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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20775
    작성자 : NATO
    추천 : 3
    조회수 : 1787
    IP : 180.64.***.145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07/17 22: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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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 씻을 수 없는 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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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9 13.

     

    네이처지에 한 편의 논문이 실린다. 수많은 생명공학자들과 의사들이 이 위대한 업적을 칭송한다. 그 논문은 신체 재생성에 대한 것이다. 피부 재생이나 흉터 치유 따위의 시시한 것이 아니다. 손가락 접합이나 안면 재생 따위의 익숙한 기예도 아니다. 이 논문은 완전히 소실된 인체기관을 재생성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이를 테면, 두 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사람에게 새로운 다리가 돋게 하는 방법, 손목이 잘려나간 사람에게 새로운 손이 돋아나게 하는 방법 따위다.

    뼈 위에 새로 근육이 달라붙는다. 단순한 고깃덩이가 아니다. 덩굴처럼 뻗은 신경의 명령을 따르는 진짜 근육이다. 잘려서 봉합된 혈관이 새로 연결된다. 모세 혈관이 돋아난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새로 생긴 기관에 순환시킨다. 천천히 손가락을 굽힌다. 놀라운 표정. 실험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금세기 재생의학 분야의 혁명이 될 것이라고 평가 받는 이 논문의 저자는,

    에드가 엘릭 박사 외 연구원 25.

    저널의 끝자락에는 이런 글이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 레나 로빈슨이라는 학생이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투고하였으나, 내용이 중복되어 수록하지 않았음.

    레나는 그녀의 논문을 쓰는데 3년 가까이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쓴 논문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연구팀이 쓴 논문의 한 챕터보다도 적었다.

     

    로빈슨이 사라졌다.

    그녀는 모든 수업에 무단결석했고, 연구실에도 나오지 않았으며, 핸드폰마저 꺼버렸다.

    스미스는 그 사실을 이틀이나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찾아 나섰다. 공강 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에 들리고 카페에 들어가봤다. 쉬는 시간에 로빈슨의 친구들을 찾아가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그 일 때문에 상심이 큰 것 같더라고. 한 남자가 말한다.

    나도 걱정돼 죽겠어. 혹시 나쁜 마음을 품으면 어떡해? 여자가 말한다.

    로빈슨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스미스는 대답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주말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었지만, 약속을 취소했다. 로빈슨을 찾으러 나가겠다고 했더니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들 모두 로빈슨의 친구였고, 그녀가 소개해준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연구실에 들어가려 한다. 실패. 문이 잠겨 있다. 문틈으로 소리친다. “로빈슨!” 대답은 없다. 의자를 딛고 올라가 방범창 너머로 내부를 살핀다. 불도 꺼져 있고, 내부는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녀는 여기에 없다. 밖으로 나온다. 기숙사로 향한다. 로빈슨의 방으로 간다. 문을 두들겨댔지만, 돌아오는 인기척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휴대폰을 켜서 문자를 몇 통 보냈다. 어디 있어? 연락해. 기숙사 문 앞에서 서성인다. 삼십 분을 넘게 그러고 있다가 밖으로 나간다.

    계절에 맞지 않게 태양이 작렬한다. 목덜미가 따가울 정도다. 스미스는 계속 돌아다녔다. 펜 주립대학은 빌어먹게도 넓었다. 미국 동부에 있는 어지간한 마을보다도 컸고, 공항, 기차, 버스까지 있었다. 로빈슨은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망할! 그는 짧게 소리치면서 제자리에 섰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해맑도록 푸른 하늘에 비행운이 길게 늘어져 있다. 어쩌면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다른 도시, 다른 주, 다른 나라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스미스는 계속 움직였다. 그의 발걸음을 떼게 만든 것은 그녀를 찾고자 하는 의지도, 그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아니었다. 그건 관성이었다. 관성에 의지해 몇 시간이고 걷고 또 걸었다. 몇 명이고 묻고 또 물었다. 레나 로빈슨은 어디 있지?

    스미스는 결국 그녀를 찾았다.

    C2H5OH. 종종 들렸던 술집이다. 그녀는 제일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주도 없이 혼자 맥주를 몇 병이나 비워버렸다. 그가 보는 와중에도 술잔으로 손이 가고 있다. 스미스는 잔을 뺏어 들고 말했다.

    이야기 좀 해.”

    필요 없어.” 로빈슨이 대답한다. 취기가 잔뜩 올라 있다. 얼굴이 벌겋고, 눈이 풀려 있다. 목소리도 이상하게 나온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더 먹겠다고 술잔을 잡는다.

