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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hil_10040
    작성자 : aiidyn
    추천 : 0
    조회수 : 521
    IP : 211.253.***.19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4/10/24 11:18:00
    http://todayhumor.com/?phil_10040 모바일
    인간: 상상할줄 아는 동물
    5. 인간: 상상할줄 아는 동물
     
    많이 특별한 동물
    이번 장은 동물이 진화하다가 상상능력이 생기면서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된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그것은 예상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다. 알다시피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좀 많이 특별하다. 같은 생물임에도 동물이 식물과 분명히 다르듯이, 같은 동물임에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분명히 다르다. 진화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결국 동물의 하나의 발전형태 임에 분명한데 분명 많이 다르다. 사실 인간의 외관을 다른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는 그냥 조금 다른 수준이겠지만, 행동하는 수준을 보면 누가봐도 다르다. 지구에 해놓은 또는 저질러 놓은 것으로 볼 때, 다른 동물들이 한 일의 수준은 인간이 한 일의 수준에 정말이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동물이 하는데 인간이 못하는 것도 없지는 않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더 많은 지구적인 일을 할 수가 있는데 자제하고 있는 모양새다. 엔트로피 극대화 가설상, 생명생성의 원동력을 엔트로피 생성력이라 한다면, 인간의 엔트로피 생성력 수준은 나머지 다른 생물들의 수준을 완전히 초월했다 할수 있다.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다른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정교한 행동과 자취를 남길수 있게 되었을까? 동물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지능이 놀랄 만큼 좋아져서 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닌듯 하다. 단지 지능이 아주 좋아져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듯 하다. 이 이야기를 하기전에 지능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앞서 2장에서 정의한 것처럼 이 지능을 설명 및 예측능력이라고 했을때, 지능이 높다는 것은 좀더 멀리 있는 것을 좀더 빠르게, 좀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도 크고, 지능 역시 다른 동물들보다 일반적으로 좋다 할수 있으며,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좀더 멀리 있는 것을 좀더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할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놀랄만큼의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 크기 역시도 침팬지 같은 다른 영장류나 그리고 유인원에 비해 많이 잡아도 3배 정도이며, 코끼리 보다는 심지어 작다 (물론 특히 전두엽이 많이 크기는 하다). 만약 행동의 정교함이나 능력이 기존의 지능에 대한 단순 비교에 의해서만 결정이 된다면, 그리고 지능이 주로 뇌세포의 개수 또는 뇌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라면, 행동하는 또는 해놓은 일들로 보건데,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의 뇌보다 터무니 없이 커야 할 것 같다. 물론 정교함은 지능에 단순 정비례하지 않고 어떤 경계치를 계기로 지능이 비약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동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정교하고 다양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행동이나 업적상 이렇게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현격히 특별해 질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일반적인 기존의 지능들에서 현격히 높아져서라기 보다는,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의, 기존의 동물들에게는 없었던 종류의 지적 능력이 생겨서인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지능 중에는 행동과 업적을 정교하고 웅장하게 만들게끔 하는 것과 직결되는 종류의 것이 있고, 그 능력에 있어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의 다른 동물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인간의 행동과 업적은 설명이 될수 있을 듯 하다.  
     
    인간만의 지적 능력, 상상 능력
      그럼 그 능력은 무었인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행동과 업적을 정교하게 발전시킬수 있게끔 하는 그 특별한 지적능력은 무었인가? 그것은 바로 앞장에서 소개한 외부자극과 독립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생성시킬수 있는 능력이나 생성시키려는 의지’, 즉 상상능력이라 할수 있다. 상상능력이야 말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 인간만이 특출나게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지능이 되겠다. (이런것은 정교한 소통을 통해서나 증명될수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다른 동물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상상능력 정도를 확인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이것은 그냥 개인적인 직관에 따른 판단임을 밝힌다. 자의식을 자기내면의 상태를 관찰하는 능력정도로 해석한다면 자의식은 분명, 여기서의 상상능력정도의 척도가 될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의 자의식은 자기얼굴 거울반응 검사를 통과하면 인정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되는 자의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의식을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자기 이름을 부르면 반응할수 있는 수준의 능력 정도인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침팬지나 우랑우탄이 거울반응검사를 통과하는데 개가 그것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능력이 아닌, 거울반사상황에 대한 이해능력이 떨어져서인 것은 아닐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상상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내부 시물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고, 추상화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창조라고 할수 있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의 문자도 결국 상상능력을 통해서 만들어 진 것이라 할수 있다. 언어를 넓게 해석한다면, 또는 도구를 넓게 해석한다면 언어를 쓰는 동물이 있을 수 있고, 도구를 쓰는 동물 또한 있을 수 있지만, 문자는 분명 다르다. 아무리 문자를 넓게 해석해도 문자를 쓰는 동물은 인간말고는 세상에는 없는듯 하다. 문자는 분명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상상능력의 결정체이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데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서의 이 문자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좀더 자세히 다룬다.
