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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로 리모델링한 모텔에 배달을 갔습니다.
급할 때 오 층 정도는 뛰어서 올라가는데 칠 층짜리 건물에 육 층이라서 엘리베이터를 탈려고 하는데
카운트에 서있던 직원이 저를 부르더니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고 몹시 부당하다는 생각 이 들었지만 당시 배달이 늦은 터라 바빠서 시시비
비를 가릴 처지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급해서 그러니까 이번 한번만 승강기를 타고 올라 가겠습니다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배달을 하고 내려오자 직원이 뛰쳐나오며
쌍욕을 하였습니다.
상종할 가치도 없고 벌써 다른 가게 배달 주문을 받아놓고 있던 터라 밖으로 나오자
따라나와서까지 욕지거리를 하며 못 가게 앞을 막아 섰습니다.
더 이상 안 되겠다싶어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오늘 내 손에 죽고 싶냐고 물었더니 어디 한번 해보자 하더군요.
이 동네에서 일을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길래 아무래도 크게 일을 벌여 버릇을 고쳐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험악한 말이 오가는 그 짧은 순간에 머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주유소 습격 사건.
참 재밌게 보았던 이 영화를 떠올리며 넌 이제 죽었어 삼 분만 기다려 라는 말과 함께
퀵 서비스 사무실 단축키를 눌렀습니다.
소장님, 오늘 인생 끝장 볼 일이 생겼으니 단 한 명의 열외도 없이 전부 ㅇㅇ모텔
앞으로 삼 분 안에 집합을 시켜주십시오.
뒷일은 제 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자 오토바이를 잡고 못가게 막던 인간이 겁을 먹었는지 모텔안으로 들어가더군요.
삼 분도 안돼 기사들이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미친 듯 굉음을 내며 총알처럼 달려왔습니다.
열 명이 순 식간에 도착을 했고 또 일 분도 안 지나 저만치 한 무리의 기사들이 폭풍질주를 해서 도착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달려온 그들이었지만 느낌으로 상황을 눈치채고 한결같이 형, 괜찮아? 아저씨, 괜찮아요?
하고 내 안부를 물으며 마치 불의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가 된 것처럼 사생결단을 할 태세였습니다.
그동안 천하고 힘든 일을 하며 멸시와 천대를 받아 왔기에 그것이 가슴 한편에 쌓이고 쌓여 어떤 누구
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다 터뜨려버리고 수틀리면 반 죽여버리겠다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 일보
직전이 되었습니다.
마치 성난 소가 앞발로 바닥을 긁고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여차하면 무시무시한 뿔로 받아버리겠다는 심리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들 나 따라와 하고 맨 앞에 서서 뚜벅뚜벅 카운트 앞으로 걸어가서 두 다리를 바닥에 박은 듯 힘을 준
후 아까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녀석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 후 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데 아까 반말하데
니 몇 살이고? 하고 물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작살나게 생겼는지라 찍소리도 못하더군요.
말을 못하는 거 보니 나보다 어린갑네 너 좀 이리 나와 봐 라고 하자 그때 다른 직원이 옆에 있다가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로 좋게 지내자고 애를 써더군요
결론은 퀵 서비스에 가입한 점주들에게 모텔 직원들
이 보는 앞에서 이 모텔은 기사들이 배달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니 이 모텔은 아예 주문을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부득이할 경우
사장이 직접 배달을 하든지 여의치 않으면 기사들이 배달을 하돼,
일 층 로비까지만 배달하고 윗 층에 투숙한 손님이 정 배달을 시켜 먹고 싶으면
일 층으로 내려와서 받아가라고 하고 물러났습니다.
그 바람에 엘리베이터를 못타게 해서 객실까지 배달이 안된다고 화가 난 손님들이
팬티 바람에 씩씩 거리며 카운트에 뛰어내려와서 난동을 부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도 배달원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답니다.
원칙을 고수하겠답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가관입니다.
연세가 많은 사장님도 전기세 아낄려고 걸어올라가는데 배달부가 엘리베이터를 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랍니다.
전기세 몇 푼 아끼자고 엘리베이터를 못타게 해서 불편을 느꼈던 손님은
다시는 그 모텔에 안 갈테니 소탐대실이 이런 경우이지 싶네요.
손님은 엘리베이터로, 배달부는 계단으로!
표면적으로야 전기세 절약 운운하지만 하잘 것 없는 배달부에 대한
평소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게 뇌리에 깊이 박혔으면 저럴까요?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낮은 데로 임하자던
교황님이 이 땅에 오신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남의 아픔을 나몰라라 하네요.
이 사건은 이 시대의 왜곡된 우리 사회 자화상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같아
이 비오는 깊은 밤 결코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펌글과는 상관없지만....
조금 전 읽었던 이 기사의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사진출처: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바라보는 김무성-박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