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 그 중에서도 동북아 정세에서의 북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오해는 하지마세요. 이건 뭐 북한이 석유 등의 초메이저급 자원을 보유했다거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스스로 '가치가 대단히 높은' 나라여서 그렇단 얘기는 아니니까요.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초강대국들이 서로 못먹어 안달낼만큼 중요한 자원 종류나 양은 아니죠. 군사력도 잔뜩 보유한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은 군사국가이긴 하지만 미국 같은 초강대국을 위협할 수준은 아직 아니고(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없으니 '아직') 중국/러시아랑은 우호관계죠. 일본만 불쌍하게 인질로 잡혀있을뿐...(한국은 뭐...솔직히...뭐...북한이랑 싸운다고 전세계가 긴장할만큼의 강대국은 못되니까 일단 패스..)
북한이 중요한 이유는 각 강대국들에게 유용한 '도구'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께요. 일단 지금의 세계정세는 미국/일본/유럽 등의 기존 경제대국들에게 중국이 크게 성장해 자기 몫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에요. 여기서 미국과 일본은 함께 손잡고 열심히 중국을 견제하고 있죠. 유럽은 사실 중국과 적대가 아니에요. 오히려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하게 자기 지분 늘릴 기회만 보고 있죠. 유럽에 속하면서도 유럽과는 동상이몽을 꿈꾸는 애들도 있어요. 늙은 곰 러시아죠. 얘넨 어찌하던 예전 구소련 시절의 영광을 되찾아 보겠노라고 이를 악물고 있는데, 그것을 위해서라면 EU와 손잡기도 하고 중국도 손잡기도 하고 심지어 미국과도 손잡을 수도 있는 독자노선을 타고 있죠. 뭐 여튼 이러저러한 이권 다툼이 치열하지만 지금 국제정세를 지배하는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미국vs중국의 대결에 나머지 강대국들이 숟가락 얹을 준비하며 지켜보는 형국이죠. 이 와중에 미국이나 중국 양 쪽 중 하나가 군사력을 자랑질 하고 싶어해요. 미국은 중국한테 '어쭈? 니 마이 컸네? 니네가 아무리 그래봐야 군사력은 우리가 짱임' 자랑하고 싶고, 중국은 '원래 키는 내가 더 컸다 아이가? 쫌만 기달려라 금방 따라잡아주께' 시위하고 싶은거죠.
근데 국제정세는 표면적으로는 명분이 지배하는 관계에요. 명분을 핑계삼아 실리를 추구하는 관계죠. 명분이란 엇비슷한 힘을 가진 두 세력이 충돌할때, 주위 구경꾼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힘이거든요. 따라서 명분을 잃은채 독주하다간 왕따로 찍혀 집단린치 당하기 쉽상이죠.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도 마찬가지에요. 아무 이유없이 뜬금없는 무력 시위나 군비 증강을 벌였다간 상대에게 오히려 역으로 명분을 주고, 주위 국가들한테 맹 비난만 받게 되거든요. 이런 시점에서 북한의 역할이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북한이 어느날 남한에 무력도발을 시도합니다. 물론 뭐 이런 도발을 미/중 등의 강대국들이 직접 사주했다는 쌈마이 음모론이나 말하려고 하는건 아니에요. 미/중도 북 도발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북한의 무력도발은 북한이 그냥 자기네 이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일으킨 것일 뿐이고, 미/중 강대국들은 뭐 그게 그리 좋지는 않지만 이미 일어난거 어쩌겠어요? 이왕 일어난 사건인데 그걸 이용해 철저하게 자기네 이익 챙겨먹을거 다 챙겨먹을 궁리들을 하는 거죠.(사실 외교의 본질은 이러한 '임기응변'에 있어요. 세상 국제 정세 내가 어찌 다 내맘대로 움직이겠어요? 그냥 이런저런 일들이 우연과 필연으로 계속 터져나오고, 외교관이 해야할 일은 최대한 그 사건들을 나와 내 나라에 유리하게 이용해 먹을 궁리를 하는거죠)
연평도 사태를 빗대 설명해 볼께요. 연평도 사태로 인해 각국이 얻어낸 것들을 살펴볼까요?
