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유머 - 졸렬한 포니 번역)선셋 리셋 - 제 11장 : 정신없는 날이 끝날 때..

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기뮤식의노예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3-03-27

방문 : 625회

닉네임변경 이력

일반게시판
베스트게시판
베스트오브베스트
댓글목록

회원차단

회원차단해제

게시물ID : pony_91080

작성자 : 기뮤식의노예★

추천 : 3

IP : 121.148.***.8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6/06/29 15:08:20

http://todayhumor.com/?pony_91080

모바일

졸렬한 포니 번역)선셋 리셋 - 제 11장 : 정신없는 날이 끝날 때..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6/1467180386a95350ff33c743779ea2cf68e6936253__mn399065__w686__h752__f64865__Ym201606.png" width="686" height="752" alt="6sk8-1443561745-291812-full.png" style="border:none;" filesize="64865"></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div> <div style="text-align:left;">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64"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서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67"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1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73"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2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77"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3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84"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4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88"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5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91"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6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99"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7장 P</a><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899"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1</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901"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7장 P2</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903"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8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905"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9장</a> <a target="_blank" href="http://kysslave.tistory.com/912" target="_blank" class="tx-link" style="color:#000000;text-decoration:none;border-bottom-width:1px;border-bottom-style:dashed;border-bottom-color:#840000;">제 10장</a> 제 11장 : 정신없는 날이 끝날 때.. 하필 이럴 때 자신의 염동력 실력이 딸리는 걸 한탄하며 캐이댄스는 두 앞발로 샤이닝 아머를 붙잡고 억지로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캐이댄스는 선셋보다는 힘이 한참 달리긴 했으나, 아직 비실비실한 덕후 하나 끌고 갈 힘 정도는 충분히 있었다. 결국 알리콘이라는 건 어스 포니의 완력까지 갖췄다는 이야기이므로.. "샤이니. 빨리 가자. 이러다가 선셋 놓치겠어!" 구경거리가 나서 모여든 복도의 학생들을 재쳐가며 캐이댄스가 소리쳤다. 샤이닝 아머는 필사적으로 몸을 빼려고 했다. 허사였지만. "그..그래도, 그냥 혼자 두는 게 낫지 않을-" "안 돼!" "그-그렇담, 너 혼자 날아가서 잡아놓으면 되지 않을까? 선셋이 그렇게 빨리 걸어간 것도 아니잖아." 샤이닝은 복도의 천장을 올려보았다. 캐이댄스만한 크기의 알리콘이 천장에 부딪히지 않고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복도 천장은 높았다. 또 바보 같은 소리를.. 캐이댄스의 콧등에 분노의 주름이 잔뜩 잡혔다. 다행히 샤이닝 아머는 캐이댄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냥 잡으면 안 돼지! 직접 쫒아가야 된다니까?" 다시 한 번, 샤이닝은 발을 멈췄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잡으러 가는 게 안 된다면... 그럼 왜 쫒아가고 있는 건데?" 정말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를 수가 있지? 캐이댄스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짜증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아윽.. 따라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가 너를 이렇게나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거지 뭐겠어?" 이제 선셋과 남은 거리는 아까의 절반 정도 남았다. 선셋은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갔고, 어째선지 샤이닝 아머의 저항은 더욱 더 완강해졌다. 캐이댄스가 쉽사리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저기, 저, 미안 캐이댄스. 진짜 미안한데, 여자 화장실까지는 정말 못 따라가겠다.." 캐이댄스는 화장실 입구 위쪽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있지... 우리가 하려는 건 그깟 성별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구..." 다시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며 캐이댄스는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나랑 선셋이랑 같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선셋 나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란 말 꼭 해줘야한다? 샤이닝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나서 캐이댄스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행여나 엿들을 수 있는 다른 포니나, 혹은 웅큼하게 엿보는 수말들이 있는지 슬쩍 살펴보고 난 조심스럽게 화장실 안에 있을 선셋에게 말을 걸었다. "선셋. 괜찮아?" 그리고 캐이댄스는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신경 쓰이네 이거. 캐이댄스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캐이댄스는 속은 그만 끓이기로 하고 직접 선셋에게 다가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선셋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물 나오는 수도꼭지를 콸콸 틀어놓고 있는 채로. 약간...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어디에 숨고 싶어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불안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설마 샤이닝 아머랑 같이 들어온 건 아니지?" 목소리엔 힘이 탁 풀려있었다. 캐이댄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걔가 널 많이 걱정하더라. 저.. 아까 식당에서 말인데.. 왜 말하다 말고 도중에 나간 거야?" 선셋은 고개를 거울 쪽으로 돌려버렸다. 표정은 여전히 반색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왜 다른 포니들이 샤이닝 아머가 기절한 나랑 몇 번이나 했다고 오해할 만한 말만 남기고 훌훌 떠나갔냐 이 말이지?" 선셋은 약간 냉랭한 어조로 운을 때며 표정을 약간 찡그렸다. "혹시 모르지..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걸 무의식적으로 말해버린 뒤, 식당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기 전에 자리를 뜬 걸지도.." 그 의미는 말 안 해도 뻔했다. 캐이댄스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어... 음... 이건... 좀 갑작스럽긴 하네.." 좋은 말을 해줘야 하나? 캐이댄스는 필사적으로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해냈다. "아니, 그게 뭐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그... 맞다! 네가 거울 저 편에서 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어..." 털색이 분홍색인 게 다행이었다. 얼굴 가득 차오른 홍조를 가리기엔 제격이었으니까. 물론 캐이댄스는 섹스의 'ㅅ'자만 나와도 얼굴을 붉힐 정도로 보수적인 포니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두 포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라고 생각했으면 생각했었지. 하지만 하필 이 순간에 선셋이 들려준 인간 세상에서 여러 인간 남성(혹은 몇몇 여성까지 포함해서)과 맺은 사랑 없이 원초적인 욕구만 가득한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니... 윽.. 더 이상 그 끔찍한 이야기들에 관해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 1주일에 3번 정도 떡친 거 말아지? 지금?" 캐이댄스가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랑곳 않고, 선셋은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그거랑 이건 다르지! 그땐 그냥 내 지위를 향상시키려고 내 몸을 막 굴린 거뿐이고. 애초에 성욕으로만 따지자면 인간 여성은 굳이 인간 남성 없이도 해소가 가능하다고! 그리고 인간 남자들이 그 때 내가 사까시만 해 준다면 간이든 쓸개든 다 내줄 것처럼 구는데, 그 때 발랑 까진 내가 그걸 안 이용해먹고 배겼겠어? 물론 그 짓을 지금 다시 하라면 죽어도 하기 싫지만!" 선셋의 앞 뒤 안 맞는 아우성이 끝나자, 캐이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삿갓? 인간들은 삿갓 쓰고도 성행위를 해?" 선셋의 눈이 한번 깜빡. 간격을 두고 또 한 번 깜빡거렸다. 곧, 선셋의 뿔이 빛나더니, 반투명한 거품이 둘 모두를 감쌌다. "정확한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엿듣는 포니가 없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선셋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넷이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설명을 한 적 있지? 거기에서는 특정 단어가 파생되고 또 변질되기도 하는데..." 선셋의 설명이 끝나자, 캐이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른 두 나라의 언어가 일정부분 혼합될 수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물론 선셋이 설명한 '헨타이.'나 '재패니즈 어덜트 비디오' 같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십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근데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선셋은 목소리를 약간 고조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샤이닝 아머에겐 절대 그렇게 싼 여자처럼 굴고 싶지 않아. 최소한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게다가 걔 옆에만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십 가지 방법으로 일이 틀어질 것만 같은데, 이걸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뭐가 문제인지 얼핏 알 것 같아, 캐이댄스는 입을 열었다. "걱정도 참.. 아무리 네가 공주고, 또 샤이닝 아머가 귀족 가문이 아니라고 해도, 설마 네가 하는 일인데 참견하는 간 큰 포니들이 있겠어?" 그랬다간 그게 그 포니의 일생일대의 실수가 되겠지.. 하지만 선셋은 캐이댄스를 쏘아보며 코웃음을 흥 하고 뱉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니까! 내 힘이 얼마나 쓸데없이 강해졌는지 알아? 양 발굽으로 말 그대로 지진을 일으킬 정도라니까? 비단 발뿐만이 아니지! 온 몸에 힘이 아주 유례없이 넘치는 지경인데! 만약 샤이닝 아머랑 어떻게 어떻게 잘 돼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고 가정해 봐! 근데 내가 흥분해서 인정사정없이 껴안거나, 혹시... 뒷발로 한 대 차기라도 하면... 그리고 행여나 내가 가버렸을 때 너무 세게 조이는 바람에 걔 음... 거기가 콱 망가지기라도 하면..!" "우와.. 그게 진짜 그렇게 걱정돼나 보구나.." 캐이댄스는 선셋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줄까 고심하며 주섬주섬 말을 받았고, 선셋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그냥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선셋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좀 진정이 된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괜찮아보이지는 않았다. "망할.. 