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고려사 지리지 서<br />경계선의 서북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으로 하였다.</div> <div> </div> <div>성종 10년(991) 압록강 밖 여진인을 옮겨 백두산 밖에 살게 함</div> <div> </div> <div>정종 7년(1041) 송강진 설치</div> <div> </div> <div>문종 27년 (1073)</div> <div>2월 동여진 귀순주,창주,전성주,공주,복주,온주 군현설치<br />5월 서여진 귀순<br />7월 흑수의 역관 가서로가 그간 뭇여진을 설득한 공로를 인정하여 "고맹"이라는 이름 하사<br />9월 동여진 귀순하여 11주 설치 </div> <div>빈주(濱州)·이주(利州)·복주(福州)·항주(恒州)·서주(舒州)·습주(濕州 )·민주(閩州)·대주(戴州)·경주(敬州)·부주(付州)· 완주(宛州) </div> <div> </div> <div>선종 5년(1088)</div> <div>"승천황태후 당시 요동성 서부는 거란으로 붙이고 개사수 동부는 고려 땅으로 하였다."</div> <div>(개사수 - 김부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추모가 건넌 엄호수를 압록강 동북방의 개사수라고 함)</div> <div> </div> <div>숙종 9년(1097) </div> <div>거란의 책문에서 "귀국의 북방경계는 용천(상경용천부)에 이르렀다."</div> <div> </div> <div>예종 2년(1107)</div> <div>윤관 17만대군 여진족 정벌</div> <div>동북9성 구축</div> <div>함주(咸州)·복주(福州)·영주(英州)·길주(吉州)·웅주(雄州)·통태진(通泰鎭)·진양진(眞陽鎭)·숭녕진(崇寧鎭)·공험진(公嶮鎭)</div> <div> </div> <div>예종 3년(1108)</div> <div>여진 완안부의 9성에 대한 지속적인 간청+침범, 고려 내부의 윤관에 대한 시기로</div> <div>9성을 여진에 반환함</div> <div> </div> <div>예종(1115) </div> <div>완안부, 여진족 통일, 금나라 건국</div> <div> </div> <div>예종 12년(1117)<br />거란이 침탈했던 보주를 되찾아 의주로 고침</div> <div> </div> <div>예종 12년(1117)</div> <div>금나라에서 화친을 제의하였으나 화답하지 않음<br />"형인 대여진 금국황제는 아우 고려국왕에게 글을 부치노라</div> <div>우리의 조상은 한 조각 땅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이라 섬기고, </div> <div>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하여 공손히 하여 왔었다." </div> <div> </div> <div>================</div> <div>이상을 보면.. </div> <div>고려는 후삼국시대에 발해가 멸망하면서 발해유민과 말갈여진 일부가 고려 국경 안으로 귀순해 왔습니다.</div> <div>고려의 북진정책은 서경을 중히 여기고, 거란과의 전쟁 극복과 강동6주 확보로 서북 압록강까지 이루어졌구요.</div> <div> </div> <div>거란과의 전쟁 극복 이후 대외적으로 국가의 명성을 떨친 고려는 </div> <div>그 뒤 거란의 영향 하에 있는 숙여진 말고 동쪽의 생여진에 대한 일정 컨트롤을 한 것 같습니다.</div> <div>성종대의 여진족 옮긴 기사나 거란으로부터 개사수 동쪽을 인정받은 것을 보면 말이죠.</div> <div> </div> <div>고려가 전성기로 치달은 문종대에 이르러서는</div> <div>여진족들 스스로가 고려에 귀순하여 군현을 설치합니다.</div> <div>영향권에서 고려 체제 안으로 편입되기 시작한거죠.</div> <div>그 범위는 두만강유역,간도지역까지 광범위합니다.</div> <div> </div> <div>숙종 때, 거란의 책문을 보면 북쪽 경계가 용천이라고 합니다.</div> <div>현재의 연변 북쪽 영안에 있던 옛 상경용천부..</div> <div> </div> <div>그러나 거란에 핍박받고 고려의 일정 통제를 받던 여진족들이</div> <div>12세기 들어 완안부를 중심으로 서서히 세를 모읍니다.</div> <div> </div> <div>예종 때의 동북정벌은 여진족들의 침탈, 즉, 여진족들이 컨트롤을 벗어나면서</div> <div>이를 억제하기 위한 정벌이었죠. </div> <div>정벌은 성공하였으나 사민정책 등을 통한 완전한 고려영토로 굳히기는 실패했습니다.</div> <div>여진은 곧 몇년 뒤 금나라를 건국할 정도로 각성하고 성장해 있었죠.</div> <div> </div> <div>일단 굳히기 단계까지는 아니나 어쨌든 고려 북방경영이</div> <div>교과서에 나오는 압록강~원산만을 넘어선 것이라고 봅니다.</div> <div> </div> <div>12세기 금나라가 화북까지 재패한 이후에는</div> <div>고려 내부적으로 서경파-개경파 몸살을 겪고 금나라와의 화친 쪽으로 정해지면서 </div> <div>북방경계가 현재 우리가 아는 압록강~원산만으로 굳혀져 </div> <div>원간섭기 이전까지 갔다고 보여집니다.</div> <div> </div> <div>음.. 중국측에서 만드는 역사지도대로라면</div> <div>만주 일대까지 고려 영토 색깔로 칠할만도 하구요.(중국역사왜곡 돌려까기)</div> <div> </div> <div>주논지는 전성기 고려의 북방 경영이 생각 외로 더 역동적이고 </div> <div>한계는 있으나 대단했다는 겁니다.</div> <div> </div> <div>문종대의 기록을 우연히 보고 나서 찾아 모아본 것이고</div> <div>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역게에 올려봤습니다.</div> <div> </div> <div>혹시나 하는 마음에...</div> <div>* 고려 영토를 중국측 색칠놀이처럼 만주,연해주까지 다 칠할 마음 없습니다. 분탕은 싫습니다.,</div> <div>* 그런 사람들에 대한 반감때문이랄까, 정말 식민사학이랄까, </div> <div> 어쨌든 기존 고려국경에 대한 고수로 이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문제 삼는 분들도 싫구요. </div> <div> </div> <div>애초에 천년전 국경개념은 지금과 다르니까요.</div> <div> </div> <div>고려 중기 동북계의 범위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이 있다던데</div> <div>내일 도서관에 가서 구해서 전문을 읽어봐야하겠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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