     
    인간의 상상능력과 초월목적
    인간에게의 상상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파생된, 변형된 능력은 인간의 정교화 능력을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현격히 발달시켰고, 행동이나 지구를 무질서하게 한 업적면에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구분되게 하였다. 이럿듯 상상능력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 시켰는데, 나아가 상상능력은 생물차원에서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차별화시켰다. 그것은 바로 목적에 대한 것이다. 상상능력은 인간이기 앞서 생명체인 인간을 생명의 숙명적 목적으로부터 초월하게끔 하였다.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목적, , 생존과 번식이라는 존속에 대한 목적은 생명에게의 본질적이고 숙명적인 것이다. 모든 생명에게 이것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고 자기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숙명적인 것으로 그 목적을 수행해왔고 지금까지 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생명체 자신들은 내면적으로 자신들의 그런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할수 있게 만든 인간에게의 상상능력은, 인간이라는 생물에게 그런 숙명적인 목적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자체적인 자발적인 스스로의 목적을 가지게 하였다. , 모든 다른 동물, 생물들의 삶과 행동이 숙명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기 위한 방향만으로 흘러갔다면, 인간만이 상상능력을 통해서 스스로의 목적은 내면화시켜 인식할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인간의 삶만은 본질적으로 생존과 번식만을 추구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목적을 기준으로 보았을때 인간과 다른 생물간에 이런 차이는, 물질과 생명을 구분짓는 차이만큼이나 혁신적이고 대단한 것이라 할수 있다.
    분명 인간은 다른 생물들처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생존과 번식만으로향하게 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같이 스스로가 가지는 목적을 생존과 번식이라고만 한다면, 인간은 여타 다른 번성하는 생물에 비해 우월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컨대 자동차의 목적을 안전하고 편안하고 빠른 우송이라 하였을 때 자동차의 우월성을 안전, 편안, 속도로 판단하듯이 생물도 목적에 충실한 정도로 우월성을 따진다고 한다면, 인간이 바퀴벌레 같은 다른 번성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생존과 번식에 능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행동이나 생각이 조금 많이 정교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스스로를 특별히 우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려는 것은 직관적으로 마음속에서 동의가 되지 않는듯 하며, 오히려 그것에는 어떤 오만한 겸손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가 우월한 존재라는 잠정적인 인식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적이 (여느 생명들처럼)단지 생존과 번식만은 아니라는 잠재적 인식이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인간 내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출산을 많이 하거나 자손이 많거나 또는 고령자를 우리는 특별히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본받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보다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거나 놀라운 업적을 보인 사람을 우월하게 생각하고 본받으려고 한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의 목적을 생존과 번식만으로 생각하지는 않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나아가 생물들에 비해 본질적인 우월한 점은 인간이 존속이라는 생명의 숙명적인 목적을 초월하여, 다른 스스로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이다. 심지어 때로는 그런 스스로의 목적이 숙명적인 목적을 압도하여 생존과 번식을 포기하고서라도 그 자기만의 자발적인 목적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다른 생명들과는 완전히 차별화 되는 특성인 것이다.
