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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26984
    작성자 : 연작
    추천 : 5
    조회수 : 1334
    IP : 222.235.***.189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07/02/01 09:29:45
    http://todayhumor.com/?sisa_26984 모바일
    김일성 본명은 김성주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자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까지를 부정하면 곤란합니다. 7418523님이 일본 극우세력을 욕하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 일본 극우를 욕하면서 그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는 건 곤란하죠. 7418523님이 퍼 오신 글(아래 요약)을 보면 정현백 교수님은 두 명의 김일성, 즉 金一成 장군과 金日成 장군이 실존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전자인 金一成 장군이 김경천 장군입니다. 정현백 교수는 金日成 장군에 대한 부정을 하고 있지는 않네요. 또한 박환 수원대 교수님 글은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문맥상 의미를 많이 빠뜨리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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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920년대 중반 이후 김 장군(김경천 장군)은 종적을 감춘다. 세상 사람들은 이후 항일투쟁의 전설적 영웅으로 김 장군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경지대에서 전개되는 국내 진공작전은 김 장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양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해방 이후 김일성 장군론과 연결되게 된다. 김경천 장군이 진짜 항일영웅 김일성이란 것이다. 
    이후 1990년 한ㆍ러 수교 이후 김경천 장군에 대한 많은 사료들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딸과 모스크바 근교에 살고 있는 아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김경천은 김일성과 별개의 인물이란 점이 확연히 밝혀지게 되었다. 한국서 오랫동안 김일성 장군으로 알려졌던 김경천 장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 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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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김일성 장군 유족에 건국훈장 수여
    (옥포誌 2000년 1월호)
    정 현 백 

    이러한 전설이 생겨날 만한 사실상의 근거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金一成 장군'이란 항일투사와 또 한 사람, 같은 발음의 '金日成 장군'이라는 항일투사 두 사람의 투쟁사에 얽힌 이야기였었다. 
    그 전설적 김일성장군 그 중의 한 사람인 김경천 장군의 혈육이 8•15 50주년을 맞아 지난 98년에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후손 된 우리로서 심히 민망스러워 몸둘 곳을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 8•15 50돌 기념식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독립군 장령 김일성장군(金一成. 1888년 함남태생) 즉 김경천 장군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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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스킬을 연마하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제가 오유 시게에 올릴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글을 올리게 되네요. 스크롤 압뷁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합니다. ===================================================================================================
    김일성의 신원에 대하여