    스미스는 그녀의 맞은 편에 합석한다. 취한 사람을 상대하려면 일단 좀 마셔야 한다. 그는 들고 있던 로빈슨의 잔을 비워냈다. 금방 취기가 올라온다.

    너 사흘 동안 연락 두절이었어. 친구들에게 문자 한 통 없었고. 애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는 해?”

    로빈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맥주를 다시 잔에 채우고 있었다. 스미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는 알아? 죄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것 같아. 이러면 안 돼.”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존 스미스가 남의 일까지 신경 써주다니, 별일이야. 가식은 집어 던지는 게 어때, ? 그냥 가버려. 나 같은 거 상대하기 귀찮잖아.”

    가식이 아니야. 도대체 어디까지 멍청해지려는 거야? 다들 걱정하고 있다고, 로빈슨. 너 지금…”

    제발 그만 좀 해!”

    로빈슨이 잔을 집어 던졌다. 커다란 맥주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벽에 부딪힌다. 맥주가 바닥에 줄줄 흘러내린다. 스미스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로빈슨은울고 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건 내 연구였어,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없는 거라고! 내 평생의 노력이 휴지조각이 됐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해?”

    로빈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뒤돌아 서서 밖으로 나온다. 스미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나, 가지마!”

    스미스가 소리쳤다. 그녀는 잠깐, 아주 잠깐 멈춰 섰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제발 정신 차려, 레나! 이까짓 일로 흔들리지마, 넌 꿈이 있다고 했잖아! 그 꿈을 이루겠다고 했잖아!”

    레나는 천천히 이쪽을 돌아봤다.

    내 꿈은.”

    한 음절, 한 음절을 씹어 뱉듯 말했다.

    이미 이루어졌어.”

    다시 고개를 돌린다. 간신히 다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지.”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스미스는 뒤따라가려고 했지만, 중간에 레나가 이쪽을 쳐다보고 따라오지 말라며 소리쳤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또 이런 식이다.

    소중한 사람을 도와주지도 못하고 상처만 더해버린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심리학까지 공부했지만 전혀 소용없다. 어쩌면 이건, 천성이라는 것일까. 노력으로 어떻게 해결될 수 없는 저주받은 천성 말이다.

    스미스는 레나가 앉았던 의자로 옮겨 앉았다. 손에 차가운 맥주 병이 닿는다. 그는 병에 남은 것을 쭉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갔다. 레나가 걸어간 길을 따라 갔다.

     

    스미스는 레나 로빈슨의 기숙사 방문 앞에 섰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 멈칫한다. 너무 빨리 누르면 그녀를 뒤쫓아 왔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았다. 잠깐의 갈등이 지나갔다. 그는 문을 두들겼다.

    나야, 레나.” 대답은 없었다. 스미스는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려다 말았다. 그녀가 잠자고 있다면 이러는 게 상당히 민폐이겠지.

    그 때였다. 현관문이 조금 움직였다. 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다만 반대편에서 뭔가가 문에 기대는 것처럼 덜컹, 하고 조금 흔들렸다. 바람일 수도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조금 건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미스는 레나가 문에 기대어 서서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고 확신했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듣기만이라도 해줘.”

    그가 말했다. 좋아, 이제 그 다음은? 그 다음에는 뭐라고 해야 하지? 그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기로 했다.

    네가 슬픈 걸 알아.”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계속 말했다.

    , 그런 경험은 없어서 네가 얼마나 슬픈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친구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나도 괴로워.”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야. 스미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겠어. 이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릴 거야. 그는 문에 기대고 섰다.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 앉은 자세가 된다. 고개를 뒤로 젖혀 딱딱한 철판에 닿는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그녀에게 가까워진다.

    레나.”

    너마저 잃을 수는 없어.

    슬퍼해도 좋아. 눈물을 흘려도 괜찮아. 내가 위로해줄게. 외롭고 쓸쓸하면 내가 옆에 서 있을 거야. 지치고 힘들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내가 힘이 되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날 떠나지 말아줘. 부탁이야.”

    꼴사납다. 뭔가가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기분 나쁜 느낌이 든다. 눈시울에 물이 고인다. 고개를 떨구면 금방이라도 흘릴 것 같아서, 일부러 고개를 쳐든다. 스미스는 울먹이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곁에 있어줘.”

    감정을 죽이려 노력한다.

    계속.”