그렇다고 샤이닝 아머랑 거리를 두자니 그러기도 힘드네.. 근 3년 만에 만난 제대로 포니다운 포니인데.. 혹시 이건 그냥 내가 엄청 신선한 성격의 이성을 만나서 그러는 건 아닐까? 잠깐.. 그럼 신선함이 떨어져갈수록 걔한테 질릴 수도 있다는 거잖아! 어쩌지? 걔 같이 순진한 얘는 이렇게 버려지는 데 익숙하지 않을 텐데.." 선셋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이 잠시 멎자, 캐이댄스는 선셋 곁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하게 할 수는 없지! "선셋, 기억나? 어제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잤었잖아. 그렇지?" 선셋이 고개를 끄덕이자 캐이댄스는 말을 이어갔다. "네가 날 좀 꽉 끌어안긴 했지만, 그래서 내가 다쳤어? 아니지? 그러니 괜한 걱정 하지 마. 너랑 샤이닝 아머가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되더라도, 네가 상상했던 것과 같은 그런 일은 전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넌 지금 걔랑 그저.. '떡'을 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만약 진짜로 그랬다면 네가 지금 걔의 감정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있었을 것 같아? 굳이 내 재능을 이용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네가 샤이닝 아머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걸." 확신에 찬 말투로 말을 마치며 캐이댄스는 가장 친한 친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샤이닝 아머에게 질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마. 넌 그럴 얘가 아니니까." 캐이댄스는 이제 선셋의 자존심을 약간 세워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굳이 더 이상 세워줄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나도 나 나름대로의 이성을 보는 높은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말이지. 넌 정말 잘 고른 거야. 물론 샤이닝 아머는 지금 이대로도 귀여운 얘지만, 걔가 경비병에 입대해서 근육이 좀 붙으면.. 후후.. 앞날이 정말 기대될 거야. 내가 보증할게." 선셋은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캐이댄스가 자기가 말을 잘못한 게 있나하고 생각이 들던 찰나, 선셋은 입을 열었다. "음.." 머뭇머뭇 선셋은 말을 이었다. "좋네... 약간.." 기대완 완전히 딴판이잖아! 캐이댄스는 인상을 구겼다. "에게? 겨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한 번 뱉은 뒤, 캐이댄스는 선셋을 쳐다보며 따지기 시작했다. "선셋. 너 대체 왜 이래? 이래서야 샤이닝 아머에게서 일부러 멀어지려는 것 같잖아?" "그게.." 선셋은 말을 머뭇거렸다. 캐이댄스는 입가에 주름을 잡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려는 건 아냐. 근데.. 내가 어젯밤 했던 말 기억나?" 또 그 이야기.. 캐이댄스의 입가에서 짜증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보나마나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겠지. 모든 걸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진 이모님에게 자기가 생각을 바꿨다는걸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고 선셋이 부탁하기는 했지만.. "그래. 기억나. 내가 거대한 크리스탈 궁전에서 사는 공주가 되었다는 거?" 여전히 바보 같을 정도로 가망 없어 보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사해볼 가치는 있는 것 같았다. 만약 크리스탈 왕국이 실존한다는 게 밝혀지면, 선셋이 지고 있는 저 이유 모를 부담감도 어느 정도는 덜어질 것 같아서였다. 선셋은 약간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라? 그 이야기 듣고 좋아할 줄 알았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선셋의 표정엔 슬픔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고,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난 원래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존재라는 거야." "..그럼 어디에 있어야 된다는 건데?" 선셋이 일부로 떡밥을 깔아두고 물어보기만을 바라는 게 뻔히 보였지만, 어쨌거나 캐이댄스는 그 떡밥을 물어주기로 했다. "예전에 일 기억나지? 내가 공부만 파고, 어머니랑 싸움이나 하고, 널 괴롭혔던 그때.. 그러다가 결국 거울 저 편의 세계로 넘어갔었지. 샤이닝 아머? 그 땐 이름도 몰랐어." 선셋은 구슬픈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겪은 일들이 다 환각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을 땐,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다 뒤로 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지.. 하지만 이제 모든 게 진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러니 어떻게 샤이닝 아머랑 사귈 수가 있겠어? 내가 원래 샤이닝 아머와 함께 할 운명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아는데.." 왜 갑자기 거울에 관한 견해가 바뀌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캐이댄스는 일단 샤이닝 아머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선셋은 속 끓는 신음 소리를 낸 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캐이댄스를 바라보았다. "봐봐. 거울에서 두 번째로 나왔을 때, 그 거울은 내게 맞는 시간대로 날 보내주는 대신, 내 입장에선 과거나 다름없는 시간으로 날 돌려보냈어! 게다가 내가 처음 이퀘스트리아를 떠나야겠다고 작정하고 막 거울을 넘어간 그 때로 돌려보낸 것도 아니고! 그러니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하기만 하면.. 뭐든 원래 일어났어야 할 일들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끝장이 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그런데 이리도 오래 죽치고 있었으니.. 어쩌면.. 난..." "선셋." 선셋이 또 패닉에 빠지기 전에 캐이댄스가 선셋의 이름을 불렀다. "분명 넌 전에 인간들은 큐티 마크가 없다고 했었지?" 고개를 끄덕이며 선셋은 대답했다. "...응. 간혹 특정한 심벌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냥 그뿐일 뿐. 아주 특별한 의미는 없어." 둔부 옆 부분에 박혀 있는 음양 표식의 태양을 보며 선셋은 말을 마쳤다. "그럼 인간들에겐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없다는 이야기네. 그렇지? 그리고 넌 잠시 인간이 됐었고.. 그렇다는 말은 네가 겪게 될 운명 또한 그때.. 지워졌다는 이야기 아닐까?" 어찌 보면 꽤 섬뜩한 이론이었다. 캐이댄스는 자기가 왜 그 생각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셋의 얼굴이 순간 헬쓱해졌다. 이윽고 맹렬하게 캐이댄스를 쏘아보기 시작했으므로, 캐이댄스는 내심 놀랐다. "아냐. 아냐! 절대로 그렇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싫어! 전에도 그랬다가-" "그럼 뭐? 뭘 어떻게 생각하고 싶다는 건데?" 캐이댄스는 선셋의 말을 도중에 가로막으며 선셋의 두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너는 네 입으로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라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넌 절대로 여기 있어야 할 존재거든? 다르게 생각을 좀 해 봐. 아 이건 내가 지금껏 잘못했던 걸 바로잡을 기회다 이런 식으로! 네가 계속 이렇게 비행 캠프에서 구름 아래로 뛰어내리기 무서워하는 망아지처럼 쩔쩔매고만 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기회는 물 건너가는 거라고!" 신랄한 비난을 끝내고, 캐이댄스는 한숨을 푹 쉬며 시선을 돌렸다. 이런 일로 성질을 내다니..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저... 미안.. 나-" 그 순간 캐이댄스는 보고야 말았다. 어떤 포니가 화장실 입구 오른쪽에 있는 벽에 푹 고꾸라지는 광경을. ------------------------------------------------------------------------------------------ 불과 몇 분 전. 벅 위더스는 쓰리-디, 크런치라고 불리는 두 팀원들과 함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위더스는 왜 쓰리-디가 한 쪽엔 빨간색, 다른 쪽엔 파란색 렌즈가 끼여 있는 안경을 일부러 끼고 있는 건지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그 이름값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옆에는 쓰리-디 보단 단신이지만 꽤나 근육질의 체형을 지닌 수말, 크런치가 걸어가고 있었다. 러닝 스타트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돌파력이 매우 뛰어났을 친구였다. 오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벅은 평소 습관대로 남은 10분 동안 체력단련 실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에나 매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포니들의 잡담 내용이 벅의 심기를 벅벅 긁었으므로 의욕이 전혀 나지 않았다. "공주님 훤칠하신 거 봤지?" 정말 심기가 불편했다. "갈기 진짜 멋있더라!" 그 망할 년이 크든 말든..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 정도는 약과지." 벅과 그의 폴로 팀 동료들 뒤를 걸어가던 암말이 깔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공주님 다리 봤어? 우와! 되게 굵은 다리가 기품 있기까지 하다니.. 어쩌면 벅보다 더 힘이 셀 지도 모르겠네?" 그 말에 열 받은 벅은 곧바로 뒤로 돌아섰다. 멍청이들! 그 빌어먹을 알리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냐! 아냐! 아니라고!" 벅이 고함소리에 복도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약 6필 가량의 포니들이 놀란 눈빛으로 벅 쪽을 돌아보았다. "저... 벅. 사실 내가 내 친구 터치다운에게 이야기 들은 게 있는데, 그 공주가-" 옆에 있던 크런치가 눈치 없이 끼어들며 하는 소리였다. "시끄러!" 벅은 즉각 말을 가로막아버린 뒤 씩씩거리며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바로 그 때, 아령 몇 번 드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 해소가 될 만한 물건이 벅의 눈에 들어왔다. 복도 저 멀리에 낮이 익은 백색의 유니콘이 여자화장실 앞에서 멍하게 서있었던 것이다. 샤이닝 아머.. 벅이 아버지에게 근신 처분을 받는 동안, 녀석이 무슨 일들을 했는지 벅은 친구들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이 쓸데없는 녀석! 네 말만 믿고 있었다가 큰 낭패만 보게 되었다!" 아직도 벅의 귓가엔 아버지의 호통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뚱뚱이 공주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말을 듣고 일을 벌렸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은 듯 했다. 아니, 지금 아버지 일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샤이닝 아머에게 제 주제를 가르쳐 주는 게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찌질이 덕후 주제에, 고이 아무 구석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감히 넘보지 못 할 자리를 넘봐? 벅은 발굽을 쾅 한번 박차고 샤이닝 아머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연히 샤이닝 아머는 식겁한 눈치였다. "야! 아머!" 그리고 두 앞발굽으로 샤이닝 아머를 붙잡아 끌고 복도 벽에 처박았다. "내가 점찍은 얘한테 찝쩍대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했을 텐데!" "벅?! 대.. 대체 어디서.." 비틀대며 샤이닝 아머는 대답했다. 비실대는 약골 같으니라고.. "닥쳐!" 질질 짜는 소리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 네가 하는 변명 따윌 내가 들을 것 같으냐! 분명 저 망할 놈은 점심시간에 캐이댄스 옆에 앉아있었다. 병실에서 몇 주 동안 찌그러져 봐야 정신을 차릴 성 싶었다. "점심시간에 다 봤어!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못 알아쳐먹겠다 이거지? 할 수 없군. 네 면상을 부숴주마!" 벅이 쿵쾅거리며 샤이닝 아머에게 다가가자,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던 멍청한 포니들은 쥐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보는 눈이 없어지자, 벅은 샤이닝 아머를 내려놓고 그 얼굴에 앞발굽으로 힘찬 한 방을 날렸다. '빠각'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고, 유니콘은 여자 화장실 쪽으로 동그르르 나자빠졌다. 벅은 그런 샤이닝 아머를 다시 붙잡아 화장실 벽 쪽으로 매쳤다. "야. 아머. 너 얼굴에 뭐가 묻은 것 같다?" 그리고 벅은 자기 친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어떡하나? 때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럼 때줘야지!" 크런치가 거들고 나섰다. "아니 대체 뭐가 묻었다는 거야? 안 보이는데.." 쓰리-디가 작게 중얼거렸다. 샤이닝이 다시 꿈틀거리자, 벅은 앞발굽을 아래로 뻗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여기 이렇게 선명하게 묻었잖아. 헙!" 기합소리와 함께 벅의 앞발굽이 샤이닝 아머의 주둥이에 명중했다. 