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이 지나감을 느낄수 있다. 우리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지금쯤이면 아마도 그때 이후로 1시간쯤 지난것 같다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래도 대략 얼추 비슷하게는 맞출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대략 추측할수가 있는 것일까? 뇌에 시계같은 것이라도 있는 것인가? 사실 뇌에는 생체주기를 조절하는 시계같은것이 있기는 하다. 중뇌에 있는 몇몇 신경핵들은 주로 빛에 의해 통제되며 뇌와 생체의 일(日)주기 리듬같은 것을 조절한다. 이 리듬 때문에 우리는 적당한 때 잠이오고, 적당한 때 배가 고프고, 적당한 때 호르몬이 분비가 되며, 체온도 조절이 된다. 그러나 이 주기는 오차가 크고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시각의 상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같은)에 관한 것이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는지 같은 시간의 흐름, 즉 상대적인 시간을 알게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듯 하다. 뇌가 상대적인 시간을 파악하는 방법은 절대적인 시간을 파악하는 것과는 별개인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절대적인 시각 파악하는데는 조광이나 온도나 배고픔 정도 같은 외부감각정보로 부터의 실마리가 필요하겠지만 상대적인 시간은 그런것 없이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적인 시간을 추정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소모적인 방법은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일일이 1초씩 마음속으로 그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론 정확하지도 않고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1초라는 것이 어느정도의 시간 흐름인지에 대한 직관이 있다. 우리가 이런 1초씩의 시간 흐름에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주의를 준다면 아마도 주의를 준 이례로 부터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를 대략 직접적으로 파악할수가 있게 된다. 물론, 이런 미시적인 시간흐름 인지에 대한 접근 방법은 그 직관적 1초의 시간 양이 실제의 1초의 양과 대략 같고, 그 직관적 양을 안정적으로 유지할수 있고, 그런 1초씩 더하는 과정에 대한 주의까지 놓지않아 시간 덧셈에서의 착오가 없어야 하겠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비교적 정확한 또는 전혀 엉뚱하지는 않은 시간이 흐른 정도에 대한 결론을 내릴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알다시피 우리가 보통 이런식으로 시간흐름을 인지하지는 않는다는것이다. 우리가 시간유추를 이방식대로만 해야 한다면, 또는 하고 있다면 우리는 잡다한 다른 일들에 거의 집중은 커녕 주의조차도 주기 힘들것이고 힘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는 그런식으로 단조롭고 소모적인 주의를 전혀 주지 않더라도 시간 지남을 대략적으로 맞출줄 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우리가 1초씩의 시간흐름에 주의집중하지 않고도 시간의 흐름을 추측할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지난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유추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즉, 살아오면서 우리는 수많은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그런 (때론 반복적인)일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일을 하는동안에의 시간 지남에 대한 정보도 같이 기억하게 되며 이런 복합정보들이 축적된다면,우리는 이제 어떤일을 이만큼 했을때 대략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는 대략적인 직관이 생길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떤 일을 어느만큼 했을때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을 알고 싶다면, 그런 오랜시간동안에 축적된 암묵적인 데이터 베이스로 부터 이런 종류의 일을 이만큼 했을때의 시간 지남 정도를 대략 유추해 볼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시간흐름 인지는 앞서의 직접주의적 시간흐름 인지에 비해 훨씬 거시적으로 작동하는듯 하기 때문에 서로 별개인것 처럼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지날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것 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이 경험기억으로 부터의 시간유추 방법을 이용해,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종류의 경험기회나 새로운 종류의 지식의 증가가 어릴때에 비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는데, 시간흐름에 대한 직관의 잣대는주로 어릴때의 것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으로 설명할수 있을듯 하다. 예를들어 어릴때는 1년이면 대략 10정도의 경험이나 지식체계의 변화가 있었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서 1년이면 경험이나 지식체계의 변화가 5정도도 일어나기 힘들다고 한다면, 그리고 경험적 시계의 잣대를 어릴때의 것으로 한다면 우리는 경험적 시계는 아직 10의 반인 5만큼 정도만 찬 것이고, 그래서 지난 시간이 1년이 아닌 6개월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이가 들었어도 지난 1년동안에 결혼을 한다거나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거나, 자녀가 생긴다거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거나 같은 또다시 일시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한다거나 지식체계가 10정도만큼 바뀐다면 우리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는 시간이 참 안가는데 1주일은 참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당신의 하루하루가 특별히 새로움 없이 지나가고 있다면 순순순간은 따분해서 잘 안지나가겠지만 그런 1주일은 경험하고 배운것이 다른 지난 1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나간 것으로 느껴지는듯 하다.
