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개인적인 사색을 정리하다가 쓴 글입니다. 자유로운 글이지만 개인적인 의미가 강하니 평서체를 쓰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p><p><br></p><p><br></p><p>---</p><p><br></p><h5 class="uiStreamMessage userContentWrapper" style="margin: 0px; padding: 0px; font-size: 13px; color: rgb(85, 85, 85); font-family: 돋움; 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letter-spacing: normal; orphans: auto; text-align: justify; text-indent: 0px; text-transform: none; white-space: normal; widows: auto; word-spacing: 0px; -webkit-text-size-adjust: auto; -webkit-text-stroke-width: 0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class="messageBody"><span class="userContent" style="font-size: 10pt;">1.<br><br>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은 그 형식에 따라 다음의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나는 수직적인 선의 궤적을 따르는 연구로,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선의 궤적을 따라가는 사고 탐험으로.<br><br>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br><br>수평적인 선의 이동을 따라가는 예술은 사실적이다. 그 선은 우리의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 시선은 별다른 꾸밈이나 기교 없이 우리 삶의 입체적 진실을 풍부하게 보여주길 원한다. 사실주의적 시선은 형식과 기교가 아닌 내용을 최우선으로 한다. 만약 그 예술이 우리에게 정서적 감동이나 충격을 준다면 그것은 표현방식 그 자체보다는 그것의 진실성 때문이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br><br>3.<br><br>반면 수직적 선의 이동을 쫓는 예술은 형식적이다. 그 시선은 현실 세계의 일면을 특별히 과장되게 왜곡한다. 그럼으로서 우리 삶의 영혼적, 심리적 진실이 한층 더 강조된다고 믿는다. 그들도 물론 형식과 기교 못지 않게 내용을 중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주관화하는데 더 관심이 많다. 그 예술 세계에선 현실에 대한 고도의 재구성이 이루어진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br><br>4.<br><br>수평적인 선의 이동은 다자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그 시선은 우리의 일상적 세계를 비춘다.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고 스쳐가는 존재와 사물들의 이동을 그 시선은 따라간다. 그 시선은 현실에 머무르며, 과장과 왜곡없이 우리의삶에 시선을 맞춘다. 그 시선은 낮게 이동하며 위압도 위선도 없이 우리 곁에 머무른다. 우리의 시선이 그 선과 마주할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때때로 너무 진부해서 일찍 싫증이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선의 이동을 너무 가볍게 무시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더 낮은 차원에 있게 될 것이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br><br>5.<br><br>수직적인 선의 이동은 일자적이다. 그 선과 우리 시선의 마주침은 너무 계시적이고 너무 낯설어서, 대부분의 경우는 눈을 돌리고 싶다. 하지만 그 선이 이동하는 장소와의 마주침을 우리는 결코 피할 수가 없다. 낯선 이성과의 황홀한 첫사랑, 사랑하는 이의 죽음, 가족의 별거,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우리의 존재를 먼지와 같이 축소화시키는 우주적 원리의 절대적 힘. 우리는 이러한 수직적 원리의 힘이 드러날때 그것과 대면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선을 따라 도약할 때 우리는 한 층 더 높은 차원에서 자신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br><br>6.<br><br>수평적인 선의 이동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술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자연주의적인 회화와 문학 작품: 쿠르벵, 스탕달: 적과흑, 발자크: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보바리 부인, dH 로렌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실존주의: 사르트르와 카뮈: 구토, 이방인. 헨리 밀러: 북회귀선. 입체파 : 피카소 다큐멘터리 영화: 감정과 이성, 저널리즘과 추리문학. 고전주의적인 극영화: 극사실주의적인 회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테오 앙겔로폴루스의 영화,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스윙, 비밥, 하드밥, 쿨재즈<br><br>7.<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br><br>수직적인 선의 이동을 따라간다면 다음과 같은 작품을 만나지 않을까. 상징주의:보들레르, 초현실주의:앙드레 브르통, 후기-초현실주의: 앙리 미쇼. 아방가르드 미술: 미래주의, 다다이즘,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상. 환상 문학: 호르헤 보르헤스: 픽션들, 비오이 까사레스: 모랄의 발명, 폴 오스터:달의 궁전 데이빗 린치의 영화, 잉게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제 7의 봉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카게무샤, 김기덕 감독의 영화 : 사마리아. 그리고 프리 재즈<br><br>8.<br><br>우리의 삶이 그렇듯 모든 예술은 수직적인 선과 수평적인 선의 어느 한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구분은 강조적인 것일 뿐, 결코 구조적이진 않다. 그것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 교차와 마주침에 만들어지는 낯선 충격과 계시적인 황홀경이 예술에서 미적인 경험을 낳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만남 그 자체를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고역인가.<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br><br>9.<br><br>내게 발생한 가장 최근의 기적은 '비참한 기적'이었다.</span></span></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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