몇 초 후, 샤이닝 아머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봐봐. 털에 새빨간 게 찐득하게 묻었잖아? 어이구 더러워라.. 야. 걱정 마 인마. 씻어줄게." 벅은 샤이닝 아머를 여자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거기에서 더 구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벅이 샤이닝 아머를 따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웬 암말 두 필이 텅 비어있는 화장실 중앙에 있는 게 보여 벅은 발걸음을 멈췄다. 둘 다 알리콘이었고, 한 필은 분홍, 한 필은 호박색이었다. 분홍색 암말은 샤이닝 아머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 숨을 멈추더니, 마력으로 샤이닝 아머를 끌어다가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명백백한 살의를 두 눈 가득 불태우며, 호박색 알리콘은 벅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인간의 몸으로 변했던 탓에, 선셋이 몇 년 동안 할 수 없었던 기제류식의 감정 표현이 있었다. 화가 날 때면 포니들은 콧김을 뱉는 것으로 말을 대신하곤 했었다. 이제 포니의 몸으로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으니, 선셋은 분노에 찬 콧김을 푸륵 하고 뱉었다. 뜨끈한 공기가 기도를 타고 콧속을 진동시키며 배출되는 기분은 사뭇 이색적이었다. 몇 년간 억눌러온 본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단편적인 생각일 뿐, 다시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샤이닝 아머를 보자, 선셋은 그만 이성의 끈을 놓쳐버렸다.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선셋은 주변을 감싸고 있던 은폐 주문을 해제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저 세 필의 등신들에게 지들이 얼마나 좆됐는지 절절히 보여주고 싶었다. 불과 마법으로 추잡한 명줄들을 끊어버리기 전에! "수명이 약 10초로 단축된 것을 축하한다. 이 씹새1끼들아!" 막 선셋이 쇄도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선셋의 뒤에서 끌어당겼다. 캐이댄스였다. 캐이댄스는 선셋의 귀에 대고 큰 소리를 질렀다. "선셋! 멈춰!" "놔!" 당장 달려들어 저 어스포니들의 다리를 다 분질러놔야 하는데... 하지만 캐이댄스가 굳은 눈으로 선셋을 쳐다보고 있었으므로, 선셋은 차마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를 내팽개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깜짝 놀라 굳어있던 선셋의 목표물 세 필들은 그 틈에 정신을 차렸다. "튀어!" 가장 짧은 수말이 고함을 지르자, 잿더미 신세가 되기 전에 그 세 필은 일제히 꼬리를 말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선셋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캐이댄스를 거칠게 밀어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딱 2초 줄 테니까 왜 이랬는지 당장 납득 갈만한 설명을 해. 안 그랬다간 캔틀롯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순간이동으로 날려버릴 테니까." 캐이댄스는 물러서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럼 날더러 뭘 어쩌라구? 네가 기절한 샤이닝 아머를 돌보지도 않고 그 불량배 세 필에게 달려들도록 놔둬서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신문 제 1면을 또 한 번 화려하게 장식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까? 세상에, 안 그래도 일이 난 마당에 문제를 더 일으켜서 좋을 게 뭐야?" 2초가 지났다. 선셋은 뿔에 모았던 마력을 거둔 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았다. "알았어..." 힘없는 목소리로 선셋은 대답했다. 한숨을 한 번 쉬고 들끓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셋은 말을 이었다. "진정했으니까, 이제 놔..." 캐이댄스는 그 말에 따랐다.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의료 마법이 선셋의 주특기는 아니었지만, 건강 검진 마법은 전에 검사를 받을 때 의사들이 쓰는 걸 지겹도록 본 적이 있으므로 손쉽게 시전할 수 있었다. 선셋의 뒤에 있던 캐이댄스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걔는 좀 괜찮아?" "뼈 부러진 곳은 없군.."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하며 선셋은 혼잣말을 했다. 험악하게 밀쳐져 바닥에 엎어진 탓에 몸의 아래쪽 부분이 상당히 쓰라릴 테고, 얼굴을 강하게 얻어맞아 코피까지 터진 상태였다. 흔하게 학교 내에서 자행되는 괴롭힘이라고 하기엔 이건 강도가 좀 심했다. 게다가 발굽 생물들의 발굽은 인간의 주먹보다는 더 딱딱할 테니... "윽... 서.. 선셋?"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샤이닝 아머가 선셋을 올려보며 더듬더듬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걸 기뻐해야 할 지, 아니면 아직도 멍한 샤이닝 아머의 목소리를 듣고 걱정해야 할 지 선셋은 마음을 다 잡을 수가 없었다. "샤이니..?" 염려스럽게 선셋은 대답했다. 뇌진탕인가? 잠깐... 유니콘이 뇌진탕도 걸리던가? 분명 예전에 포니 생물학 책을 볼 때는 뿔 달린 포니들은 두개골 충격 내성이 강하다는 걸 봤었는데.. 뒤에서 보고 있던 캐이댄스도 선셋의 곁으로 다가왔다. "샤이닝 아머. 괜찮은 거야? 내 발굽좀 봐봐. 이게 몇 개로 보여?" 캐이댄스가 들어 올린 발굽을 쳐다보며 샤이닝 아머는 흐릿한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하..하나?" 바보 같기 그지없는 검사였지만, 어쨌든 캐이댄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뒤로 물러났다. "좋아. 선셋. 샤이닝 아머 데리고 양호실로 가 있어. 나는 신치 교장과 이야기를 좀 할 테니까. 설마 이런 짓을 벌였는데, 신치 교장이 벅을 가만 두지는 않겠지." "왜? 벅을 퇴학시켜 달라고 말해보려고?" 캐이댄스를 돌아보며 대답하는 선셋의 말엔 약간 냉소적인 어조가 잔뜩 담겨있었다. "내가 설마 퇴학 정도로 그 새끼를 용서할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지금?!" 당장 그 놈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싶었다. 온 몸의 뼈란 뼈는 다 박살을 내 가루로 만들고, 전에 흑마법 장서실에서 몰래 배운 흑마법으로 놈의 영혼을 몸에서 분리한 뒤에, 가마솥에서 천천히 삶아져가는 자기 육체의 모습을 본마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하며 그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선셋의 두 귀로 듣고 싶었다. 어떻게 벅에게 지옥을 보여줄까 하는 생각에 선셋이 잠겨 있을 때,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선셋의 앞다리를 붙잡았다. "선셋.. 너.. 표정이... 괜찮아?" 다시금,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내려 보았다. "내가 지금 괜찮!.... 아..." 또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엉뚱한 포니에게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 선셋의 두 귀는 자괴감으로 축 늘어졌다. 샤이닝 아머가 다쳐서 뒹굴고 있는데, 정작 자기는 등신같이 어떻게 복수할지만 궁리중이라니.. "그게.. 괘..괜찮아. 샤이닝. 그래.. 지금 가장 급한 건 너니까.. 자. 빨리 양호실로 가자." "뭐가 문젠데?" 부랴부랴 샤이닝을 부축해주던 선셋은 대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뭐가 문제냐니? 이렇게 다쳐놓곤!" '그것도 바로 내 앞에서.. 망할.. 아깐 너무 내 생각만 하느라..!' "거-걸을 수 있겠어?" "..응.." 이렇게 대답하며 샤이닝은 발을 한 걸음 내디뎌 보았다. "아얏!" 그 소리에 선셋이 소스라치게 놀라 뭐라도 하려고 달려들려던 찰나, 샤이닝 아머는 발굽을 들어 선셋을 제지했다. "아니, 진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한두 번 당하는 일도 아니고.." 본마가 웃으면서 이런 말은 하지만, 선셋과 캐이댄스는 걱정 어린 시선을 교환했다. "..한 두 번이 아니라고?" 선셋은 캐이댄스를 쳐다보며 소리죽여 중얼거렸다. ------------------------------------------------------------------------------ '왠지 불안한걸..' 교장실로 들어가는 캐이댄스의 생각이었다. 방 안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은 무슨 금단의 장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굳이 불안해 할 필요가 있나? 바보같이. 신치 교장은 그래도 꽤 좋은 분이셨다. 약간 엘리트주의에 쩔어있는게 탈이기는 했지만.. 신치 교장은 교장실 책상 앞의 긴 의자에 앉아 교내 업무에 관한 서류를 마력으로 붙들고 읽고 있었다. 약간 질투심이 났다. 나도 저 정도로 마력을 정교하게 다룰 수 있었으면.. 그래도 선셋이 도와주고 있으니 실력이 금방 늘긴 하겠지만 말이다. 캐이댄스는 책상 앞으로 걸어왔다. 신치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안경을 바로잡은 뒤 미소를 지으며 캐이댄스를 맞았다. "아! 캐이댄스 공주님. 이 시간에 교장실에는 어쩐 일이시죠?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요? 혹시 공주님께 무례를 범한 선생이라도 있는 건가요?" 목례를 하며 캐이댄스는 정중한 어조로 운을 떼기 시작했다. "사실, 교내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있어 제보하러 왔습니다. 제 친구가 화장실에서 폭행을 당했거든요." 교장은 놀라 숨을 멈췄다. "어머 세상에! 무슨 일인지 당장 말해주세요! 금방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가해 학생은 누구며, 가담한 학생은 또 누구지요?" "벅과 그 친구들... 두 필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사진을 보면 알 것 같네요. 다들 폴로부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벅의 주도하에 샤이닝 아머를 집단 폭행하는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런 포니들은 이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죠. 퇴학시키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치 교장은 몇 초간 캐이댄스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다만.." 마력으로 콧잔등 위에 걸쳤던 안경을 벗으며 신치는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공주님의 부탁을 들어드리긴 좀 어려울 것 같군요.." "뭐라구요?!" 곧바로 인상을 구기고 캐이댄스는 굳은 말투로 따졌다. "아니, 졸업반 학생이 공공연히 다른 학생을 구타하고 있는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니요?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일어난 일 같은데, 이렇게 질 나쁜 괴롭힘을 주도한 학생을 당장 퇴학시켜도 모자랄 판에, 뭐라구요? 어렵다구요?" "공주님. 부디 본교의 사정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치 교장은 한 쪽 발굽을 들어 진정하라는 몸짓을 해보였다. "벅 위더스 학생은 이 학교에서 가장 뛰어나고, 또 중요한 포니 중 하나입니다. 폴로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데다가, 다른 스포츠 성적도 우수하죠. 올해 우리 학교가 체육 마재 양성 우수 학교로 선정된 것도 다 벅 학생 덕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그에 비해 샤이닝 아머 학생은..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별로 중요한 학생은 아닙니다. 그리고 둘 다 어린 나이 아닙니까? 그 나이 또래 수말들에게는 치기 어린 다툼 정도야 흔하죠." 비록 선셋만큼 셀레스티아 공주의 국정 행사를 따라다니며 말 돌려 꾸미기를 좋아하는 정치가들을 많이 겪어본 건 아니지만, 캐이댄스는 그 말이 은유하는 바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 말은 지금 이걸 무시하자는- 아니.." 머리속에서 무슨 상황인지 앞뒤가 다 짜맞춰지자 캐이댄스는 잠깐 말을 멈췄다.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던 걸 신치 교장은 분명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하셨다?" 캐이댄스가 너무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성질을 꾹 눌러 참고 있는 사이, 교장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이젠 꼴도 보기 싫은 작자였지만, 캐이댄스는 공주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할 지위였던 것이다. 물론 아까 벅에게 달려들던 선셋처럼 앞뒤 안 가리고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사실.. 조금 수준은 아니었다. 너무 과하게 들어서 문제였지. "캐이댄스 공주님. 생각해보시지요. 벅 학생과 그 친구들이 말입니다.. 학교에서 제명되었을 때 본교에 얼마나 치명적인 손상이 가는지 말이에요. 전국 대회 우승으로 상승세를 탄 지 얼마 안 되는 학교 폴로팀의 주장이 어이없이 퇴학당한다면, 우리 학교의 명문 폴로팀의 명경기를 기대하고 있는 학부모 여러분들의 희망과 기대를 배신하는 일이 되겠지요. 본교의 위신에 금이 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최악의 경우 학교에 할애되는 예산이 삭감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아주 중대 문제에요. 그러니 대다수의 이득을 위해 벅 학생의 약간의 탈선 정도는 관대하게 눈감아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경멸에 찬 코웃음소리를 내면서 캐이댄스는 입을 열었다. "신치 교장선생님. 제가 여기 전학 왔을 때 '난 공주라고 특별 대우같은건 안 바란다.'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그런 말은 한 거지, 제게 부여된 이퀘스트리아의 공주 직위와 권한이 어디 안 간다는 건 아주 잘 알고 계시죠? 