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너무나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br /><br />그러나 전상병의 얘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고통스러웠지만 멈출수 없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br /><br />나는 이미 그의 얘기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br /><br /><br />"귀신을 보는 특별 관리 대상....우린 정한수한테 감히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br /><br />심지어 그 놈 동기인 감시병조차 옆에 있길 꺼려했으니까."<br /><br /><br />"그런데 진짜로 무서웠다는게 뭡니까?"<br /><br /><br />내 곁눈질을 눈치챘는지 전상병은 고개를 돌려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br /><br /><br />"어느 날 정한수와 내가 보급창고 정리 작업을 하게 되었지.<br /><br />감시병이 면회를 나가서 대신 내가 대타로 있게 된거야.<br /><br />난 그 놈과 같은 공간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게 너무 무서웠어.<br /><br />보급 창고 안에는 야전삽부터 시작해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는 기구들이 가득했거든.<br /><br />내가 흠찟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정한수가 나에게 말을 걸더라구.<br /><br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래."<br /><br /><br />전상병은 잠시 자신의 이마를 긁적거렸다.<br /><br /><br />"니미...안무서워하게 생겼냐? 그건 지생각이고.....<br /><br />나는 그 놈이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신들과 댄스파티를 하는 것 같아 미칠 것 같았지.<br /><br />고참만 아니었으면 온몸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놓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어디다 묶어놓고 싶었다니까.<br /><br />정한수가 내게 안도감을 주려는 것 같자 불현듯 나는 묻고 싶은게 하나 생겼지."<br /><br /><br />"뭘 말입니까?"<br /><br /><br /><br />"정말로 귀신을 볼 줄 아냐고?"<br /><br /><br />"........"<br /><br /><br />"그런데 정한수가 씨익 웃음을 짓는거야.<br /><br />와...**....사람이 웃음을 짓고 있는데 그렇게 무서운 표정은 처음이었다니까.<br /><br />해골처럼 마른 얼굴에 늘 두려움의 표정을 짓던 사람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니까 야전삽을 쥐고 있는 내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더라....."<br /><br /><br /><br />나는 마치 전상병과 함께 그때 그 보급창고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br /><br /><br /><br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짓던 표정을 없애더니만 정한수가 입을 여는거야.<br /><br />자신을 몸이 허약한 건 귀신이 잘 붙는 몸이라 그런다는군. <br /><br />그래서 자기 어머니가 무당이니까 굿도 해보고, 부적도 써보고 그랬대나봐.<br /><br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귀신은 자기 방 드나들듯이 계속 몸속에 들락거렸대.<br /><br />몸이 죽을만큼 쇠약해졌는데도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해 입대 신검에서도 2급이 나와서 현역 판정난거래.<br /><br />그러던 어느 날 정한수 어머니가 자신을 신내림해준 영험한 무당을 찾아가 아들 얘기를 했더니,그 무당도 그러더래.<br /><br />귀신을 떼어내면 아들이 죽는다고....떼어내서 죽는게 아니라, 빈 자리가 생기면 더 강한 귀신이 붙어서 죽을거라는거야.<br /><br />그 무당은 고양이의 피를 바른 종이에 기분 나쁜 형상의 그림을 그려넣더니 정한수 어머니에게 건네더라는거야.<br /><br />그리고는 그러더래. 몸이 돌아올 때까지 몇 년간 이겨내야 할일이 있다는거야.<br /><br />정한수 어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그 늙은 무당이 하는 말이....."<br /><br /><br />전상병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br /><br /><br />"왜...왜 그러십니까?"<br /><br /><br />나의 물음에 전상병은 마저 말을 이었다.<br /><br /><br />"그 늙은 무당이 하는 말이.....부적을 몸에 지니는 순간부터 귀신을 보게 될거라는거야."<br /><br /><br />"헉!!"<br /><br /><br />"쪼그려 앉아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야전삽을 손에 쥔 상태로 털썩 주저앉았어...다리에 힘이 풀리더라구.<br /><br />도대체 그 무당이 정한수에게 무슨 짓을 한걸까 생각해 봤더니....<br /><br />그 무당이 정한수가 살 수 있도록 선택한 방법은 귀신을 보게 해서 정한수가 귀신을 피해다니게끔 만든거야.<br /><br />와....** ** 똑똑하고 무서운 방법 아니냐?"<br /><br /><br />나는 차마 전상병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br /><br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찌릿한 전기 자극이 주어지는 듯 했다.<br /><br /><br />"자잘한 몇몇의 귀신들은 잘 피해다닐 수 있었는데, 그날 그 작업이 있던날 귀신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던거지."<br /><br /><br />"그..그래서 포크레인으로 작업했던 날 이후로 귀신에게 쫓겨다닌겁니까?"<br /><br /><br />"아니 쫓겨다닌게 아니라 피해 다닌거지...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br /><br />정한수가 무서운 얘기를 하나 하는거야."