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카페(하드론)님 -<br /><br /> <div>"이 놈아..정신 차렸냐?"</div> <div><br />흐려진 초점이 윤곽을 잡아가자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다.</div> <div><br />"개놈의 자식..나이 처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네."</div> <div><br />아버지의 푸념에는 이제 이골이 났다.</div> <div><br />"변변한 직업도 없는 놈이 술처먹고 쌈질이나 하고 다니니.. 이거 원."</div> <div><br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div> <div>순간 오른쪽 이마가 욱신거려 손을 가져다 대었다.</div> <div>두툼한 반창고가 만져지는 것으로 보아, 어제 다쳐서 꿰맨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div> <div><br />"싸움 한거 아니거든요.."</div> <div><br />"이런 미친 놈. 그럼 어디 전봇대라도 들이받았냐?"</div> <div><br />"에이..좀 그만하세요."</div> <div><br />그 때 침대 커튼을 열어 젖히고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div> <div>간호사였다.</div> <div><br />"으헉!!!"</div> <div><br />나의 비명소리에 간호사가 물었다.</div> <div><br />"괜찮으세요?"</div> <div><br />나는 잠시 긴 한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였다.</div> <div><br />"보호자분 나가실 때 싸인하시고, 원무과에 치료비 납부하시면 됩니다."</div> <div><br />간호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 후 뒤돌아 걸었다.</div> <div><br />"아버지...나가기 전에 여기에 만날 사람이 있어요."</div> <div><br />"뭐? 누구?"</div> <div><br />"간호사요. 꼭 봐야 될 간호사가 있어요."</div> <div><br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div> <div>그리고는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한 대답을 날리셨다.</div> <div><br />"이런 미친 놈. 너같은 양아치 새끼가 간호사를 어떻게 알어? 어디 또 하나 후려서 어떻게 해보려고?"</div> <div><br />"아버지 그게 아니고.."</div> <div><br />"그만 닥치고 나갈 준비나 해."</div> <div><br />난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가 없다.</div> <div>잘 생긴 외모와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에겐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div> <div>많이 따른만큼 내 생활은 난잡해져 갔다.</div> <div>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임신 중절만도 몇 번은 되는 것 같았다.</div> <div>상습 음주운전으로 몇 개월 실형을 살아본 적도 있고, 조폭 여자를 건드려 살해 위협을 받아본 적도 있다.</div> <div>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가 엄청난 돈을 썼기 때문이다.</div> <div>내가 알고 있는 금액만도 1억 5천이 넘었다.</div> <div><br />그런 엄청난 빽이 되어 준 아버지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div> <div>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 철창 속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div> <div><br />나는 외투를 걸치고 아버지를 뒤따라 나섰다.</div> <div>그런데 그 때 우리 앞에 경찰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div> <div><br />"김성태씨?"</div> <div><br />"네?"</div> <div><br />경찰의 물음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div> <div>역시나 옆에 있던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었다.</div> <div><br />"이런 미친 놈..너 또 사고쳤냐?"</div> <div><br />나이가 있어 보이는 한 명이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div> <div><br />"ㅇㅇ경찰서 교통계 최정수 경장입니다. 어제 새벽 ㅇㅇ동, ㅇㅇ대로에서 차로 가로등을 들이받고 도주를 하셨더군요." </div> <div><br />"뭐요? 제가요? 전 차를 몰지 않았는데요"</div> <div><br />이럴 수가....분명히 견인차가 내 차를 끌고 갔는데....이런 혹시 그 견인차 운전자가 불어버린 건가?</div> <div>아니면 어제 나이트에서 꼬셨던 그 년이 불어버린 것인가?</div> <div><br />"그럼 이마에 난 그 상처는 뭡니까?"</div> <div><br />"이..이거요? 술 먹다가 옆 테이블 애들하고 싸움이 붙어서..."</div> <div><br />"조사하면 나올테니까 일단 서로 같이 갑시다."</div> <div><br />"아니..내가 운전을 안 했다는데 무슨 증거로 가자는 겁니까?"</div> <div><br />내 말에 그 경장은 허탈한 웃음을 한 번 짓더니 말을 이었다.</div> <div><br />"지금 장난하는거요? 당신 차의 앞유리하고 에어백에 난 핏자국 당신 거 아니면 뭐요? 국과수에 넘겨 볼까요?"</div> <div><br />"에이...신발.."</div> <div><br />나는 머리를 털 듯이 긁적이며 욕설을 내뱉았다.</div> <div>옆에 서 있던 아버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한 마디를 내뱉고 병실을 나섰다.</div> <div><br />"난 싸인하고 간다."</div> <div><br />경찰차에 실려서 경찰서로 향하는 동안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div> <div><br />"서른도 안된 젊은 양반이 경력이 화려하대."</div> <div><br />뒷자석의 금속봉에 채워진 수갑이 어제 나를 묶었던 들것의 밸트보다 더 단단히 나를 잡고 있는 듯 보였다.