인과 영수증을 뭉텅이로 발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br>고등학교일기장에 쓰여있던 주어없는 말들이 이해가 됐다.<br>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없다. <br>지킬 것도 없다. <br>필요한 것도 없다.</p> <p>그래서 나는 지금 창문을 닫고 밥을 두공기 퍼서 가지런히 상에 올렸다. <br>가증스러운 오빠를 언니 사진 옆에 나란히 앉쳐놓고 <br>정성스럽게 절을 하고 제사를 지냈다.</p> <p><br></p> <p>침대에 편히 누워 오빠가 남긴 믹스커피를 홀짝였다.<br>언니냄새 가득한 일기장을 만지작거리며<br>난 이제 언니를 만나러 간다.</p> <p><br></p> <p><br></p> <p>작가의 한마디 : 읽는 건 참 좋아했지만 처음으로 소설을 써봅니다. <br>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잠깐이나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p> <p><br></p> <p>[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br>[우리는 소녀상을 지킬 것입니다.]<br>[꿈과 공포가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