<br /><br /><br />"또...무..무슨 말 말입니까?"<br /><br /><br />"거기서 쏟아져 나온 귀신 중 하나가 김창식 일병한테 붙었다는거야."<br /><br /><br />"김창식 일병이라면....."<br /><br /><br />"그래. 취사병인 김창식 병장..."<br /><br /><br /><br />난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온몸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br /><br /><br />"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오금이 다 저리더라구."<br /><br /><br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싸늘한 찬바람이 능선 골짜기를 쓸며 내려가고 있었다.<br /><br /><br />"너 부대에서 가장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누구냐?"<br /><br /><br />"......."<br /><br /><br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난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부대원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br /><br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정신병원을 집단탈출한 환자들 뿐이었다.<br /><br /><br />"너 김창식 병장의 과거를 아냐?"<br /><br /><br />"모..모릅니다."<br /><br /><br />"그 사람 칼 다루는 것 본 적 있지?"<br /><br /><br />"예"<br /><br /><br />"김창식 일병 원래 특전사에서 특기병으로 있던 사람이야."<br /><br /><br />"예? 진짜로 말입니까?"<br /><br /><br />"원래 특전사 요원들은 부사관들이고, 행정은 보통 차출된 사병들이 하거든. <br /><br />그런데 김창식 병장이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배정 인원이 모두 다 찼었나봐.<br /><br />그래서 자리가 날 때까지 김창식 병장은 부사관들과 같이 내무반 생활을 하며, 똑같이 훈련을 받았었대.<br /><br />게다가 칼을 귀신처럼 잘 다뤄서 쌍칼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는거야.<br /><br />그런데 낙하산 점프에서 착지하다가 허리와 골반을 다쳤나봐. 그래서 우리 부대로 온거야. 그것도 취사병으로.<br /><br />그 때 취사병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대하면서 김창식 병장이 취사일을 모두 떠맡았지.<br /><br />그런데...너 김창식 병장 이상한 점 발견 못했냐?"<br /><br /><br />"이상한 점 말입니까?"<br /><br /><br />"그래 임마....너도 짧은 시간이지만 김창식 병장 계속 봐 왔잖아."<br /><br /><br />"저....고..고양이를 무지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br /><br /><br />"그래..고양이를 **게 싫어해. <br /><br />너도 알지? 고양이를 불태워 죽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목을 잘라버리기도 하잖아.<br /><br />너 이 부대 오기 바로 전에 ** 쇼킹한 일이 한 번 있었다."<br /><br /><br />지금도 쇼킹한데 뭐가 더 쇼킹하단 말인가?<br /><br /><br />"사단본부에서 취사 검열이 나왔어.<br /><br />배식 메뉴가 규정을 따르고 있는지, 위생상태가 양호한지, 식자재는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지 이런걸 검열하는거지.<br /><br />그때가 겨울이어서 동절기에는 무우를 땅에 묻어야 하거든?<br /><br />취사장 뒤편에 무우를 묻는 장소가 있어.<br /><br />그런데 검열관이 보기에 무우를 묻은 무덤이 너무 커보이는거야.<br /><br />검열관을 보좌하던 선임하사도 의아해 했지.<br /><br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지는 검열관이 그 흙무덤을 파보라는거야.<br /><br />그 때 김창식 병장 얼굴이 약간 일그러지더라구....<br /><br />땅이 꽁꽁 얼었는데 그걸 판다는 건 쉽지 않았지. 결국 곡괭이와 삽만으로 그걸 팠어.<br /><br />그런데 무우가 묻혀 있는 층 위에 큰 포대자루가 나오더라구. <br /><br />거기서 뭐가 나왔는지 아냐?" <br /><br /><br />"고...고양이 말입니까?"<br /><br /><br />"아니.....고양이 뼈....그것도 살을 발라낸..."<br /><br /><br />".........."<br /><br /><br />"그 살은 어디로 갔을까? 그것도 취사병이 발라낸 살...."<br /><br /><br />나는 순간 토가 나올것 같이 속이 부글거렸다.<br /><br /><br />"김창식 병장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구. <br /><br />어떻게 보면 아주 심각한 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고양이 고기를 먹는 군인들도 있거든...<br /><br />결국 경고 조치로 끝났지만, 다 들 알고 있었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br /><br />다들 수근거렸지. 언젠가 김창식 병장은 고양이의 저주를 받아 죽을거라고.<br /><br />고양이만 보면 눈깔이 뒤집혀. 미친 사람 같애.<br /><br />그런데 말야. 그 사람 처음부터 그런게 아니었어.<br /><br />정한수가 나한테 그 말을 해 준 이후에 김창식 병장이 그렇게 변해 가는거야."<br /><br /><br />"저..정말로 귀신 씌어서 그런겁니까?"<br /><br /><br />"개나 고양이들은 귀신을 볼 줄 안다고 하잖아. 자신을 알아보는 존재를 다 죽여버리는 것 같애."<br /><br /><br />오늘 낮에 있었던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오버랩되면서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br /><br />나는 마른 침을 간신히 삼키며 전상병에게 물었다.<br /><br /><br />"그...그 존재가 사람이라면 어떡합니까?"<br /><br /><br /><br /><br /><br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