먼저 당사자인 북한은 연평도 도발로 인해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인 김씨일가의 세습 시 최고 권력층 내부의 잡음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워낙에 비밀이 많은 놈들이다보니 그게 성과가 있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방법이 없으나, 최소한 사태를 일으키며 뭘 의도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다음 미국은 일단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명분을 얻었습니다. 요걸 어찌 요리하나? 살짝 고민하면서 비난 성명이나 발표하고 지켜보는데 때마침 한국에서 SOS요청이 들어오네요. 북한 겁 주려는데 도와달라고요. 옳타쿠나 하면서 아예 항모를 빌려줘버립니다! 서해는 단순히 남북간의 바다가 아니죠, 중국 앞마당이기도 한 곳입니다. 여따가 북한 핑계대며(그리고 한국의 요청을 핑계대며) 항공모함을 떡하니 밀어넣어 봅니다. 중국이 깜놀해 펄쩍 뛰고 미국은 실쭉 웃는 상황이죠. 게다가 한국 상대로는 항모 대여료를 핑계로 그간 미국 내부에서 말이 많았던 한미FTA 재협상을 이끌어 냅니다. 재협상 따위 절대 없다던 한국이지만 뭐 어쩌겠어요? 항모가 뭐 한두푼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덜컥 빌려줬는데 이쯤은 받아야죠. 잔뜩 이득 챙겨놓고선 변두리 정치인 몇명이 북한쪽 입장 대변해 립서비스 떨어주며 중국 북한 짐짓 달래는척 하며 빠져나갑니다. 완전 이익보는 장사 치렀네요, 좋겠습다 거참.
물건너 일본은 뭐 별로 얻은건 없지만 그간 쉬고 있던 '고장난 주둥아리'가 망발을 뱉어낼 찬스를 얻었네요. 전통적(?)으로 북이 군사력 시위하면 자위대 말고 일본군 만들어야 된다고 떠벌어대던 놈들인데 요 찬스를 놓칠리가 없죠. 자위대가 타국 파병이 가능해야 한다는 둥, 한국에 전쟁나면 도와주러 군대 보내줄께라는 둥 (죄송한데 욕 좀 쓸게요) 미친 원숭이 생끼들이 우끼끽우끼끼끽우끼우끼 생지랄을 떠네요. 씨알도 안 먹힐거 뻔히 알면서 자꾸 뻘소리하는 '우공이산'식 전략을 지치지도 않고 고수하네요. 한결같은 모습이 거 참 보기 좋습니다?
중국은 사실 좀 난감했어요. 그간 북한 이용해서 미중간 외교에서 교묘하게 위신세우는 짓을 자주 해왔는데, 북한 요놈들이 가끔씩 핵지랄이나 군사도발을 과하게 터뜨리면 중국 입장에서 커버 쳐주기가 좀 곤란했거든요. 근데 이번엔 민가포격으로 민간인 사상자를 내버린거에요. 보통때면 '분쟁지역의 분쟁국가들이 상호 도발에 이은 상호 교전을 했음'하고 물타며 국제정세를 호도했을텐데 요번엔 그게 씨알도 안먹히게 생겼어요. 근데 슈발 미국 이 양키놈들이 한국이랑 짜고 앞마당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네요? 그래서 우리도 울컥해서 뭔가 맞장구를 쳤어요. 오늘 뉴스 보니까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방중한 것을 계기로 일부러 날짜맞춰 중국 최신예 스텔스기 시험비행 성공한거를 자랑질 했다는군요. 메이드 인 쨩꼴라 산 스텔스기가 과연 레이다에 안 잡힐 수 있을까, 테스트한 레이다도 역시 메이드 인 쨩꼴라라 안 잡힌 것 뿐 아닐까, 아니 그전에 날기나 제대로 날까, 아니 시험 하긴 한걸까, 구라만 친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미국/한국/일본 핑계대며 군비 증강을 시도할 명분은 생겼네요. 손해 좀 본 장사이긴 해도 나름 챙길건 챙기는 모습, 과연 강대국다운 면모입니다.
한국....하아...한국이 문제네요. 정작 피해를 입었던 한국은 이번 일로 뭘 얻었을까요? 북한의 사과? 못 받았죠. 북한의 다시는 이런 짓 안 벌인다는 약속? 못 받았습니다. 그럼 뭘 받아냈을까요? 피해 당사자임과 동시에 민간인 피해를 입었다는 '절대 명분'을 가진건 바로 우리나라인데, 주변 남들 다 이거 핑계로 국방력 강화를 하거나 외교적 실익을 거둬가는 동안 우리나라가 한건 겨우 한번 북한 '겁주기 시도'를 감행한게 전부입니다. 그나마 그게 먹혔냐면 애석하게도 별로 효과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남들 눈도 있고 하니 한번쯤 으름장을 놓을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이 참에 군비를 증강하고 장비를 확충할 명분이 충분히 있음에도 하나도 진행하는게 없습니다. 그나마 5.8%인가 하는 올해 국방 예산을 연평도 사태 이후 긴급으로 6.2%인가 증액했다는데, 애당초 국방부가 요구한 올해 예산은 6.9% 인상안이었다네요. 연평도 사태 이전이었다고는 하나, 이미 작년에 천안함 사태라는 커다란 안보 실책을 범한 나라가 국방예산 가지고 쪼잔하게 굴고 있었다는 거 자체가 거 참...아끼고 절약하는 정신이 보기 좋으시네요들. 그렇게 아껴서 어디 쓰실지 대충 짐작이 가서 걱정이지만요. 결국 '북한 보복용 겁주기'도 물론 필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다만 그걸 위해서 미국 형님들한테 너무 큰걸 빌려왔다가 커다란 대가를 치렀죠. 정작 해야할 일들은 안하고 있습니다... 