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이어지는 1박2일 캠핑을 가장한 야유회를 다녀온 뒤, 지친 몸을 끌고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일단 자고,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자고, 모레는 석가탄신일이니까 자야지.' 했는데, 갑자기 그냥 문득 '나는 언제부터 휴일에는 이렇게 잠만 잤지? 그래, 나도 어디가 됐든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볍게 다녀올 만한 곳을 찾던 중, 통영과 부산으로 후보가 좁혀졌고, 통영으로 마음이 95% 기울었을 때, 사촌동생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부산"
사촌동생께서 부산으로 가라 하시니, 너구리찡이 부산으로 향하더라 -너구리서 5장 24절-
그렇게 해서 부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유에 올라온 여행게, 요리게 포함 다양한 게시판의 글을 종합해서 계획을 세우고 유스퀘어로 향했는데...
"서부터미널행 버스 매진입니다."
사상에 내려서 바로 돼지국밥부터 먹으려고 했는데...
출발 전부터 이렇게 계획이 엎어지는가 했지만, 계획은 유동성이 있어서 계획이죠.
"노포동 주세요."
그렇게 해서 도착한 노포동 터미널.
날씨가 매우 좋네요.
저의 여행이 순탄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라고 이때까지는 생각했습니다.
1박2일 여행이므로 잠을 자야 하죠.
제 계획대로라면 해운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중 한 군데를 숙소로 정하면 됩니다.
미리 봐둔 곳에 전화를 했고, 방은 없었죠.
그렇습니다, 제가 잊고 있는 게 있었던 거죠.
제가 노는 날이면 남도 노는 날입니다.
부산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죄다 매진된 듯 했어요.
딱 한 군데 1명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봤는데, 여성전용이더라고요.
잠시, 정말로 잠시, 한 0.8초간 '이거 떼면 거기서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포기.
설마 이 넓은 부산에 나 하나 잘 데 없을까, 안되면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밤새고 병나발이나 불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출발했습니다.
우선 원래 계획대로 서부터미널이 있는 사상에 가서, 매우 유명하다는 그 돼지국밥을 먹고, 두번째 장소인 태종대로 향했습니다.
돼지국밥 사진은 분명히 찍었는데, 없어졌네요...
깍두기에서 사이다 맛이 나는 기적!
태종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걸 찍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이제 조금만 가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 20분인가 30분을 더 들어갔다고 합니다.
원래는 자갈치시장 구경한 다음에, 버스 안 타고 남포동에서 태종대까지 걸어갈까 했었거든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알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생각이었는지...
그렇게 해서 태종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이 매우 많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뭐다?
내가 휴일이면 남도 휴일이다.
유람선 타라는 호객행위도 무시한 채, 호기롭게 태종대에 입장!
'나는 걸어서 태종대를 정복할 거야!' 라는 굳고 강한 결심!
은 다누비 열차 탑승장을 지나서 사라졌습니다.
'걸어가면 다 못 보지만, 유람선은 다 볼 수 있어요! 열차는 1시간 반을 기다려야 되는데, 유람선은 15분만 기다리면 돼요!' 라는 아저씨의 말에 넘어가서 그만...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이 사진을 찍었고, 그 후로 1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유람선 한 바퀴에 15분인 건 맞는데, 그걸 4바퀴 기다려야 된다는 얘기는 안 하셨더라고요...
어찌됐든 유람선 출발!
선착장에서 대놓고 '갈매기가 좋아하는 새우X'이라면서 갈매기한테 뿌리라고 과자를 팔고 있지만, 저는 사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 사도 다른 사람이 사서 뿌리면 갈매기가 오겠죠... 라는 생각 역시 오산이었습니다.
안 와요, 안 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유람선 한 번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만 먹어도 15분에 한 번 꼴로 새X깡을 먹는데, 걔들도 질릴 듯요.
X우깡 약탈자들.jpg
유람선씩이나 타놓고서 경치 사진이 적어 보이는 건 착시가 아닙니다.
경치 구경하려고 유람선 탄 건 사실인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경치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립니다.
2015년 5월 24일 오후 3시 30분경에 태종대에서 유람선 타셨던, 흰 블라우스에 남색 멜빵치마 입은 여자분은 잘 들으세요.
그 쪽 때문에 제가 경치를 하나도 못 봤습니다.