    김일성은 보천보전투 이후 1930년대 말부터 사람들 속에서 은밀히 회자되면서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당시 김일성의 인기는 국경지대 뿐 아니라 전국적인 것이어서 남선의 궁벽한 농촌의 소학교 학생들의 2/3 가량이 김일성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일성을 추적하던 일본제국주의 당국자들조차 김일성에 대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1937년 6월의 보천보사건 무렵 김일성의 신원에 대해 일제가 파악한 정보는 김일성은 농부 출신으로 "농업을 경영하다가 공비의 선전에 의해 비화 (匪化)"된 인물로 가족관계는 "불상(不祥)"이고 나이는 30세라는 것이다. 이 소략한 정보는 김일성의 나이나 경력, 유격대에의 가담경위 등 모든 것이 부정확하다. 이른바 '혜산사건'으로 김일성의 부하들이 숱하게 체포된 이후에도 일제는 김일성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일제당국이 파악한 김일성의 신상에 대한 가장 사실에 근접한 정보는 1939년 9월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발행한 {사상휘보} 20호에 실려 있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본명 김성주 (金成柱), 당년 29세의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출신으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간도방면으로 이주하여 동 지방에서 자라 비단에 투신한 조선인이라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현재 그 실모는 생존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정보 역시 김일성의 출생지와 본명은 정확하나 나머지가 사실과 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김일성은 당시 27세였으며, 그가 어려서 이주한 무송은 간도지방이 아니고 김일성의 어머니는 이미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일성이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라는 잘못된 정보도 역시 일제의 자료에 가끔 등장하고 있다. 만주국군의 기관지인 {철심(鐵心)} 1937년 4월15일자는 김일성이 30세 가량의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의 젊은이이라고 기술한 바 있으며, 조선주둔군의 발표를 인용한 {경성일보} 역시 김일성이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또 이른바 나가시마 공작대의 대장으로 김일성 부대를 전문적으로 추격했던 나가시마 다마지로(長島玉次郞)도 제2방면군장인 김일성은 간도폭동 후 소련으로 도피하여 적군사관학교를 나온 인물로 파악하고 있었다. 김일성의 부하로 6사의 여성중대장을 지낸 박록금도 혜산사건의 조사과정에서 김일성이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함경남도 경찰당국이 작성한 이 사건의 공식보고서에서는 박록금의 이와 같은 진술을 채택하지 않았다. 와다 하루끼에 의하면 "박록금 등이 정말 그렇게 자백하였다면 그것은 유격대 대원에게 사령관의 경력이 신비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경찰 상층부에 의해 배척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짜 김일성"설과 그 생산구조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학문적 평가는 이미 여러 곳에서 이루어진 바 있기 때문에 가짜설이 제시하는 증거의 타당성을 일일이 검토하고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혀 존립 불가능한 가짜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이남 사회를 지배해 왔는가에 있다. 해방 후 이북에 돌아온 김일성이 그 유명한 김일성이 아니라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은 1945년 10월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에 나타난 김일성이 너무나 젊었다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던 것 같다. 극작가 오영진은 이 장면을 극작가다운 드라마틱한 필치로 이렇게 그리고 있다.

    "김일성 장군이 등단하자 군중의 입은 그들 눈앞에 전개되는 의외의 사건에 한결같이 벌어지고 눈은 의심스러이 빛났다. 군중이 기대했던 백발이 성성한 노장군 대신에 확실히 30대로밖에 안보이는 젊은 청년이 원고를 들고 마이크 앞으로 다가선다. 신장은 1미터 66-7 가량, 중육(中肉)의 몸에 짙은 감색 양복이 좀 작아 맞고 얼굴은 볕에 그을러 검었고, 머리는 중국인 요리점의 웨이터처럼 버쩍 치켜 깎고 앞 머리털은 한 치 정도, 흡사히도 라이트급의 권투선수를 방불케 한다.
    가짜다! 넓은 장내에 모인 군중 사이에는 순식간에 불신과 실망과 불만과 분노의 감정이 전류처럼 전파되었다."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조선민중은 물론 일제 당국자들까지 종종 김일성의 신원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에 현혹된 것을 볼 때, 당시 평양공설운동장에 모인 군중들이 김일성의 나이가 이승만이나 김구처럼 70대의 노장군이라고 생각했을 수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와다 하루끼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 김일성과 같은 직급의 유격대 사령관들은 모두 김일성과 비슷한 26-28세의 청년들이었다. 이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의 만주에서 전개되는 "게릴라전의 지휘관은 젊은 체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만주의 항일유격전쟁은 백마를 탄 노장군이 나오는 세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신원 자체가 워낙 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의 귀국 초기에 어느 정도 그의 신원을 둘러싼 혼동이 있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문제는 그의 신원에 관해 금방 풀릴 수 있는 의문이 전혀 풀리지 않고 이남사회를 지배하고, 또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온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데 있다. 

    가짜 김일성설의 출현과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이 설을 주장한 사람들에 대해 살펴 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전설적 명장 김일성은 다른 사람이고, 이북의 김일성은 그의 이름을 빌려 쓴 가짜라는 주장을 편 사람은 1945년에 간행된 {해방전후의 조선진상}이란 책의 공저자인 김종범과 김동운이다.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자 조직인 북풍회(北風會)에 가담했던 김종범은 북풍회 시절의 동지인 김약수(金若水)와 함께 우익 지주들의 조직인 한민당에 가담하여 조직부장인 김약수 밑에서 조직부의 간부로 활동했으며, 김동운은 만주의 봉천(奉天)일본영사관 소속의 고등계 형사였다고 한다. 

