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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접기
상병때쯤인가,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는 후임의 부탁에 휴가 복귀할때 장미접기를 몇 개 사다줬다.
문제는 이 후임놈은 장미를 접기에는 종이접기에 천부적으로 재능이 모자랐다는 점과 내게 장미접기가 생각보다 재미난 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고장 문의를 받고 처리해주는 우리 처부의 특성상 바쁠때는 창자뽑히게 바쁘지만 문의가 없을 경우에는 근무 시간 내내 허공만 응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학접기의 단조로움에 지친 나와 몇몇은 장미접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우리는 장미를 접고 접고 또 접었다.
손 끝이 빨갛게 물들고 물든 손으로 전화를 받다보니 수화기 마저 붉게 물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접었다.
옆 분대 후임이 휴가를 복귀하면서 사온 노란색 장미접기를 보며 우리는 빛나는 황금빛 자태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또 접었다.
처부 캐비닛은 만개한 장미들로 채워지고 손에 살이 붙어 정작 본인은 장미를 접지 못하는 후임놈은 주기적으로 봉투를 들고 와
장미를 수거해 가 결국엔 여자친구에게 성공적으로 장미 선물을 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엠병.
미니화분
일병때로 기억한다.
항시 나와 죽일듯이 싸우는 동생은 그 당시만 해도 일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나에게 편지를 썼었다. 편지의 내용은 나와 같이
지나친 악필이라 다른 사람들은 알아볼 수도 없고 알아도 별 쓰잘데기 없는 내용이 대다수였지만 핵심은 편지에 동봉된 물건들이었다.
동생은 편지를 쓸 때마다 자신의 책상에 보이는 잡동사니 혹은 다이소에서 구매한 물품들을 봉투에 넣어(이 덕에 봉투는 자체 제작한
기형적인 물건을 썼다.)보내줬는데 그 중에는 크레파스, 당시 내 짬에는 쓸 수도 없던 빗, 포장지는 버리고 압축하여 보낸 보드게임,
심지어는 제모 스트립(.....이건 어떻게 써보려고 해도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까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라벤더 미니화분이었다.
압축된 배양토와 작은 씨앗들이 들어있는 심플한 구성이었는데 동생이 부피를 줄이기 위해 설명서를 제거한 채로 보내서 우리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를 한참 고민했었어야 했다.
압축 배양토를 초콜릿으로 오인해 한입 깨무려던 고참을 저지하며 다시 살펴본 결과 그제서야 이게 식물을 재배해내는 세트라는걸
알아채게 되었다.
과연 이게 자라날까 하는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의 걱정을 뚫고 싹은 자라났다.
성장 환경을 고려해 볕이 잘 드는 창가로 화분을 옮겨 주었고 녀석은 날이 다르게 성장하여 자신이 원래 담겨온 미니 화분에서는
더이상 뿌리를 내리기 힘든 지경에 도달했다.
결국 분갈이를 하기에 이르렀고 선임들이 주먹만한 화분을 구해주고, 옆 산에서 질 좋은 흙을 골라 퍼와주고, 청소시간만 되면
너 화분 물줬냐고 물어봐 주는 덕에 라벤더는 그 자태를 뽐내며 더욱 성장하고 나 또한 고마운 선임들에 대한 존경심이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존경심은 몇일동안 여러 이유로 털리고 갈굼받으며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와 대조적으로 녀석은 더더욱 울창하게 성장했고 창가 근처로 가면 은은한 라벤더 향을 맡을수도 있었다.
땀냄새와 짬냄새 걸레냄새로 얼룩지던 군생활에 한줄기 라벤더 향은 적잖은 활력소가 되어주었으며 심지어는 다음 휴가때는
식물용 영양제를 사서 화분에 꽂아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수 일이 지나고 중대원 모두가 작업에 동원되어 중대를 비웠을 즈음 행보관님이 이놈새끼들 내무실 청소는 잘 하나 하고
내무실 순시를 실행했고 창가에 떡하니 놓여있던 화분은 곧 그의 눈에 들게 되었다.
식물 애호가였던 그의 눈과 코에 라벤더는 깊은 인상을 주어 그 자리에서 징집되었고
우리의 작은 화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행보관실 거대 화분 한켠에 옮겨심어졌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화분이 사라진걸 알고 분노하였으나 행정병을 통해 녀석이 그의 명을 통해 징집됐음을 알고 깊은 절망에
건빵만 씹을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이후로 미니 화분을 몇개 더 받아 길러보았지만 유격 훈련으로 인해 2주동안 내무실을 비운 사이에 기껏 피어난 싹은
마른 콩나물 대가리 두 쪽으로 변해 더 이상 키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초코파이와 초코바
사진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나에게는 장미접기와 미니화분만큼 커다란 추억으로 남아있는 물건이다.
때는 훈련병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몹시도 추운 날씨였지만 나와 동기들은 순조롭게 훈련을 하나 하나 받아나가고 있었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우리에게
일주일에 한번 진행되는 종교행사의 간식은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주차가 진행됨에 따라 나는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야간 행군에 대한 공포심을 늘려가고 있었다.
존나 힘들다는데... 버틸 수 있을까
25kg을 메고 걸어본 적도, 40km를 걸어본 적도 없는데 그 두개를 동시에 할수 있을까
뭐 하여튼 이런 고민들을 하며 나는 야간 행군에 대해 무언가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곧 실행에 옮겼다.
그 대비란 즉슨 간식거리를 비축하여 고단한 행군에 약간이나마 활력소를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2주간의 종교행사를 통해 받은 간식들을 무너져 내리는 욕망을 참고 모아본 결과
초코파이 두개와 초코바 반쪽(맛을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반쪽은 먹어치웠다.)을 비축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야외 숙영일은 이내 다가왔고 나는 방독면 주머니 틈새에 초코파이와 초코바를 꾸겨넣은 채 주간 행군에 임했다.
악몽같은 숙영의 마지막 날 복귀 야간 행군을 앞둔 시기였다.
수통 물도 가득 채우는 등 나름의 준비를 마친 나는 다른 준비보다도 방독면 주머니에 들어있는 주전부리를 떠올리며 미소짓고 있었다.
복귀를 위해 텐트를 철거하는 등의 철수 준비가 거의 끝나 있었고 나는 문득 느껴지는 복부의 싸르르함에 화장실로 향했다.
훈련소. 특히 야외 숙영에서 변비는 누구나 겪는 일인데 난 행군 전에 이 묵은 변을 세상으로 배출시켰다는 거대한 쾌감과 행복감을
품고 다시 집결지로 향했다.
집결지에는 수백개의 방독면 주머니가 쌓여있었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중대장의 명령으로 개인 군장과 방독면을 한 곳에 모아 정리해 둔 것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필사적으로 눈에 보이는 방독면 주머니들을 들춰가며 내 주머니를 찾아보았지만
주기도 되어 있지 않은 삼백개의 방독면 무리에서 내 것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조국을 잃은 열사의 마음으로 행군에 임했고 군생활 가장 힘든 행군을 그렇게 마쳤다.
그 초코파이와 초코바의 맛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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