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자정이 넘어서자 5초소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피어올랐다.<br /><br />원래 취사병 도우미는 근무를 열외시켜 주는데, 부대원 몇이 훈련 파견 나가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하게 되었다. <br /><br />조금전까지만 해도 달빛이 조명 역할을 해줬었는데 그마저도 이 깊은 산중에서는 오래가지 못하고 능선 뒷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br /><br /><br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의 뒤에서 초소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전상병은 손톱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br /><br />상병 말호봉인 전상병은 부대내에서 군기 담당병으로 불렸다. <br /><br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 부대 고참들은 하나같이 다 무섭게 생겼다는 것이다.<br /><br />전상병도 마찬가지였다.<br /><br />도대체 전상병은 어디서 썬텐을 하는지 얼굴은 시꺼멓게 그을려 있었고, 까맣게 그을린 울퉁불퉁한 감자덩어리에 두 개의 칼집을 <br /><br />낸 것처럼 찢어진 눈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눈알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두툼란 눈꺼풀이 눈알을 덮고 있었다.<br /><br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울듯한 큰 입과 그것에 균형을 맞추기라도 하듯 두툼한 입술이 막대풍선처럼 포개져 있었다.<br /><br />그러나 우악스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학구파였고, 명문대를 다니다 온 사람이었다.<br /><br />쥐죽은 듯한 적막 속에서 사각거리는 손톱 갈리는 소리만이 지금 들려오는 유일한 소음이었다.<br /><br /><br />"야..이창훈"<br /><br /><br />"일병, 이창훈"<br /><br /><br />"심심하냐?"<br /><br /><br />"아닙니다."<br /><br /><br />"주변 분위기도 그럴싸한데 내가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br /><br /><br />"무슨 얘기 말입니까?"<br /><br /><br />"이 5초소가 왜 있는지 아냐?"<br /><br /><br />"....모르겠습니다."<br /><br /><br />"흐흐흐..."<br /><br /><br />갑자기 전상병은 내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뱉았다.<br /><br />지금 내 뒤에 있서 볼 수 없지만 그는 분명 그 두터운 막대풍선 사이로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을 것이다.<br /><br /><br />그러고 보니 이 5초소는 조금 이상했다.<br /><br />특별히 경계를 해야될 시설물도 없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도 아니었다.<br /><br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부대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br /><br />족히 눈짐작으로 보아도 부대막사로부터 이백여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다.<br /><br />도대체 이런 고립된 산중에 누가 초소를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일까?<br /><br /><br />"내가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후에 일어난 일이야.<br /><br />부대에 정한수라는 이등병이 전입왔어.<br /><br />운전병 후반기 교육을 받고 온 놈인데, ***... 자대 배치 다음 달에 일병을 달더라구.<br /><br />내가 자대 생활을 두 달이나 먼저 하고 있었는데 쫄병이라고 온 놈이 내 고참이었던거야.<br /><br />기분 더러웠지.<br /><br />그 자식은 체격도 왜소하고 삐쩍 말라서 힘도 없는데다가 약간 모자른 놈이였어.<br /><br />아침에 구보하면 항상 뒤쳐지기 일쑤였고, 행군할 때도 항상 낙오됐었지.<br /><br />나중엔 아예 그놈만 군장을 메지 않고 행군을 할 때도 있었다니까.<br /><br />아니면 선탑 차량 운전을 했지.<br /><br />일하는 것도 **맞도록 느려 터졌고, 항상 쉬운 일만 맡아서 했었지.<br /><br />그 놈 때문에 우리 동기들이 무지하게 고생했었지. <br /><br />그 놈이 할 일을 우리가 대신 했었으니까<br /><br />게다가 말도 어눌해서 졸라 불쌍해 보였고, 우리에게 고참 대접도 받기 힘들었지.<br /><br />혹시나 사고라도 나서 죽을까봐 대대장은 그 놈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삼았지."<br /><br /><br />"특별 관리 대상이 뭡니까?"<br /><br /><br />"별거 아냐. 군대 부적응자가 혹시나 자살이라도 할까봐 감시병을 붙여두는거지.<br /><br />감시병이 고참이면 생활이 힘들 것 같으니까 보통은 같은 동기를 감시병으로 붙여두지.<br /><br />그 놈이 어딜가든 쫓아다니는거야. 심지어 화장실 가서도 감시병이 밖에서 1분 간격으로 노크를 하지. <br /><br />보통 화장실에서 자살을 많이 하니까 살아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는거야.<br /><br />그 자식 실제로 손목에 칼로 그은 듯한 흉터가 몇 개 있더라구."<br /><br /><br />전상병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잠시 손톱 손질을 멈추었다. <br /><br /><br />"그런데 그 놈 진짜 이상했어. 소름끼치도록 말야..."<br /><br /><br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내 뒤에서 진지한 말투를 내뱉고 있는 전상병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br /><br />차라리 계속 손톱 손질하는 소리를 내주길 바랬다.