그러나 아쉽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직접주의적 시계와 경험적인 시계만으로 우리의 시간 지남에 대한 유추능력을 모두 설명할수는 없다. 예컨데 바로 좀전에도 언급하였지만 새로움이 없는 따분한 시간의 경우 그 순간 자체는 보통의 시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르는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반면, 뭔가에 아주 열중하고 있으면 그 순간 자체는 보통의 시간들에 비해 조금 지나간 것으로 추측을 하고 따라서 실제의 지나간 시간과 비교했을때 빨리 지나간 것으로 느낀다. 이것은 직접주의적인 시계나 경험적인 시계방법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럴까? 확실히 이것은 경험적인 시계와는 별개처럼 보인다. 경험적인 시계는 사실상 모든 순간순간의 흐름에 대한 예측 수준이 거의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작동하고 있으며,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이런 순간순간의 시간흐름의 편차에 대한 경험에 대한 기억조차도 쌓이게 되면, 이제 경험적 시계는 그런 순간순간의 시간흐름의 편차까지 고려하고 반영해서 (예컨데 이런 일을 할때는 평소때 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더라, 저런일을 할때는 평소때 보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더라 같은) 시간흐름의 유추 결과를 내릴수 있게 되기는 할테지만 말이다. 요지는 이런 순간순간의 시간 지나감에 대한 인지기전은 앞서말한 경험과 기억의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시간흐름을 추측하는 경험적 시계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런 순간시간흐름 시계로 부터 실제로 예측되는 시간흐름 정도는 경험적 시계로 부터 예측되는 시간흐름 정도와 반대로 작동하는것 처럼도 보인다. 즉, 일반적으로 뭔가 집중할때 우리는 시간이 평소때 보다 지금 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것 처럼 느껴지 것이 사실인데, 경험적 시계의 설명대로라면 많은 경험과 지식변화가 있었던 집중하는 시간이 다른 때 보다 상대적으로 더 천천히 지나간것 처럼 느럼 느껴져야 한다.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것처럼 느껴진다 = 시간이 실제보다 덜 지나갔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 예측시계가 실제시계보다 더 천천히 작동하였다)
(시간이 더 천천히 지나간것처럼 느껴진다 = 시간이 실제보다 더 지나갔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 예측시계가 실제시계보다 더 빨리 작동하였다)
결론적으로 뇌가 상대적 시간을 인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철저히 개인적 사변적으로 생각했을때, 뇌에는 시간흐름을 인지하는 세개의 별개의 시계 있는듯 하며 그것은 직접주의적 시계와 경험적인 시계와 방금전에 언급한 순간시간흐름 시계이다. 순간시간흐름 시계는 다른 2개의 시계와 차별화 시킬수 있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시계가 잠재적으로 항상 작동하고 있는듯 하다는 것이다. 직접주의적 시계는 당연히 직접적인 주의를 했을때만 작동되는 시계일 것이고, 경험적인 시계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알고 싶을때 (직접 간접적인 주의를 통해)작동시키는 시계인 반면, 이 마지막 순간시간흐름 시계의 경우 그것이 있음을 인식하는 때는 문득 얼마나의 실제 시간이 흘렀음을 알게 된 후다. 즉, 뭔가의 다른일을 하고 있다가 문득 시각을 알게 된후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러니까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일을 얼마나 했고 이것의 양을 지난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서 시간을 계산하는 과정없이) , 시간이 이정도 흘렀네, 이것밖에 안흘렀네, 이만큼이나 흘렀네 라고 판단한다.이것은우리는 실제로 지나간 시간과 비교할 자체적인 지나간 정도에 대한 시계가 있고 그것은 인위적으로 작동시키려 하지 않아도 잠재적으로 항상 작동함을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순간흐름 시계와 같은 것이다. 이런 순간흐름 시계의 잠재적인 작동은 어쩌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형성되는 에피소드 기억과 관련되는 등, 뇌에서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인지도 모르겠다.
