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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9856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79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4/18 21:27:32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856 모바일
    [BGM] 소나기가 한동안 퍼부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최명선상처의 안쪽

     

     

     

    호박 밑둥에 똬리를 받치며

    어머니 말씀하셨다

    병의 근원은 습함에 있는 거라고

     

    늙은 호박을 가른다

    좀처럼 칼이 먹히지 않는다

    속은 분명히 비어 있을 터

    이 버팀의 힘은 무엇일까

    어머니수술대 위에 누워서

    암 덩이를 들어내는 동안

    나는 호박 가르던 그 순간을 생각했다

    여린 씨앗들을 위해

    모질어진 수밖에 없었던 생의 외피를

    다만 질기다 무심했던 자식과

    행여 그 속내 근심으로 읽힐까 봐

    커다란 혹 달고서야 젖은 속 열어 보인

    무던한 당신

    공명으로 가는 길 그토록 깊어

    내게 닿기까지 더뎠던 것인가

     

    눅눅한 생일수록 쉬이 오지 않는 봄

    진즉 똬리가 돼드리지 못한 자책과

    피우지 못한 몇 겹의 꽃들이

    벗은 몸 다시 입는 어머니 병실에서

    허기처럼 삼 년을 붉다가 졌다







    2.jpg

    최재목허공의 얼굴

     

     

     

    세수하다가 문득 두 손에 든

    물을 바라보다가물 한줌 쥔 동안 비치다 깨어지고

    다시 짜 맞춰지는 나를 보았네두 손과 얼굴 사이에서

    은밀히 살아남은 허공의 물방울

    물 한줌 쥘 동안 비치는 이목구비

    그것마저 놓쳐 버리면 낱낱이 분해되거나

    세상으로 흘러다닌 얼굴을 보았네

    자신을 잊을 때까지 두 손과 얼굴 사이에서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방울그러다가 그러다가

    당장에 무슨 뾰족한 수도 없이

    아주 잊혀져가는 얼굴을 보았네







    3.jpg

    이선영시든 꽃

     

     

     

    저 꽃의 영혼은

    추워서 방으로 들어갔단다

    겨울 집밖을 나서다 보니

    시든 꽃 한 송이

    영혼이 저만 따뜻한 곳 찾아 들어가버린

    아니면 시들어가면서 꽃이

    영혼 먼저 들여보냈나

    영혼이 놓아두고 간

    시든 꽃잎들은

    이제 아무데로나 떨어져내릴 것이다

    추위를 견딜 마지막 힘조차 잃었는가

    방 안에서 잠시 쉬었다

    봄이 되면

    다른 꽃을 찾아들리

    꽃들은 끝내 시들고

    시들지 않는 영혼만이 천년만년 새로운 꽃으로 옮겨다닌다







    4.jpg

    오규원칸나

     

     

     

    칸나가 처음 꽃이 핀 날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한 마리 잠자리가 날아와

    꽃 위를 맴돌았다

    칸나가 꽃대를 더 위로

    뽑아올리고 다시

    꽃이 핀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동안 퍼부었다







    5.jpg

    유안진말하지 않는 말

     

     

     

    말하고 나면 그만

    속이 텅 비어 버릴까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성이 될까봐서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해 버릴까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 사류로

    오염될까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 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거다

    참고 참아서 씨앗으로 영글어

    저 돌의 심장 부도 속에 고이 모셔져서

    뜨거운 말씀의 사리가 되라고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0/04/19 10:21:03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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