    실패.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낸다. 계집애처럼 질질 짜면서, 코를 훌쩍이면서, 뭐 하는 걸까, 나는.

    자물쇠 열리는 소리.

    “…레나?”

    스미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소매로 얼굴을 닦고 조심스럽게 문 손잡이를 돌린다. 문이 열린다.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레나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 옆에 가 선다. 함께 밖의 풍경을 내다본다. 어둠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화초. 잎새가 무성한 가로수. 드문드문 불이 켜진 건물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하현달.

    누군가 찾아와주길 바랬어.”

    레나가 말한다.

    내가 힘든 걸 알고, 날 걱정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이 날 찾아와 준다면,”

    그녀는 스미스를 쳐다봤다.

    그건 무척 기쁠 거라고, 생각했어.”

    눈꺼풀이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한 눈물이 쏟아진다. 그녀의 뺨에 한 방울 눈물이 스쳐 지나가며 긴 선을 그린다. 손가락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낸다.

    나 지금정말 기뻐.”

     

     

    그는 눈을 떴다.

    눈을 감았다. 혹시라도 꿈을 이어서 꾸게 될까 해서.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함께 놀러 간 놀이공원의 풍경도, 같이 사진을 찍었던 사진부스 안의 광경도. 가볍게 쥔 손의 감촉과 바람에 날려 뺨을 간질이는 그녀의 머리카락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그토록 생생했는데.

    지금 보이는 것은 햇빛이 비쳐 빨갛게 반짝이는 빛뿐. 잠시 그렇게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또 내일은 어떻게 지낼까. 별다른 계획은 없다.

    선반에서 찾아낸 시리얼을 대충 아침을 때웠다. 우유는 다 상해버려서 쓸 수 없었다. 입맛 없는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시각은 오전 9. 그는 막연하게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만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립대학 서쪽 방면으로 향하는 파란색 버스를 탔다. 승객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대학생들이었다. 뒤에 있는 빈 좌석에 가서 앉는다. 앞자리에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앉아 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여덟 정거장을 가서 내린다. 길을 따라 걷는다. 카페와 사진관, 교회 앞을 지나다 꽃집에서 잠시 멈춰 선다. 구경한다.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한 가득 놓여있다. 생김새는 각각 달랐지만, 하나같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는 것은 동일. 그는 처음 보는 꽃 가운데 모양이 바르고 싱싱한 것을 골라 한 다발 엮어달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꽃다발을 가져온다. 값을 치렀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기에 잠시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걸음을 빨리 하여 그녀가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몇 개월만인가. 그는 잘 다듬어진 잔디를 밟으며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예상외로,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정말 길게만 느껴진 시간이었다. 그는 왼손에 쥔 꽃다발을 고쳐 잡았다. 그녀를 위한 선물은 그가 보기에도 훌륭했다. 싱싱한 꽃잎과 잎사귀. 탄력 있는 꽃대. 색 배치도 마음에 든다. 붉은 색과 연보라 색. 그녀가 좋아하는 게 무슨 꽃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이라도 받아주길 바란다.

    그녀의 이름을 찾기 위해 오래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에게 가는 길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그리고, 앞으로 6개를 지나면.

     

    레나 N. 로빈슨.

     

    조그마한 대리석 묘비. 음각으로 새겨진 그리운 이름, 레나.

    안녕, 오랜만이네.

    꽃다발을 묘비 발치에 내려놓는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이어진다. 죽은 여자는 대답을 할 수 없다. 대답이 들리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다. 미치광이처럼 묘비를 앞에 두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도, 아무 소용없다.

    하지만 그는 계속 말을 걸었다. 회색 돌조각이 레나 로빈슨이라도 된다는 듯 그 옆에 기대어 앉았다. 입을 열어 최근 있었던 일을 말한다. 연구소에 취직한 이야기,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동료들은 어떤지

    마침내 그가 입을 다물게 되었을 때, 보안부장과 399번 문제를 해결하러 지하 6층에 내려가는 부분까지 털어놓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곳의 시간은 저기 흐르는 구름만큼이나 느리다. 그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입을 열었다.

    있지, 나 사람을 죽였어.”

    로빈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계속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몇 명이고 얼마든지 죽여버려서, 세는 것조차 포기해버렸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보여지는 듯 했다. 칼에 난도질 당한 보안요원들,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즉사한 병사들과 응급처치가 서툴러서 그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죽은 사람들. 그 외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살해한 수많은 민간인들. 모두 그의 잘못이었다.

    나보다 힘센 사람도.”