아참. 당신이 좋아하는 그 귀중한 예산 말인데, 어디 삭감되나 안 되나 똑똑히 두고보시라구요!" 캐이댄스의 반쯤 으르렁 거리는 위협에 신치 교장은 위축된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책상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놓으며 교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공주님 심정이야 이해합니다만.. 지금 함부로 정치적 압박을 거는 건 별로 현명하지 못한 판단인 것 같군요." 교장이 꺼낸 신문엔 1면에 선셋 쉬머 공주의 재판에 대한 내용이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이게 지금 이 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벅 위더스 학생은 스트롱 위더스 의원의 아들 되는 포니입니다. 선셋 쉬머 공주의 변신충 혐의가 벗겨진 지 얼마 안 되서 의혹을 제기한 의원의 아들이 선셋 공주님 친구 분의 고발로 폭력 혐의를 받는다라... 대중들의 반응은 예측하기 어렵군요. 노골적인 정략이라고 여기려나요? 어쨌든 엄청난 이목을 끌만한 일인 건 확실한 것 같군요." 신치 교장은 잠깐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공주님이 정치적으로 절 압박하신다면.. 좋습니다. 기자들이 얼마나 취재에 목숨을 거는 마종들인지는 잘 아시지요? 공주님에 대한 여론이 불리하게 작용될 수도 있는 '내부자 정보'가 누설되어 일간지에 실리게 될 수도 있으니 그 점 확실히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물론 전 이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할 생각이구요." 믿을 수 없는 발언이라 캐이댄스는 입을 떡 벌렸다. 신문을 낚아 채 사진에 찍힌 선셋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난 뒤, 다시금 책상 뒤에 앉은 교장을 노려보았다. "당신.. 지금 날 가지고 놀겠다는 거야 뭐야?!" 캐이댄스 공주의 노성에도 아랑곳 않고 신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주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공주님의 편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물론 공주님이나, 선셋 쉬머 공주님의 고명에 흠집을 낼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샤이닝 아머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포니이니, 벅이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놔두시지요. 그게 대다수를 위한 길이니까요. 자.. 이 정도로 이야기를 했으면 잘 이해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잠시 동안, 캐이댄스 공주는 눈앞에 있는 빌어먹을 암말을 잡아 먹을듯한 눈초리로 조용히 노려보았다. "...알겠습니다. 교장선생님." 공주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잘 알아들었으니 걱정 마세요." -------------------------------------------------------------------------------------------- 마차를 타고 샤이닝의 집 까지 가는 길은 처음 마차를 탈 때 선셋이 돈을 낸다고 했을 때 샤이닝이 극구 거부한 일 빼곤 거의 탈 없이 조용했다. 샤이닝은 자꾸 괜찮다고 집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말은 했지만, 지금 샤이닝에게 건 회복 마법은 쉬이 나른함을 유발한다는 걸 선셋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수업시간에 샤이닝 아머가 조느라 수업을 안 들을 거라는 것은 뻔했으므로 선셋은 샤이닝 아머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것 때문에 선셋도 수업을 빠지게 됐지만, 에라.. 선셋은 이미 존나게 대단한 이퀘스트리아의 공주가 될 몸 아니던가? 하루 정도 농땡이야 괜찮을 것 같았다. 샤이닝 아머는 자리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고, 선셋은 그런 샤이닝을 보며 '아. 인간 이였으면 서로 딱 붙어 앉아서 커플 분위기를 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니들은 보통 배를 깔고 거의 눕다시피 앉았기 때문에, 어디에 앉을 때 한 포니가 차지하는 면적이 꽤 넓었으므로, 샤이닝 아머의 옆자리에 앉을 여유가 도통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괜찮아? 샤이닝?" 샤이닝 아머는 얼굴을 붉히며 주섬주섬 대답했다. "괘..괘...괜찮아." 갑자기 마차가 덜컹거리고, 샤이닝 아머는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이 딱하고 또 죄책감이 들어서 선셋의 속이 아려왔다. "미안.." "응?" 어리둥절, 샤이닝 아머는 대답했다. 한숨을 쉰 뒤 고개를 흔들며 선셋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식당에서 꼴값만 안 떨었더라도, 네가 맞을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대부분 벅 그 새끼의 책임이긴 했지만, 그놈이 지금 당장 손 닿는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왜 괜히 네 탓을 하고 그래? 근데.. 어... 그.. 식당에서 말야. 왜 갑자기 달려 나간 거야?" 선셋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대답을 회피할 핑계거리가 생겼다. 재빨리 선셋은 탑승석 문을 열어젖혔다. "잠깐만 기다려봐.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참. 부축해줄까?" "그럴 필요-" 물론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대답을 깡그리 무시하고 마차 문을 박차고 나간 뒤, 날갯죽지 아래에서 지갑을 꺼내 운전자에게 돈을 지불했다. 아무리 날개를 달게 되었다지만, 선셋은 지갑 수납 외에 그 어떠한 유용한 용도로도 날개를 쓰지 않았다. 아니, 못 쓰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타당하겠지만. 다시 승차석 문이 열리고 선셋이 문 사이로 몸을 내밀었다. "샤이닝-" 샤이닝 아머는 한 발굽을 들어 선셋을 제지했다. "괜찮다니까..." 이렇게 대답하며 샤이닝 아머는 제 발로 차 안에서 거리로 나왔다. 자기 집을 올려보고 난 뒤, 샤이닝 아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엄... 다 왔네.." "그러게." 그러면서 선셋은 현관으로 달려갔다. "빨리 와. 너 좀 침대에 누워있어야겠다. 네 어머니께 사정 설명해서 먹을 것 좀 준비해달라 할게. 개마차는 있긴 하지만, 치료 마법의 피시전자는 나중에 극심한 공복감에 시달리거든. 내가 먹는 양의 거의 2배 수준으로 음식을 먹어야 될 지도 몰라." 샤이닝 아머가 선셋을 만류하려고 드는 것도 아랑곳 않고, 선셋은 현관문의 빛나는 보석에 걸린 방범 주문을 확인해보았다. 흑마법 장서실에서 보았던 주문들보단 복잡하지 않았으므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다려 봐. 금방 열어줄 테니-" 선셋은 보석에 자신의 뿔을 겨누고 약간의 마력을 흘려 넣었다. "됐다." 방범 마법이 해제되고 자물쇠가 열리자, 선셋은 문손잡이를 염동력으로 붙잡고 덜컥 열었다. 못 말리겠다는 듯,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등 뒤에서 한숨을 쉬었다. 선셋은 집 안으로 들어와 샤이닝 아머에게 들어오라는 발짓을 해 보였다. "음.. 엄마? 아빠? 집에 계세요? 트와일리?" 텅 빈 거실에 들어오며 샤이닝 아머는 가족들을 불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두 분 다 일 나가신 거 아냐?" 지금은 오후 1시가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트와일라잇 벨벳과 그 남편이 시간제근무로 일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집에 들어오기엔 약간 이른 시간이었다.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두 분 다 한 밤중에 일하시고 보통 이 때 들어오셔. 아마도 트와일리 데리고 늦은 점심 드시러 나가신 것 같은데. 걔를 못 움직일 정도로 배불리 먹여놔야 낮잠 시간에 딴 데 정신 안 팔고 얌전히 코 자거든." 배가 불뚝 나온 귀여운 망아지 모습을 한 친구의 모습이 연상되어 선셋은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샤이닝 아머를 돌보는 게 더 급했으므로, 선셋의 웃음기는 금세 가셨다. "좋아. 빨리 방에 가서 침대에 누워 있어. 내가 부모님 오실 때까지 집 대신 보면서 먹을 것도 준비 해올 테니까. " 샤이닝 아머의 표정에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스쳤다. "저... 선셋-" "아우! 야! 좀!" 선셋은 앙칼지게 샤이닝 아머의 말을 잘랐다. 치료 마법의 부작용이 언제 발동되어 샤이닝 아머가 기운을 잃고 쓰러질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좋은 말 할 때 당장 방에 올라가 쉬고 있어라 좀! 안 그랬다간 내가 강제로 널 침대까지 들고가서 못 움직이게 붙잡고...붙잡고... " 하필 지금 선셋의 뇌리에 떠오르는 건 마력 대신 온 몸으로 샤이닝 아머를 침대에서 꼼짝 못하게 누르면서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타는 장면이었다. 선셋은 군침을 꼴깍 삼켰다. "어..."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린 공주를 보며 샤이닝은 불만스럽게 두 눈을 굴렸다. "알았어. 네가 정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올라가서 누워있을게." 샤이닝 아머는 제 방으로 올라갔고, 선셋은 그 뒷모습을 잠시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너무 호락호락 올라가는 게 약간 걸리긴 했지만.. 지금 그걸 굳이 딴죽을 걸 생각은 없었다. 선셋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물 먹은 등짐을 갑자기 메는 것 마냥 우악스레 선셋을 깔아뭉갰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샤이닝 아머가 다친 걸 보는 그 순간부터 아드레날린이 계속 선셋의 혈관 속을 맹렬하게 흐르고 있었고, 적지 않은 시간을 걱정을 하며 보냈으니 심리적으로 지칠 만도 했다. 거기에 점심때 먹어치운 막대한 양의 식사 때문에 따라오는 식곤증은 덤이었다. '일단 샤이닝부터 돌봐주고, 내 몸은 나중에 챙기자.' 방으로 들어가는 샤이닝을 끝까지 지켜보며 선셋은 결심을 했다. 하지만 부엌을 돌아보자마자 벌써 두 가지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첫째는 샤이닝 아머가 대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요, 둘째는 뭘 좋아하는지 질문해야 할 그 대상을 방금 그 포니의 방으로 강제로 등을 떠밀어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으으.. 사과해야겠다..' 선셋은 또 한 번 이렇게 되새겼다. 의도가 좋았든 나빴든 간에 그 정도로 억세게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한숨을 한번 푹 쉬고 선셋은 계단을 올랐다. 위층에는 총 4개의 방이 있었고, 그 중 샤이닝 아머의 방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샤이니?" 작은 목소리로 샤이닝의 이름을 부르며 선셋은 방문을 열고 안을 들어보았다. 샤이닝 아머의 방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덕후 부류의 수말들에게서 기대할 법한 요소란 요소는 다 갖추고 있는 방이었다. 벽에는 레슬러로 보이는 근육질의 수말 사진이 걸려있었고, 방구석에 있는 찬장에는 파워 포니 피규어가 진열되어 있었고, 침대 맞은편의 작은 책장에도 '액션 피규어'(그냥 인형이라고 하면 이런 걸 사 모으는 덕후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법이다.)들이 정갈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세워져 있었다. 옷장 반대편에 있는 녹색 상자는 열려있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꺼낸 듯한 잡지를 마력으로 부유시킨 채로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멀뚱멀뚱 돌아보았다. "저... 선셋? 또 무슨 문제라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선셋의 귀는 축 내려앉았다. 한껏 움츠러든 샤이닝의 모습.. 쟤의 눈엔 내가 언제나 땍땍거리면서 참견질이나 하는 쌍년으로 보이는 건 아닐는지..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까지 내 태도에 대해 사과하려고 왔어. 너무 화가 나고, 네 걱정도 많이 되고 해서.." 선셋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미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그때 진짜 화가 났던 건-" "불의를 보니 참을 수가 없어서였지? 그렇지?" 살살 녹을 정도로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은 선셋의 말을 대신했다. "괜찮아. 그게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걸. 첫 만남도 그랬었잖아? 다른 포니들이 내가 위험에 빠진 걸 곁눈으로만 보고 있을 때, 넌 그 자리에 끼어들어서 날 도와줬었지." 너무 과한 칭찬이었다. 선셋은 얼굴을 붉혔다. 사실을 말하자면 샤이닝 아머를 도와주는 것보단 벅을 쥐어 패는 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 같지만.. 물론 벅을 손봐주고 난 뒤엔 샤이닝 아머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처음으로 든 생각이 아니라서 문제지.. 만약 트와일라잇이었다면.. 트와일라잇이었다면 상처 입은 포니부터 돌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선셋과는 달리.. 샤이닝 아머는 얼굴을 붉히며 침대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음.. 좀 피곤하네." 샤이닝 아머는 몸을 뒤척이면서 침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근데 굳이 먹을 거 안 해줘도 되는데.. 방금 점심 먹었었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선셋은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 만약 점심시간 때 먹은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남아있다면, 회복 주문의 부작용을 일정 부분 상쇄시킬 수도 있었다. "그래도 든든하게 먹어두는게 좋아." 