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대리들이 여성 직원들을 평가하고, 안영이가 애교를 운운하는 장면에 불편함을 토로하는 글의 댓글을 보면</div> <div><br></div> <div>저건 현실이 그래서 그런거다. 실제 그 또래 남성 직원들이 그런다. </div> <div>여자들은 실제 저런 처세술을 펼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오히려 리얼한 장면이다. 라는 반응들이 나오기도 합니다.</span></div> <div><br></div> <div>그렇지만 중요한건 사실 현실에 그 장면이 실제 존재하느냐 여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div> <div><br></div> <div>그렇게 따지면 고졸 출신 낙하산 장그래는 애초에 불가능한 인물이니까요.</div> <div><br></div> <div> </div> <div>작가나 감독은 현실에서 실제 발생하는 수 많은 상황 중 '의미 있는 장면'을 골라 </div> <div>'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div> <div><br></div> <div>현실이라는 이름의 수 많은 재료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전부 선택되지는 않는 다는 거에요.</div> <div><br></div> <div>회사에서 여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성추행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더 심한 일도 사실 벌어지구요. 그건 현실입니다. </div> <div><br></div> <div>그렇지만 중요한 건 작가가 그 장면을 선택해 다루는 시각입니다. 그건 주제의식과도 연결될거에요.</div> <div><br></div> <div>똑같은 배우로 똑같은 정사 장면을 찍어도,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맥락, 카메라 앵글에 따라 명작이 되기도 하고 포르노가 되기도 하는 것 처럼요.</div> <div><br></div> <div><br></div> <div>전 19화에서 다른 장면들은, 드라마 초기 분량을 볼 때 처럼 즐겁만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넘길 수 있었어요.</div> <div><br></div> <div>그렇지만 그 대리 장면은 보면서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즐거움이 모두 모욕당한 느낌.. </div> <div><br></div> <div>카메라 앵글, 이야기 등장 타이밍, 주인공들의 대사와 그것에 대한 주변인의 반응. </div> <div>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였을지 생각해봤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도무지 좋은 쪽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네요. </div> <div><br></div> <div>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성희롱의 정의를 용감하게 말하던 안영이와 </div> <div>'애교'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남성 상사들의 즐거움을 위한 여직원들의 '서비스'를 당연시하고 합리화하는 안영이. </div> <div><br></div> <div>사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전자 쪽이 완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아니, 완생이라기보다는 미생일 가치가 있는 미생.</div> <div><br></div> <div>좋게좋게 넘어가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행동하는 건 확실히 괴롭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div> <div>통념에 맞서 싸우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니까요.</div> <div><br></div> <div>그런데 안영이는 초반에 너무 심하게 당하면서 완전히 마모되어 버렸는지 "사회 생활을 하려면 그정도는 해야 한다"라고 과거의 자신을 부정합니다. </div> <div><br></div> <div>소속감. 동료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의 달콤함에 눈이 멀어 </div> <div>애초 그들이 자신을 배척했던 이유가 얼마나 터무니없는것이었는지 잊어 버리고, 그냥 어떤 비판 의식도 없이 내면화 해 버린 것 처럼.</div> <div><br></div> <div>업무 능력으로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하던, 그 용감하고 꿋꿋하던 과거의 안영이가. </div> <div>시청자들이 모두 사랑하던 그 안영이가 순식간에 '철부지'로 폄훼되는 순간, </div> <div>과거의 그녀의 그런 모습에 기쁨을 느끼던 시청자들 역시 동시에 '철부지'가 되어 버린 겁니다. </div> <div><br></div> <div>작품 속 모든 대사와 장면은 작가와 감독이 시청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div> <div>아마도 이 모욕감은 적어도 '미생'을 만드는 작가와 감독은 '꼰대'여서는 안된다는 제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div> <div><br></div> <div>모두가 미생인데 작가와 감독은 이미 완생이고, 완생에 도달한 입장에서 배우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답'을 말해주려 하는 것 같기도 했구요. </div> <div><br></div> <div>제 입장에서 그나마 그 답은 몹시 불쾌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합리화'였구요. </div> <div><br></div> <div>덕분에 개인적으로 오늘 안영이는 강제로 사회화당한 미미인형처럼 느껴졌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당연히 원작과 드라마의 내용이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은 깊은 이해와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원작에 대한 예의인거겠지요.</div> <div><br></div> <div>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는지, 역량이 부족했는지. 여건상 한계가 있었던 건지 그건 알 수 없네요. </div> <div><br></div> <div>아무튼 오랜만에 본방 사수해가며 본 작품이기에 안타까움도 큽니다. 고려하던 DVD구매는 보류할 생각이에요. 씁쓸합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