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십대 초반입니다.
일명 구루마라고 불리는 매대에서 불법 최신가요 테이프를 사서 라디오에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고, 삐삐가 나왔을 때는 점심시간에 그 긴 교내 공중전화에 줄을 서서 이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수화기를 한 번 만질 수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그런 아재입니다.
가끔, 마치 "복사꽃이 질무렵 다리에서 만나자" 라는 말이 '불편하지만 낭만적'으로 들린 것처럼. 카톡이나 보이스톡, 영상통화에 비하면 삐삐는 '불편하지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약간의 자만심으로, 요즘 아이들은 우리 같이 '불편하지만 낭만적'인 것을 다시는 겪을 수 없으리라 우쭐한 감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파고를 접하고, 아직 양산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알려주는 영상들을 보는 순간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처럼 일일이 손으로 글자를 쓰고 서로를 익명속에 묻어둔 채 대화하는 지금이야말로.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최후의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시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아마 제 나이가 60쯤 되면, 무인택시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난 그래도 사람이 운전하는게 믿음직한데 기계가 하는 운전을 어떻게 믿냐"라는 말에, 시대에 뒤처진 꼰대 할아범이란 소리를 들으며 늙어가고 있겠죠.
홈네트워크 달아준 무인로봇에게 '커텐은 어떻게 칩니까?' '차라리 손으로 직접 닫고 여는게 편한데' 하고 웅얼거리면 기계가 얼굴화면에 [ ^ ^ ] 이모티콘 한 줄을 띄우면서 "시니어 서비스에서 클래식 스타일의 설명서를 배부해드리고 있습니다ㅡ 종이로 된 설명서가 필요하시면 별표를ㅡ 네트워크를 통해 다운받아 pdf 파일로 받아보시려면 우물 정자를 눌러주세요ㅡ" 하고 배에 달려있는 화면에 커다란 * 표와 # 표를 띄우겠죠.
택시기사와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 배경처럼 스치는 라디오 소리, 서비스 평가 만점을 부탁한다며 애써 웃는 업체기사와 커피라도 한 잔 내드릴까 묻는 그런 날이 리워질 때가 오겠네요.
그날이 오면, 같이 '맞아 내가 젊을 땐 그랬었지, 치킨배달 오면 스탬프 받아서 냉장고 붙이는게 또 꿀잼이었는데 요즘은 다 온라인 스탬프 기록이라 재미가 없다'고 낄낄거리며 오유에 글 한 줄씩 남기면서. 젊은 오유인들에게 "아이고 할배요" 한 마디씩 들으면서 같이 웃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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