    수많은 보안요원과 군인들.

    나보다 똑똑한 이들도.”

    200명 가까운 연구원들.

    나보다 정의로운 이도.”

    포머스 박사.

    희생시켰어. 내가 살기 위해서.”

    다 털어놓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견딜 수 없이 무겁다. 그는 끝내 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악당이 되어 버린 걸까.”

    그녀의 대답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었다.

    공동묘지에서 빠져 나왔다.

     

     

     

    2026.

    5 15.

     

    오후 5. 수업이 끝났다. 곧장 집으로 향한다. 머리 속으로는 오늘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 지 생각한다. 그는 오늘 레나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음식재료를 손질한다. 오늘의 주요리는 펜네 파스타. 스미스가 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요리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대형마트에서 사온 소스에 양파를 썰어 넣어 볶고, 양송이버섯과 올리브를 좀 넣는다. 케첩과 꿀로 간을 맞추고 한 번 끓어오를 때까지 중불로 가열한다.

    간을 본다. 먹을 만 하지만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은 기분. 스미스는 이 요리법을 옆에서 눈으로 배웠다. 그래서일까, 원본과는 조금 다른 맛이 났다. 마치 가장 중요한 재료를 빠뜨린 것처럼 허전한 느낌이다. 어머니가 만든 방법 그대로 했을 텐데, 뭐가 잘못일까? 언젠가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기회는 없었다.

    음식을 준비했다. 오븐에 넣고 굽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조리한다. 샐러드도, 드레싱만 뿌리면 된다. 과일은 그냥 내버려 둔다. 준비하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을 테니.

    저녁 때까지 시간이 좀 남는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책이나 한 권 읽기로 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오디오를 켠다. Mp3에 저장된 음악 하나가 무작위로 흘러나온다. 시간이 흘렀다. 창 밖은 어둡다. 지평선에는 태양이 남긴 울긋불긋한 낙조가 펼쳐져 있다.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어 평소보다 더 붉고 어둡다.

    문자가 온 시간은 저녁 6시 반. 어디로 갈까? 레나가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스미스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 때 만약 이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따위의 생각은 부질없는 것임을 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생각을 하고 만다.

     

    레나 로빈슨은 남에게 빛을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스미스는 그녀를 배려한답시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술을 사오는 걸 깜빡 했어. 오면서 사올래? 집에는 아직 코르크 마개도 뽑지 않은 와인이 두 병이나 있었다.

    1년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낸 레나는 주변 지리에 서툴렀다. 근처에 주점이 어디 있는지 묻는 그녀에게 스마트폰의 지도가 얼마나 쓸모 있는 어플인지 설명했다. 최근 본 사건사고 뉴스에 대한 생각이 들었을 때는 시간이 좀 지난 다음. 그녀에게 다시 문자를 보낸다. 같이 가줄까? 레나의 대답은 일단 가고 있으니까 중간에 만나. 만나서 같이 움직이자고 고집을 부려야 했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 가자고 했어야 했나?

    파스타를 오븐에 넣고 온도설정을 하느라 귀중한 1분을 낭비한다. 지갑을 찾는데 20초 정도 소모한다. 외투를 걸치는데 또 그 정도의 시간을 날린다. 현관문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가, 오디오와 전등을 끄고 나갈까 생각하는 시간이 10초 정도. 그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놓쳐 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2. 차라리 계단으로 갔으면 몇 초를 벌었을 것이다. 평생을 후회할 몇 초를.

    길거리로 나와 주점으로 향하다가 잠시 멈춰 선다. 문자를 보내 그녀의 위치를 확인. 평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딴 지역. 대학로 근처 유흥가. 왜 하필 거기였을까?

    앞으로 걸어간다. 한참을 걸어 어두컴컴한 골목가에 들어선다. 외투에 두 손을 푹 쑤셔 넣은 채로 꺼진 가로등 아래를 지난다. 골목은 생각보다 훨씬 더러웠다. 가로등 주위에 토사물이 보이고, 길바닥에는 과자 봉지나 휴지 따위가 굴러다닌다. 하수구 주위에는 구정물 자국이 시커멓게 나 있었다. 가로등은 두 개 당 하나 꼴로 꺼져 있다. 여기로 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레나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내 든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 저 멀리 어떤 사람이 눈에 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외투를 걸치고 있다. 그쪽으로 다가간다. 그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 레나 로빈슨.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걷고 있다. 그쪽으로 다가간다.

