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마드의 태아 난도질 사진을 접하자마자 가슴이 아파왔다.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까지 했다. 얘네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걸까? 아니 애초에 왜 뒤틀린걸까?일베랑 같다는 말도 이제 과거의 비교방법이다. 오히려 일베가 나아보인다.
내가 어린시절 족히 30년전쯤의 일이었다. 뉴스에서 일본의 어느 초등학교 정문에 검은 비닐봉투가 걸려있었고 그 안에는 아이의 잘려진 머리가 담겨있었다는 보도를 했다. 나는 나이가 어렸기도 했지만 너무나 충격을 먹어서 지금도 이렇게 잔인한 무엇인가를 접하면 30년전의 그때가 떠오른다.
범인은 피해아이와 함께 뛰놀던 동네 형이었다. 그 아이가 피해아이를 사망케하고 머리를 잘라 교문에 걸어 두었던 것이다. 30년전이라 사이코패스같은 분류자체는 하지도 않았고 내가 어린나이기도 해서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도 못했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만화책을 보고 멋있어 보여서 따라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뉴스에서 만화의 해로움과 아이의 범죄를 억지로 연관시키려는 보도라는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만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그런 행위를 할 생각도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지금도 든다. 그만큼 자극적인 것은 사람의 뇌리에 깊이 박히고 짧은 순간에 진하게 여운을 남긴다.
30년전과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자극적인 컨텐츠는 넘쳐나고 세분화 되었다. 누구를 탓할 수 만은 없는 것 같다. 당장 나만해도 라면 한그릇을 먹는 동영상보다 라면을 세숫대야만한 냄비에 끓여 먹는 동영상에 더 흥미가 간다. 컨텐츠의 종류 뿐 아니라 그 숫자도 비교가 불가능할만큼 많아졌으니 그 안에서 경쟁하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것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극적인 것에 쉽게 노출된 사람들은 흥미와 쾌감을 자극하는 감수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지는 것이다. 더욱더 무뎌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다가 결국 자극적인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회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막을 수도 없는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극적인 것을 찾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나쁜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절대 못보게 막아서는 안된다. 스스로 안보도록해야지 못보게 한다면 숨어서 찾게 되고 그렇게 음지로 들어가면 컨트롤이 안된다. 아무튼 이렇게 좋고 나쁨에 대한 인식을 시키는 것으로 '공감'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익히게 해야한다.
그렇게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메갈이 되고 일베가 되고 워마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저 사진을 보고 나쁘다는 것을 공감하지 못하는 저 아이에게 분노가 치밀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비약을 하자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한 이 사회의 책임이고 사회를 이렇게 만든 자본의 책임이며 자본이 우선이라고 가르친 기득권이 또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고 그 기득권들이 만든 이 나라 즉,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