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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757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402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9/05/09 08:00:40
    http://todayhumor.com/?lovestory_87573 모바일
    [BGM] 설마 외로운 건 아니었으면 싶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1.jpg

    송찬호복사꽃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2.jpg

    강연호중언부언의 날들

     

     

     

    잘 지내고 있지설마 외로운 건 아닐 테고

    옷깃만 스치는 날들이 지나가서 나는 이윽고 담배를 끊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치며 침묵이 깊었다

    침묵이 불편해지는 관계는 오래 가기 힘든 법이다

    번번이 먼저 연락하게 만든다며이번에도 졌다고 너는 칭얼거렸다

    나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이 너를 찾아갔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 이름 붙였던 유배지는 텅 비어 있었다

    내 기억의 못갖춘마디 속에 꾹꾹 되돌이표를 찍어놓고

    너는 또 어느 봄날에 미쳐 해배된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 그만두자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적어를 명시하지 못한 객기는 조금 불안했다

    대신 하염없는 취생몽사의 어디쯤

    옷깃만 스치는 생의 말엽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말엽(末葉), 그때는 정말 마지막 잎새처럼 악착같이 매달리지는 말자

    다만 잘 지내지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어주는 게

    그나마 세상의 인연을 껴안는 방식이라는 것

    설마 외로운 건 아니었으면 싶다 나는 또 담배를 끊었다







    3.jpg

    이기철내가 사용한 공기

     

     

     

    꽃이 벗어놓은 신발이 열매가 되는 날도

    한 번도 그것의 고갈을 염려하지 않은 채

    햇빛을 사용하고 공기를 사용한다

    라일락이 낭보처럼 피는 날도

    보랏빛에게 얼마만큼 아프냐 묻지도 않고

    옷을 사용하고 신발을 사용한다

     

    봄날이 오전 일곱 시를 데리고 오는 아침마다

    치약과 면도칼과 비누를 소모하고

    잠들기 전까지 헬 수 없는 수의 말을 낭비하고

    허파는 공기를 오염시키고

    내 몸을 빠져나간 오줌과 똥이 강물을 더럽힌다

     

    바람이 풀밭융단을 밟고 지나가는 날도

    만져본 적 없는 광년의 길을 걸어

    내게 도착한 햇빛에게 고맙단 말 한 마디 없이 온기를 빼앗고

    저 혼자 넉넉한 들판의 푸른 식구들을 베어 끼니를 때우고

    내일 태어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아낌없이 산의 푸나무들을 소모한다

     

    홀씨만한 참회도 없는 이런 말들이

    시가 되기를 바라고

    누군가가 이 시를 읽어주길 바라고

    누군가가 이런 말에 감동해주길 바라는

    참회의 길은 어느 만큼 큰가

    속죄의 길은 어느 만큼 미려한가







    4.jpg

    이호우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젊은 꿈도 익으려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5.jpg

    고정희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 사발을 들어 올릴 때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 올릴 때

     

    남도 해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 앞에 드넓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9/05/09 09:59:23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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