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늙으면 노인이 된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남겼을까.
아마 내 자식들을 낳아 남겼을 것이다.
노인이 되었을 때, 내 자식은 내가 그를 혹은 그녀를 낳았을 때의 내 나이 만큼 커있고
그 자식의 자식은 내 어린시절, 내가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해 보았을 때의 나이만큼 어리다.
나는 내 자식을 사랑으로 키웠다. 몸과 마음 다 바쳤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에게 사랑으로 보답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떠난다. 반평생 이상을 나와 붙어있던 그들이 떠난다. 내가 생각했던 우리 가정이 해체된다.
그리고 그들은 떨어져나가 그들의 가정을 이루고 각자 꿈을 꾸며 바쁘게 살아간다.
이제 우리는 셋, 넷이 아니라 오직 둘이다. 혹은 하나다.
우리가 둘 뿐이면, 둘 뿐이라도, 우리가 신혼부부 같을 수 있을까.
아직도 서로를 끔찍히 사랑하지만 만약 내 아내가 혹은 남편이,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점점 어려지게 된다면.
그래도 나는, 우리 같이 살기 위해 일한다. 그가 걱정되기는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자식에게 손 벌리려 해도, 그 멀어질대로 멀어진 내 자식, 떨어져 나갔으면 나름 잘 살기라도 할 것이지,
아직도 내가 도와줘야하는 사랑하는 내 자식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그래도 집에 있는 그 사람 생각에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디만 애가 키워온 내 자식은 내겐 자식이지만
그들에게 우린 부모가 아닌 것 같고 우린 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버리려니 아깝고 팔으려니 돈 안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매일 홀로 집에서 기다리는 그 사람은 지금 너무 아프다. 근데 나는 해줄 수 있는게 없다.
점점 우리가 고립되어지는 것 같다. 벽이 높아진다. 우리가 어떤 처지인지 뼛속까지 새겨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확신이 들고 부모로서 마지막 도리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 잠시 높은 벽을 못본체하고 그 사람과 손 잡고 나와 세상 구경 좀 하고 작은 바램 하나 이루고는 다시 제자리로 들어간다.
벽은 아직도 튼튼히 높게 서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또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부모로서의 마지막 도리를 행한다.
내가 남긴것들은 그제서야 날 찾기도 한다. 그런데 마지막 할 일을 다하고 거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남긴 것들은 나처럼 되어선 안된다. 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이제 우린 벽이 없는 곳에서 함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