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안테나들
흥미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다오.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김광규 시인의 '상행'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1981년발표-1970년 대근대화,시대상의 모순을 반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시험에 출제된다고 배웠두었던 시인데, 계속 머릿 속에서 맴도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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