    정리하면 상상능력을 통해 인간은 외부독립적인 스스로의 능동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이를 통해서 다른 동물들이 따라올수 없는 수준의 정교하고 복잡한 행동능력(엔트로피 생성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생존과 번식 이외의 스스로의 추구하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상, 추상화가 가능했던 인간은 동물의 굴레를 떠나서 생명의 숙명까지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만의 목적
    여타의 다른 생명들이 절대 안정적인 생존과 존속을 추구한다면, 그리고 반면 인간은 그런 생명의 숙명적 목적을 초월했다고 한다면, 인간이 스스로 추구하는 것은 그럼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그 인간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충만하고 완전한 관념을 확립하여 절대 안정적인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다. 무슨 황당한 선문답처럼 들릴것으로 예상되는 이 말과 그나마 가장 비슷한 일상화 된 표현은 아마도 유희의 인간’(, 인간은 즐길줄 아는 동물,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물)이 아닌가 한다. 언어의 인간, 도구의 인간, 유추의 인간, 직립의 인간, 손을 사용하는 인간.. 등 수많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 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표현들 중에서도, 유희의 인간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차별화 되는 인간을 차별화 하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인간만의 특출한 능력과 관련된 것이라면, 유희의 인간은 인간만의 초월한 목적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희의 인간관점에서 본 인간에게는 먹고 살고, 번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즐기는 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 자체 보다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단지 각자에 즐거움의 대상과 그 정도가 같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는 수십억의 인간이 있고 따라서 실로 수십억 개의 자신을 즐겁게 하는 자체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는 진리를 추구하고, 어떤 이는 돈을 벌고, 어떤 이는 여행을 다니고, 어떤이는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먹고 살기가 바쁘다. 그러나 이것 추구하는 것들 모두는 그 본질을 따진다면 결국 하나의 종류로 수렴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생존과 번식이 아니라 최대관념’(또는 관념 최대화’)이다. , 인간은 최대한 좋고 많은 정보와 환경으로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추구하고 즐기고, 느끼면서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생각과 감정과 지식을 경험하여 마음을 채우는 것을 추구한다. 만약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이 결국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으로 수렴된다면, 진리를 추구하고 음악에서 즐거움을 찾고, 위험한 도전을 하는 것과 같이 존속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헛짓거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이런것들에게서부터 가치를 찾을줄 알며, 인간만이 살아가면서 생존과 번식이 아닌, 최대관념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온갖 행동을 하고 노력을 한다. 오래살려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자녀를 가지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결국은 최대관념을 충족시키려는 행동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명예를 쫒는 것도 진리를 추구하는 것, 남에게 헌신하는 것 모두 역시 모두 최대관념을 추구하는 것으로 본질은 수렴한다. 왜 그런지는 다음 장과 다음,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자세하게 언급을 하고자 한다.
     
    최대관념추구: 최대한 좋고 많은 정보와 환경으로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추구하고 즐기고 느끼면서,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생각과 감정과 지식을 경험하여 마음을 채우는 것을 추구
     
    삶의 본질을 찾아서
    최대관념충족이라는, 인간의 목적에 대한 이런 혼자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기까지 본인에게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본인 역시 라는 존재가 왜 태어나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알면 좋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잘못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의지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내가 결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 난해하고 심지어 그런 것이 있기나 한지도 의심스러워서, 그것을 알려고 하다가는 있지도 않는 답을 찾느라 헤맬까도 불안하다. 그리하여 삶은 이뤄야 할 어떤 목적이 있는 의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요행히 떨어진 기회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굳이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이 기회를 충실히 누리는 것이리라.. 이런 태어난 이유만큼이나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것도 사실 흥미롭고 좋은 주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삶에 이유만큼이나 불확실하고 난해해서 (그것이 있다면)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는 걸로 하고 생각을 접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왜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몰라도(말했지만 그런 것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알아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렇게 분명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냥 근원도 모르는 어떤 오랜 타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으며,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정의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간 누구나 결국은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용감하게도 그런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 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아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목적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살면서 행동하고 있고,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삶이라는 기회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인간이니까 만약 인간에게 보편적인 동일한 목적이 있다면 나의 목적이 인간의 보편적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인간에게 보편적인 공통된 목적 따윈 본디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목적을 찾는 것 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나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부터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명쾌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답답하고 초조하고 암담한 마음에 지금까지 사유한 관념들로부터라도 어떤 목적에 대한 임시가설 같은 것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나온 삶의 목적에 대한 임시 가설은 즐거움이었다. 