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지 18년 정도 되었으니,<br>아마도 13년 전 이야기일겁니다.<br><br>여느 날처럼 자취방에서 여자친구와 놀고 있었습니다.<br>나우누리 영퀴방에서 만난 여자친구라 영화를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비디오를 보곤 했습니다.<br>그 날은 공포영화를 보고 있었는데,<br>한참 보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집에 가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br><br>밤이 깊어서 막차 끊기기 전에 버스를 타야 된다고 말했지만,<br>공포영화가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br>얼굴에 겁에 질린 표정이 가득했으니 말입니다.<br><br>집에서 나오려는데,<br>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br>전화를 받아보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였습니다.<br><br> "방금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렴."<br><br>암으로 입원하고 계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br>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br> 핸드폰이 없었거니와 여자친구를 지하철까지 데려다줘야 했기에<br> 다시 전화한다고 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br><br>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서둘러 방을 나섰습니다.<br>빠른 걸음으로 역으로 향하는데 여자친구가 뭔가 말하려고 했습니다.<br>아까 전부터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습니다.<br><br>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자,<br>간신히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br><br> "아까 전화, 혹시 누가 돌아가셨어?"<br> "으응,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br><br> "혹시 할아버지께서……. 음, 키가 크셔? 안경도 쓰셨어?"<br> "응, 키가 많이 크셨지. 안경도 쓰셨고."<br><br> "혹시 머리도 많이 없으셨어?"<br> "응, 항암치료 때문에……."<br><br>그러자 여자친구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습니다.<br><br>이상했습니다.<br>할아버지의 인상착의를 갑자기 왜 묻는 건지, 어떻게 안 건지.<br>그녀를 계속 재촉하자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br><br><span class="q1">"으음, 아까 영화 보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우릴 쳐다보는 거야……. 나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우리가 영화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오신 줄 모른 줄 알았지. 그래서 오빠한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다시 보니까 사라진 거야. 문 여는 소리도 없었는데……."</span><br><br>그녀를 배웅한 후, 어머니께 다시 전화 걸었습니다.<br>그리고 아까 이야기를 전하자,<br>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br><br> "돌아가시기 전까지 널 찾으시더라. 우리 장손 봐야한다고……. 봐야한다고……."<br><br>아무래도 할아버지께서 작별 인사 오셨던 것 같습니다.<br>비록 제가 뵙지 못한 건 정말 아쉽지만,<br>여자친구가 지하철에 타며 한 이야기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br><br><span class="q1">"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활짝 웃고 계셨어. 기분이 굉장히 좋으신 것처럼."</span><br><br>13년이나 지난 오늘도 할아버지가 무척 그립습니다.<br><br> [투고] 김민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