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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954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12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3/05 07:17:29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547 모바일
    [BGM] 아직 덜 식은 몸이 뒤척인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nJz5had6WHI






    1.jpg

    하상만간장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낸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 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다는 것을

     

    방에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 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놓았다







    2.jpg

    조용미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능우헌(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직립(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창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 밖에 서 있다







    3.jpg

    허소라관촌에서

     

     

     

    관촌에 오니 가을은 눈뜨고

    나보다 먼저 와 있는 키 큰 쑥대

    밀린 방학숙제로 두근거리던

    내 어린 날이

    투망에 걸린 채 파닥이고 있었다

    불타는 욕망은 수천의 구름집에 빨려가고

    물속에서 폈다 쥐는 아이들의 주먹 속에

    내 일상이 유예될 때

    낯익은 바람 떼 들

    하얀 갈밭 사이에서

    역장의 통과 신호를 흉내 내고 있었다

    이제 옥수수는 옥수수끼리잡힌 은어는 은어끼리

    어느 것이나 당당하여 유언도 없더라

    저문 관촌 들녘에서

    산이 산을 부르고 물이 물을 부를 때

    나는 끝내 아이들을 부르며

    훠이훠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4.jpg

    신수현입추

     

     

     

    아직 덜 식은 몸이 뒤척인다

     

    바람만 스치면 미쳐버리는 불꽃같던 나날

    겨우 이겨내고

    여민 가슴

     

    그냥 지나 가다오

    이상 기류라던가 열대성 저기압이 몰고 오는

    눈 먼 바다의 몸부림

    이제는 맑게 눈 떠 흔들리지 않을

    하늘만 이마 위에 얹고

    날개를 달고 싶다

    티끌로 남아 떠돌 목숨 위해

    타다 남은 몸 엷은 바람의 혀끝으로







    5.jpg

    김삼환거인의 자리

     

     

     

    강물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 깊은 상처 아물어

    생살 돋을 때까지

    제 속에 산 그림자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지

    바위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으로 울음 울어

    불길 잡힐 때 까지

    거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득한 고요 때문이지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0/03/05 10:06:08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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