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div><br></div> <div>첫 기억은 따개비 한문숙어. </div> <div>딱딱한 한석봉 천자문을 볼 때는 외워지지 않던 한자들이 쉽게 읽히는 신기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div> <div><br></div> <div>다음은 만화로 보는 한국사/세계사 시리즈 였었다. 지금 보면 잘못된 부분도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div> <div>역사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3역사(국사,근현대사,세계사)로 수능을 봤고</div> <div>대학도 사학과를 나왔다. 취직은 더럽게 안 되지만, 아직도 역사는 사랑한다. 그 애정의 뿌리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분명하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어른들은 만화를 보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span></div> <div><div>그들에게 만화는 TV만도 못 한 '저질매체'였으니까. 그래. 컴퓨터 게임처럼 말이다.</div> <div>많은 탄압이 있었다. 학교에서 만화책을 압수당하고, 부모님께 매를 맞기도 했다. </div> <div>그래도 만화가 좋았다.</div></div> <div>직접 만화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내가 그린 만화보다 남이 그린 만화를 보는게 더 좋았다.</div> <div>내 그림에 만족하지 못 하기도 했고.</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중학교~고등학교 즈음에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만화를 봤다.</span></div> <div>이전까지는 만화방에서 7권에 2,000원을 내고 드래곤볼, 슬랭덩크, 겟백커스 등의 만화를 봤었던 내게</div> <div>집에서 공짜로 아무 제한없이 볼 수 있는 만화는 신세계였다.</div> <div>파란닷컴에서 처음으로 웹툰-그때는 웹툰이란 단어도 없었던걸로 기억하지만-을 접했고,</div> <div>야후에서 호민스님의 짬을, 다음에서 강풀의 순정만화를 보았으며,</div> <div>마린블루스, 캬라멜 스튜디오, 낢의 홈페이지와 루나파크에서 그들의 일상에 공감했다.</div> <div>물론 양형의 만화와 각종 스포츠 신문의 므흣한 만화도 좋아했었다.</div> <div><br></div> <div>나는 그들의 세계를 사랑했고, 더 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만화를 그려줬으면 했다.</div> <div>많은 작가들이 생활비를 걱정하며 근근히 살아간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div> <div>다행히 조금씩 웹툰 산업은 성장했고, 나는 약간의 돈이나마 웹툰에 소비하며 보람을 느꼈다.</div> <div>다시보기를 구매하고, 그들의 책을 샀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누군가는 공짜로 보는 웹툰에 뭐하러 돈을 쓰냐, 라고도 했지만, 상관없었다.</span></div> <div>난 그게 즐거웠으니까. 언젠가 대단한 작가가 나타나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거라 확신했으니까.</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레진이 처음으로 출범했을 때, 나는 한 편으로 놀랍고, 한 편으로는 걱정됐다.</span></div> <div>이글루스에서 그가 쓴 글을 낄낄대며 읽기는 했지만, 웹툰 산업은 좀 뜬금없었으니까.</div> <div>거기다 아직까지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div> <div>내 걱정이 무색하게, 레진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div> <div>작가들이 레진에서는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에 기뻤다.</div> <div><br></div> <div>그래서 레진에서 열심히 코인을 충전하며, 열심히 코인을 소모했다.</div> <div>엄청난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옷 좀 덜 사고, 밥 좀 싼거 먹으면서 만화를 봤다.</div> <div>부모님은 다 큰 놈이 아직도 만화를 보냐며 핀잔을 줬지만, </div> <div>내가 좋아서 그런다고 당당하게 말했다.</div> <div>웃기지만 웹툰 산업에 기여한다는 약간의 자부심도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지금, 속칭 메진 사태가 터지고나서</div> <div>내가 웹툰을 봐온 10년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오랜 짝사랑을 한 것같은 기분이다.</span></div> <div>나는 그들의 세계를 사랑했지만,</div> <div>그들에게 나는 코인 자판기에 불과했던걸까.</div> <div><br></div> <div>차라리 그 돈을 나를 위해 썼으면,</div> <div>차라리 그 돈을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썼으면 어땠을까.</div> <div><br></div> <div>나는 무엇을 위해 나를 멸시하는 이들에게 돈을 쓰며 보람을 느낀 걸까.</div> <div><br></div> <div>좋은 만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일꺼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을까.</div> <div><br></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물론 작가들이 굳이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도 알고 있다.</span></div> <div>그들의 세계는 창작물일 뿐, 작가의 투영이 아니니까.</div> <div>그냥 내가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 착각한게 잘못인 거다.</div> <div><br></div> <div>그래도 그들에게 쏟은 애정을 생각하면,</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열심히 코멘트를 달고, </span>그들의 만화를 홍보하면서 </div> <div>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도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div> <div>그냥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div> <div>그래. 그냥 그런 거다.</div> <div><br></div> <div>앞으로 웹툰을 아예 안 본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div> <div>웹툰은 이미 내 일상이 되었고 나는 맺고 끊는게 확실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러나 돈을 써가면서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냥 그날의 웹툰을, 시간이나 때우기 위해 건조하게 보겠지.</span></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젠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는 더 이상 그들의 세계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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