선셋은 자신의 뜻을 다시 한 번 확고히 주지시키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샤이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가 됐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선셋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하품이 애써 잡은 무게를 다 흐트러버리고 말았다. 샤이닝 아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 참. 지금 낮잠자야할 포니는 따로 있었구만?" "야! 그럼, 내 남친이 화장실 바닥에서 맞고 누워있는 걸 똑똑히 봤는데! 응? 걱정하다가 약간 피곤할 수도 있는 거지. 왜 이리 쩨쩨하게 굴어?" 질세라 선셋은 반박했다. 기껏 걱정해주니 도리어 선셋을 놀리고 있어서 선셋의 목소리엔 약간 감정이 실렸다. 실실 웃고 있던 샤이닝이 갑자기 정색했다. 황급하게 선셋의 시선을 피하며 샤이닝은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내...내가..네...네...남친?" 선셋은 바짝 얼어붙었다. "그...그게...저..." 하지만 이내 선셋은 고개를 흔들어 주저하는 마음을 떨쳐버렸다. "미안. 갑자기 말이 나와 버렸네... 나.. 난, 네가 진짜 마음에 들어 샤이닝. 하지만.." "...알아. 난 공주님의 남자친구가 되기엔 부족한 게 많다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선셋의 정신은 순간 백지상태가 되었다. 설마 이런.. 드럽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진짜라고 믿고 있었을 줄은! "뭣?!" 따지듯 선셋은 외쳤다. 여태껏 느꼈던 피로감이 분노로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어떤 등신이 그런 말을 해? 넌 내가 여태껏 만난 남자중 최고의 남잔데! 망할! 최근 내 삶에 별의별 병신 같은 일들만 일어나서 망정이지, 안 일어났어 봐! 이미 너에게 몸, 마음 다 바치고도 남았어!" 선셋이 포화처럼 말을 내뱉자 샤이닝 아머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자-잠깐!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선셋은 목을 바짝 기울여 샤이닝 아머의 얼굴에 제 얼굴을 맞댔다. 여전히 바보 같은 의심을 품고 있다니.. "몸. 마음. 다 준다고. 내가." 선셋은 침대에 올라섰다. 두 앞발사이에 샤이닝 아머의 얼굴을 가뒀다. "내. 말. 못 믿겠다는 거야?" "미...미...믿긴 하는데.. 이...이건.." 맹한 목소리로 샤이닝 아머가 하는 질문에, 선셋은 잠깐 눈을 끔뻑였다.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자각도 함께 찾아왔다. 홀딱 벗은 수말을 마찬가지로 홀딱 벗은 채로 거의 깔아뭉개고 있었다. 원래라면 얼굴을 붉혔을 상황이지만, 너무 피곤해서 홍조도 나지 않았다. 선셋은 짜증 섞인 신음을 뱉으며 샤이닝 아머를 덮치려는 포즈를 풀고 그 옆자리에 드러누웠다. 전처럼 침대에서 투석기마냥 튕겨나가지 않게끔 날개도 확실히 정리해두었다. 선셋은 한숨을 쉬며 사과했다. "미안.." 샤이닝 아머는 앞발로 선셋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 자기 자신이 역으로 끌려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아냐."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약간 쪽이 팔려오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달래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선셋의 이성은 이래선 안 된다고 꾸준하게 경고 중이었지만, 잘 차려진 밥상을 무시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순진무구한 수말이랑 한 침대에 같이 누워있는데다가 둘이 같이 홀딱 벗고 있기까지 했으니...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얻은 습관에 따르면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물론 포니 세계에선 홀딱 벗고다니는 건 일상적인 일이기는 했으나.. 약간 지치긴 했지만, 지금이 바로 저 수말 위에 카우걸처럼 올라 타 새빨갛게 지고 있는 석양을 향해 완전히 가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샤이닝 아머는 지금 당장 동정을 졸업할 자격이 충분했고 말이다! 샤이닝 아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맞대고 있어봤자, 더 참기 어려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샤이닝이 향수를 뿌린 건지, 아니면 포니로 다시 변하고 후각이 예민해진 건지는 모르지만, 샤이닝 아머에게선 아주 좋은 향기가 났다. 캔틀롯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과시하듯 뿌리고 다니는(그리고 선셋이 처음부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독한 화학제품 향수와는 다른 은은한 향기라 더 마음에 들었다. 샤이닝의 체취를 맡고 있자, 선셋의 몸에 내제된 어스포니의 기질이 빠르게 육체적인 피로를 회복시켰다. 알맞은 상대방과 여러 차례 교미를 거행할 만반의 준비를 거의 마쳐둔 상태였다. '아니... 아직은 일러.' 네 발로 샤이닝의 몸통을 조심스레 껴안으며 선셋은 생각했다. 두 번째로 샤이닝과 단 둘이서만 있게 되었다. 게다가 본 께임에 들어가기 전 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칠 지경이었으므로, 급하게 달려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일단 목부터 키스를 이어나가 결국 샤이닝 아머의 달콤한 입술에까지 다다른 후, 전에 했던 키스처럼 진공청소기같이 찐한 키스를 나누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샤이닝 아머를 선셋의 아래에 누를 수 있을 것이며, 샤이닝 아머의 성적 흥분도 지금의 선셋 수준으로 폭발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선셋은 샤이닝 아머 위에 올라타고... '잠깐..' 지금껏 쌓아오던 성적 판타지를 다 무너트릴 만한 불편한 생각 하나가 선셋의 뇌리를 스쳤다. '기승위.. 못 하는 건가?' 그도 그럴 것이, 포니의 신체 구조상 인간의 기승위를 따라하는 건 영 어려워 보였다.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닥치자, 정욕으로 찌든 선셋의 머릿속에 한 가닥 이성이 돌아왔다. '윽.. 그래.. 이거 체위가 안 나오네... 잘 넣을 수도 없을 텐데.. 무리겠군 이거..'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리고 어스 포니의 완력.. 이것도 문젠데..' 선셋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캐이댄스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전 페가수스 주제에 뭘 제대로 알기나 하겠는가? 병신 같은 소리였지! '과학적인 사고를 해 보자 선셋,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실험을 해 봐야지!' 그래서.. 실험을 해 봤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선셋이 암말의.. 그 부분의 근육을 움직여본 결과 (역주. 말 암컷의 생식기는 암말이 스스로 수축시킬 수 있습니다.) 너무 꽉 조이면 다른 포니 골절정도는 충분히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포니를 다른 의미로 복상사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위험사항이 있거늘, 생짜 덮어두고 남자친구랑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몸이 달아올라 죽을 지경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 지금 꼭 해야만 하는 건가? 약간 관점을 바꿔보니 선셋의 불같던 성욕이 사라지고 평온함이 찾아왔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를 쓰는 대신, 선셋은 그냥 샤이닝의 옆에 누워 노곤하게 시간을 죽이는 걸 즐기기로 했다. 샤이닝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선셋의 허전한 마음속이 충만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물론 아까같이 화끈한 맛은 없었지만, 이렇게 차분하게 확 가라앉는 느낌도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좋았다. 새롭기도 했다. 인간 세계에서 친구들과 지냈을 때도 이렇게 평온한 기분은 느껴본 적 없었다. 친구하니까 생각나는데, 캐이댄스와 같이 자는 것도 이에 버금갈 만큼 평온했다. 선셋은 캐이댄스를 껴안듯 옆에 누워있는 샤이닝 아머를 따뜻하게 껴안았다. 그리고.. 막 옅은 잠에 들기 시작했다. "선셋?" 샤이닝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선셋은 포옹을 약간 풀고 샤이닝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왜? 샤이닝?" "저.. 괜찮지? 아까부터 말이 없기에.." 대충 거짓말로 둘러대기로 하고 선셋은 입을 열었다. "그냥.. 단 둘이서 누워있는게 너무 좋아서 그래." 미소를 지으며 선셋은 말을 마쳤다. 하긴, 이건 아주 거짓말은 아니군. 샤이닝 아머를 껴안으며 누워있는게 좋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망할.. 또 참기 어렵게 만드는군.. 그게 쟤 잘못은 아니지만. "아.. 그..그래.. 좋네.." 얼굴을 붉히며 샤이닝 아머는 머뭇머뭇 대답했다. 야한 생각은 여전히 선셋의 뇌리 한 구석을 전세 중이었다. 샤이닝은 귀엽구나.. 이 병신 같은 공주 직위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 둘 사이의 관계는 좀 더 완만했을 텐데.. 그것 외에도 고민거리는 산더미였지만 그 걱정들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샤이닝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괜히 이럴 때 다른 일까지 끌어와서 고민해봐야 골치만 아프고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법이었다. "있잖아. 샤이닝. 모처럼만에 우리 둘만 있는데.. 좋은 거 하나 해볼래?" 은근한 어조로 선셋은 말했다. 다만 너무 대놓고 유혹하는 투는 아니었다. 아까와는 달리, 선셋은 진도를 급하게 뺄 생각은 없었다. 이래서야 아까 끓어오른 욕구를 참은 게 다 허튼 일이 되지 않겠는가.. 샤이닝 아머는 선셋에게서 몸을 약간 뺐다. 너무 멀어지지는 않았다. "뭐..뭐..뭘 하려고?" "우리 첫 키스 말이야. 이 바보야." 선셋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샤이닝이 너무 귀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샤이닝은 소량의 부끄러움, 다량의 혼란스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선셋을 바라보았다. "첫 키스는 진작 하지 않았어?" "그건 꿈속에서 일어난 거잖아."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둘 사이의 간격은 이제 불과 몇 센티미터 안팎.. "이번엔 진짜로 키스해주고 싶어서 그래.. 넌 어때? 하고 싶어?" 감미로운 목소리로 선셋은 조곤조곤 속삭였다. 샤이닝 아머의 얼굴엔 이젠 당혹스러움과 쑥스러움만이 남았다. "엇! 나..난... 어.. 조.. 좋아." 샤이닝을 와락 덮치지 않게끔 초마적인 자제력을 발휘하며, 선셋은 가볍게 샤이닝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댔다. 샤이닝의 몸을 아까보다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선셋의 혀는 공손한 손님이 문을 두드리듯 부드럽게 샤이닝 아머의 입술 외각을 훑고 지나갔다. 샤이닝이 자신의 입 안을 허락하자, 선셋의 혀는 이내 샤이닝의 치아 사이를 지나,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샤이닝의 혀 또한 격렬하게 포옹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먹었던 음식의 맛. 달디 단 음료수의 맛. 향긋한 풍선껌 맛. 그게 샤이닝의 맛이었다. 바랬던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불쾌했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8초 동안 샤이닝 아머의 입 안을 종횡무진 휘저은 후, 선셋은 입맞춤을 풀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아래에 누워있는 포니를 내려 보았다. 인간이었을 때보다는 어려운 자세였지만, 그래도 할만은 했다. "좋았어?" "우..우...우와아..." 가쁜 숨을 내쉬며 샤이닝 아머는 겨우 대답했다. 기쁘게 선셋은 웃었다. 샤이닝이 앞발굽으로 선셋의 엉덩이를 더듬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셋은 순간 두 눈을 약간 부릅떴지만, 묘한 것이 불편하거나 수치심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어차피 주도권은 여전히 선셋이 잡고 있었다. 기분이 내킬 때나 주도권을 넘길 생각이었다.. 잊고 싶었던 과거의 '나쁜 여자 선셋'이 다시금 수면으로 올라온 것 같았다. 만, 뭐 어떠랴. 좋아하는 남자를 휘어잡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사소한 희생인 것을. 이렇게 샤이닝 아머가 자신의 몸을 탐미하고 있으니 기분이 꽤 좋았다. 물론 특별히 더 섹시해지거나 예뻐진 기분이 든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선셋은 자신의 외모가 수준급 이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좋았다. 쭈욱 이랬으면 싶었다. "저기, 샤이니." 마력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는 샤이닝의 발굽을 부드럽게 밀며 선셋은 말을 이었다. "더 막 나가기 전에 오늘은 이만 여기서 끊자." '계속 하다간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래.' 이게 선셋의 속마음이었다. 살짝 키스랑 포옹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지경인데 샤이닝마저 적극적으로 나서버린다면, 고갈되기 직전인 선셋의 인내심은 한계를 맞이하고도 남았으리라. 반쯤 넋이 나간 듯, 게슴츠레했던 샤이닝 아머의 표정엔 곧 경악의 기색이 서렸다. "어.. 아!... 선셋. 미안.. 내가-읍?!" 허겁지겁 사과를 하려는 샤이닝 아머의 입은 선셋의 마력으로 틀어막혔다. "걱정 마. 나 화 안 났으니까." 다시금 선셋은 고개를 숙여 샤이닝 아머와 얼굴을 가까이 맞댔다. 