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기호라는 이론이 유력하다더군요.

뭐, 뿌리깊은 나무 - 드라마는 안봐서 잘은 모르지만 한석규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그리면서 그게 글자의 역할을 한다고 하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글자였다면 훈민정문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입부는 이렇죠.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않으니,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것이 있어도 제 뜻을 알리지 못한다. 내 이를 가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든다.

하늘 천. 天 어떤 사람은 천이라 읽고, 어떤 사람은 텬이라 읽고, 어떤 사람은 쳔이라 읽고 서로 발음이 다 달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이를 통일하기 위해서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는 거죠.

근데 원래 창제 목적과는 달리 쓰다보니 이게 너무 편한겁니다. 배우기도 쉽고, 접근성이 말도 안되게 좋아서 아녀자들과 백성들이 널리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을 언문이라 칭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습니다. 문자가 아닌 발음기호였기에 가능했던 거죠. 아무리 사대부들이라 한들 왕이 만들어 어명으로 반포한 문자를 언문이라 일컬어 모욕하는 것은 반역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공공연하게 훈민정음을 언문으로 칭했고 그에 대한 제재가 없었던 걸 보면 세종 역시 훈민정음이 문자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백성들 사이에서 문자화되자 그것에 대한 명칭으로 '언문'이라 함은 그냥 인정했던 걸로 보입니다.

언문이 이두문자보다 훨씬 쓰기 편하고 배우기 편했던 건 어쨌든 사실이었으니 만든 사람 입장에서 자기가 만든 것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측면은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랬던 훈민정음이 '한글'로써 문자화 된 것은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가 이를 체계화시킨 뒤부터라는 거죠.

물론 그 이전에도 이미 '문자'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지만 체계화된 건 조선어학회 이후부터라는 거고, 세종 시대에는 '문자'로 사용할 목적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건 아니라더군요.

예전에 어문학교수님께 들었을 뿐이라, 딱히 증빙자료는 댈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