    {김일성 위조사}의 저자인 이북(李北)은 일제 시기 도쿄에서 아세아민족연구소라는 친일단체를 운영했으며, 만주제과주식회사의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해방 후 그는 공산주의타도동지회 회장, 반공교육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위에 인용한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의 광경을 묘사한 글을 쓴 오영진은 유명한 극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맹진사댁 경사}는 1970년대-80년대에 해마다 각 방송사에서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면 특집극을 만들어 방영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1985년 남북예술단 교환방문 당시 이남 정부는 이 작품을 이북에 가서 공연하려고 했었는데 원로 연극인들이 원래 이 작품은 일제말기에 일본어로 쓰여져서 '국민문학'의 대표작으로 상을 받은 친일작품으로 이북에 가서 공연할 경우 큰 망신이 아닐 수 없다고 반대하여 무산된 일도 있었다. 오영진은 월남하기 이전 이북에서 민족주의자 조만식(曺晩植)의 비서를 지냈으며, 그가 집필하여 김일성 가짜설을 유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하나의 증언}은 한국전쟁 기간 이남 정부의 공보처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와 같이 김일성이 가짜라는 설을 유포한 사람들은 친일파나 일제의 고등계 형사 출신, 또는 한민당과 같은 우익단체의 간부들로써 분단상황에서 이북의 김일성이 식민지 시기의 말기에 민족적 항일영웅으로 존경을 받은 김일성이라면 지극히 곤란한 위치에 처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이북(李北)이나 오영진의 글은 한국전쟁 시기에 제작, 배포되었다. 

    김일성가짜설과 관련하여 반드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배경은 식민지 시기의 일본군과 해방 이후 한국군 사이의 인적 연속성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군에는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 예로 김석원(金錫源)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인들이 보다 많은 한국인들을 일본군에 지원시키기 위해 조선인 출신의 일본군의 전쟁영웅으로 널리 선전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군 1사단장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나에게 군대를 주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김석원은 잘못된 정보이긴 하지만 보천보전투 이후 만주로 퇴각한 김일성 부대를 추격하다가 간삼봉전투에서 참패한 조선주둔 일본군의 지휘관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아마도 당시 조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군의 김소좌는 김석원이었고, 또 일제가 김석원의 공적을 많이 선전하였기 때문에 대중들이 간삼봉전투를 김일성 대 김석원의 대결로 보았었던 것 같다. 김일성 역시 간삼봉전투에서 자신과 싸운 일본군 지휘관이 김석원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국전쟁 전야에 한국군 1사단장 김석원과 인민군 경비여단을 지휘한 최현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결하게 되었다. 