</div> <div>그 때 나는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div> <div><br />"아저씨..뭐 하나 물어봅시다."</div> <div><br />"뭐요?"</div> <div><br />"내가 사고난 것 누가 불었소?"</div> <div><br />"누가 불다니?"</div> <div><br />"아니... 견인된 차 어디서 찾았냐구요?"</div> <div><br />"뭔 소리야? 당신 차.. 사고 현장에 그대로 있었구만."</div> <div><br />"뭐요?"</div> <div><br />나는 순간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가 않았다.</div> <div><br />"아이...신발...뭐가 어떻게 된거야?"</div> <div><br />그 때 문득 나는 머리 깊은 곳에 묻혀져 있는 작은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div> <div><br />'그래..명함!!"</div> <div><br />견인차 운전사가 주고 간 명함.....</div> <div>나는 이곳 저곳 내 호주머니를 뒤졌다.</div> <div>이윽고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명함 대신 작은 쪽지가 손에 걸렸다.</div> <div><br />-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div> <div><br />"뭐야 이거...."</div> <div><br />쪽지에 적힌 엉뚱한 메세지는 그 내용만으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div> <div>거기에 적힌 글씨체는 내 것이었다.</div> <div>나는 멍하니 고개를 쳐들고 푸념섞인 말을 내뱉았다.</div> <div><br />"헐..신발...미치겠네."</div> <div><br />이 말에 앞 좌석의 두 경찰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div> <div><br />"이봐 친구, 왜 그래?"</div> <div></div> <div><br />교통계 조사를 받는 내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경찰들이 내 말을 믿어줄 것인가만 생각했다.</div> <div><br />"야...그러니까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레커차가 니 차를 끌고 간 다음 너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고, 그리고 치료받고 아침에 일어났단 말이지?"</div> <div><br />"그렇다니까요!!"</div> <div><br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서 왜 차 두고 도망쳤냐고 하더라 이거야?"</div> <div><br />"아이씨..진짜 미치겠네..."</div> <div><br />"너, 술 어지간히도 취했나 보다."</div> <div><br />이대로 가다가는 나는 가중처벌을 받을 게 뻔했다.</div> <div>상습 운전으로 실형을 살았는데 이번엔 좀 세게 맞을 수도 있다.</div> <div><br />"야 임마...대한민국에서 가장 효과만빵의 정상참작이 뭔지 알아?"</div> <div><br />"...."</div> <div><br />"초범이라는거야. 대한민국 그 어느 판사도 초범에 대해서는 관대해.</div> <div>그런데 너 같은 놈은 일말의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어."</div> <div><br />나는 교통계 경찰을 응시한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div> <div>여전히 나는 그의 불친절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div> <div>잠시 후 나는 억지로 평안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div> <div><br />"아저씨...한 번만 봐 줘요..제가 누굴 친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운전을 했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div> <div>피 묻은 것도 다른 사람이 운전해서 다친 거라고 하면 되잖아요. 저 이번에 들어가면 인생 종칠지도 몰라요."</div> <div><br />그러자 경찰은 몸을 뒤로 눕혀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답을 했다. </div> <div><br />"거참.....내가 할 말이 없다."</div> <div><br />눈을 뜨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순간 그와 겹쳐서 뒷배경에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div> <div><br />"아저씨...."</div> <div><br />"뭐?"</div> <div><br />"아저씨...머리 좀 치워봐요.."</div> <div><br />"뭐 새꺄?"</div> <div><br />"빨리 머리 좀 치워봐요!!!"</div> <div><br />내 눈동자의 초점이 자신의 등 뒤로 향해 있음을 안 그는 몸을 돌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었다.</div> <div>얼굴만 확대되어 덩그렇게 붙어있는 벽보.</div> <div></div> <div>-사람을 찾습니다-</div> <div>이름 : xxx</div> <div>나이 :....</div> <div></div> <div>벽보 속의 여자.</div> <div>어디선가 본 낯익은 얼굴...긴 생머리...짙은 눈썹...</div> <div><br />"으아~~~~~악!!"</div> <div><br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작은 철제 의자와 함께 튕기 듯 뒤로 나동그라졌다.</div> <div><br />"야 임먀!! 왜 그래?"</div> <div><br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나는 손가락으로 벽보를 가리키며 말했다.</div> <div><br />"저...저..여자 어제..봐..봤어요!!!"</div> <div><br />"뭐?"</div> <div><br />내 말 한마디에 나는 교통계에서 형사계로 넘어갔다.</div> <div>형사계로 넘어가자 조금 전의 교통계 조사가 얼마나 친절한 대우였는지를 바로 알게 되었다.</div> <div>강력계 형사들은 눈빛부터가 달랐다.</div> <div><br />"너, 이 여자 본 곳 어디야?"</div> <div><br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한 형사가 벽보에 붙어있던 같은 전단지를 내 앞에 밀어 보이며 물었다.