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중대의 유일한 행정병 생활을 3달정도 했었습니다.
사수 전역한 뒤부터 부사수 붙여주는 사이가.
애초에 인원수는 작고 간부는 많은 전차대대였기 때문에 어느 주특기를 막론하고 만성적인 인원부족에 시달리던 상황이었습니다.
다들 그러니 저도 그런가보다 하며 지내고 있었고, 간부들은 상급부대에 곧잘 신병을 내 놓으라는 전화를 넣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선임이 제대하고 세달째, 제게도 후임이 생겼습니다.
그나마도 취사반에서 부적응+잔머리로 유명하던 관심사병을 부사수로 데려다 줘서 대강 기본적인 보급창고 관리 및 불출업무만 알려주고 말았었지요.
몸도 약하고 일도 못하고, 잔머리는 기막히게 잘 굴려서 행보관이 직접 관리하겠다며 데려온 녀석이었기에 항상 '너무 떠넘기려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훈련이 참 많았던 부대라 한달에 두번까지 나갔던 적도 있는데,
덕분에 업무 끝나고서 상황판 만들고 검열준비 한다고 3~4시 넘어서 잔 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후임놈이 글씨도 참 알아보기 힘들게 써서.. 대대장이 돌아다니다 저희중대 상황판 보고 난리를 쳤었거든요.
그 외에도 기동계획이나 화력지원점 표기하는것도 일일히 제가 해야 했었고..
게다가 그 후임놈은 체력도 약해서 행군하면 무조건 제가 무전기를 짊어졌었네요.
워낙 문제거리였던 놈이라 "너무 막 가르치고 넘기려 하지 마라, 행정용 후임을 하나 더 데려다 주겠다."는 행보관님의 말이 있었습니다만.
상병 5개월째에서야 겨우 이등병 후임을 받아서 부대일지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아 후임은 일병 3호봉, 보급하고 총기까지 막 맡았던 시절이네요.
이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1. 절묘했던 지휘관 교체 타이밍
장교도 항상 부족한 상황이라 중위(진)을 달고 본부중대장으로 왔습니다.
사람도 참 좋았고, 저희학교 같은 단과대 두학번 위 선배가 와서 서로 당황했었습니다.
무려 같은 수업도 들었던 사이.
하지만 중대단위 업무체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을 못해던 시기였습니다.
2. 행보관이 너무 사람좋은 사람 + 짬괴물
전차대대는 원사급이 행보관을 합니다.
짬이 장난이 아니라 뭐든지 참 잘 해결하긴 합니다만, 행정업무 처리에는 상당히 미숙한 점을 보입니다.
어느 행정병이나 다 그러긴 하지만 행보관+중대장 업무까지 다 했어야 했고요.
행보관은 7~8개월 뒤 전역하는 주임원사 후임으로 주임원사가 될 사람이었기에 그런 교육 및 인사를 다니느라 바쁜 상황이었죠.
3. 갑작스런 사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임 중대장 (아직 계급장은 소위) + 너무 바쁘고 행정업무는 모르는 차기 주임원사 행보관
그리고 제게는 막 노란견장을 뗀 후임.
그 상태에서 나갔던 여단급 훈련에서 제가 크게 다칩니다.
한쪽 팔하고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요.
복귀 뒤 급히 휴가를 잡아서 검사하고, 수술하고 후송을 가게 된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임들을 놔둔채.
덕분에 일과시간엔 하루에도 몇번씩 자대에서 온 전화를 받아 후임들을 교육시켜야 했습니다.
뭐.. 유선통신으로 했으니 이것도 온라인 강좌였겠네요.
복귀요?
중간에 외진 나가고, 외부진료증 끊고, 병가 받는다고 인사장교랑 육규 뒤져가며 싸우고 하느라 상말에 수술받고 후송가서..
제대 2주전에 복귀했습니다.
6개월 이상 누워있으면 의병제대 시키는데, 저는 그 절차 밟는 타이밍이 애매해서 아마 의병제대하면 전역이 한두주쯤 늦어질거라 해서요.
후임들은 검열관한테 깨져가며 행정병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잘 익혔더군요.
행보관도 너무 굴렸던 것 같아 미안했다며 마지막날 술 한잔 사 주셨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가르친다고 할때 팍팍 가르치게 좀 해 주지..
어깨랑 무릎은 아직도 비오고 추운 날이면 제 기능을 거부하려 듭니다.
아마 평생 이러겠죠.
더 뭣같은 상황도 중간중간 많았지만, 제 군생활을 요약하면 대강 이 정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