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벌써 중순에 와있다니 세월이 쏜살같이 빠르다는 말이 실감이간다.
박근혜 임기 언제끝나나만 생각해도 아직 1년반이 넘게 남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이명박때 못살겠다 이민가겠다 하던 사람들이 또 남아서
어찌어찌 꾸역꾸역 남아 박근혜 정권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느끼었던 암담함과 절망감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암담함과 절망감의 정체가 변화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군주를 모시고 살아야하는 순간 시민에서 백성으로 전락한
군상들의 답답한 감정이 아닐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화성의 생태를 확인하고
알파고가 평균 인간이상의 바둑실력을 내보이는 시기에
자본주의의 시대의 붕괴가 다가옴과 동시에
팍팍해진 삶에 의해 제국주의로 흐르는 국제정세.
그리고 노동이 가지는 가치의 변화에 대해 이 정부가 그것을 간파해내고
대처해 낼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아닐까 한다.
혹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막연한 어떤 무능력에 대한 감지랄까.
앞으로의 수십년은 정말 다이나믹한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기계는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사물의 인식과 언어에 대한 인식의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낼 것이고 그에 맞추어 더 빠르고 더 가혹하게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노동력에 대한 가치의 판단이 뒤틀리게 됨으로써
노동이 더이상 어떠한 성역에서의 가치가 사라지고
더욱 좁아지는 일자리의 길목을 여럿이서 동시에 통과하려
발버둥치는 일이 될 것임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재까지의 부의 분배방식인 노동이 가지는 가치가 달라질 것임에도
현재 노동을 바라보는 평균적 천박한 가치관에 노동이 더욱 평가절하 되었을때
푼돈에 목숨을 걸고 개처럼 배를 내밀고 눕고 없던 꼬리도 흔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람의 노동력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더라도 그들이 가지는 민의의 힘은 변함이없다.
머저리의 표도 한표가 되고 세상 둘도 없는 천재의 표도 한표가 된다.
그들의 둘곳없는 분노가 남혐 여혐을 부추기고 국가간 인종간 갈등을 부추긴다.
대다수의 열강들은 스스로 만들고 공고히 했던
불완전한 자본주의 체제에 불공정에 대해 분노한다.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충분하지 못한 일자리와 그 임금에 분노한다.
그 둘곳 없는 분노는 어느순간 전쟁으로 치닫는다.
도날드 트럼프같은 인물이 그 대리인이 되어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 후보에 오르는 것은
아베 따위의 인물들이 총리가 되는 것이 단순히 우연에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저 안의 디테일한 변화야 수도 없이 많겠고
금융이니 부동산이니 하는 우리에겐 크지만 더 그림을 크게보면 단면에 불과한 것은 눙치고 보자.
크게보면 결국 근 미래에는 자본주의는 문명의 발달로 인해
변화를 맞이 하던가, 혹은 자본주의의 행태는 유지하여
더욱 우리의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개처럼 부려지던가다.
그와중에 세계는 제국주의 물결로 출렁인다.
핵이 개발되기 이전의 시대만 하더라도 이런 시대의 종말, 혹은
시대의 유지를 위해 전쟁을 하면 되었다.
일본이 한국전쟁이라는 전란이 없었다면 그들의 중장비 군수사업이 남아있었다손 치더라도
어찌 다시 세계2위의 국가라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이후의 전쟁은 반드시 대량 살상무기 내지는
핵전쟁의 시대가 도래될 것이기에 파시즘에 빠져드는 국제정세라 하더라도
쉽게 전쟁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신 금융자본을 통한 식민시에 근접한 국가를 만드는 방식을 더욱 디테일하게
타국가를 옥죄는 방식을 더 가열차게 시작하리라...
노동력의 가치는 아무리 평가절하 되더라도 자본은 그런 것이니까.
이 시점에 대한민국 정치권은 어떠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명텐도나 만들라는 소리를 하거나, 지하경체를 활성화 시킨다는 답변이나
새정치 창조경제같은 답답한 소리가 아닌
국가간의 화합, 노동시장의 유연한 변화유도, 자본의 권력 억제, 기계문명의 발전방향등
어떠한 아젠다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 밑거름을 위한 국정철학과 정치인의 도덕성이다.
도덕성과 철학이 결여된 기계문명의 발달은 노동을 착취하는 천박한 자본의 발달이 될 뿐이고
국가간의 더욱 폭력적인 수탈을 일으키는 정권을 창출되게 하고,
시대의 변화가 아닌 권위의 순응만을 강요한다.
새시대에 새로운 대안이 나와야한다.
아직도 땅을 파는데 환장하고 강바닥에 돈을 퍼붓고는
5천달러짜리 사람목숨을 담보로 용병에 보내고 받은돈의 1/10인 500달러를 내주고는 국가가 할 일은 다했다는
베트남 시절을 생각하고 일자리 없으면 중동에나 보내라는 사고로는 어떠한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새시대를 기다린다.
마냥 암울만 하기엔 너무 빨리 요동치고 있다.
우리의 정치의식도 더 큰 그림에 적응해야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단순 깨끗한 정권을 위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종권에 대한 문제이다.
정치철학과 도덕성을 기초로한 능력있는 차기 정부를 기대한다.
새로운 사람은 기존의 시스템에 불합리성을 타파하고 새로운 룰을 만들기 때문에
인류는 발전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