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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의 유래
프랑스의 국가(國歌)는 유명한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이다.
즉 <마르세이유의 노래>를 가리키는 것인데, 어째서 한 나라의 국가가 한 지방에서 유래되었는지 여기서 살펴 보자. 1792년 초에 프랑스 국내가 대혁명으로 분란이 일고 있을 때, 유럽 각국은 프랑스 왕실을 옹호하려고 소란을 부렸다.
입법 의회는 그 해에 국왕 루이 16세를 강요해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게 했다. 그 무렵에 북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는 르제 드 리르라고 하는 젊은 공병 장교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의용대 2개 대대가 그 거리에서 출정하게 되었다. 4월 25일에 장행회(壯行會)가 열리도록 예정되었는데 시장인 디트릿크는 르제 드 리르가 시작(詩作)과 음악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그 날 출정하는 군인들을 위해서 새로운 군가를 만들라는 청탁을 했다.
그는 곧 별실로 들어가서 감격에 휩싸인 채 하룻밤 사이에 <라 마르세이예즈>를 작곡했다. 그 당시의 곡명은 <라인군의 군가>였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에 극장의 전속 가수가 이 군가를 연습해서 정오에는 광장에 모인 출정 군인 6백 명 앞에서 부르게 했다. 그러자 대뜸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켜서, 그 자리에서 당장 의용병 지망자가 9백 명으로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군가는 부대에서 부대로 전해졌고 특히 8월 10일, 즉 루이 16세가 퇴위하던 날, 파리로 상경한 마르세이유의 의용병들은 소리 높이 이 군가를 부르며 샹 젤리제의 대로를 행진하게 되었다.그러자 거리에 모여 든 시민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이 노래는 삽시간에 온 시내에 퍼졌다. 파리 시미들은 <마르세이유의 군가>라고 불렀으며 그 결과 오늘의 유명한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된 것이다. 그 후 3년 뒤인 1795년에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살리에리(1750-1825)는 이 곡을 최초로 자기 작품인 <파리 미라>에 채택해서 썼으며, 또한 1833년에는 슈만(1810-1856)이 비인에서는 금지된 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26번 <비인의 사육제>의 주요 선율로 썼다. 다시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서곡과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擲彈兵)>에도 사용했다. 그 밖에도 바그녀,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등이 채용하는 등 <라 마르세예즈>는 유명한 곡이 된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 에서 단체로 부를때 나오는곡이기도 하지.
원래는 "군가" 용으로 만든 노래고 (공식 군가입니다. 내란음모곡이 아니라)
위에 가사에서 진하게 표시된부분 듣기만 해도 섬뜻하지...
프랑스 애국가만 아니였으면 아마 국내에선 금지곡으로 되어있을듯
PS.근데 이글 썼다고
ㅌㅈ당 쉴드니 종북,빨깽이드립 나올거 같네..
그걸알고 글올릴까 말까 고민좀함
ps.프랑스 애국가를 비하하는게 아니니 오해없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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