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사실 난 낯선 사람과 말을 잘 섞질 못한다. 현재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과 딱 필요한 정도의 이야기 이상은 하질 않아서 </div> <div>까칠하다, 싸가지 없다, 재수없다는 평가를 듣고 산다. 이는 날 처음보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공통적인 평가이기도 하다.</div> <div> </div> <div>난 보통 길을 걸을 땐,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걷거나 정말 '멍' 때리며 걷는다. </div> <div>한번은 길을 걷다가, 극강의 몰입도로 멍을 때리며, 도를 전하는 선한 여자분들을 만난 기억이 난다.</div> <div>극강의 멍을 때리면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고요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div> <div>그날이 그랬다.</div> <div>굉장히 시끌벅적한 강남역 주변 길가에서 잘 다려진 하이얀 셔츠를 곱게 차려입은 낯선 두 명의 처자가 나에게 불쑥 나타나 안부를 물었다.</div> <div>'안녕하세요~ 인상이 굉장히 선...' </div> <div>'악! 깜짝이야 씨X'</div> <div>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극강의 멍으로 고요한 나만의 길을 걷던 중에 처자 한 명이 나에게 전하는 인삿말은 마치 </div> <div>2만 데시벨 정도의 크기로 내 귀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 이어 나오는 나의 쌍소리는 절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div> <div>더군다나 그 쌍소리의 데시벨도 약 2만에 달했을 크기였다. 부끄러웠다.</div> <div>동시에 내 주변의 시끄러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고요했으며,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음을 느꼈다. <strike>마치 드라마 주인공 같았다.</strike></div> <div>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div> <div> </div> <div>난 인상이 차갑고 재수없고 싸가지 없게 생겼다.</div> <div>게다가 부끄럽고 챙피해서 얼굴이 벌개졌다.</div> <div>본의 아니게 큰 소리의 쌍욕을 곱디 고운 하이얀 셔츠를 입은 처자들에게 시전하고 말았다.</div> <div>'이를 어쩐담....그래 결정했어!'</div> <div> </div> <div>난 절대 실수로 한 말이 아니라는 듯 놀란 토끼 눈에서 매서운 범의 눈빛으로 태세전환을 시도하였다.</div> <div>그 빠른 대처에 내 스스로 놀라울 정도였다. </div> <div>서늘한 표정으로 순백의 그들을 잠시간 노려보며, 이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div> <div>누군지 모를 목소리들이 들려왔다.</div> <div>'아 참. 진짜 별 병X같은게....'</div> <div>'야 됐어. 미친놈들 많아.'</div> <div>'진짜 재수없긴 하다...ㅋㅋㅋ'</div> <div> </div> <div>제목의 부킹썰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꼭 위와 같은 나의 특성을 잘 설명하고 싶었다.</div> <div> </div> <div>나이트라곤 내 <strike>꽃미모를 자랑하던 전성기 시절인</strike> 대학 새내기 때, 당시 꽤나 유명하던 강남 나이트를 몇 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div> <div>그 시절 강남 나이트는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위시한 국내 메가 히트 댄스 곡을 주로 틀었다.</div> <div>음악이 나오면 죽순인지 죽돌인지 알바인지 모를 무대 중간쯤에서 무리를 지어 군무를 추는 애들이 있었고, </div> <div>놀러온 대다수는 그들의 안무를 그대로 따라 추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었다.</div> <div>모두들의 표정은 즐거움과 흥으로 가득했으나, 난 그렇지 못했다.</div> <div>'쟤들은 왜 돈을 내가며 국민체조를 하지? ㅉㅉㅉ'</div> <div>이해가 되질 않았다. 춤도 재미없으니 부킹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워낙 낯가림이 심하고 무뚝뚝해서 그나마도 잘 되지 않았다.</div> <div>몇 번 가다 도저히 재미가 없어서 그 이후론 가본 적이 없다.</div> <div> </div> <div>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자주 어울리는 아저씨 향이 진하게 나는 친구들과 곱창에 쏘주를 들이키고 있었다.</div> <div>그날 따라 웬지 모르게 우울했다. 한 친구가 나이트를 가자고 했다. </div> <div>술도 기분 좋을 정도로 취했겠다. 친구들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나이트 행에 강력히 찬성했다.</div> <div> </div> <div>어렸을 때 가본 나이트 풍경은 아니었다. </div> <div>그렇다. 성인 나이트였다. </div> <div>굉장히 후져보이는 외관의 나이트였으나 대기공간에서 1시간 남짓 기다린 이후에나 입장할 수 있었다.</div> <div>넉살 좋은 친구 한명이 웨이터에게 팁을 주며, 우리 테이블에 웃음 꽃이 만개할 수 있도록 끊임없고 거침없는 부킹을 요구했다.</div> <div>나이트 웨이터가 믿음직스러워 보인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div> <div>친구의 부탁때문인지, 웨이터의 노련함 덕분인지 우리 테이블엔 정말 부킹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div> <div>별명과 어울리지 않게 듬직한 웨이터 서태지의 손에 수줍게 이끌려 온 처자 <strike>(대다수는 누님들)</strike> 들은 대부분 짧게 서로의 관심없는 안부를 묻고, </div> <div>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라는 상냥한 인사를 남기고 일어섰다.</div> <div>'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예의범절은 반드시 이 곳에서 가르치리라...'</div> <div> </div> <div>사실 나도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div> <div>애초에 과한 대기 시간과 의미없이 다가와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있는 누님들 아니 처자들을 보고 있자니 이내 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div> <div>친구들 역시 지쳐보였다. </div> <div>게다가 나이트 초짜들이 흔히 겪는 실수를 우리도 범하고 말았다. </div> <div>맥주 기본엔 부킹이 안들어 오니, 양주 기본을 시켜야 해!</div> <div>우리 테이블엔 </div> <div>의미없이 앉아서 양주 한잔 들이키거나 혹은 입만 대고 버리는 누님들에 의해서 </div> <div>초췌한 꼴의 빈 병만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div> <div> </div> <div>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듬직한 우리 태지의 모습도 눈에 띄질 않았다.</div> <div>그렇게 일어서려는 순간, 멀리서 우리 태지가 한 명의 퀸카의 손목을 잡아 끌고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div> <div>'이건 기회다.'</div> <div>친구들도 그 모습을 볼까 두려웠다. </div> <div>난 옷을 챙기는 척하며 내 옆자리를 깔끔하게 비웠다. </div> <div>태지가 다가온다.</div> <div>퀸카도 다가온다.</div> <div>그리고 앉는다.</div> <div>내 옆자리에....</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