그 쪽 쳐다보느라고요...
그러니 책임져 주셨으면 합니다.
굽신굽신.
유람선 타고 다 봤으니까 이제 조개구이나 먹으러 갈까 했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남은 관계로 그냥 걸었습니다.
이쯤에서 팁 하나 드리자면...
다누비 열차 타세요.
제가 갔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열차가 계속 밀리고 밀려서 줄이 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끝도 보이지 않는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저보다 빨리 구경을 마쳤습니다.
현대과학문명은 이용하라고 있는 겁니다.
걷다가 도착한 첫번째 난간.
난간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내가 뭐한다고 이 커플 밭에 와서 이러고 있지... 쪽쪽거릴 거면 어디 다른 데서 했으면 좋겠는데...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커플 여러분, 사진 찍으면서 뽀뽀하지 마세요.
부러워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여기는 전망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서 붉은색이 보이는 신비!
이 섬은 주전자섬이라고 합니다.
주전자처럼 보여서 주전자섬인데, 어느 각에서 봐야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등대!
딱 여기까지 찍고, 자갈마당에 가서 조개구이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길을 잃었습니다.
네X버 지도를 켜보니 '간이매점까지 가서 횡단보도 건너서 유턴해서 다시 올라오세요' 라고 하더라고요.
뭔가 수상쩍기 짝이 없지만, 일단 간이매점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여쭤봤더니 "올라가면 안되고, 저리 내려가세요."
여러분, 기계는 믿을 게 못 됩니다.
사람이 최고죠.
현대과학문명은 무슨...
누가 "현대과학문명은 이용하라고 있는 겁니다" 같은 소리 하면 "에이, 쯧쯧" 하세요.
에이, 쯧쯧.
자갈마당!
바닥이 콘크리트인 것 같지만, 자갈마당!
그리고 오유 게시물에서 본 개!
두 마리니까 복수형으로 개s!
그것은 아마도 고된 업무에 시달리다 지쳐 잠시 눈을 붙인 현대 직장인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개들의 퍼포먼스가 아니었을까...
또 다른 개!
곰 같은 개!
지나가던 커플의 하트 모양 인형을 깨물어서 침으로 적신 개!
그리고 조개구이.
오유에서 본 글에는 소자 30,000원이라 그래서 30,000원 맞춰서 갔는데, 그 사이에 올랐는지 40,000원!
그래서 인근 ATM에서 돈을 추가로 찾아왔습니다.
곁다리도 먹어야 하니까 약간 여유있게...
홍합탕! 쌈장! 왜 주는지 모르겠지만, 채소! 그리고 홍합탕과 계산서 사이의 저건 버터입니다.
옆 테이블 커플이 "치즈인가? 설마 치즈?" 하면서 집어먹더라는 건 비밀.
자글자글 익어가는 조개.
원래는 사이다만 먹고 오려고 했는데, 소주를 먹어줘야 예의일 것 같아서 한 병 시켰습니다.
"뭘로 드릴까요?" 하시길래 "제가 여기 안 살아서요. 여기서는 뭐 주로 먹나요?" 해서 추천받은, 아이유 대표곡과 이름이 비슷한 소주를 마셔봤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고 괜찮았어요.
광주에서 마시던 나뭇잎 소주보다는 제 입맛에 더 맞았던 것 같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마피아들은 고개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이럴 때는 뭐다?
불꽃놀이다!
제가 불꽃놀이라면 또 사족을 못 쓰죠.
어릴 때부터 불꽃놀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집도 태워먹...지는 않고, 먹을 뻔만 했어요.
그때 같이 불 붙이던 옆집 꼬마애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예뻤는데...
아무튼 30연발 폭죽을 샀는데, 뭔가 흐물흐물하게 나가서 실망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꽃불이라도 제가 원하는 대로 타줘서 기쁘네요.
이거 한 뒤에 라이터 잃어버린 건 안 기쁘고요...
부산에 갓 도착한 뒤, 잘 곳을 잃은 저의 변경된 계획은 범어사 인근에 사시는 외삼촌댁에 가서 하루 묵는 거였는데, 시각이 애매하더라고요.
불꽃놀이 끝나고 바로 갔으면 갈 수 있었겠지만, 광안대교는 꼭 찍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욕망에 휩싸여서 그만 광안리행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잠은 거기서도 어떻게든 자겠지. 못 자면 광안리 모래사장에서 병나발이나...' 하는 마음으로 출발!