    그녀가 스미스 앞 30미터 정도에서 가로등 꺼진 구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골목에서 누군가 튀어나온다. 짙은 색 야구모자와 긴 팔 후드티를 입은 건장한 남자였다. 레나의 팔을 잡아채고 목에 칼을 들이민다. 칼날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기껏해야 손바닥 길이의 칼날이다.

    스미스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이봐, ! 그 노상강도는 고함을 듣고 이쪽을 쳐다본다. 놈은 그 때 도망가야 했다. 레나를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레나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도망치려는 강도의 팔을 놔주지 않는다. 어째서였을까? 놈을 잡아야 한다는 의협심이었을까? 강도가 칼을 든 손으로 그녀의 복부를 힘껏 가격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레나는 배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옆으로 쓰러졌다. 비명을 들은 기억은 없다.

    레나에게 달려간다. 범인이 도망치고 있었지만 놈을 따라갈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그녀는 몸을 둥글게 웅크려 쓰러져 있다. 팔짱 끼듯 배를 감싼 두 팔이 점점 물들어간다.

    레나?

    휴대폰을 든다. 911을 부른다.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를 몰라서 시간을 낭비한다. 그 동안 레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가 몸을 덜덜 떠는 것이 느껴진다.

    상처를 누르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손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부분을 꾸욱 누른다. 처음으로 신음소리를 듣는다. 손바닥에는 기분 나쁘게 축축한 느낌. 피가 계속 나온다. 이렇게 많은 피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어디를 다쳤어요? 구급차가 오는 동안 스미스는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911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배꼽 위? 아니면 아래? 위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죠? 오른쪽인가요? 세상에.

    레나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흐느꼈다. 아프다고 말한다. 출혈이 심해지자 춥다고 매달렸다. 제발 도와줘, 아파, 추워, , 제발.

    젠장, 핸드폰을 내버리고 그녀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압박붕대를 쓰겠다고 말한다. 손을 때자마자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대원이 재빨리 붕대를 감았다. 스미스는 그가 조그맣게 내뱉는 걸 들었다. 맙소사. 간에 맞았잖아.

    병원까지 구급차를 타고 같이 움직였다. 구급대원들이 수혈을 하고 상처를 막으려고 애쓰는 동안 스미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레나의 손을 꽉 붙잡았다. 원래 하얗던 그녀의 손가락이 정말 석고상처럼 창백하고 딱딱하게 되어 있다. 손등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들이 뛰쳐나와 상황을 묻는다. 바퀴 달린 침대에 그녀를 태워 밀고 간다. 스미스는 그들의 뒤에서 몇 걸음 떨어져 쫓아갔지만, 수술실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양쪽으로 열리는 문 위에 붉은 색 조명이 밝혀진다. 수술중.

    그는 문 앞을 서성이다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머릿속은 완전히 꼬여버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손가락 끝이 찐득거린다. 손을 내려다보니 피가 잔뜩 엉겨 붙어 있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바닥재가 이루는 무늬를 쳐다본다.

     

    2026

    5 15.

    레나 로빈슨이 죽었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었다. 목격자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게 친구라면 더더욱. 하지만 멍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경찰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그 사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목격자는 그 사건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경찰이 스미스를 찾아왔다.

    목격자가 되어 주십쇼,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보호해 줄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별 말 없이 경찰에 동행했다. 언젠가 한 번쯤은 경찰서에 들르게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인 줄은 몰랐지.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까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스미스를 계속 범인으로 의심하던 담당 형사가 집까지 태워다 줬다. 스미스가 차에서 내릴 때, 그가 말한다.

    범인은 우리가 잡을 테니까, 푹 쉬쇼.”

    먼동이 트고 있었다. 스미스는 자신의 집으로 올라갔다. 창문 앞에 섰다. 투명도 100%. 날이 밝아오면서 함께 깨어나는 도시를 내려다봤다.

    , 레나 로빈슨이 죽었다. 그리고 세상은 이렇게나 변했다.

