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재밌는 사건이 있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별로 바쁜 일이 없어 이곳 저곳 눈팅하던 중, 전화가 옵니다.
번호는 010-8631-2728.. 스팸어플에서도 신고된 내용없이 말끔하게 나옵니다.
(택밴가?? 일찍 도착하겠네..)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약간 모자란 한국어 사투리를 구사하는 연변쪽 말투..
아하.. 이놈들~ 잘 걸렸다..
서울검찰청금융범죄수사팀 김정희 경삽니다.
(왜 검찰청에서 휴대폰을 사용해서 전화를 했을까????)
용건은 대충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른척 연기를 시작합니다.
본인의 통장이 5천만원 이상의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되어 전화를 했습니다.
2014년 5월경 통장이 개설되어 저번주 약 3일간 대포통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라도 광주에서 이XX씨가 본인을 사기범들의 공범으로 신고했습니다.
통장을 빌려준 적 있습니까? 이 사실을 알고계십니까?
이XX씨를 아십니까?
알리가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이죠. 태어나서 첨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저도 확인해야 하니, 은행과 계좌를 불러주십시오.
그놈들은 비밀이라며 은행명과 계좌 첫자리와 끝자리만 알려 주더군요.
두 군데의 은행을 인터넷으로 조회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요즘 시크릿 계좌가 있다는 뉴스를 봤기에 검색이 안되는 계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들었습니다.
사건번호 2014 0130조사 안건이랍니다.
이런식으로 사건번호가 부여되는지는 알 수 없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계좌의 수와 각각 얼마씩 있습니까?
(이것들이... 그게 왜 필요하지?)
안그대로 돈 없는데. 슬슬 열받더군요..
두개의 계좌에 약 500만원씩.. 하나는 3천만원정도.. 하나는 없고.. 하나는 금액이 좀 큽니다.
5천만원 이상됩니다.
다른 은행은 모두 적금계좌입니다.
(물론 모두 뻥입니다. 저런 큰 돈이 있다면 감사 땡큐하겠습니다...)
적금계좌는 아예 묻지도 않더군요..
지금말씀하신 금액은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예금자보호법 신청하시겠습니까?
예금자보호법을 신청하다니요? 그걸 신청하고 자시고가 어딨어요?
당연히 보호받는 건데.. 그 참 이상하네..
예. 그렇죠..
하지만 이 사건은 비밀수사라서 따로 신청해야 합니다.
신청하시겠어요? 말겠어요?
아 예.. 당연히 신청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진술하신 내용과 금감원이 일치해야 합니다.
혹시 진술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이놈들, 전체적으로 용어의 사용이 어딘가 많이 부족합니다.)
금감원의 무엇과 일치해야 합니까?
금감원에서 어떤 내용을 받으셨는데요?
우리는 금감원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때문에 금감원에 특별 요청해서 자료를 받았습니다.
어떤 자료인지는 비밀수사라 공개할 수 없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까?
만약 그 외 돈이 추가로 발견될 시, 사기를 통한 불법취득금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는 팀장이 나머지 사건 수사를 진행하고 금감원에 예금자보호법을 신청한다면서
다른 사람을 바꿔줍니다.
무슨 내선번호를 돌리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을 전달합니다.
처음부터 전화기에서 울림이 있었습니다. 복도거나 방음이 아주 안좋은 건물이거나 화장실이거나..
쫒아 들어가는 발소리가 다 들리더군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그때 저는 다른 전화기로 앞서 말한 걸려온 전화번호로 다시 걸어봅니다.
아가씨가 받더니 "없는 번호.." 두번 걸었습니다. 역시 "없는 번호.."
일단 모른척 합니다.
팀장놈 왈...
무슨 일이시죠? 뭘 도와드릴까요?
(이놈들은 여전히 복도에서 전화를 받는가 봅니다. 소리가 또 울리기 시작합니다.
이놈은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을 봐서, 한국인인가 봅니다.)
저기.. 금융사기에 연루되었다고 해서.....
사건번호를 물었고, 제 이름과 생년월일을 재확인하더군요.
그리고는..
형사사법포털을 아십니까?
당연히 처음들어봅니다. 검색을 하니 멀쩡한 kics.go.kr 이 있더군요.
