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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gomin_569368
    작성자 : 간장씨
    추천 : 12
    조회수 : 213
    IP : 119.68.***.105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3/01/30 02:33:30
    http://todayhumor.com/?gomin_569368 모바일
    아버지. 이제 당신을 놓아드릴 때가 온 것 같네요.
    <p>솔직하게 고백하면 전 당신이 미웠어요.</p><p>당신 이름으로 돈을 못 빌려 갓 사회 초년생이 된 아들 이름으로 몇 천만원 빚을 지고</p><p>그거 갚는 데 단 한푼도 당신은 보태 주시지 않았죠.</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기억이 남아 있는 20몇 년 동안 당신은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참 신기했어요. 키도 작고 외모도 별로인 당신에게 여자들이 계속 달라붙었던 사실이.</span></p><p>교회 선생님도, 보험 아줌마도, 전 회사 동료도 당신의 무엇을 보고 반했던 걸까요.</p><p><br></p><p>중국으로 쫓기듯이 출국했다가 돈도 제대로 못 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당신이</p><p>그래도 조금이라도 변했기를 바라던 어머니는 무슨 죄인가요.</p><p>갈 곳 없던 당신은 나와 어머니가 살던 집에 얹혀 한 달을 살다가</p><p>어머니가 아끼던 장신구랑 옷가지를 집어 들고 또 나가 버렸지요.</p><p><br></p><p>더 이상 참지 못한 어머니가 이혼을 이야기하고 당신이 내게 어머니를 설득해 보라 했을 때</p><p>답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난 어머니 편이었어요.</p><p>서류상으로라도 당신이 어머니 남편으로 남아있는 그 사실이 지긋지긋하게 싫었거든요.</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몸도 안 좋은 어머니에게 얼마 안 되는 생활비 가져다 드린 건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당신이 아닌 나였으니까요. </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사실 섣달 그믐날 밤에 당신의 문자를 받고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아 전화기를 꺼 버렸어요.</span></p><p>몸도 안 좋고 하다길래 그냥 저녁 때 한번 찾아가나 보자 라는 기분이었죠.</p><p>다음날 아침 전화기를 켜자 수없이 많은 매너콜 문자와 함께</p><p>"아버님 돌아가셨습니다. ㅇㅇ교회", "사건번호 xxx 부평경찰서 ㅇㅇㅇ경사에게 접수되었습니다"</p><p>라는 문자 메시지가 뜨더군요.</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그렇게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당신은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어느 교회 다락방에서 설날 아침에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지요.</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당신을 관에 넣을 때, 그리고 뜨거운 화로 속으로 당신을 담은 관이 들어갈 때</p><p>내가 미친 놈처럼 울부짖으며 눈물샘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눈물을 흘렸던 건</p><p>잘 되면 어묵에 뜨끈한 정종 한 잔 하자던 당신과의 그 약속을 못지켜서일까요,</p><p>아니면 그래도 아버지라는 당신의 존재감이 일순간에 한 줌 잿더미로 변해서일까요.</p><p><br></p><p>아버지. 당신의 존재를 내 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흩뿌린지 벌써 3년이 되어 가네요.</p><p>효자든 후레자식이든 옛날 같으면 묘 옆에서 매일같이 곡하며 지내야 했다던 그 3년이 말이예요.</p><p>나는 매일 당신이 지어 놓은 빚을 갚으며 가슴 속으로 곡을 했으니 3년상 못 치른 건 그걸로 봐 주세요.</p><p>그리고 이번 설날을 끝으로 이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당신을 찾아가지 않을 거예요.</p><p><br></p><p>당신과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서</p><p>바람 피우면 당장 잘라버리겠다고 커다란 가위를 직접 사다 놓았고요.</p><p>술 좋아하던 출발은 같았지만 나 지난 주부터 알코올중독 클리닉에 내 발로 다니고 있어요.</p><p><br></p><p>참 당신이 많이 미웠고, 지금도 미운데요.</p><p>그래도 한 번은 보고 싶네요.</p><p>설날에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한 번 크게 울게요.</p><p><br></p><p>거기선 부디 책임감 있게 사시길 바래요, 아버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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