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생각도 잘 안 나는 여름날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써봅니다.
조금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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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 아래 구름 대신 면사포, 나를 향해 펼쳐진 바람의 한 자락.
한여름밤의 습기가 적당하게 올라오던 어느 날, 나는 달바라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맑은 밤이다 싶으면 생수 한 병을 들고 막연히 둔치를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소 특이한 취미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오늘이 새롭고 내일이 새롭다.
[이양?]
어느날, 녀석을 보았다.
보통 둔치에서 모여서 냥냥거리는 녀석들은 근처 멀찍이 내가 드러나기만 해도 후다닥 도망가고 마는데, 겁을 내면서도 조심스레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한 녀석이 있다. 왠지 그 날은 입이 심심해서 싸구려(가 아닐지도 모르는) 치즈육포를 좀 챙겼는데, 저녀석 뭔가 촉이 왔나보다. 혼자 도망도 안 가고 소심하게 따라온다.
"너 뭐냐?"
나지막하게 말했...?
[야앙]
다가온다.
동물 보는 눈이 퍽이나 없는 나조차도, 달빛을 받은 녀석의 몸이 보인다. 나를 바라보는 두 눈보다, 녀석의 몸이 먼저 보인다.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았다.
갈비뼈가 이렇게 뚜렷하게 만져지던가?
내 눈이 잘못된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녀석은 진짜 너무 안타까워서 끔찍하게 여겨지리만치 말라있다. 몸이 꾀죄죄한건 별개로, 정말로 좀만 강하게 만진다면 픽하고 쓰러질것 같이 말라있다.
주머니를 뒤지니, 그쪽으로 녀석의 고개가 돌아간다.
"주랴?"
알아들었나?
열렬히 [이양, 양]거리면서 눈빛이 확 밝아진다. 와... 고냉이들은 사람 말 알아듣는다고 하는데 진짜인가보다.
치즈육포라서 씹기도 쉬울 것이니, 조심스레 하나 꺼내어 건네본다.
"먹어라"
육포가 입에 들어간 순간 우는 것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내며 열렬하게 씹어댄다.
잠깐 동게에서 사람이 먹는거 주면 고냉이들 몸에 안 좋다고 한 내용들을 떠올려서 멈칫 했지만, 얘는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닌듯 하니 하나 더 꺼내어 준다. 빌어먹을... 육포 포장이 뭐 이리 큰지, 한 조각 빼내면 없어진거 바로 티난다.
그 뒤로도 몇 점 더 줬는데, 여전히 열렬하게 씹어삼킨다. 풀벌레의 노래 사이에 녀석이 씹고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다.
하나더 씹으려다 말고, 내 물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 참 ㅋㅋㅋㅋㅋㅋ"
그저 웃었다.
이미 그 행동만으로 뜻은 전달되었기 때문에, 두어조각 남은 육포 봉지는 주머니에 구겨넣고 그 손에 물을 따라서 내밀어보니 물을 열렬하게 핥는다.
(고양이 혓바닥 되게 까끌까끌하더라)
[이양]
만족할 만큼 마시고나서 나를 바라보다가, 쪼그린 내 무릎 위로 몸을 올리려한다.
"안 돼 이 시끼야."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나니, 몸뚱이를 내 다리에 연신 비비다가 배를 드러내며 누워버린다.
잠시 쓰다듬다가 다시 일어나서 가려 하니, 나를 따라오려 한다.
"미안해. 못 데려가."
왜 말을 그렇게 꺼냈는지는 모른다. 허나, 왠지 녀석이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몇마디를 더 했지만, 생각은 안 난다. 그저 데려갈 수 없다는 어필만 계속 했다.
녀석의 두 별이 빛난다.
물을 머금었는지 아롱아롱 흔들린다.
안되겠다 싶어 발을 크게 구르며 위협하니, 분위기가 착 가라앉더니 슬며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러난다.
미안해.
달이 내린다.
별들도 같이 내린다.
더이상 녀석을 보고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