말 그대로 즐거움. , 내가 결국 추구하는 것은 나 자신이 삶이 즐거움으로 충만해 지는 것이엇다. 결국은 다 충만하게 즐겁기 위해서 놀고 참고 일하고 떳떳 하려고도 한다는 것이다. 임시가설이었지만 그것은 제법 단순하면서도 괜찮았다. (이런 쾌락주의 또는 개인주의적인 생각은 이기주의적인 생각과는 다르다. 자신의 양심이 진실로 떳떳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을수 있고 자신이 사회의 이로움에 기여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을수 있다.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다. 비양심적인 자가 개인주의를 추구하면 이기주의자가 될 듯 하다.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자를 이기주의자로 이해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는 양심을 지키는 것 같은것에서 오는 즐거움이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임시가설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었다. 만약 임시가설대로 충만한 즐거움.. 즐거움만을 말한다면 마약 같은 것에 중독된 사람도 참 즐거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목적에 충실한 삶이 된다. 만약 충분히 즐거운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라면 그리고 만약 돈 걱정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부자가 마약에 중독되어 즐거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그 또한 내가 추구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또는 누군가에게 뇌의 쾌락 중추를 찾아 거기에 전극을 삽입하여 그냥 계속 거기만 자극하게 하는 것도 내가 추구하는 목적을 아주 충족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한 내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이런 모순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가설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삶의 목적을 충만한 즐거움에서 궁극의 즐거움으로 생각해 보았다. 궁극의 즐거움..이 말은 즐거움에도 단계나 수준이 있음을 가정한다. 그리고 이런 형태로 가설을 수정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즐거움에 단계나 수준을 '임의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임의로 정한 즐거움 단계의 기준은 그것과 관련된 뇌 영역의 크기와 위치와 안정성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관련된 뇌 영역이 넓고 고위영역인 행동이나 상태일수록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하여 마약 같은 것에 의한 즐거움은 불안정적이고 낮은 수준의 즐거움으로, 그리고 자연이나 마음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 또는 어떤 평안함 같은 것에서 오는 즐거움은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 된다. 왜냐하면 아마도 깨달음이나 어떤 평안함에서 오는 즐거움은 전기자극이나 마약 같은 것으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며(없기를 바라며) 뇌의 많은 부분이 작용해야지 누릴 수 있는 복합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했지만 이것은 나의 아쉬운 상황에서 나온 내 임의의 기준이며 이것은 이 가설이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불완전성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마약으로 대단한 즐거움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그 즐거움은 낮은 수준의 것이기 때문에 결코 높은 또는 궁극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가 없으며 이것은 나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어떤 이치들을 깨닫기 위해 나는 생각하고 공부하고 느끼고 경험해 오고 있다고 생각하려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세가지 맹점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즐거움의 수준에 대한 정의가 타당한지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 궁극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해결된다 해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는다. 만약 가정이 맞아서 궁극적 즐거움 같은 것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그것을 위해 인내하고 매진하여 결국 거기에 도달한 삶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삶은 아마도 충실할 것이고 순간 순간이 크고 작은 즐거움으로 채워져 있을 듯 하다. 그러나 나는 내 일생에서 즐거움 이외의 감정, 예를 들어 노여워하거나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는 등의 다른 감정들을 재대로 겪어보거나 이해하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설사 그것이 즐거웠다 할지라도 죽을 때쯤에 온통 비슷한 색깔의 기억과 감정들로 나의 삶을 회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생각하게 된 잠정적인 나의 삶의 목적에 대한 결론은 가능한 다양한 색깔의 기억과 관념과 감정들로 삶을 풍성하게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무슨 대단한 일을 계획하거나 시도할 생각은 없다. 어떤 대단한 시도를 통해 아주 귀하고 값진 경험이나 감정에 대한 기억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 더 많은 다른, 경우에 따라서는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감정이나 경험의 기회를 놓치고 포기해야 하는 수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전이 진행됨에 따라 초심을 잃어 버리고 행동이 도전 자체를 위하는 형태의 헛되고 공허한 맹목적성으로 빠지는 것을 통제할 자신도 나는 없다. 그냥 단지 주위의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현실에 충실 하는 것 만으로도 그것들을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나 자신과 내 주위를 항상 새로운 감성으로 세심하게 살펴볼 것이며, 순간순간 그대로의 감각, 감정, 기억, 관념에 충실히 반응, 교감하고자 할 것 같다. 그리하여 스스로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고작 이것이 내 삶의 목적이고 본질이며 의미인 듯 하며 오랜 생각 끝에 나온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결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론
