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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초콜렛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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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472923
    작성자 : 한우초콜렛
    추천 : 0
    조회수 : 249
    IP : 112.156.***.133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3/12/26 21:31:25
    http://todayhumor.com/?sisa_472923 모바일
    민주노총, 경찰, 그리고 커피 믹스에 대한 스압적인 소설

       그날 나는 아침부터 불똥이 떨어졌다는 말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불똥은 상부의 직접적인 지시를 말하고, 불똥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속히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기 전부터 줄곧 쓰이던 은어라고 한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장비들을 입고, 챙기고 급히 버스에 올라탔고 그곳에서 설명을 들었다. 불똥이 떨어졌을 땐 버스에서 우리가 파견될 곳, 그곳의 상황, 마음가짐 등등을 말하는데 중요한건 여기에 반복이란 없다는 거다. 듣는 즉시 각인하고 체화시켜야만 한다.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다른 대대들이 건물 주위를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하늘에서 보면 가운데에 구멍 뚫린 원통형 성냥갑 중앙에 막대기를 꼽아놓은 꼴이었을까. 시위대 또한 만만찮게 모여 있었다. 그 틈을 자세히 비집고 보니 건물 둘레를 따라 에어매트가 깔려있었다. 에어매트는 일종의 거대한 매트리스인데 파견지가 고층 지역에 해당된다면 사상자를 예방하기 위해 그 주변에 깔아놓는 것이다.


       그 날은 어느 건물을 뚫어야 했다. 건물을 뚫고 들어가 노조 간부 총 8명을 체포하는 것이 그 날의 임무였다. 압수 수색 영장은 기각 당했다더니 용케 체포 영장만은 받아 냈었나보다. , 참고로 나의 임무가 체포였다는 것은 아니다. 직급 낮은 내 임무는 저 성냥갑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성냥. 우리는 자주 성냥에 비유되기도 한다. 굳이 각 잡고 말하자면 이 사회가 추울 때 앞서 희생하여 타올라 따뜻하게 녹이는 역할, 이지만, 때론, 아니 대부분은 그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어쩔 수 없이 마찰이 일어나고, 그렇게 타오른 성냥의 불은 어디로 번질지 모른다. 무얼 할지도 모른다.


       시선은 시위대 정수리보다 위를 향하게. 위협이 있거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 참 지루한 시간이다. 저 멀리 보니 어느 중년의 남자가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와 시위대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잠시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지루한 시간을 때우려다 보니 그런 습관이 생겼다. 동태눈 마냥 초점 없이 허공만 보지 말고, 그건 시력을 낭비하는 짓이니, 시위대 중 어느 한 사람을 찍어서 계속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의 행동을 하나 하나 관찰하며 상상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있을지, 평소엔 무얼 하며 지낼지, 가족은 있을지 등등을 말이다. 중년 남자가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그의 옆태가 보였다. 그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일 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난 그 얼굴을 보고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지루함도 잃고 생각도 잃게 되었다. 그 얼굴은 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시위대 틈에 섞여서는 그들에게 커피를 타서 나눠주고 있는 것이었다.


       왜 아빠가 여기 있는 거지? 오늘은 가게 문 안 여나? 여기 되게 위험한데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동안 중년 남자, 아빠가 자리를 이동했다. 내 눈은 복잡한 시위대 틈으로 사라진 우리 아빠를 따라잡지 못했다. 동시에 멍해진 나를 깨우는 것은 선배였다. 아주 괴팍하고 고약한 녀석이다. 그는 참 그에게 잘도 어울리는 명령을 내렸다. 나더러 저기 있는 커피 믹스가 든 봉투를 가져오는 것. 우리도 추운데 좀 나눠마시자고 시위대가 마시던 걸 가져오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그걸 가져온 건 우리 아빠였다!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강압적인 명령, 그리고 그의 괴팍함을 알았기에, 또 나는 겁쟁이였기에 어느새 난 커피믹스가 든 봉투를 내 손에 쥐고 있었다. 장갑을 벗고 드는 편이 낫겠다 싶어 장갑을 벗어 봉투에 넣었다.


       그때였다. 한쪽에서 시위대에게 최루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건물 진입을 위해 쓰이던 것이 건물이 뚫리자 이젠 시위대를 보며 침 흘리고 있었다. 혹자는 최루액에 맞았더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블랙코미디를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할 것이 못된다. 최루액은 캡사이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고추의 주성분이다. 그걸 쏘겠다는데, 상식적으로 몸에다가 그걸 뿌린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피부로 맛을 느끼나? 그것은 얼굴에 뿌렸을 때 아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고문이 따로 없을 거다. 나는 격앙되어 아빠를 찾았다. 그러면서도 난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하고 눈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찾았지만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커피믹스는 진작 내팽겨 치고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불현 듯 장갑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장갑을 커피 믹스 봉투에 놓고 온 것이었다. 내 이름 석 자가 또박 또박 적혀있는 장갑을 말이다.


       그렇게 맨손으로 불안에 떨며 서있다 보니 이제는 살수차가 들어와 시위대에게 굵은 물줄기를 내뿜었다. 잠시 뒤, 건물 위층에서도 물이 떨어졌다. 아마도 건물 내 소방 호스를 빼내왔나 보다. 너무 위에서 뿌리는 탓인지 강도가 약해 소나기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지상에서 강제 해산을 목적으로 뿌려대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몇몇 시위대는 강력한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꼿꼿이 서있었고, 몇몇은 쓰러졌으며 몇몇은 잠시 피해 도망쳤다. 그리고 내 눈은 그 틈새로 아빠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위대가 많이 모이는 쪽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에어매트 한 쪽을 들어 올려 그것으로 물줄기를 막아내며 응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물난리가 가라앉자 에어매트를 철수해갔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내 장갑을 들고 나타난 것은 아빠였다. 그는 우리들에게도 커피를 타다 주려고 했는데 종이컵이 없어 잠시 가지러 다녀온 사이 봉투가 사라져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래 지점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내 장갑과 함께 봉투를 발견하셨단다. 아빠는 긴말하지 않으셨다.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오라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어째서인지 나더러 네 탓이 아니라며 날 위로하셨다. 이제 많이 어둑해진 시간이었다. 아빠와 나는 짧은 인사를 하고 각자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되돌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에서부터 연행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수가 수십, 아니, 수백은 되었다. 그렇게 언론에선 말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문득 그 광경이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들의 수많은 아들들에게 연행되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 날, 우리는 8명 중 단 한명의 노조 간부도 체포하지 못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애초에 그들은 건물에 있지를 않았다. 우리가 건물을 에워싸기 한참도 전 새벽에 건물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오래 전, 아버지 저들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아들은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아들에겐 그의 아버지보다 강력한 힘이 있고 강력한 힘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아들의 뿌리는 무엇인가. 아들은 누구의 씨앗에서 태어난 것인가. 누가, , 어떻게. 내가 그 날 목격한 것은 어쩌면 패륜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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