샤이닝의 시야에 선셋의 모습이 가득 차도록 말이다. "있지. 내 엉덩이 주무르는 건 나중에 천천히, 실컷 하게 해 줄게. 우린 아직 첫 키스밖에 안 했잖아." 입을 봉했던 마력을 풀자 샤이닝 아머의 양 볼엔 또 다시 홍조가 찾아왔다. "아...아... 알았어.." 샤이닝 아머가 너무 과도하게 졸아들기 전, 선셋은 샤이닝의 코에 짧은 입맞춤을 쪽 소리 나게 해 주었다. "또 한 번 키스해볼래? 이번에는 네가 혀를 써봐." 샤이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셋은 샤이닝의 입에 입술을 포개고, 샤이닝의 혀를 천천히 받아들였다. 샤이닝의 움직임은 너무 긴장한 듯 바짝 굳어있었고 적극적이지도 않았지만, 선셋은 춤을 가르치듯 샤이닝이 긴장을 풀 수 있게끔 은근하게 리드했다. 저 수줍음을 극복만 한다면 참 좋을 텐데.. 아까 적극적으로 엉덩이를 주무르는 샤이닝의 발굽을 밀어낸 게 독이 된 게 분명했다. 이래선 안 되는데.. 샤이닝 아머와 함께 하는 이 자리를 일일이 샤이닝 아머를 끌고 가면서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식으로 끝내기는 싫었다. '이런.. 초장부터 너무 세게 나갔나...' 선셋은 스스로 되새겨보았다. 처음 선셋과 만났을 때, 샤이닝은 선셋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긴 덕후 중 상덕후인데다가 숫기까지 없었으므로 암말이랑 말붙이는 것도 힘겨워했을게 분명했으므로, 본마가 서서히 적응을 하게끔 만들어야지 아까 같은 갑작스런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일 공산이 컸다. 게다가 선셋이 야생마처럼 은근함 따윈 집어 던진 격렬한 성교를 죽을 만큼 바랬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저주저하는 귀여운 저 모습이 샤이닝의 가장 큰 매력 아니던가? 키스는 계속되었다. 샤이닝 아머의 입술이 계속 자기 입술에서만 맴돌자 입을 땔까말까 망설이던 찰나에, 페가수스의 마력으로 인해 날카로워진 선셋의 청각에 현관문이 열리고 여러 필의 포니들이 목제 바닥을 밟으며 들어오는 소리가 감지되었다. 선셋은 급하게 입을 때고 샤이닝 아머의 몸을 넘어 침대 아래로 거의 자빠지다시피 내려왔다. "썅...! 너네 부모님 오셨다!" 허겁지겁 침대 맡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2시 15분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단 말이야?' 속으로 선셋은 생각했다. "?... 그래서?" 샤이닝이 여전히 벙찐 얼굴로 물었다. 애매하게 돌려 말할 생각 따윈 없었으므로, 선셋은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샤이닝. 너랑 내가 동시에 네 침실에서 나오는 걸 네 부모님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당연히 섹스하고 나왔다고 생각하시겠지!" 예전 선셋이었다면 소위 '생체 딜도'들의 가족 사정이야 내 알바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겠지만, 샤이닝 아머는 달랐다.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평판을 지켜주고 싶었다. 공주의 입에서 필터 없이 튀어나온 '섹스'라는 단어에 샤이닝이 꽁꽁 얼어가고 있을 때, 선셋은 탈출로를 살피고 있었다. 래리티가 즐겨보는 로맨스 영화들이 생각났다. 한창 불장난을 벌이다가 가족들이 갑자기 집안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허겁지겁 그 자리를 피하려는 커플들이 나오는 영화들이었는데.. 하지만 그 커플들 중 이마에 뿔 달린 마법사는 없었던 것 같군. 할 수 없이 창의력을 발휘해야겠는걸..! 선셋은 단숨에 샤이닝 아머를 마력으로 자기 곁에 밀착시키고 양 날개로 샤이닝을 끌어안았다. 시간이 없는 탓에 몸에 닿는 샤이닝 아머의 감촉을 만끽하지 못하는 건 참 아쉬운 일이긴 했다. 창문 건너를 보며 순간이동을 할 장소를 정한 뒤 선셋은 마력을 집중했다. "자-자-자-잠깐. 지금 뭐 하려고?" 매우 우려된다는 투로 샤이닝이 물었다. 대답 없이 선셋은 소리 차단 결계를 둘의 주위에 두르고 차원의 균열을 열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선셋과 샤이닝은 집에서 약 반 거리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선셋은 지체 없이 포옹을 풀고 몇 발짝 앞서서 걸어간 뒤, 뒤를 돌아보며 샤이닝의 두 눈을 똑똑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너희 부모님께 어떻게 이야기할지부터 정해두자." -------------------------------------------------------------------------------------- "-어쩐지 혼자 보낼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샤이닝 집에 같이 온 거에요." 왜 아들이 일찍 조퇴하고 집으로 들어왔는지 궁금해 하는 트와일라잇 벨벳에게, 선셋 쉬머 공주는 미리 말을 맞춰둔 대로 설명을 끝냈다. 샤이닝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한 어조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어유.. 너무 과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건 아닐런지.. 우리 아들을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님. 힘드셨을 텐데요."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서 굽실거리는 건 선셋에게 불편하기만 했다. 자기가 시간선을 망쳐놓기 전의 세계에서 트와일라잇 공주가 얼마나 이런 걸 불편해했을런지 선셋은 약간 이해할 만도 했다. "괜히 공주님께 폐를 끼쳐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샤이닝 걘 왜 나이도 먹을 대로 먹어놓고 칠칠맞지 않게 계단에서 자주 구르는지..." 문득 무언가가 느껴져 선셋은 거실 쪽을 쳐다보았다. 어린 트와일라잇이 거실 소파에 앉아 약간 쀼루퉁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게요. 저도 진짜 놀랐다니까요.." 약간 침울한 어조로 대답한 뒤 선셋은 다시 벨벳 부인을 돌아보았다. "덕분에 학교를 쨀 핑계거리가 생겼으니 됐죠 뭐. 아주머니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벨벳 부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공주님이 과연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려나? "저한테요? ,,,무슨 용건으로.." 공주는 소파에 늘어져있는 망아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음.. 저, 샤이닝. 트와일라잇이랑 다른데서 잠깐 같이 놀고 있어줄래?" 트와일라잇은 질색을 했다. 두 커다란 눈망울 가득 어름어름 눈물을 머금은 채로 트와일라잇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공주니임~ 전 공주님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에.." 포니 심장을 멎게 할 정도의 귀여움이었다. 선셋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근데 곧 낮잠자야할 시간 아니야?" 낮잠.. 벨벳 부인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분명 금세기에 한 두 필 날까말까한 불세출의 천재 망아지였지만, 그래도 망아지는 망아지인지라 자기가 관심이 있는 것만 기어이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잘 성장하려면 충분한 수면이 필요했는데도 말이다. 덕분에 맘 놓고 쉬지도 못 했던 게 벌써 몇 번째던가.. "하나도 안 졸린걸요 뭐!" 제 딴엔 가장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트와일라잇은 대답했다. "그래? 흠..." 공주는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 "...독서 좋아한댔지?" "네." 조심스럽게 대답해며 트와일라잇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올라가서 책 하나 고르고 있어봐. 네 엄마랑 이야기 다 끝내고 나서 공주님이 읽어줄테니까. 어때? 괜찮지?" 트와일라잇은 벌써 온데간데없었다. 벨벳 부인이 '얘가 벌써 순간이동을 배웠나.' 라고 착각할 정도의 속도였다. "그리고 샤이닝. 너도 다른 짓 말고 들어가서 쉬어." 반쯤 명령조인 선셋의 말에 샤이닝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왜? 나도 침대에서 책 읽어 주려고?" 선셋의 이마에 약간의 주름살이 잡혔다. 하지만 곧 싱긋 미소를 지으며 명랑한 구연동화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마력은 엄~청 센데, 성질은 엄~청 불같은 공주님이 한 필 살고 있었어요. 그 공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병원에서 하는 권고를 싸그리 무시하고 방정맞은 주둥이를 놀리는 수말이었답니다?" "히익! 알았어! 미안! 올라갈게!" 샤이닝 아머도 트와일라잇 못지않은 속도로 빠르게 소파에서 내려가 위층으로 사라졌고, 벨벳 부인은 안절부절 선셋에게 고개를 굽혀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 공주님.." 사과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선셋은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 왜 사과를 해요?" 곧 다 알겠으니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선셋은 한 쪽 발굽을 들어 제지하는 몸짓을 해 보였다. "아. 신경 쓸 거 없어요. 그나저나 따님이 이야기 안 하던가요? 제가 따님에게 제안을 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제안이라뇨?" 벨벳 부인은 잠시 트와일라잇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네. 공주님께서 자기에게 왕립 유니콘 학교 입학시험을 볼 자격을 줬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 당시 매우 신이 나서 두서없이 떠들어대는 딸의 말을 반분 정도라도 이해했는지는 솔직히 엄마인 벨벳도 자신이 없었다. 딸의 말에 그래그래, 하고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기억은 확실히 났지만 말이다. "좋아요. 그럼.." 선셋은 고개를 끄덕거린 뒤 벨벳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아주머니의 딸,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왕립 유니콘 학교 입학을 후원하고 싶습니다. 교재와 학용품, 식비, 실험 준비물, 개마용 기숙사까지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제 사비로 전액 지원할 생각이고요." 갑작스런 과분한 제안에 벨벳의 네 다리에 힘이 풀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만 괜찮으시다면 일주일에 2~3회 정도로 입학하기 전까지 마법 과외도 해드릴 수 있는데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공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론 따님이 굳이 과외가 필요할 것 같진 않지만요... 그래도 어... 자신감에 따라서 마법 성공률도 높아지는 거 아시죠?" 벨벳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공주님의 제안 때문에 거의 숨넘어갈 지경이었던 것이다! 트와일라잇 같은 영특한 아이는 최고의 교육을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자금의 한계라는 게 있던 탓에 벨벳은 트와일라잇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엄마로써 제 도리를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던 생각도 스멀스멀 들던 차였다. 물론 벨벳의 남편, 나이트 라이트가 트와일라잇의 학비로 쓸 돈을 아끼려고 백방 노력을 다하고 있었고, 벨벳의 학창 시절 친구 J.K 이얼링이 새로 나올 책 편집을 부탁해 여분의 수입원이 생겼으므로, 왕립 유니콘 학교 학비는 부족함 없이 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당분간 쪼들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오늘 오신 선셋 쉬머 공주님은 벨벳이 감히 기대도 못 했던 것을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제안하고 있었다. "어-어-어째서..." 파리한 목소리였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벨벳 부인은 질문했다. 그냥 봐선 알아채기 힘든 짧은 시간 동안 공주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 후회(?)가 포함된 표정이 스쳤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짧은 시간뿐이었다. 공주는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벨벳 부인을 내려 보았다. "왜냐면 아주머니의 따님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제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지요. 트와일라잇은 이 세상 최고의 교육을 받을 가치가 충분한 아이입니다. 사소한 장애물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는 않네요." 듣고도 못 믿을 말이라 벨벳 부인은 눈앞의 공주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고마운 제안을 해 주신 공주님의 앞에서 감사의 예도 표하지 않고 무례하게 쓰러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면서 말이다. "감사합니다.." 감사와 경의가 잔뜩 담긴 떨리는 목소리로 벨벳은 머뭇머뭇 대답했다. 어쩐지 부담스러워 선셋은 벨벳의 시선을 피하면서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한 쪽 앞발굽으로 다른 쪽 앞다리를 문질렀다. "어..네... 그래요.. 내일 남편분 있을 때 또 들러도 될까요? 트와일라잇을 언제 어떻게 공부시킬지 계획을 짜 보게요." "아... 그건 30분 정도 기다리시면 될 것 같네요. 그때쯤에 남편도 집으로 올 것 같거든요. 점심 먹고 난 뒤 관측소에서 서류 정리할 게 남아있다고 갔는데.." 선셋이 뭐라고 대답을 하려던 찰나 층계 위에서 망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셋 공주님. 아직 계세요? 저 책 하나 들고 기다리고 있어요! 헛똑똑이씨도 받아 적을 준비 다 됐데요!" "..헛똑똑이라고요?" 약간 궁금하단 표정을 지으며 선셋은 벨벳 부인을 쳐다보았다. "올해 초에 샤이닝이 트와일라잇에게 사준 인형 말하는 거예요. 공부할 때 마다 어.. 같이 공부하는 친구인 것 마냥 옆에 끼고 공부하거든요." "하하. 