내친김에 이런 확실하지도 않은 순간흐름 시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정말 뇌에 시계같은 것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뇌는 신경세포들의 연결들로 이뤄졌고 이런 신경세포간에 발화정보가 전달되고 교환되고 흐르면서 작동하는데, 때로는 이것이 회로를 이루기도 한다. 회로에서는 기본적으로 신호가 회전하며 이것이 때로는 빨리 돌기도 하고 천천히 돌수도 있다. 그리고 뇌에 형성되어 있을 다양한 신경회로들 중에 특히 뇌시간 회로같은 것을 가정해 볼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뇌시간 회로에서 신경정보가 몇바퀴를 돌면 1분이 되거나 1시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회전 주기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면 우리의 순간흐름 시계가 흘러가는 속도도 달라질수 있을 것이라고 순전히 사변적으로 생각해볼수 있다.
그럼 어떤때 회로가 빨리 돌아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것으로 추측하게 하여 실제로 시간이 천천히 지나간것 처럼 느끼게 되고, 또 어떤때 회로가 천천히 돌아서 시간이 천천히 지나간것으로 추측하게 하여 실제로 시간이 빨리 지나간것 처럼 느끼게 될까? 우선 쉽게 생각할수 있는것은 시간흐름에 대한 기대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순간, 시간이 특별히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거나 특별히 천천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기대나 희망이 있으면 이것이 뇌시간 회로의 정보회전 주기를 빠르게 한다거나 느리게 한다거나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주기가 평상시와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제 시간과 인지 시간에도 차이를 보이게 될것이다. 보통 시간이 촉박한 사안이라면 당연히 집중해야 할것이고, 동시에 촉박한 시간은 조금이라도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시간흐름에 대한 기대설명이 맞다면 그런 희망이 뇌시간회로의 회전 주기를 늦추게 되고 시간이 느리게 지나간 것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스마트폰 없이 지하철 탈때 처럼, 어떤 집중할 대상이 없고 집중하기 여의치 않은 어정쩡한 상황은 행동편향적인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는 곤욕스러운 시간이며 이런 시간은 보통 가능한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희망은, 마찬가지로, 뇌시간회로의 회전주기를 빠르게 하며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고 설명할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흐름 희망이 뇌시계 회로의 회전주기를 조절한다는 설명으로는 모든 순간시간흐름 시계의 현상을 설명할수는 없고 때로는 이것은 전혀 틀린 설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집중하는 시간이 빨리, 그리고 빈둥거리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것 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시간흐름 희망설명과는 전혀 별개인지도 모르겠다. 시간흐름 희망과는 별개로 뇌시간회로를 작동시키는 다른 가설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뇌기능 자원 분배설명이다. 말했듯이 우리의 순간시간흐 름 시계는 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 또는 잠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에너지는 소모될 것이다. 뇌에 공급되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고, 에너지는 크게 서로 별개인 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곳과 잠재적으로 작동하는 곳에 사용되고 있다면, 그리고 뇌시계회로는 잠재적 활동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뇌 시계회로는 공급되는 에너지 정도에 의해 회전주기가 결정된다고 한다면, 이 뇌시계회로는 뇌에서 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때, 그래서 상대적으로 잠재적인 뇌작동에 공급되는 에너지를 적을때 천천히 돌게 되고 시간은 평소때 보다 덜 지나간것으로 추측하게 될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시간 가는지도 몰랐던 것이라 할수 있다. 반대로 의식적으로 작동하는데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어, 평소때 보다 뇌에서 에너지가 남아돌게 되면, 에너지 과공급을 받은 뇌시계회로는 평소때보다 빨리 돌게되고 시간은 더 많이 지나간것으로 추측하게 될것이다. 