    또 한국전쟁 당시 한국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白善燁)은 장고봉사건 직후인 1938년 9월에 지린(吉林) 제2군관구 사령부 아래 건립된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 출신이었다.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청년들로 구성된 대 게릴라전 특수부대로서 조선인부대로 하여금 김일성 등이 이끄는 조선인 항일유격대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목표로 설치된 부대였다. 백선엽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대는 뒷날 한국군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김백일, 송석하, 김석범, 임충식, 박창암 등의 훈련장 역할을 하였다고 서술했다.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 배치된 것은 1942년으로 이미 김일성이 소련으로 이동한 뒤였기 때문에 김일성과 백선엽이 직접 싸운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김일성 부대를 치기 위해 일제가 조선청년으로 만든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이 이남 군대의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일성과 싸운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1940년대에 끝맺지 못한 승부의 연장전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한국전쟁의 복잡한 성격을 이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일성이나 빨치산 출신 인민군 지휘관들이 만주군 출신이나 일본군 출신, 심지어 간도특설대 출신이 지휘하는 이남의 군대,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나 평양사단 학병탈출 계획을 일제에 신고한 임영호(林英鎬) 등이 버젓이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이남의 군대를 얼마나 경멸하였을까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북의 지도자들에게 한국전쟁의 성격은 간단했다. 반대로 이남군대의 만주군, 일본군, 간도특설대 출신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일본 천황의 부하로서 맞서 싸웠던 조선 민족의 영웅 김일성과 다시 대결케 된 상황이 마음 편했을 리가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이북의 김일성을 전설적 항일영웅이 아니라 그의 이름과 공적을 훔친 가짜로 모는 선전이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김일성 위조사}의 저자인 이북(李北)에 의하면 당시 "공보처의 발표라든가 <미국의 소리> 방송, 혹은 유.엔의 기상(機上) 삐라 등이 김일성이 위조인 것을 알리려고 무한 애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가짜 김일성 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50년대에 이미 널리 퍼졌지만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전파되었다. 이승만의 경우, 반민특위를 물리적으로 와해시키고 수많은 친일파를 등용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승만 본인을 친일파로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하고 오까모도 미노루(岡本實) 또는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일본이름을 갖고 관동군 중위로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은 박정희로서는 분단상황에서 이북과의 정통성 경쟁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김일성이 박정희보다 다섯 살 위지만 두 사람은 식민지 조선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만주에서의 두 사람의 입장은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사이였다. 한국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항일무장투쟁으로 명성을 얻은 김일성은 국경지대의 주민들로부터 아들을 낳으면 김일성같은 위인이 되라고 빌었다고 할만큼 추앙을 받고 있었다. 반면 박정희는 일본육사를 졸업할 당시 육사교장으로부터 "모든 조선의 젊은이는 오카모도 소위를 본받으라"는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정반대의 입장에서 조선의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분단되었지만 해방된 조선에서 식민지 시기의 말기에 박정희가 보낸 젊은 시절은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1960년대에 나온 박정희의 전기도 이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박정희는 관동군 635부대에 배속되어 "반공일선"에서 활동하면서 공비들과 110여 회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1944년 관동군에 배치된 박정희가 1년여의 기간 동안 공비들과의 전투에 110여 회나 참가하였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투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분단상황 속에서 친일이나 부일(附日)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논리를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친일파나 부일경력자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반공이었다. 해방 후 이남의 친일파들은 민족 대 반민족, 애국 대 매국, 항일 대 친일의 대립구도를 공산주의 대 반공의 구도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분단과 냉전, 그리고 극심한 좌우대립 속에서 이남에서 친일파가 세력을 온존하게 되자, 이제 애국의 기준은 일제와 싸운 과거의 경력이 아니라 공산당을 누가 잘 잡을 수 있나가 되었다. 일제하에서 일본경찰 노릇을 했던 자들이 득실거리는 이남 경찰이 1949년 반민특위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는 "공산당과 싸운 애국지사(=일제하의 고등경찰 출신: 인용자)를 잡아간 반민특위 조사위원은 빨갱이다"라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관동군 장교 시절 "공비"들과 싸운 것은 분명하지만, 이 당시 그는 천황폐하의 부하로서 항일의 길에 나선 중국인과 조선인 공산유격대원을 상대로 싸운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나 그의 전기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천황폐하'의 부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박정희 자신도 남북간의 민족적 정통성 경쟁에서 이같은 논리가 얼마나 궁색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공산주의 대 반공의 논리를 따른다 하더라도 공산유격대의 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일성과 관동군의 이름 없는 하급장교인 박정희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남의 최고지도자의 개인적 경력과도 결부되어 '가짜 김일성 설'은 이남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가짜 김일성 설"의 결정판으로 평가되는 이명영의 저작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무렵이었다. 이명영은 5.16 군사쿠데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 기획관을 지냈는데 이 당시 공보실장은 뒷날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이었다.  