귀엽네요! 그거." 공주는 계단 위를 쳐다보며 말을 계속했다. "뭐 그렇담. 헛똑똑이씨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할 말 마쳤으니, 그럼 올라가볼게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선셋은 계단 위로 올라갔다. 몇 분 뒤, 벨벳 부인의 귀에 선셋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트와일라잇.. 아무리 너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 어려운 책 아니야?" "아이~ 책 읽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망아지의 칭얼거리는 목소리도 뒤이어 들려왔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어디 보자.." 선셋이 몸을 뒤척이고 있는지, 침대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침대에 비해 공주의 체구가 너무 컸던 까닭이리라. "자. 이리로 와. 그렇지. 공주님 날개 아래로.. 흠! 흠! 마법 역학 제 1 법칙. 마력의 정수는 마위적으로 창조하거나 파괴할 수 없으며, 오로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증폭하거나 감쇄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자세한 설명은 교제 제 5장을 볼 것... 잠깐.. 이런 걸 진짜 각주 설명 없이 그냥 읽어달라고?" 소리를 듣기만 해도 흐뭇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벨벳 부인은 공주님께 트와일라잇을 잠깐 맡겨두기로 하고 새로 생긴 여유시간동안 독서를 하기 위해 서재로 걸어갔다. 남편은 약 20분 후에 들어왔다. 벨벳은 남편과 함께 트와일라잇의 방으로 올라와보았다. 둘은 세상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선셋 공주는 날개로 트와일라잇을 포근히 품고 있었고, 또 트와일라잇은 인형을 앞발에 꼭 껴안은 채로.. -------------------------------------------------------------------------------------- 캔틀롯 성, 흑마법 및 금서 장서실. 보통 포니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지역. 등불들은 먼지가 쌓인 채로 교체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고, 여유 공간이 남지 않아 대부분의 책들은 바닥에 어지러이 쌓여있거나, 책꽂이 위에 난잡하게 놓여있었다. 여기엔 청소 담당 하인들의 출입도 통제된 곳이었으므로 빈 공간마다 진을 친 거미줄들과 뿌옇게 쌓인 먼지가 그대로 방치되어 이곳의 흉흉한 분위기를 더하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새로 익힌 조명 마법을 써도 앞이 잘 안 보이네.. 불편하다.' 라는 생각을 하며 캐이댄스는 이 장서실 담당 사서 앞에 안절부절 서 있었다. "저.. 성함이.. 크로스워드 라고 하셨죠? 책을 찾고 있는데요." "에?" 크로스워드 라고 불린 늙은 유니콘 암말은 책을 보다가 퍼뜩 고개를 든 뒤 뿔테 안경을 바로잡으며 캐이댄스 공주의 옆, 아무도 없는 공간을 한동안 뚫어져라 주시했다. ".....뭘 찾는다고?" 캐이댄스 공주는 헛기침을 해 사서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안녕하세요. 캐이댄스 공주입니다. 이퀘스트리아의 잊힌 역사가 기록된 책을 찾고자 여기에 왔는데요." 잠시 그 날 밤에 선셋이 무슨 말을 했는지 캐이댄스는 기억을 되짚어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음... 크리스탈? 크리스탈 성과 연관된 책이 여기 혹시 있을까요?" "허어. 크리스.. 뭐? 크리스-털 말이우? 알았수." 크로스워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안경을 벗고 책상 바깥쪽으로 걸어왔다. "보자. 보자. 어디 보자.. 간만에 색인(索引) 마법을 써야겠구먼.. 방금 색시가 크리스-털이라고 했던감? 책 내용을 말하는 거유? 제목을 말하는 거유?" "일단.. 제목으로 검색해주세요." 저 사서가 아까까지만 해도 책 보는데 쓰고 있었던 안경을 책상 위에 두고 가자 캐이댄스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안경을 놓고 가셨는데요?" "에? 안경이 무에 필요하다고?"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사서는 더듬더듬 대리석 바닥을 짚고 걸어가며 대답했다. 저 노마가 눈이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는 게 다행이었다. 공주가 대놓고 인상을 구기는 걸 못 봤을 테니 말이지. "..그럼 책 제목은 어떻게 보고 꺼내오실 건데요?" "에...? 앗-하하하하하하하하!" 늙은 사서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아.. 색시, 나는 여기 있는 책을 못 읽도록 그렇게 규정이 되어있어가지고 찾기밖에 못 혀." 사서는 뿔에 마력을 집중하며 쾌활하게 말했다. "뭐 해? 어서 들어와." 어두운 장서실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며 사서는 캐이댄스를 불렀다. 잠시 눈만 깜빡거리며 사서의 꼬리만 쳐다보던 캐이댄스는 문득 저런 자격 없어 보이는 포니가 금서 장서실에 채용된 게 마선(馬選)관련 업무를 대충한 이모님의 무능 때문인지, 혹은 저 포니가 자기 나름대로 캐이댄스가 미처 못 알아먹을 익살을 부린 건지 약간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공주는 크로스워드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행정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긴 하지만.. 이런 위험한 곳을 지키는 포니는 좀 믿음직한 포니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 반쯤 장님이 된 노마를 쓰는 게 아니라.. 사서가 영 못 미더웠던 캐이댄스는 사서가 책을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자기가 직접 통로를 거닐며 찾아보기로 작정했다. '그림자의 서.' 캐이댄스는 책등을 하나씩 읽어나갔다.(역주: 레전드 오브 시커에 나오는 예언서.) '고전 시대의 아교 제조법. 기제류의 가죽과 연골을 이용.. 우웩..' '소환술 : 공포의.. 부쉬울리? 그게 뭐야 대체?' (역주 : 마이 리틀 포니 1세대에 나왔던 털북숭이 생명체들.) 책 중엔 절규하는 포니의 얼굴 가죽으로 양장한 소름끼치게 생긴 흑마법서도 있었다. 캐이댄스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6/14671804489bbcacccf4cf4c4c8f4fe3863f4e959c__mn399065__w573__h400__f84526__Ym201606.png" width="573" height="400" alt="삽화.png" style="border:none;" filesize="84526"></div> 책 중엔 절규하는 포니의 얼굴 가죽으로 양장한 소름끼치게 생긴 흑마법서도 있었다. 캐이댄스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색시. 크리스-털이 들어가는 책은 없다고 나오는데.." 사서가 결과를 이야기하자, 캐이댄스는 인상을 약간 구기며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크리스탈'이 들어가는 게 이 수많은 책들 중에 단 한 권도 없다구요?" 또 캐이댄스 대신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늙은 사서는 입을 열었다. "크리스탈...? 크리스탈 이라고...? 오호호! 크리스-털 이라고 검색해서 안 나왔구만! 요사이 발음이랑 표기법이 교정된 걸 깜빡한 모양인가보이. 색시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 포니들은 다 크리스-털, 크리스-털 이라고 해야 알아들었지 크리스탈 하면 잘 못 알아들었어. 암. 그렇구 말구." "그..그렇군요." 곧 사서는 지금 서 있는 구간에서 책 2권을 찾아 꺼냈다. 하나는 '크리스탈 왕국의 역사.' 그리고 또 하나는 '크리스탈 왕국의 마법들과 크리스탈 심장.'이라는 제목이 각각 붙어있었다. 첫 번째 책 양장엔 크리스탈 궁전이 그려져 있었다.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건 두 번째 책의 겉표지에 달린 그림이었다. 수정으로 된 하트 그림... 캐이댄스의 큐티 마크와 거의 판박이 수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 잠깐만요. 이 두 권이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캐이댄스는 두 권의 책을 두 날갯죽지 아래에 각각 밀어 넣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서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캐이댄스도 도서관 흑마법과 금서 장서실을 나왔다. 왕궁 도서관 현관에 걸린 시계를 보니 곧 이모님께 마법 수업을 들으러 갈 시간이었다. 약간의 실마리를 찾았다고는 하나, 캐이댄스는 지금 자기가 풀고 싶은 수수께끼의 답들이 그렇게 쉽게 풀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선셋의 환각인줄로만 알았던 잊힌 왕국이 실존한다는 글로 된 증거를 입수한 뒤로 캐이댄스의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되었으므로 약간 복잡해진다고 주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시간을 빌어 이모님께 질문하는 게 여러 상황을 검토해봤을 때 가장 편한 방법 같았다. 물론 선셋은 준비가 될 때 까진 어머니에게 거울에 관해 말하는 건 삼가 달라고 했었지만 말이다. 내친김에 그 망할 신치 교장의 만행에 대해서도 고발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해봐야지.. 그 암말이 샤이닝 아머가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방치한 것을 알고 나니 캐이댄스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캐이댄스는 셀레스티아의 큐티 마크가 양각된 셀레스티아의 개마실 문 앞에 와 있었다. 들끓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 뒤, 캐이댄스는 셀레스티아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 뒤편에서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며칠 동안, 셀레스티아의 개마실의 방바닥은 이퀘스트리아 곳곳에 퍼져 있는 각계각층의 고위층들로부터 온 편지들, 새로운 보안 관련 사항이 적힌 왕궁 지도들, 앞으로의 예산안이 세밀하게 적힌 서류들이 널려있었다. 모두 앞으로 있을 선셋 쉬머 공주의 즉위식을 위해 준비된 자료들이었다. 특히나 보안 관련 사항들은 캐이댄스 공주의 대관식 때보다 더 엄중하고 삼엄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이런 문서의 아수라장 한 가운데에서 셀레스티아 공주는 그녀의 큐티 마크가 뜨개질된 깔개 위에 앉은 채 서류를 검토하던 시선을 잠시 치우고 캐이댄스 공주를 쳐다보았다. "캐이댄스로구나. 이런, 벌써 마법 수업을 할 시간이 되었니?" "글쎄요? 좀 일찍 왔으려나요?" 분홍 알리콘은 방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자기가 일찍 왔던, 늦게 왔던 간에 지금 이모님이 하고 계시는 선셋의 앞날에 대한 계획을 조금 기다린다고 끝낼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여러 번 그러셨지. "음.. 근데 이모님. 이런 건 집무실에서 하시는 게 더 편하지 않나요?"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 지도, 계획표 초안들을 가리키며 캐이댄스는 물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차라리 여기서 하는 게 편하구나. 집무실은 공개된 장소라 언제든 용무가 급한 포니가 들이닥치기 마련이지. 하지만 여긴 나한테만 허락된 공간 아니니? 다른 포니들이 알아서 좋을 것 없는 게 많은 일은 여기에서 계획하는 게 여러모로 낫지.." 말을 마치며 셀레스티아는 방안에 어지러이 널린 종이뭉치들을 마법으로 모아 벽난로 옆에 있는 푸른색 상자 안에 밀어 넣고는, 어디선가 간단한 봉인 마법이 걸린 작은 함을 꺼낸 뒤 캐이댄스를 돌아보았다. "자. 어제 내가 이 함에 걸린 주문을 알아오는 걸 과제로 내 준 것 같다만.. 성과는 있었니?" "그 대신, 도서관에서 흥미로운 걸 찾아왔죠." 사랑의 공주는 셀레스티아의 책상 위에 아까 전에 대여해온 책 두 권을 꺼냈다. 셀레스티아가 평소에 짓던 인자한 표정은 그 순간 사라졌다. 대신 경계하는 눈초리로 셀레스티아는 캐이댄스를 바라보았다. "이건 분명 금서 구간에서 찾아온 것일 터.. 설명해주렴. 무슨 바람이 들어서 크리스탈 왕국에 대한 책을 찾아보게 된 거니?" 어쩐지 잘못한 걸 들켜 어머니에게 추궁당하는 망아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캐이댄스는 심기가 약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선셋의 이야기 중에 크리스탈 왕국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그게 진짜 실존하는지 확인을 한번 해보고, 만약 실존했다면 왜 지금껏 그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이모님의 저 반응을 보니 크리스탈 궁전은 아무래도 실존하는 모양이군.. 선셋이 주장하는 시간 여행 설도 신빙성이 있다는 이야긴가.. 전에 캐이댄스는 선셋이 틀렸기만을 바랬지만, 점점 선셋의 말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캐이댄스.." 셀레스티아는 크게 한숨을 쉰 뒤 캐이댄스 공주를 살짝 째려보았다. "그 거울과 관련된 이야기를 선셋과 함부로 나누는 건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내 분명 일러두었을 텐데? 선셋은 지금 이퀘스트리아의 일에만 관심을 쏟아야 마땅하단다. 지금 당장만 해도 선셋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있거늘, 인..가안 들인가 뭔가 하는 생명체들이 사는 별세계에 잠깐이라도 신경이 분산되면 그건 아니 될 말이지." "책임....? 의무라구요?" 선셋이 공식으로 공주로 인정받는 대관식은 적어도 이번 달 말에나 열린다. 대관절 아직 대관식도 안 올린 공주에게 무슨 의무가 부여된단 말인가? 셀레스티아 공주는 잠시 캐이댄스를 내려보다가, 곧 책꽂이 근처에 있는 편지를 마력으로 끌어왔다. "최근 그리폰스톤에서 사절로 그러프라는 이름의 그리폰과 그 손녀딸을 보내왔다. 이번에 열릴 이퀘스트리아 게임의 차후 도시 시설 계획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인데.." 태양의 공주는 약간 역정 섞인 신음을 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번 개최지로는 클라우즈데일이 선정되었단다. 나 원.. 결국 이렇게 되었는데도 정책 비평론자들은 내가 너무 깐깐하게 국정을 편다고 뭐라고들 하지." 