    사람들은 자기 갈 길을 간다. 길거리에 있는 상점들이 하나 둘 셔터를 연다. 무인차량이 길거리를 지나간다. 창문을 조금 열어보면, 상쾌한 새벽 공기가 스멀스멀 들어온다. 가로수에 둥지를 튼 새들의 지저귐 또한 빠지지 않는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눈에 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에게 달려가서 소리치고 싶었다. 레나 로빈슨이 죽었어! 그들에게 지금 겪고 있는 감정의 반이라도, 반의 반이라도 느끼게 하고 싶다. 그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지는 꼴을 보고 싶다.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불편한 분위기로 빠뜨리고 싶다. 그런 식으로 하루 종일 여기저기 쏘다녀서 사람들의 마음 속을 그늘지게 만들까? 그들이 레나에 대해서 한 번 이라도 생각하고 한 번이라도 슬퍼하게 만들까? 그렇게 하면 지금 이 기분이 풀릴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한다. 그녀를 꼭 끌어안으면 좋겠다. 힘들지? 나도 알아. 그 말이 듣고 싶었다. 그 품에 안겨 소리까지 내면서 펑펑 울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오븐 안에 파스타가 있었다. 너무 오래 놔둬서 위로 기름이 배어 나와 있다. 차갑고 축축한 파스타를 몇 번 뒤집었다. 치즈가 뚝뚝 끊어지고 면은 불어터졌다. 물기가 빠져 시들해진 샐러드에 드레싱을 끼얹었다. 접시에 음식을 덜어 자리에 앉는다. 반대편 자리는 비어 있지만 그래도 접시를 채워놓는다. 식어버린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삼킨다. 자기 몫을 다 먹고도 어딘가 허전해서, 앞자리에 놓은 것까지 가져다 먹었다. 입가에 묻은 소스를 손등으로 슥 문질러 닦는다.

    침대에 퍼질러 눕는다.

    잠이 들지 않는다.

     

    장례식에 참가했다. 조문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스미스는 그 많지 않은 조문객의 틈바구니에 숨어들었다. 레나 로빈슨의 부모님이 근처에 있었다. 차마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가톨릭 목사가 장례미사를 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천주교 신부인지도 모르겠다. 미사 자체는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었다. 목사는 말하는 내내 낡고 두꺼운 성경책을 가슴팍에 안고 있었다. 뭐라고 했더라?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던가? 스미스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단 한 구절이었다.

    “…모두가 주님의 뜻이옵나이다.”

    목사가 말했다.

    “아멘.”

    사람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모든 게 주님의 뜻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주님이 살인자에게 계시를 주었나? 그녀를 죽이라고? 놈이 휘두른 칼이 급소를 맞추도록 조작했나? 레나를 죽일 수 있도록? 숙명은 그녀의 죽음을 원했나? 레나 로빈슨은 그 역겨운 골목길에서 그렇게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나?

    목사의 그 한 마디는, 그 짧은 한 마디는, 살인자가 그녀를 살해할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것도 주님의 이름으로.

    헛소리. 개 같은 소리, 엉터리!

    마음 같아서는 목사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장례식의 엄숙한 분위기가 침묵을 강요했고, 레나의 마지막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에 수긍했다.

    하관식이 시작되었다.

    스미스는 그녀의 관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관이 끝나고 레나의 아버지가 삽을 쥐었다. 옷소매가 드러난 밑으로 보이는 것은 플라스틱과 세라믹. 의수였다. 조금 더 다가가서 보았다. 양쪽 팔 모두가 그랬다. 문득 레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풀리지 않아도 상관없을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하늘이 우중충하다 싶더니, 소나기가 내린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빨리 자리에서 떠났다. 스미스는 그들이 다 떠날 때까지 나무 그늘 아래에 숨어 있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옷을 적시고 안으로 스며든다. 외투가 푹 젖고 나서야 그녀의 부모님이 떠났다.

    구름이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했다. 무덤 앞으로 걸어갔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방금 흙을 덮고 임시로 부직포를 덮어놓은 묘 앞에 섰다.

     

    이 밑에 레나가 누워 있다.

     

    스미스는 잠시 그렇게 서있었다. 이제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온통 어둡고 칙칙한 감정밖에 안 느껴진다. 무엇이듯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려 부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들었다.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공기에 입김이 서린다.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 사라져.”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해왔다. 이제서야 겨우 결론을 내린다.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진 않아. 빼앗긴 만큼 빼앗을 거야.”

    그녀가 무슨 대답을 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만약 대답을 한다 한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묻혀버릴 것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널 죽인 놈에게 대신 복수해줄게. 놈을 죽여버리겠어. 철저하게 짓밟고 부수고 박살내버리면 좋겠지.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기분이 나아질 거야. 내 장담하지.”

    뒤돌아 섰다.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갑자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서 돌아보면 레나가 서 있을 것 같다. 그는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갔다가, 그 자리에 섰다. 뺨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이 세상이 정말 싫어. 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레나. 네가 그리워…”

     

     

    놈이 누군지 알아냈다. 윌터 블랙. 그가 레나를 죽였다.

