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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9140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47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1/08 16:26:38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140 모바일
    [BGM]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DQt19_SJ6Ig






    1.jpg

    문동만딱따구리

     

     

     

    뼛가루가 날려 내 어깨에도 얹혔다

    데려가달라는 당신의 당부인지

    내가 매달린 것인지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

    나는 살아서 산을 오르는 중이고

    당신은 죽어 나뭇밥으로 뿌려지고 있었다

     

    당신의 가벼운 육신을 무겁게 지고

    몇걸음 오르다 딱따구리를 보았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깊게 파내어

    살아 있음을 말했고

    나무는 파여짐으로 살아 있음을

    표했다

     

    뿌리까지 드러나 밟힌

    아픈 길이

    길이었다

     

    숨긴 뿌리가 버티는

    길이었다







    2.jpg

    안현미기차표 운동화

     

     

     

    원주 시민회관서 은행원에게

    시집가던 날 언니는

    스무 해 정성스레 가꾸던 뒤란 꽃밭의

    다알리아 처럼 눈이 부시게 고왔지요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이 휘날려도

    끝내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 날

     

    언니 따라 시집 가버린

    뒤란 꽃밭엔

    금방 울음을 토할 것 같은

    고추들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3.jpg

    나태주마음의 길

     

     

     

    사람이 다니면 사람의 길이 생긴다

    바람이 다니면 바람 길이 되고

    물이 다니면 물길이 열린다

    쥐나 새가 오가면

    쥐나 새들의 길이 생기는 것처럼

    마음이 오가면

    마음길이 열린다

    얘야

    제발 비껴 있지 말거라

    봉숭아 꽃물 들인 손으로 가을꽃 꺾어 가슴에 안고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빈손이라도 좋고

    찡그린 얼굴이라도 좋으니

    내가 찾아가는 마음 길 맞은 편

    허전하게 비워 두지는 말아다오







    4.jpg

    한세정입술의 문자

     

     

     

    입술의 주름으로

    결별한 이름을 기록하는 시간

    산발한 걸인이 되어

    우리는 머리칼이 끌고 가는 바람의 문자를 해독했던 것이다

    살갗과 살갗이 스쳐 만든 인장(印章)

    문자가 없는 페이지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마침내 바닥에 목을 누인

    기린의 긴 혀처럼

    우리는 서로의 경전을 천천히 쓸어내렸던 것이다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수면에 얼굴을 묻고

    입술이 뿔나팔이 될 때까지

    머나먼 이름을 향해 입술을 움직일 때

    물살을 문 입가에 되돌아와 겹쳐지는

    입술의 무늬

    우리는 각자의 입술을 만지며 붉게 물들었던 것이다







    5.jpg

    백현지붕 아래의 잠

     

     

     

    언덕 위에 서서 재개발지역 끄트머리에 남아있는

    기와지붕을 인 한옥들을 본다

    부신 봄볕 아래 소멸을 예감한 듯

    검은 지붕들이 어둡다

    기왓골에 한 뼘 넘게 풀들이 자라고

    아직은 그 아래 깃든 삶을 덮어주는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 한 대가 낙타처럼

    꾸부정하게 좁은 길을 내려간다

    남은 사람들도 곧 묵은 살림살이를 모아

    오랜 터전을 떠날 것이다

    잠 속으로 부드럽게 스미던 빗소리와

    꽃밭과 장독대가 있는 작은 마당을 두고

    사막처럼 퍼져 있는 길을 지나

     

    해가 들지 않는 공동주택에서

    천장을 지나는 물소리와

    벽 속에서 웅얼대는 말소리에

    힘들게 뒤섞이며

    영영 잃을 것이다

    거친 하루를 덮어주던

    지붕 아래의 잠을

    그 위에 낮게 드리워진

    밤하늘을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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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08 20:23:27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2] 2020/01/09 21:45:15  175.123.***.79  renovatiost  27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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