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니요.
지금 내게 관심을 보이시는 겁니까?
 
 
어제 오후 옆집 청년이 문득 현관문을 두드리더니, 내 세탁기에서 물이 샌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의 표정이 기대 이상으로 다정해서ㅡ마치 내게 안녕하십니까, 라고 묻는 것만 같아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 진정한 연대에 굶주려 있었다는 증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단코 안녕치 못하다. 삼년째 복용하고 있는 항우울제와 우울증, 가면성 우울증, 경쟁에서 이기고 또 이기고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불안장애, 그에 못지 않은 치사량의 외로움까지. 나는 거의 매일 자살'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이런 내게 안녕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겠는가. 내게는 아직 안녕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다.
 
한때는 모든 게 심지가 굳지 못한 내 탓이라 여기기도 했다. 나의 병증을 남탓으로 돌리면 루저로 낙인찍히고 손가락질을 받을 거라 지레 짐작했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내가 안녕하지 못한 건 당신들 때문이라고. 내 문제는 정치나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고.
 
그렇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현대인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루종일 장성택의 옆모습만 보여주는 언론에, 그에 잠식당한 시민의식에, 그것을 기반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남몰래 획책하는 정부여당에 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째서 공공재인 철도에 자회사와의 경쟁이 필요한가. 어째서 병원들은 의료민영화를 통해 서로 경쟁해야 하나. 어째서 모두가 경쟁 경쟁 경쟁해야 한다고 당신들은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그놈의 경쟁경쟁경쟁을 내려놓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을 정녕 모른다할 참인가.
어째서 더 성장해야 하나. 너무 커져버려 괴물이 된 기업들을 언제까지 더 성장시키려는가. 나를 보라. 당신들이 원하는 경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와 나의 친구들이 당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사회는 탯줄이고 나는 연약한 태아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이 탯줄을 통해 독을 먹였을 때 나는 힘없이 그것을 받아먹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독이 섞인 침을 뱉고 내가 가진 약을 나눠먹자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의 탯줄ㅡ사회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 있다. 이럴 때 태아는 종종 엄마의 생명을 구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예대 문창과 05학번 백수
 

ㄷㄷㄷ 설예대 문창과 클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