    거주지는 1500 컬틴스트리트, 2층짜리 단독주택. 2미터짜리 나무 담장으로 이웃집과 분리되어 있다. CCTV는 길가 모퉁이에 하나. 집 뒤편에 하나. 집 뒤에 있는 것은 가짜다.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무선으로 작동되는 기종 역시 아니다. 적외선 방범장치 또한 없다.

    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름을 아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펜실베니아 주에서 위법으로 분류되는 방법으로 사건 당일의 CCTV영상을 확보했다. 얼굴이 나온 장면을 찾았다. 감시카메라 성능이 괜찮았다는 건 일종의 행운이겠지. 에릭 렌츠가 레나의 친구였고, 그녀가 서로를 소개시켜준 것도 축복이다. 그 동안 쌓인 불운이 일부나마 행운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에릭은 CCTV사진을 한 번 보자마자 놈의 이름을 알아맞혔다. 혹시 의심이라도 받을까 놈의 집 주소를 묻지는 않았다. 이름만 알고 있으면 주소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놈의 주소지는 인터넷 범죄알림 서비스를 통해 알았다. 전과가 있는 새끼라서 찾기가 더 쉬웠다. 직접 근처에 방문해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보안장치도 없고 집 자체가 낡았다. 무슨 배짱인지, 창문 몇 개는 열어놓고 방충만만 닫아 놓은 것도 있었다. 어디로 접근할 것인지도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놈의 집 뒤에는 조그마한 숲이 있었다. 몇 십 년 자란 굵은 참나무 줄기가 그의 몸을 충분히 숨겨 준다.

    스미스는 다른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관심을 끊었다. 오직 한가지 목적을 추구했다. 윌터 블랙을 죽인다. 이것이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목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라디오를 샀다. 그걸 분해해서 축전기를 대용량으로 바꾸었다. 공진회로를 충전회로로 바꾸었다. 전자게이트를 부착시키고 거기에 시한장치를 해놓았다. 아크방전은 안테나와 안테나 고정쇠 사이에서 일어난다. 300마이크로패럿짜리 축전기는 방전하는 순간 눈 앞이 환해질 정도로 밝은 스파크를 튀긴다.

    놈은 가정용 연료로 LPG가스를 쓰고 있었다. 밸브는 녹슬었고 안전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폭발 사고는 언젠가 한 번쯤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자연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2026.

    5 17.

     

     

    오후 7.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름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수채화물감이 물을 타고 번지듯. 레나가 보았다면 좋아했을 법한 모양으로.

    스미스는 자신의 원룸 책상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이번 일에 쓸 장비들이 너절하게 널려 있다. 개조된 라디오, 수제 격발기, 그리고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 발치에는 당장 입을 옷을 포함한 생필품이 담긴 여행용 캐리어가 있다.

    그는 격발기를 만지작거렸다. 철컥, 덮개가 열린다. 딸깍, 단추를 누른다. 다시 덮개를 덮은 뒤, 반복.

    모든 일에는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진다. 종단속도를 넘긴 발사체는 지구의 품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 발화점을 넘겨 불타버린 종이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죽여 살인자와 일반인의 선을 넘어버린 이는 다시 일반인이 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1급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급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는 사형이, 기껏해야 무기징역이 선고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 막 선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법이 지키려 하는 무고한 시민과 법이 처벌하려 하는 악랄한 범죄자 사이에 있는 얇은 선을.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다. 단지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쓰기만 하면 된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방향을 놓칠 게 뻔하다. 머지않아 앞으로 나아갈 힘도 잃을 것이다. 거미줄에 엉킨 나방처럼,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풀리지 않는 실마리를 끊어내려고 하겠지.

    그렇기에, 스미스는 그 질문을 머릿속에 숨겨두었다. 지금은 오직 한 가지만 기억하는 거다.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윌터 블랙을 죽인다는, 그 한 가지만 기억하는 거다.

    그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5월이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잎새가 무성해진 나무가 바람결을 따라 움직이며 흡사 파도소리 같은 상쾌한 소리를 낸다.

    이곳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북쪽으로 약 10km정도 떨어진 곳이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가정주택들이 도로를 따라 모여있는 전형적인 홈타운이다. 목표는 이곳에 있었다. 그는 보도를 따라 컬틴가 1500번지로 향했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 모두가 잠들어 있다. 간혹 깨어 있는 눈들도 있지만 이쪽을 주의깊게 살필 사람은 없다. 건너편 보도를 따라 한 쌍의 연인이 걸어오고 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시선을 돌린다.