<br /><br /><br />"그 자식은 이상한 부적같은 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더라구. <br /><br />어떤 건 모자 속에 어떤 건 군화 속에 어떤 건 군장 속에......<br /><br />알고보니까 걔 엄마가 무당이라고 그러더라구. <br /><br />몸이 약한 아들이 군대에 있으니까 엄마가 정성들여 부적을 써줬나봐.<br /><br />그런데 그건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부적이 아니었어. <br /><br />종이도 붉은 색인데다가 문양도 글자가 아니고 무서운 괴물형상같은 그림이 깨알같이 그려져 있었지.<br /><br />아무도 그 부적의 용도에 대해 묻지 않았어. <br /><br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빴어. <br /><br />게다가 특별 관리 대상이라 아무도 걔한테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지.<br /><br />걔한테는 영기（靈氣）가 느껴졌어. 그 썩어가는 몸뚱아리에 쓸 만한 거라곤 눈이었어.<br /><br />눈에서 무서울 정도로 광채가 돌았지.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두 눈....<br /><br />그러던 어느날이었어.<br /><br />여기 5초소 자리는 원래 뒤산의 능선 줄기가 끝나는 곳이었지.<br /><br />토질이 마사토라서 부대에서 이곳을 파내어 연병장이나 비포장 도로에 깔기로 했지.<br /><br />단순히 삽질로 능선 줄기 하나를 파낸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했어.<br /><br />그래서 대대장이 공병대에 요청을 해서 포크레인이 한대 왔지.<br /><br />능선 줄기만 파내어 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삽질을 하면 됐으니까 일거리가 무지하게 많이 줄게 된거지.<br /><br />그런데 그때 정한수 일병이 같이 있었는데 포크레인이 몇 번 굴삭질을 하는 걸 보더니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거야."<br /><br /><br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며 조용히 손목시계를 한번 들여다 봤다.<br /><br />12시 35분.....<br /><br />전상병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공포스런 기운이 주변을 감싸는 듯 했다.<br /><br />내 기분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전장병은 여전히 내 뒷편에 앉아 말을 이었다.<br /><br /><br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파내어진 자리를 지켜보고 있는거야. <br /><br />그러더니 갑자기 마구 괴성을 지르며 포크레인 운전병한테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는거야. <br /><br />그리고는 그 허약한 몸으로 미친듯이 삽질을 하며 다시 흙을 구덩이에 처넣는거야. <br /><br />미친 놈 같았어. 아니...그냥 미쳤었어.<br /><br />순간 우리는 혼이 빠진 것처럼 몇 초동안 멍하니 걔 행동만을 지켜보고만 있었지.<br /><br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형상가 범죄자를 체포하듯이 팔을 뒤로 잡아챈 다음 바닥에 눕혀 그를 제압했지."<br /><br /><br />"왜....왜 그랬답니까?"<br /><br /><br />나는 이미 전상병의 분위기에 동화되어가고 있었다.<br /><br />나의 물음에 전상병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br /><br />그리고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는 듯 했다.<br /><br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나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br /><br /><br />"니미....**...구덩이에서 귀신이 나온데...그것도 그냥 나오는게 아니라 쏟아져 나오고 있대."<br /><br /><br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내 척추선을 따라 흘러내렸다.<br /><br />나는 긴숨을 한번 되새기며, 그에게 물었다.<br /><br /><br />"그..그럼... 그 구덩이 자리가 이곳입니까?"<br /><br /><br />나는 질문을 던져놓고,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전상병의 얼굴을 살폈다.<br /><br />전상병은 내 옆에 바른 자세로 서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br /><br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전상병은 그 때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br /><br />나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전상병은 나의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br /><br /><br />"다른 놈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무시하고 넘어갔을지도 몰라. <br /><br />그런데 정한수 그 놈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다들 맥반석 위의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었지."<br /><br /><br />전상병은 긴장을 풀려는지 잠시 긴 숨을 내뱉았다.<br /><br /><br />"작업은 중지됐어. 대대장이 직접 공병대에 부탁해서 포크레인까지 동원된 작업이 중단된거야.<br /><br />같이 있던 소대장도 사색이 되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지.<br /><br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었어. <br /><br />대대장에게 욕을 처먹는걸 각오하고 작업을 취소시키거나 아니면 정한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파내려가는 거였어.