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통장에 월급이 찍힌걸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외식을 했습니다.
역시 자고도 월급날엔 외식이죠.
이건 에피타이저로 먹은 roasted feta입니다.
feta는 그리스의 전통 치즈로 염소젖과 소젖을 섞어 발효시킨 겁니다. 다른 치즈와는 달리 점도가 전혀 없고 두부처럼 생겼는데, 시큼한 맛이 일품인 치즈입니다.
이 feta를 토마토, 파프리카, 양파와 함께 올리브유에 푹 잠기도록 넣고 오븐에 구워낸 뒤 오레가노 같은 향신료와 함께 먹습니다.
함께 나오는 빵이랑 같이 먹으면 꿀맛이죠.
간단해 보이는데 집에선 은근히 하기 어렵더라구요.
에피타이저가 끝나고 본요리가 나왔습니다.
요건 아내가 주문한 γυρο χοιρινο με πιτα입니다. 얼핏 보시기에 케밥처럼 보이신다구요? 네 케밥 맞습니다.
사실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수백년 받은 그리스의 음식은 터키와 상당부분 비슷합니다.
이게 그리스 음식이 터키로 넘어갔는지, 터키 음식이 그리스로 넘어왔는지
아니면 아예 옛날부터 비슷한 음식을 먹어왔는지 알길은 없지만
자존심 강한 그리스 사람들은 케밥이라고 하면 화낼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리스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돼지꼬리 땡야)
암튼 이 요리는 케밥처럼 큰 꼬치에 돼지고기를 켜켜이 쌓아 돌리면서 익힌걸 칼로 얇게 썰어서 옆에 보이는 빵과 함께 먹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요리입니다.
여기서 γυρο는 영어 gyro의 어원으로써, '회전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이로'라고 발음합니다. (혹시 그리스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돼지꼬리 땡야.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어 한마디만 할줄 알아도 급 친절모드로 돌아섭니다.)
χοιρινο는 히리노 라고 발음하는데 돼지고기의 그리스어입니다. με πιτα(메 삐따)는 with pita. 즉 pita라고 불리우는 빵을 곁들인 돼지고기 회전구이 (좀 이상하지만)죠.
참고로 πιτα는 그리스어로 slice란 뜻입니다. 그냥 얇은 빵이란 소리죠.
곁들여 나온 소스는 자지끼(아 음란마귀 너 이녀석)τσαζικι라고 하는 역시 그리스의 전통 소스입니다. 위에서 봤던 feta치즈를 요거트와 함께 잘 버무려서 거기에 다진 양파와 오이를 넣고 먹는 소스죠.
상큼하고 새콤하고 맛납니다. 고기요리와 아주 잘 어울리죠.
전 또다른 그리스의 대표 음식인 σουβλακι χοιρινο με πιτα를 먹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들어보신 분들도 있으실겁니다. '수블라끼'라고 하는데, σουβλα는 꼬치라는 뜻의 그리스어이고, 그리스어는 어미에 ακι를 붙이면 '작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작은 돼지고기 꼬치구이 정도 되겠네요.
여긴 그냥 평범한 치즈가 곁들여져 나왔습니다.
저거 하나가 일인분이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한 덩어리가 제법 큽니다. (멀리에 있는 제 손과 크기를 비교해보시길)
수블라끼는 닭고기나 양고기도 있습니다만, 양고기는 파는 곳이 많지 않고 냄새가 좀 납니다. 닭고기는 가슴살을 써서 굉장히 무지하게 겁내 퍽퍽합니다. (그리스 여행을 계획중이신데 혹시 퍽퍽살을 싫어하시는 분이 있다면 용꼬리 용용)
양이 너무 많아서 아내와 저 모두 감자 튀김은 거의 손도 못대고 고기만 먹었습니다.
아, 참. 어디에 있는 식당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저 그리스 요아니나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