    하늘은 이미 명도 짙은 군청색이지만, 한 켠은 약간이나마 밝다.

    풀벌레 우는 소리 만연한 평온한 밤이다. 오늘 펜실베니아에서는 아직 어떤 화재사고도 없었다. 가정용LPG가스가 도관에서 새어 나와 폭발한 일도 없었다. 그로 인해 죽은 사람도 물론 없다. 아직까지는.

    목표물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간다. 모퉁이를 돌아 집 뒤쪽으로 향한다. 울타리 근처에 있는 둔덕을 밟고 위쪽을 살폈다. 조명은 모두 꺼져 있다. 놈이 안에 있을까? 그는 울타리를 넘었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손에는 조그만 거울을 들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창문 근처를 지날 때마다 그 거울로 건너편을 확인했다.

    라디오를 거실 주방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발 아래에서 계단이 삐걱, 삐걱,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침실 입구에 섰다. 문을 열어볼까? 금방 들킬 것이지만, 여차하면 주머니에 든 전기충격기를 사용할 것이다. 기절한 놈은 불길을 피해 도망치지 않으니 일이 더 쉽게 풀리겠지. 그는 전기충격기를 꺼내 들었다.

    문을 열었다.

    침대에 놈이 누워 있었다. 윌터 C. 블랙. 그는 놈의 얼굴을 확인한 다음, 얼빠진 얼굴로 자고 있는 놈의 얼굴을 향해 전기충격기를 조준했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결국 그만두고 만다.

    문을 닫고 거실로 내려왔다. 빌어먹을 가스 밸브를 찾아낸다. 가스밸브에는 안전장치가 달려 있다. 안전장치 아래쪽에 흠집을 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는 주머니칼로 안전장치 위쪽을 흠집 냈다. 여러 번, 독한 냄새가 나는 LPG가 그의 얼굴에 정통으로 뿜어져 나올 때까지. 푸화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관이 터져나갔다. LPG가스가 맹렬하게 새어 나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나가기 전에 라디오 전원을 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스가 집안에 골고루 퍼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는 참나무 숲 뒤에서 대기했다. 오른손에는 격발기가 쥐어져 있다. 시험용 단추를 누른다. 정상작동을 뜻하는 초록색 LED가 들어왔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을 정리한다.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목표물 2층 침실 불이 켜졌다. 어쩌면 가스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결정할 때. 그는 격발기를 들어올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추를 눌렀다.

    폭발음과 동시에 주변이 샛노란 오렌지 빛으로 밝아진다. 폭발압력이 달려든다. 공기 자체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 하고, 압력이 등에 기댄 나무줄기를 통해 전해진다.

    귀가 먹먹하다. 잠깐 동안이지만 고막이 터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핀다. 나무 잔해가 여기까지 날아들었다.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나무조각이, 깨진 유리 조각이 그가 숨긴 나무 줄기에 사정없이 들이 박혀 있었다. 그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충격을 빠르게 극복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상처를 입지는 않았나 확인한다. 멀쩡하다.

    돌아선다. 그리고 앞으로.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불타오르는 화염의 따가운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끝났어, 모두 끝났어.

    불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외선이 망자의 핏발선 눈초리처럼 목덜미를 찌른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고막을 자극한다. 하지만 돌아서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파괴현장을 뒤로하고 그는 걸었다. 일을 마칠 때까지 감춰두었던 질문들이 끝내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저 집에 있던 사람이 윌터 블랙이 맞을까?

    윌터 블랙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확실할까?

    범죄자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그는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질문들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생각이란 것의 매커니즘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끝내 최후의 질문을 하고 만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마지막 비수, 그 어느 것보다 더 예리하고 깊게 파고드는.

    그녀는 이런 결말을 원했을까?






     

    새벽 3.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올랐다.

     

    2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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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팔찌 어떻게 쓰는 거죠? [1] NATO 14/10/22 19:04 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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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신청했던 강의 사라짐ㅋㅋㅋ [1] Campo 14/09/15 11:17 1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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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배경만 그리면 끝이다! Campo 14/08/09 17:58 7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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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하나 그리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줄은 몰랐죠 [2] Campo 14/08/09 11:21 1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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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게 소설제] 참가하실 분? [11] Campo 14/07/31 18:13 6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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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를 여자답게 그리는 법을 알려주세요 [8] Campo 14/07/23 18:39 17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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