    위의 삶의 본질에 대한 개인적인 결론은 사실 수 천년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유사한 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란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삶의 궁극목적"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궁극목적을 찾기 위해 이것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로, 궁극목적은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의 '궁극성' (어떤 것의 수단적인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것)둘째로, 다른 것을 더 보탤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의 '완전성'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성질을 갖춘 것이 곧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쾌락'은 노예나 짐승의 목적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의 목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명예, 셋째는 덕, 넷째는 재산, 다섯째는 선 등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찰을 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활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하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이요, 그것은 인간의 기능을 잘 발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기능은 이성과 사유이므로 사유를 통해서 관조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요, 그것이 삶의 궁극목적이며, 따라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었다. (참조: 영화로 읽는 서양 철학사- 이창후)
     
    최대관념추구
    최대한 많은 관념을 소화해야 하는 입장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긍적적인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가능한 많은 경험과 생각과 감정으로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말로 하면 뇌를 스스로 가능한 많이 활동하게끔 하는것이다. , 인간은 최대관념을 추구하고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이용하고 누려서 뇌가 최대한 많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누구나 압박이나 불안감을 느끼거나 귀찮은 일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 압박은 뇌를 좀더 많이 활동하고 싶은데 그러에 방해를 받고 있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있을때 느끼는 감정이고, 불안감은 지금의 상태나 행동이 장기적으로 뇌의 풍성한 활동성을 막는 것이 아닐가 하는 예측에서 나오는 감정이며, 귀찮음은 뇌에게 좀더 많이 활동시킬 기회를 포기 하고, 별 볼일 없는 정도의 뇌를 활동시키는 일에 자신의 아까운 주의력을 소모 해야 하는, 그래서 최대관념 추구상 차라리 안하는게 나은 일을 해야 할 때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실로 인생의 지향하는 상태를 목적으로 간주한다면, 인생의 목적은 뇌를 스스로 가능한 많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뇌를 스스로 가능한 많이 활동하게 하게끔 하는 행동이나 상태는 합목적성 행동이나 상태이고, 반대로 자신의 뇌가 스스로 가능한 많이 활동하게하는 것을 막고 있는 행동이나 상태는 반목적성 행동이나 상태다. 최대관념은 이런 합목적성 행동을 추구하고, 반목적성 행동을 회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충족될수 있다.
     
    합목적성 행동을 위한 조건
    자신의 삶을 합목적성 행동을 추구하고, 반목적성 행동을 회피하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합목정성 행동이고 무엇이 반목적성 행동인지부터 파악해야 할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3가지 꼭 인식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자신이 최대관념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과, 둘째, 자신의 내적 상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외적 상태이다. 반대로 이 3가지 중에 하나 이상을 모르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반목적성, 오지향성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다음, 8장에서 언급할 인간의 반목적성, 오지향성 행동들은 모두 그 원인이 이 3가지 중에 포함될 듯 하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게 무엇이 합목정성 행동이고 무엇이 반목적성 행동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1.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그리고 행동해야하는 방향이 결국은 관념을최대한 충만하게 하는 것임을, 이것이 삶의 본질이고 모든 행동에 대한 판단과 결정의 기준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 다음에 2. 자기의 내적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또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최대관념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 역시 모두 다르다. 그래서 모두에게 통하는 합목적성 행동도 없고, 모두에게 반하는 반목적성 행동 역시도 없으며, 자신에게만의 합목적성 행동과 반목적성 행동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기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자신이 뭘 원하고, 뭘 좋아하고, 뭘 할수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모험적이고,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무엇이 충족되었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것과 함께 자신에게 무엇이 합목정성 행동이고 무엇이 반목적성 행동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3. 자기 주변의 상태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목적달성을 위한 어떤 판단에 대한 예측력을 높인다. 자기가 뭘 했을 때 관념이 최대로 충만해 질것인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했을 때 그것이 실제의 예측대로 이뤄질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외적 상태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것에서 얼마나 얻을수 있고, 그럴 가능성은 어느정도인지, 그것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힘이 들고, 희생을 해야 하는지, 그것에서 얼마나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위험성은 어느정도인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외부상태에 대한 파악이 된다면, 변수들이 최대한 통제될수 있으며,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 어느정도 예측할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관념을 위한 최선의 합목적성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되는 것은 아는지, 더 좋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불안한 마음없이 현재에 집중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힘을 실을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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