</div> <div>무섭게 치켜 뜬 눈과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이 그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div> <div><br />"어제....제가 사고 난데서요..."</div> <div><br />내 목소리는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div> <div><br />"지금 거기로 안내해."</div> <div><br />말 한마디에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듯 싶었다.</div> <div><br />20여명의 의경들과 강력계 형사팀이 사고현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div> <div>형사들과 같이 차를 탄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div> <div><br />"너, 그 여자 어떻게 봤어?"</div> <div><br />앞좌석에 탄 중저음의 그 형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다.</div> <div><br />"그게..저...."</div> <div><br />"확실히 그 여자 맞지?"</div> <div><br />"예. 맞아요.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div> <div><br />"뭐가?"</div> <div><br />"물에 빠져 한 참 뒤에 발견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에 여기저기 살이 뜯겨 있구요..."</div> <div><br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 여자가 머리에 떠오르자 소름이 밀려왔다.</div> <div>나의 머뭇거림에 형사가 말을 재촉했다.</div> <div><br />"계속 말해봐."</div> <div><br />"물에 젖은 원피스 차림으로 저한테 춥다면서 발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거예요."</div> <div><br />"그래서?"</div> <div><br />"그래서라뇨? 전 너무 무서워서 택시타고 도망쳤죠."</div> <div><br />내 말이 끝나자 그 형사는 한 숨을 길게 내쉬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div> <div>그 때 운전을 하고 있던 다른 형사가 그에게 물었다.</div> <div><br />"마두, 그 자식이 한 말과 똑같네요."</div> <div><br />'마두?'</div> <div><br />생소한 이름에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div> <div><br />"너 귀신 볼 줄 알아?"</div> <div><br />중저음의 그 형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div> <div><br />"예?"</div> <div><br />"사람같지가 않았다면서?"</div> <div><br />"그렇긴 한데..."</div> <div><br />그러고 보니 어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 부족한 아이큐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들이었다.</div> <div>물에 불은 시체같은 여자. 병원에서 봤던 등골이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형상의 그 간호사.</div> <div>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div> <div>그리고 내 차가 왜 거기 그대로 있는거지?</div> <div>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냥 가위에 눌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div> <div>그런데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고, 현실적이었다.</div> <div>그들이 다 죽은 여자라면......그렇다면 내가 정말로?</div> <div><br />그리고 앞 좌석에 앉아 있는 형사들은 뭔 가?</div> <div>나의 허무맹랑한 꿈같은 얘기에 뭔 개소리냐며 호통 한 번 치지 않는가?</div> <div>그리고 귀신 볼 줄 아냐는 질문은 또 뭔가?</div> <div>거대한 음모가 서려있는 무서운 사건에 떠밀려지는 듯한 이 기분은 또 뭔가?</div> <div>당분간 술을 끊어야겠다.</div> <div></div> <div>사고현장에 도착한 형사들과 의경들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div> <div>특히 도로와 인접한 개천의 풀숲은 경찰들의 주 수색 대상이었다.</div> <div>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div> <div><br />"여깁니다!!!!!"</div> <div><br />한 의경의 외침에 모두들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풀숲 사이에 긴 선을 그으며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div> <div>가드레일에서 지켜보던 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풀숲으로 뛰어들었다.</div> <div>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하천 정화조가 눈에 들어왔다.</div> <div>그것을 발견한 의경이 시뻘겋게 녹슨 정화조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div> <div><br />나를 포함한 거기에 있는 모든 이가 본 것은 부패되어 썩어가는 한 여자의 시체였다.</div> <div>더욱 나를 경악케 만든 것은 지금 내 눈앞의 썩어가는 이 시체가 어제 나에게 살아서 걸어왔던 그 여자라는 것이다.</div> <div>갑자기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졌다.</div> <div>시각적인 자극은 견딜 수 있었지만, 후각적인 자극이 내 위장을 파도치게 만들었다.</div> <div>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div> <div>거기에 있는 의경 다섯 명 정도가 고개를 돌리고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div> <div></div> <div></div> <div><br />-계속-</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