의외의 소식에 캐이댄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저..잠깐만요. 설명을 더 해 주실 순 없나요? 클라우즈데일이라면 이퀘스트리아 총 마구의 3분의 2는 보러 갈 수도 없다는 이야긴데 어째서 그 곳이 선정된 거죠?"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의회에서 그동안 이퀘스트리아 게임 선정지에서 계속 누락되었던 클라우즈데일에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더구나. 관중 문제 등, 개최 준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는 검토해보지도 않고 말이지." 헛기침을 하며 공주는 말을 이었다. "왜 내가 미리 막지 않았나 궁금하겠지. 허나 그때 난.. 선셋에 대한 문제로 매우 심란해져 있었던 터라 다른 데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행히 모든 게 다 잘 해결되고 난 후 자리를 비운 동안 미처 검토하지 못했던 서류를 살펴보니 이미 허가도장까지 찍혀 있었더구나. 이제사 허가를 취소하고 개최권을 빼앗는 건 오히려.. 문제만 더 유발할 테지. 그 대신 대안을 마련하는 게 더 좋을 듯싶구나. 가령 클라우즈데일 아래의 땅에 운동장을 건축한다던가, 혹은 적당한 시설이 있는 곳으로 클라우즈데일을 이동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참. 아까 책임과 의무에 관해 물었었지. 선셋도 수습 공주로써 이 일의 일부분을 맡게 할 생각이란다." 언 발굽에 오줌 누기 식의 대안인 것 같지만, 이미 결정된 걸 바꾸는 건 이모님 말씀대로 문제가 더 심각해 질 뿐이겠지.. 캐이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약 10초 후.. 캐이댄스는 셀레스티아가 약삭빠르게 말을 돌려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만요! 크리스탈 왕국에 대한 건 이야기 안 해 주세요?" 셀레스티아는 캐이댄스가 가져온 두 책을 힐끗 본뒤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알겠다. 네가 여태껏 크리스탈 왕국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이유는 이미 1000년 전에 자취를 감춘 왕국이기 때문이지. 자기 교만에 빠진 한 어리석은 자가 그 곳을 다스리던 공주를 시해하고 그 나라의 모든 국민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도 모자라서 지하에 감금된 강력한 악을 이 세상으로 꺼내오려고 하더구나. 나와 내 자매는 급히 그 자를 막았지만, 그 자가 미리 부려둔 술책 때문에 한 왕국이 통째로 사라지게 되었지. 내 힘으로도...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 그 표정에서 절절히 느껴지는 셀레스티아의 진심어린 분노에 캐이댄스는 고개를 살짝 내렸다. 분명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그 분 입으로 직접 하는 건 꽤 힘든 일일 테지.. 왕국과 함께 사라진 이모님의 친구는 몇 필이나 있었을까? 캐이댄스는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캐이댄스는 다시 셀레스티아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선셋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셋이 거울에서 첫 번째로 돌아왔을 땐 크리스탈 왕국에 있었다는데요? 만약 진짜로 선셋이 시간 여행을 한 거라면, 크리스탈 왕국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나도 선셋의 이야기는 잘 기억하고 있으니, 굳이 상기시켜줄 필욘 없단다. 확실히 왕국은 사라졌을 뿐, 파괴된 건 아니지. 사라진 건 언젠가 발견되는 게 순리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셋이 본 게 진실이라는 근거는 되지 않는단다.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고 여기기에도 여전히 어폐가 좀 있지." 캐이댄스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적당한 근거가 있는데도 한사코 믿기를 거부하는 셀레스티아에 대해 화가 난 것이다. 크리스탈 심장이 그려진 책을 가리키며 캐이댄스는 날카로운 어조로 운을 떼기 시작했다. "그럼 왜 이 책에 제 큐티마크가 그려져 있는 거죠? 또 선셋의 말에 따르면, 제가 크리스탈 왕국을 다스리게 된다고 하는데, 이게 다가올 미래가 아니면 왜 그 국가의 심벌이 제 양 볼기짝에 달려있는거냐구요?!" 몇 초 동안, 셀레스티아는 캐이댄스를 지긋이 쏘아보았다. 한 순간 캐이댄스는 자기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곧 셀레스티아 공주가 얇은 웃음을 터뜨렸으므로, 캐이댄스의 공포는 봄볕에 눈 녹듯 사라졌다. "나 원.. 선셋 그 아이의 불같은 성정이 너한테도 약간 옮아 붙은 것 같구나."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셀레스티아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큐티 마크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단다. 어쩌면 네 몸에 그 옛날 크리스탈 왕국을 다스렸던 아모레 공주의 피가 일정 부분 유전되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 또 다른 관점으로는 네가 크리스탈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혹은 내가 너한테 마법을 가르칠 때 사랑을 포함한 감정 마법 외에는 성공적으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된단다."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어쩐지 선셋을 배신하는 기분조차 들었지만 말이다. "음.. 생각해보니, 아무 정치적 경험도, 마법 실력도 없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고대 왕국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 보단, 이모님이 해석하신 게 더 이치에 맞는 것 같네요.." 셀레스티아는 오히려 약간 불편한 눈초리였다. "..물론 네가 수년 후에 다시 나타날 크리스탈 왕국의 지도자가 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지..." 공주는 캐이댄스의 시선을 피하며 머뭇머뭇 말했다. "잠깐.. 잠깐만요! 여태껏 선셋이 한 이야기를 안 믿으시는 줄 알았는데요?" 셀레스티아는 좀 더 불편해 보이는 눈초리였다. 잠시 문 쪽을 보며 그냥 나갈까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다시 캐이댄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네 입장에서 생각해보렴. 네가 가장 사랑하는 포니가 있는데, 그 포니가 이질적인 세상에서 마법도 못 쓰는 장애를 겪으며 3년간 죄책감과 고통, 외로움 속에서 살다가, 종내는 그 곳에서 새로 사귄 절친한 친구들도 버려두고 떠난, 그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될 지도 모르는 가혹한 경험을 '아. 그건 네가 꾼 악몽이었다,'는 말 한마디로 무마시킬 수 있다면.. 넌 어떤 걸 택하겠니? 진실을 말해주는 걸 택하겠니? 아니면 거짓으로 가리는 걸 택하겠니?" 공주의 목소리는 점점 무거워져가고 있었다. "선셋이 처음 깨어났을 때 어떤 상태였는지는 너도 잘 봐서 알리라 믿는다. 그래서 난 필요하다면 내 자신을 속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모질게 마음을 먹었단다. 그래.. 그러니 내 딸은 그저 나쁜 꿈을 꾼 거다, 실제 자기 잘못도 아닌 일로 죄책감에 휩싸여 살 필요는 없지... 이의 제기는 일절 받지 않을 테니 그리 알거라." 셀레스티아 공주의 굳건한 최종선고에 캐이댄스는 양 귀를 축 내렸다. "...알겠습니다. 이모님." "자, 그럼.. 후우..." 급한 불이 꺼진 안도의 한숨이었을까, 아니면 이런 자기 자신을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마음 한 구석 양심의 반동이었을까.. 셀레스티아 공주는 긴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 "..이 이야긴 일단 다음으로 미루고, 마법 수업으로 넘어가자꾸나. 아까도 이야기했듯 네 양쪽 둔부에 표시된 그림에 따르면, 기초 감정 조작 마법 빼고 좀 더 색다른 걸 가르쳐줄 수도 있을 것 같다만? 가령 나만 기억하고 있는 크리스탈 왕국의 잊혀진 마법이라던가.." 여전히 이모님이 아까 한 말 때문에 가슴은 무겁긴 했지만, 다시금 책에 그려진 크리스탈 심장의 그림을 보니 새로 고개를 드는 호기심을 무시하기란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거요?" 셀레스티아가 크리스탈 왕국에서 쓰였던 마법을 새로이 가르쳐줄 생각이라면, 캐이댄스도 굳이 전에 하던 기초 마법 수업에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셀레스티아 공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흠.. 크리스탈 왕국의 마법 주문들은 꽤 다양하단다.. 지금부터 내가 보여줄 사랑의 힘을 원동력으로 삼는 마법도 있지만, 크리스탈 조각들을 조종하는 계통의 주문들도 상당수 존재하지. 허나, 네가 날카로운 수정 조각을 마력으로 창조해 투사하는 것과 같은 공격 마법 종류들을 굳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후자는 별로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만.." 두 눈을 깜빡이며 캐이댄스는 속으로 만약의 경우를 상상해보았다. 첫 번째. 그냥 사랑 마법만 배웠을 경우. "변신충! 이거나 받아랏!" 캐이댄스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변신충을 대상으로 분홍색 마력 광선을 발사했다. 하지만 그건 변신충의 배만 불려줬을 뿐, 오히려 힘이 더 강해진 변신충에 의해 번데기에 감금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모님이 말해준 크리스탈 마법들을 배운다면 아마도... "변신충! 이거나 받아랏!" 캐이댄스는 소리를 지르며 오래 전에 잊혀진 크리스탈 왕국의 오묘한 비전 마법을 부려 거대한 크리스탈로 만든 벌래잡이채를 소환한 뒤, 달려드는 변신충을 한 큐에 납작 박살내버렸다. 두 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검토해본뒤, 캐이댄스는 결단을 내렸다. "크리스탈 조작 마법을 우선 배우고 싶네요." 물론 사랑의 마력을 다루는 주문들로 온 누리에 사랑을 뿌리고 다니는 것도 끌렸지만, 이퀘스트리아는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고 변신충도 언제 습격해올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그러므로 더더욱 캐이댄스는 자신과 친구들을 지켜내기 위한 힘을 갖추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셀레스티아와의 수업이 고작 한 1분 남짓 남았을 때, 캐이댄스는 신치 교장에 대한 이야기를 이모님께 하지 않았다는 걸 늦게나마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는 기회도 있었으니 말이다. 선셋도 결과를 궁금해 할 테니 그 때 가서 같이 이야기해주면 되겠군..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모님도 계실 테니, 선셋이 도중에 열을 받아도 이모님과 나 둘이서 어떻게든 진정시킬 수 있겠지.. ======================================================================= 그간 또 뜸했습니다.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6/146718047062cf42bb3a99495f9936970309c0f107__mn399065__w1536__h2048__f437158__Ym201606.jpg" width="800" height="1067" alt="Clb06nmUkAAq7rB.jpg" class="chimg_photo" style="border:none;" filesize="437158"></div> </div> <div> 일하는 곳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제공자분들이 국민행복 IT경연대회에 참여했고, 그 분들의 대회 준비와 여러가지 잡무를 맡다 보니 최근 몇달간은 진짜 눈코뜰세없이 바빴죠. 덧붙여 대회 인솔자로도 참여했습니다. 이제 큰 행사도 끝냈으니, 당분간 바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향후 일정을 보면 그런 것 같더라구요. </div>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6/06/29 15:55:29 61.74.***.226 미나와함께 317535
[2] 2016/06/29 18:17:43 61.254.***.182 베르게티거 606008
[3] 2016/07/01 10:30:41 122.32.***.146 queot 567418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분류	게시판
베스트	베스트오브베스트 베스트 오늘의베스트
유머	유머자료 유머글
이야기	자유 고민 연애 결혼생활 좋은글 자랑 공포 멘붕 사이다 꿈 똥 군대 밀리터리 미스터리 술한잔 오늘있잖아요 투표인증 새해
이슈	시사 시사아카이브 사회면 사건사고
생활	패션 패션착샷 아동패션착샷 뷰티 인테리어 DIY 요리 커피&차 육아 법률 동물 책 지식 취업정보 식물 다이어트 의료 영어 맛집 추천사이트 해외직구
취미	사진 사진강좌 카메라 만화 애니메이션 포니 자전거 자동차 여행 바이크 민물낚시 바다낚시 장난감 그림판
학술	경제 역사 예술 과학 철학 심리학
방송연예	연예 음악 음악찾기 악기 음향기기 영화 다큐멘터리 국내드라마 해외드라마 예능 팟케스트
방송프로그램	무한도전 더지니어스 개그콘서트 런닝맨 나가수
디지털	컴퓨터 프로그래머 IT 안티바이러스 애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윈도우폰 심비안
스포츠	스포츠 축구 야구 농구 바둑
야구팀	삼성 두산 NC 넥센 한화 SK 기아 롯데 LG KT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리그
게임1	플래시게임 게임토론방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모바일게임
게임2	던전앤파이터 롤 마비노기 마비노기영웅전 하스스톤 히어로즈오브더스톰 gta5 디아블로 디아블로2 피파온라인2 피파온라인3 워크래프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밀리언아서 월드오브탱크 블레이드앤소울 검은사막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2 베틀필드3 마인크래프트 데이즈 문명 서든어택 테라 아이온 심시티5 프리스타일풋볼 스페셜포스 사이퍼즈 도타2 메이플스토리1 메이플스토리2 오버워치 오버워치그룹모집 포켓몬고 파이널판타지14 배틀그라운드
기타	종교 단어장 자료창고
운영	공지사항 오유운영 게시판신청 보류
임시게시판	메르스 세월호 원전사고 2016리오올림픽 2018평창올림픽 코로나19 2020도쿄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