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4일 이후,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잘했다, 너는 아버지를 살린 거야'

부정하진 않습니다. 저는 술을 그렇게 쳐 드셔서 집안을 거의 말아먹어가던 아버지가 삼도천을 건널까 말까 하실 때 마지막으로 붙든 사람이거든요.

아버지는 20년간 술을 쳐 드신 덕분에 가지고 계시던 간이 이 세상에 영 쓸모없는 물질로 변했고, 서울의 큰 병원에 실려갔을 때는 정말 정신과 몸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거기서 처음 봤네요. 

물론 거기서 일하는 의료진 분들은 매일같이 보는 일이겠지만요.

방학 되자마자 집에 불려간 저는 아버지 상태를 처음 보았고, 정말 삼도천 건너실 줄 알았습니다. 뭐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아버지의 형제 자매 분 중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우로 돌아가셨으니. 

현대 의학 기술은 좋더군요. 오락가락하던 분을 어떻게 명줄은 붙잡도록 했으니. 근데 그걸로는 부족하답니다. 현대 의학으로 만들 수 없는 게 필요하답니다. 사람 생간이 필요하대요.

무슨 용왕입니까. 그럼 토끼는 누가 해.

물론 그 토끼는 제가 했습니다. 그래서 2011년 8월에 저는 영 멀쩡하던 제 몸을 스스로 상처내는 결정을 하고, 한달 동안 끙끙 앓다 퇴원했습니다. 

그 돈을 누가 댔느냐, 여러분 본인이나 가족분이 내신 건강보험료와 보험사가 내 줬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의료보험 시스템은 없는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런데 수술 이후로 영 시니컬해진 제 정신머리는 누구도 봐 주지 않습니다. 잘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누가 모릅니까. 그건 내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수술 전에 백일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아버지 똥오줌 다 받아내고 식구들은 지방에 있으니까 병원에서 봐야 할 사무 다 보고 끝내는 간까지 헌납한(절대 기증이 아닙니다) 내가 제일 수고한 사람이 아니면 뭡니까.

그런데 그거 말고, 이렇게 영 이상하게 변해 버린 내 정신머리를 봐 줄 사람이 없단 말입니다. 

잘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하는 사람들 앞에선 이런 이야기 못합니다. 최소한의 인간적 개념은 아직 살아있으니까요.

그나마 들러서 웃고 가던 인터넷의 한 곳에서 이런 이야기 남길 뿐입니다.

혹 여기서 장기기증을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처럼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해야 할 처지에 놓인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또는 이미 하신 분도 계실 거고, 이런 저에게 그런 약해빠진 정신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 거냐고 힐난할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2011년 8월 4일 이후로 아버지는 나으셨지만, 어머니는 20년 만에 신혼을 찾으셨다고 좋아하시지만,

저는 그 날 이후로 정상인이 아니게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