예산안 다시 짜려면은 여당 단독 날치기로 통과시킨 보람이 저 하늘위로 3단 부스터 달고 날아가버릴까 걱정을 하셔서들요. 집에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물었는데, 개를 한번 겁주고 혼내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건 튼튼한 개 목줄과 가둬둘 철망을 사오는 것일테죠. 근데 개를 혼내려면 신문지 둘둘 말아 뭉친 몽둥이 하나 준비하면 될 것을 저 앞 미군부대 가서 비싼 바주카포를 가져와서 개 앞에 흔들어보였습니다. 개는 뭔가 큰 몽둥이 같은걸 흔드니 겁은 먹었지만 그게 사실 바주카포인지 뭔지 뭐하는 건지 알지도 못할텐데요... 그래놓고 고마운 미군 나으리들께 대가를 쳐드려야 하니 개 목줄, 철망 살 돈을 고스란히 바쳤습니다. 허 거참 장사 잘하시네요? 사실 한국이 이런 병짓을 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북이 한국의 영토를 직접, 그것도 민가를 포격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내는 엽기적인 사태를 벌인것에 대해 한국민들은 공포와 혼란과 분노로 여론이 들끓고 있었거든요. 사실 이건 북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이고, 이것을 막아내지 못한 정부와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컸습니다. 이건 연평도에서 반격할때 포 몇발을 더 쐈어야 한다는 둥, 비행기가 떴어야 한다는 둥 말아야 한다는 둥의 문제를 넘어서 천안함 사태의 쇼크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또 당했'다는 점 때문이죠. 현 정권은 그걸 어떻게든 무마시킬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대북 강경기조는 당연히 취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한국이 북에 취할 수 있는 강경책은 더이상 남아있지도 않거니와, 장기적인 대북 강경책을 짜고 제시하기에는 그럼 자기네 실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는데다 그럴만큼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죠...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으니. 결국 이명박 정권이 선택할 수 있었던건 나라의 장래보다 자기네 정권의 안정화를 위해 미국 형님 힘을 비싼 대가 지불하고 빌려와 국내 민심을 살짝 달래주기 위한 '근시안적 포퓰리즘' 정책을 악수인줄 알면서 강행할 수 밖에 없었죠. 미국 횽아들의 크고 알흠다운 항공모함은 사실 북한을 공포로 떡실신시키기 위한게 아니라 국내 여론을 만족감으로 떡실신시키기 위한 떡밥이었던 겁니다. 뭐 그게 공짜였다면 나름 '불안하던 민심을 한방에 진정시킨(그래서 차분하게 대책을 강구할 수 있게끔 해주는) 괜찮은 수'라고 평가할 수도 있었겠지만, 공짜는 커녕 급하게 모셔오느라 FTA 농산물 다 내주고 사수한 자동차마저 홀랑 내주는 대출혈을 대가로 한거였으니까요. 그걸로 얻은 이득? 우리 국민들은 손해만 봤고, 현 정권이 여론 진정시킨 이익을 봤네요. 이런 나라 이익 팔아 사익 챙기는 썩을 놈들~
정리하자면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이 하는 역할은, "온갖 더러운 일 대신 해드립니다"라며 온갖 지저분한 일들을 다 벌이는 역할을 합니다. 본인들은 그게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북한이 뭔가 하나 터뜨리면 사방에서 강대국들이 몰려와서 그 안에서 뭔가 챙겨 먹을게 없나 뒤적이죠. 아니면 그걸로 인해 손해본 입장들에서는 손해를 줄이고 그나마 뭐라도 하나 주워가기를 노리거나요. 근데 한국은 정작 매번 피해 당사자 입장으로 나가 떨어지면서도, 뭐 하나 챙겨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최소한 북이 한국에게 시비거는거라도 못하게 막지도 못하구요. 그나마 한국의 이명박 정권이 대북정책이랍시고 하는 것들은, 한국의 피해를 줄이고 한국의 이익을 도모하는게 아니라 자기네 정권과 여당의 피해를 줄이고 자기네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하는 짓거리들이죠. 북한과 싸우는게 아니라, 북한 주변에 뭐 떨어지는 떡고물 주워먹겠다고 달려드는 기생충 같은 강대국들이랑 싸우는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의 여론과 맞서 싸우는데만 열중하고 있다는 거죠.
다음번에는 툭하면 욕먹는 지난/지지난 정권의 대북 온건책, 이른바 햇볕정책의 실체에 대해 글을 적어볼께요.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겟돈사기연합(게임 돈내고 사기 연합) 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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