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무한도전 아이템 회의 중
유재석이 길거리 농구라는 아이템을 언급하였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농구 아이템에 대하여 술렁이기 시작한다.
평소에 농구를 좋아하며 아이템이 참신하다 생각한 하하를 선두로
박명수를 제외한 모든 무한도전 멤버들은 유재석의 아이템인 길거리 농구를 찬성한다.
높은 점수를 받은 농구 아이템,
하지만 정준하의 소시지빵점, 박명수의 문익점 드립에 의해 잠시 묻혀졌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홈페이지 투표와 제작진의 회의를 통해 유재석의 아이템 길거리 농구가 채택되었다.
하하, 정형돈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다소 허접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실망을 한 나머지
멤버들은 각자의 인맥을 알아보아 농구팀의 감독을 찾는다.
결국 멤버 정준하의 인맥을 통해
농구선수 김OO씨가 무한도전 농구팀의 감독을 맞게된다.
농구선수 김OO씨는 재치있는 어휘력, 말쑥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얻는다.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무한도전 멤버들은 농구선수 김OO 감독과 함께 강원도 부근 체육관으로 지옥훈련을 간다.
추운 체육관 바닥에서 맨발로 농구를 하며
다양한 기술을 배우면서 무한도전 농구팀은 점점 실력을 쌓아간다.
한편 농구선수 김OO의 화려한 기술들을 보며
농구에 반한 청소년들은 일요일마다 농구공을 들고 가까운 농구 코트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무한도전 길거리 농구 신드롬의 시작이였다.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무한도전 농구팀이 서울 여의도공원 농구 코트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시청자들과 함께 농구를 한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아직은 미흡하지만 조금 능숙해진 농구 실력으로
시청자들은 감탄하기도 했다.
이 날 팀의 에이스 정형돈의 깨끗한 3점슛은 농구선수 김OO이 극찬하여 화제가 된다.
한편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이후 하나 둘씩 농구 코트로 몰려들기 시작한 청소년들,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학생들을 보기 힘들 정도로 축구를 즐기는 학생들이 적어졌다.
2010년 12월 18일 토요일
한 겨울에도 멈추지 않는 맹연습, 무한도전 농구팀은
실력이 늘지않는 박명수, 노홍철을 두고 두 멤버를 농구 프로젝트에서 하차 시키느냐 마느냐를 의논한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농구선수 김OO과 유재석은 정말 진지하게 의논한다.
농구선수 김OO은 정말 최후의 수단은 농구 프로젝트 하차라고 말했으나
유재석의 설득으로인해 하차를 보류한다.
한편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농구를 하고싶어도 눈이 내려 못하니 실내체육관이 필요하다고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농구가 정말로 대중적인 스포츠가 된 그 당시
축구는 비인기종목으로 전락하였고 각종 국내 스포츠 채널에서는 NBA를 방영하며 해외축구경기를 편성표에서 빼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1년 1월 8일 토요일
무한도전 농구팀 경기 날짜가 정해졌다.
무한도전 농구팀의 경기일은 2011년 4월 2일로 불과 3달 밖에 남기지 않은 상황이다.
이 날 무한도전 멤버 길의 슛이 잘들어가지않자
길의 슬럼프가 시작되었다는 뜻의 별명으로 '길럼프'가 화제가 되었다.
한편 2011년 새해 이후 농구의 인기는 우리나라 대중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얘들아 공차자' 라는 말은 '얘들아 공튀기자' 라는 말로 바뀌었다.
청소년들의 농구에 관한 관심은 드높아져
인근의 농구코트가 모두 마비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모 중학교는 '운동장의 축구 골대를 제거하자'라는 의견으로 투표를 실시하여
축구골대를 없애고 그 자리에 농구골대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2011년 1월 30일 무한도전 방송 이후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의 운동장에는 농구코트뿐이었고
이제 더 이상 운동장은 운동장이라 부를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청소년 농구대회의 규모는 갈수록 커져 청소년 농구단만 해도 2010년 말, 전국 100개 이상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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