그렇게 도착한 광안리.
광안대교를 예쁘게 찍고 싶었으나...
아무리 설정을 바꿔보고...
발버둥을 쳐봐도...
예쁘게 찍을 수가 없는...
부르다 목이 메어...
차마 다시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광안대교.
인근의 호텔에서 모래사장에 쏴준다고 합니다.
근데 왜 하필 속담요...
속담이 싫은 건 아닌데, 뭔가 다른 거...
광안대교를 찍기 위해 걷던 중에, 버스킹 중인 남자분을 만났습니다.
왜 광안리에서 여수밤바다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는 되게 좋으시더라고요.
마치 한석규처럼.
하지만 남자 노래에 그렇게 깊고 큰 관심이 없던 탓에 사진이나 찍으러 가자고 갔는데, 그 결과물이 아까 보신 광안대교...
슬퍼서 다시 돌아오는데, 여자 보컬이 한 분 더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바닥에 주저앉아서 듣기 시작한 게 대략 10시 45분쯤?
그렇게 저는 3시 반까지 그 자리에서 버스킹을 계속 들었다고 합니다.
따... 딱히 그 여자분이 예뻐서 그랬던 건 아니라는...
물론 귀여우시기는 했습니다.
사투리는 역시 부산이죠.
매력이 아주 그냥...
버스킹 끝나고 근처 찜질방 가다 보니까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왜 그렇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지...
6년 전에 헤어진 전 여친 닮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그리고 여담으로 원래 노래하고 있던 남자분, 98년생이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버스킹 동안 5번인가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 반응이 다 똑같...
"뭐?!"
마치 있어서는 안될 일을 들은 듯한 일관된 반응.
그렇게 광안리의 밤은 저물어 갑니다.
모닝 광안대교!
원래 계획대로 해운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면, 이 풍경 대신 모닝 해운대를 봤겠죠.
하지만 전날의 버스킹이 좋았기 때문에,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튿날의 일정은 남포동에서 비빔족발을 먹고, 영도의 어묵가게에 가서 어묵을 사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버스 타러 가면서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비빔족발은 과감히 포기!
맵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매운 걸 먹지 못합니다.
떡볶이가 매워서 먹지 않는 20대 후반의 남성!
인터넷에 맵다는 표현이 있는 음식 중에 떡볶이보다 덜 매운 건 없다는 게 제 생각이죠.
그러므로 그냥 건너뛰고 어묵가게로 직행!
역시나 줄은 끝없이 이어지고, 가게 안에도 사람이 꽉 차서 직원분들이 입장인원 통제도 하고...
사실 여기야말로 제 부산 여행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죠.
사촌동생께서 계시를 내리신 뒤에 '부산에 뭐 있지...' 하다가 '아! 어묵가게 있다 그랬지! 거기 한 번 가보려고 했는데, 이번에 가야겠다!' 해서 계획을 짜기 시작한 겁니다.
그만큼 저의 기대는 한껏 High해진 상태였죠.
어묵고로케 6개 1세트!
새우! 고구마! 치즈! 카레! 땡초!
뭐가 2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새우는 아니예요.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갔을 때 새우가 다 떨어져서 새로 튀기는 걸 기다렸다가 사왔거든요.
그때 이미 새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5개가 들어있었으니까, 2개가 있는 건 새우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가게 맞은편에 가게 고객들을 위한 휴게실이 있어요.
전자렌지와 테이블, 의자, 자판기 등이 있죠.
전자렌지에 고로케와 어묵을 데워서 먹은 결과...
어묵맛입니다.
맛은 있어요. 그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가 봐요.
실망스러운 맛은 아닌데, 뭔가 음...
하지만 맛있어요.
가게 2층에 있는 체험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어묵 캐릭터가 귀여워서 찍어봤어요.
그리고는 곧장 서부터미널로 가서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까 아쉬움이 조금은 남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보람찬 여행이었습니다.
먹은 건 맛있었고, 본 건 아름다웠고, 겪은 일은 즐거웠으며, 만났던 사람들은 유쾌했죠.
가길 잘했던 것 같아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네요.
그때는 사촌동생님도 같이 데리고 가야겠어요.
읽어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