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스물셋 여름, 학원끝나고 집에 가던 길</P> <P>베이지색 면 반바지 붉은 티셔츠입고 나를 스쳐 저 멀리 뛰어가던 당신이 생각나오.</P> <P>여보 그때를 기억하오.</P> <P> </P> <P>스물셋 겨울, 나 캐나다 가기 전 마지막 만남..</P> <P>청량리 기차역에서 처음하는 이별에, 아쉬움에 하염없이 울던 그 애틋함이 생각나오.</P> <P>여보 그때를 기억하오.</P> <P> </P> <P>스물넷 여름, 한번 더 찾아온 이별</P> <P>17시간 비행 내내 꾹꾹 눌러봐도 터져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몇달 이별도 이리 괴로운데..</P> <P>나 그대보다 꼭 먼저 죽으리라 결심했었오.</P> <P>여보 그때를 기억하오.</P> <P> </P> <P>스물다섯 발렌타인데이, 나 그대위해 밤새 과자집을 만들었었소.</P> <P>방은 초코시럽 생크림으로 엉망진창이 되었고 나도 녹초가 되었지만, 과자집 받고 기뻐했던 그대 얼굴이 생각나오.</P> <P>여보 그때를 기억하오.</P> <P> </P> <P>스물여섯 봄, 나 그대에게 헤어지자 했었오.</P> <P>내가 헤어지자 한 것인데 내 팔이 잘려나간듯 팔이 저리고 내 심장이 없어진 듯 난 숨을 쉴 수 없었오..</P> <P>나의 헤어지잔 얘기에 손을 떨며 안피던 담배를 입에 물던 그대의 모습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오..</P> <P>여보..그때를 기억하오..</P> <P> </P> <P>그대가 없던 스물여섯, 스물일곱 내 삶..</P> <P>밤에는 악몽으로 낮에는 우울증으로 하루도 울지 않고 하루도 편히 자질 못했소..</P> <P>그대가 나의 일부고, 그대없이 나는 살 수 없다는 걸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며 깨달았소..</P> <P>여보..그때는 내가 바보였소.</P> <P> </P> <P>스물여덟 봄, 그대 춘천 내 친정집에 결혼 허락 받으러 갔었소.</P> <P>어릴적부터 그대를 봐와 편하게 그대를 대하는 우리 부모님께 갑작스러워하실까 두려워 결혼이란 말을 차마 입밖에 못꺼내고</P> <P>그렇게 그냥 놀기만하다 집을 나와 당신은 자책하고 나는 그게 재밌다고 놀리면서 웃던게 생각나오.</P> <P>여보..그때를 기억하오..</P> <P> </P> <P>스물아홉 1월, 산전검사하러 찾은 산부인과에서 임신소식을 들었소..</P> <P>혼자 검사 받고 나와 당신에게 얘기했고 당신은 장난치지 말라고 웃어넘기는데..</P> <P>못믿어 하는 당신을 난 더 놀려 먹고 싶은데 눈물이 자꾸 나와 진짜 임신인걸 들켜버린 그날이 생각나오.</P> <P>여보..그때를 기억하오..</P> <P> </P> <P>세월은 그렇게 흘러 우리 둘이 이제 우리 셋이 되었소..</P> <P>당신 꼭 닮은 아들도 이제 당신 못지 않게 소중하지만...</P> <P>우리 아들에겐 비밀인데 난 그래도 당신이 조금 더 소중하오..</P> <P> </P> <P>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처럼, 우리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시집 장가도 보내고</P> <P>그때까지도 지금처럼 두 손 꼭 잡고..</P> <P>그때까지도 여지껏 그래왔듯이 그렇게 함께 하오.</P> <P> </P> <P>그리고 당신이 늘 말했듯 내가 먼저 가겠소..</P> <P>당신 없이 내가 하루도 살 수 없는거 아는 당신이 그러라 허락해주지 않았소..</P> <P>내가 먼저 갈때까지 당신 내 옆에서 건강하시게..</P> <P>사랑하오..</P> <P>나의 반쪽, 나의 소울메이트, 나의 남편..</P> <P> </P> <P> </P> <P> </P> <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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