접속했습니다. 지랄맞은 액티브X를 까는 도중에 팀장놈이 접속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접속 중입니다. 액티브X 깔고 있습니다.
예?? 액티브 뭐요? 그걸 왜 깔아요?
접속하니 지가 알아서 까는데요.
공개적인데 말고, 비공개 비밀수사라서 따로 접속해야 합니다.
인터넷 연결 했지요? 맨위에 Http를 지우세요.
엥? 정부운영 사이튼데, 비밀주소가 따로 있어요?
이거 저한테 공개해도 괜찮아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어쩌려구..
잡혀들어가고 싶으세요? 본인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본인이 사기범으로 감방가고 싶으세요?
그리고 이건 비밀수사입니다. 본인때문에 특별히 알려주는겁니다.
(특별 대우 받고 있습니다. 흐흐흐.. 지랄 같은 놈들. 어디까지 가나 보자.)
아 예.. 알겠습니다. 준비되었습니다. 주소 불러주세요..
95.163.121.137 여기로 접속하세요.
(여기가 어딜까요? 잠시 후 Ip 추적을 해 봅니다.)
정교하게 만든 가짜 사이트입니다.. 껍데기는 똑같더군요.
헌데... 그놈들이 지정한 항목만 연결됩니다.
혹시나 싶어 다른 항복을 눌렀습니다. 반가운 Error 404가 떡하니 나타납니다.
다른 항목을 누르니 이번에는 정상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가만보니 링크롤 그대로 가져왔더군요.
본인은 비회원이기 때문에 비회원 본인인증을 해야 합니다.
성명 주민번호, 전화번호를 입력하십시오..
저는 회원가입을 하고, 공인인증서로 본인인증 하겠습니다.
어차피 목적이 본인인증이기 때문에 이것이 더 정확하고 빠릅니다.
그런데 회원가입이 안되네요. 공인인증 버튼도 먹히지 않고...
좀 이상합니다. 확인해 주세요..
예? 잠시만요...
(이걸 만든놈한테 따지는지, 자기들끼리 입을 맞추는지.. 한참 대답이 없더군요)
이때 저는 IP 추적을 합니다.
ipwatch.co.kr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그런데...
- 국가: RU
- 주소: 129366, Moscow, Moscow City, Russian Federation → [관련 검색]
- 위도, 경도: 55.7522 37.6156 → [지도 보기]
여기더군요.. 러시아 모스크바..
그냥 하셔야겠습니다. 잠시 에러가 생겼네요..
비회원으로 인증하셔야 합니다.
음.. 지금 러시아에 계세요?
예? 무슨?
주소가 러시아로 나옵니다. 언제 가셨데요? 많이 추울텐데...
아까 말씀하신 주소가 러시아에요.. 아유~ 수고가 많으시네..
어.. 어떻게? 에이 출발.. 어찌 알았냐..
그새끼한테 돈만 날렸네.. 출발새끼... 다 알잖아...
무슨 일 하세요? 무슨 일 하길래.. 어떻게 아셨어요? 대단하네..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대단하십니다.
에이.. 이만한 일로 대단할것까지야..
그냥 회사원입니다..
전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 날 추운데 조심하세요..하하..
한 1분 후에 다시 전화가 옵니다.
여보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도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구글에서 뚝딱거리니 나오던데요..
거봐.. 다 알잖아... 출발.. 도대체 얼마를 날린거야... 뚝!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개인정보 유출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미 이것으로 악용하는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미루어 짐작컨데, 만약 초치지 않고 계속 진행했더라면
본인인증, 계좌번호, 비밀번호, 보안카드 OTP까지 모두 털렸을 겁니다.
또한 금융사기 범죄단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한국인이 포함되어있다고 짐작됩니다.
단계별로 작전을 심화시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이끌 것입니다.
신고를 하려 했으나, 피해사실이 없으면 불가합니다.
예방차원이라는 건 없습니다. 당해야 신고가 가능합니다.
정부나 금융사에서 제시한 보안책은 왜 그렇게 허술하기만 한지..
결국 믿을 것은 본인 스스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사족..
본문에 기재된 전화번호는 실제로 걸려온 전화번호입니다. 물론 확인결과 없는 번호입니다.
또한 IP 역시 그들이 실제로 알려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