    김일성을 깎아 내리는 작업의 일환으로 김일성의 한국공산주의운동에서의 위치를 평가절하 하는 작업 또한 병행되었다. 이명영은 오늘날 이북이 김일성의 최대의 공적으로 자랑하는 조국광복회의 창설을 주도하고 이 단체를 지도한 것은 김일성(그나마 이북의 김일성이 아니라고 이명영은 주장한다)이 아니라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오성륜(吳成倫)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갑동은 한국공산주의운동의 주류는 외국에서 성장하여 외국공산당에 입당한 김일성이 아니라 국내에서 투쟁한 박헌영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일성 깎아내리기에 동참했다. 남로당 간부 출신인 박갑동의 글은 원래 1973년 2월부터 9월까지 [내가 아는 박헌영]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는데 이 때 {중앙일보}에 박갑동을 연결해 준 사람은 이명영이었다. 이명영의 글 역시 1974년 3월부터 9월까지 [진위(眞僞) 김일성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박갑동의 글이 연재될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이명영의 최고회의 공보실 기획관 시절의 상관인 이후락이었다. 

    이명영의 '가짜 김일성 설'을 보면 이 설이 김일성을 깎아 내림으로써 친일파들에게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명영은 1942년 일본육사 교관으로 한인생도 담당 지도관이었던 기하라(木原義雄)를 인터뷰하였는데 기하라가 한인 생도들의 하숙집 주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한인생도들이 "김일성 장군도 육사에서 닦은 실력으로 항일무장투쟁을 했는데 우리에게도 뒤를 따를 때가 올 것이니 힘써 배워 두자고 서로 다짐하더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명영은 당시 박정희와 그와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이주일 등이 육사에 다니고 있었다고 지적함으로써 마치 이들이 전설적 명장 김일성 장군을 존경하여 그를 따르기 위해 반일의 기회를 노리며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이명영은 이북의 김일성을 가짜라고 비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동북항일연군을 "항일과 공산혁명을 부르짖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업적인 비적떼에 불과"하며 "약탈, 방화, 살인, 납치를 일삼는 공비부대"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명영의 주장은 항일유격대를 "약탈, 방화, 살인, 납치를 일삼는 공비부대라고 매도하던 일제침략자들의 제국주의 역사관과 동일"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주장은 이미 당시의 민중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었다. 김일성의 약탈행위를 강조하는 국내의 신문보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대중들은 "누차 선내를 습격하였어도 조선인 동포의 집은 결코 습격하지 않고, 일본인 가옥 및 시설만 골라서 습격한 것은 실로 훌륭한 행위"라고 믿고 있었다.

    이명영에 따르면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광복을 쟁취코저 했던 우리 겨레의 염원에 대해서 무한한 용기와 기대, 그리고 신념을 솟구쳐 주는 원천이며 그 상징이었다"라고 인정함으로써, 만일 이북의 김일성이 진짜 김일성이라면 그가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말하고 있다. 이북의 김일성이 가짜라는 그의 주장이 여지없이 파탄된 지금, 진짜 김일성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그의 '가짜 김일성 설'은 오히려 이북의 김일성이 당시 대중들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알려주는 하나의 반증자료가 된다. 이북에 돌아 온 김일성이 조선의 독립을 가져다 줄 기대주로 취급받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김일성이 단순히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면 가짜 김일성설이 나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 가짜설은 식민지와 분단의 비극이 응축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가 사망하고 남북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그와 그의 활동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만주항일전쟁을 비롯한 민족독립운동사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를 통해 남북관계의 역사성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시도할 때이다. 과거의 위대함과 정통성이 곧 오늘의 체제적 정당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한순간에 역사는 비약하지 않는다. 역사인식의 발전없는 단순 경제발전은 오랜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김일성가짜설이라는 부끄러운 논쟁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http://blog.naver.com/kma6445?Redirect=Log&logNo=100031026725
    ===================================================================================================
    아...이제 '김일성 추종자'가 되는 건가 -_-;; 
    북한 김일성이 '두 명의 김일성'의 전과를 모아서 전부 자기 것인 양 행세했을 가능성도 있고 많은 포장이 있을 가능성도 많지만, 김일성 아니 김성주의 항일운동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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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길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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