<br /><br /><br /><br />"어..어떻게 했습니까?"<br /><br /><br />나와 나란히 같이 서있던 전상병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답을 했다.<br /><br /><br />"그냥 팠지...."<br /><br /><br />나는 마치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br /><br /><br />"그냥 팠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br /><br />계속 삽질을 하면서 우리는 걱정되는 마음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지.<br /><br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br /><br />예정대로 마사토를 트럭에 퍼담아 연병장에 깔았어."<br /><br /><br />"그 일병은 어떻게 됐습니까?"<br /><br /><br />"근신 조치 되었어. 외부활동은 금지되었고, 부대 내에서 하루종일 청소하고 밤에는 반성문을 썼지.<br /><br />감시는 더더욱 심해졌고, 심지어 근무도 열외되었어. <br /><br />그런데 그 뒤로 그 놈의 행동이 이상했어. <br /><br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자꾸 주변을 살피며 불안해 하는거야.<br /><br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진지했어. <br /><br />진짜로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는 사람 같았다니까."<br /><br /><br /><br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상병을 말을 멈추게 할 권한이 없었다.<br /><br />지금 여기 저기서 수많은 손들이 나를 쓰다듬는 것 같은 한기가 온 몸에 퍼지고 있었다.<br /><br /><br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부대에 회식이 있던 날이었지.<br /><br />돼지를 한 마리 잡았는데 보통 맛있는 부위는 대대장이나 중대장에게 건네지고 나머지를 부대원들이 먹게 되지.<br /><br />보통 썰어서 구워먹거나 제육볶음으로 해먹는데 그 때 취사병이 제안을 하나 하는거야.<br /><br />통째로 쇠봉을 박아서 바베큐로 구워먹자는거야.<br /><br />부대원들은 우린 흔쾌히 승락했지.<br /><br />그 때 고참들이 졸병들에게 불을 땔 장작거리를 주워오라는거야.<br /><br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몇 명이 저녁 7시가 넘을 무렵 어둑어둑한 산속으로 나무쪼가리를 주으러 갔지.<br /><br />산에 들어서기 전에는 별로 어둡지 않았는데 산속으로 들어가니까 제법 많이 어두워지더라구.<br /><br />그런데...후..."<br /><br /><br />전상병은 뭐가 두려운지 다시 한번 긴 숨을 내뱉았다.<br /><br /><br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려서 적당한 장작거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어.<br /><br />그런데 날이 더 어두워질 것 같으니까 우린 눈에 띠는 대로 장작거리를 열심히 포대자루에 주워 담았어.<br /><br />나무쪼가리가 많은 곳이 있길래 정신없이 한참을 주웠지. <br /><br />그런데 줍다보니까 그 자리가 얼마 전 정한수 일병이 소동을 벌이던 곳이었어. <br /><br />어후..졸라 소름끼치더라구...그래서 우리는 얼른 작업을 멈추고 포대자루를 짊어지고 내려왔지.<br /><br />모두들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더라구. 그런데 말야..."<br /><br /><br />전상병의 긴장감 도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넘기고 있었다.<br /><br /><br />"포대자루를 뒤집어 쏟아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나자빠졌지."<br /><br /><br />"뭐..뭣 때문에 말입니까?"<br /><br /><br />"**...우리가 주워 온게 나무가 아니었어. 까맣게 색바랜 뼈였어!!"<br /><br /><br />"예? 뼈 말입니까? 뼈를 나무인 줄 알고 주웠단 말입니까?"<br /><br /><br />"몰라, **...다들 나무라고 생각하고 주워왔는데 뼈였어. 우리는 심장이 멎는듯 했어.<br /><br />크기나 모양으로 봐서 동물의 뼈가 아니었어. <br /><br />누가 봐도 사람 뼈였어. 나하고 같이 주웠던 홍상병은 부서진 골반뼈까지 주워 왔더라구."<br /><br /><br />전상병은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괴로운지 헬멧을 벗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br /><br /><br />"회식은 물 건너 갔지. <br /><br />혹시나 그 자리가 무연고 무덤일지 몰라서 날이 밝자마자 군청에 신고를 했지.<br /><br />군청 직원들과 경찰들이 그 구덩이를 둘러쌌지.<br /><br />여기저기 증거 사진을 찍더니만 군청 직원 얘기로는 거기가 신고된 무덤 자리가 아니라고 하더군. <br /><br />군청에서 뼈를 모두 수거해갔어. 상당히 많은 뼈가 나왔어. 포대자루로 다섯 포대 이상은 나온 것 같았어.<br /><br />군청 차량이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있는 부대원들은 한결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br /><br />정한수...그 자식이 한 말이 떠올랐던거야."<br /><br /><br />전상병은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br /><br /><br />"그런데 씨..발...나를 진짜로 무섭게 만든건 그게 아니었어."<br /><br /><br />전상병만큼이나 내 머릿속은 욕설로 가득했다.<br /><br /><br />'니미..씨..발 오늘 제대로 걸렸네.'<br /><br /><br /><br /><br /><br />-계속-<br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