그리하여 주의집중상태에서는 평소때 보다 시간이 덜 지나간것으로 추측하게 되어, 실제보다 더 빨리 지나간것 처럼 느끼게 하고, 할일없이 빈둥거리는 상태에서는 평소때 보다 시간이 더 지나간것으로 추측하게 되어, 실제보다 더 천천히 지나간것 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뇌시계회로의 작동을 이런 시간흐름 희망으로 설명하는 것과, 뇌기능 자원 분배로 설명하는 것중 어느것이 더 옳은것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둘다 집중하는 시간은 빨리, 그리고 빈둥거리는 시간은 천천히 지나가는것 처럼 느껴지게끔 유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 한가지 생각해 볼수 있는 방법은 집중하는, 그리고 동시에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들어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암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반적인 집중,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그러나 비교 실험으로, 멈추라고 할때까지 암산을 계속하라는 상황이라면 집중이지만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시간이 될것이다. 왜냐하면 암산 그 자체는 유쾌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같은 종류의 일을 시키고 서로간에 예측되는 시간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둘간에 차이가 없으면 시간흐름희망 설명은 기각이 되어 시간흐름희망설명보다는 뇌기능 자원 분배 설명이 좀더 적합한 것이 될것이고, 반대로 둘간에 큰 차이가 있으면 뇌기능자원분배 설명이 기각이 될것이다. 경험적으로 보았을때 둘간에 차이가 별로 없으며 따라서 시간흐름 희망은 뇌 시계회로의 회전주기에 전혀 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나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그래서 시간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는 때는, 분명 뇌에서는 의식적인 작용이 별로 없음에도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흐름 희망도 분명 뇌시계회로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듯 하다. 덧붙인다면, 이런 시간흐름희망 설명은 뇌시계회로에 한정해서만 작동하는것만은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군대있으면 시간이 엄청 안지나가고 휴가나오면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가는데, 또는 오랫동안 숨참기 하는 동안에는 1분 1초의 시간이 엄청 안지나가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시간은 엄청 빨리지나가는데 이런 종류의 거시적 또는 미시적인 시간 흐름상에 인지적 착오를 앞서의 뇌시계회로와 직접 연계시켜서 설명하려는 것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철저히 개인적이고 사변적인 생각이고, 잡다한 확실하지도 않은 가정들이 난무하고, 또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단일 원리로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지금까지 주장했던 것들을 다시 정리하면, 뇌가 상대적 시간을 인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했을때, 뇌에는 시간흐름을 인지하는 세개의 별개의 시계 있는듯 하며, 그것은 직접주의적 시계와 경험적인 시계와 순간시간흐름 시계이다. 그리고 순간시간흐름 시계는 뇌에서 있을법한 뇌시간회로의 회전주기에 의해 무의식 잠재적으로 작동하며, 그 회전주기는 주로 의식적인의 주의집중정도에 의해 결정이 되는듯 하다. 또한 시간흐름의 희망도 앞서 3가지 종류의 시계에 모두 영향을 줌으로써 시간인지에 영향을 미치는듯 하다.
이렇게 까지 관대하고 조잡한 방식으로 내린 결론으로 조차도 시간인지와 관련된 모든 의문을 해결하지는 못하였고 몇가지 더 해결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는 꿈꾸는 동안에 시간흐름인식이다. 어쩌면 꿈은 아주 잠깐만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꿈에서 한시간이 사실은 1분만에 이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이런 생각은 본인만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듯 하다. 또하나는 위협적인 사고상황에서의 시간흐름인식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교통사고 같은 위협적인 안전사고를 경험한 (그리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일어난 그 수초간에 시간이 극단적으로 느리게 지나가는것 처럼 느껴진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짧은 순간동안에 수많은 감각이 지나가고 온갖 엄청난 양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들은 어떻게 설명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